-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어느 가난한 여배우의 슬픔 소녀는 예뻤다. 마을 남자아이들이 그렇게 속삭였고 거울도 확인시켜주었다. 자신이 철저히 낯선 사람앞에서만 수줍음을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마침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혈혈단신으로 런던행 열차 삼등칸에 오르던 날, 봄바람이 약속했다. 오늘이 너의 남은 생을 통틀어 가장 초라하고 추운 하루일 거야.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열정을 알아봐줄 글: 김혜리 │ 2009-12-25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몸의 우주 타인의 몸이 아주 가까워져 마침내 나와 그의 거리가 0, 나아가 마이너스가 될 때 인간의 육체는 홀연 하나의 장소로 변모한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코를 묻은 아빠의 등은 너른 평원이고 최적의 자세로 포옹한 연인에게 서로의 품은 경건한 성당이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도입부에서 거대한 사막의 능선을 보여주는데, 잠 글: 김혜리 │ 2009-12-11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여자의 일생 형형색색의 접시와 사발, 찻잔과 컵이 진열된 그릇 매장을 거니는 여자들의 눈은 은은히 빛난다. 그녀들의 시선은 그릇의 몸체가 그리는 온유한 곡선과 화사한 빛깔, 매끄러운 광택을 음미하는 동시에 그들이 테두리 짓는 동그랗고 움푹한 작은 공간에 담길 향기로운 음식과 행복한 시간을 상상한다. 멋진 구두가 근사한 장소에 데려다줄 거라고 약속하듯, 그릇은 여성을 글: 김혜리 │ 2009-11-27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죽음을 내려놓다 깔고 누운 한쌍의 날개만 없었더라면 온종일 골목에서 뛰어놀다 벌거숭이로 곤히 잠든 시골 소년이거니 여길 뻔했다. 카라바조(1571~1610)의 <잠자는 큐피드>가 묘사한 어린 신은 이상적 미소년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무방비하다. 아무 데나 열정의 화살을 쏘아대어 각종 분란을 일으키는 장난꾸러기 신이 잠들어 있으니 안심이 되어야 마땅할 텐데 글: 김혜리 │ 2009-11-13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견고한 공존 감각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연구실에서 차우차우종의 개를 길렀다. 이 개는 프로이트의 반려 역할 외에 진료도 도왔다고 한다. 내담자에 대한 개의 본능적 반응을 보고 프로이트는 환자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지 가늠하곤 했다. 프로이트의 손자인 초상화의 거장 뤼시앙 프로이트(1922~)는 할아버지에게서 적어도 두 가지를 상속받았다. 하나는 인간 글: 김혜리 │ 2009-10-30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아늑한 황량함 많은 첫 번째 소설이 저녁상을 치우고 난 식탁 위에서 쓰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엌에서 태어난 소설들은 서재에서 집필된 작품과는 다른 향을 반드시 품고 있을 것이다. 영국 랭커셔 태생 화가 로렌스 S. 라우리(1887~1976)는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죽자 라우리는 생계를 위해 회사 글: 김혜리 │ 2009-10-16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틈새의 진실 비행기 여행을 상상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 즉시 불려나오는 그림은 무엇일까. 눈앞의 좌석 등받이와 안전벨트 램프 그리고 승무원이 기내식 수레를 밀며 다가오는 긴 복도다. 그러나 스튜어디스가 지닌 비행의 이미지는 판이할 것이다. 한 공간을 체험한다고 그 공간의 모든‘면’(面)을 알 수는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시야를 차지하는 ‘프레임’들을 더듬어보 글: 김혜리 │ 200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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