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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반지의 제왕> 뺄 수 없는 절대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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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백발백중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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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동물농장> 애완용 인간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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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트리플 엑스> 비밀첩보원이 된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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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전원일기> 양촌리 김회장 사이보그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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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이 1980년에 만든 <만다라>는 번뇌하는 두 승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제작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촬영장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려에 관한 이야기이니 당연히 절이 무대여야 하는데, 어떤 절에서도 촬영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건 얼마간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했다. 주인공인 두 승려가 전통적 승려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가운데 특히 지산은 가승(假僧), 잡승(雜僧)으로 자처하면서 기괴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자칭 땡땡이중이었고, 술과 여자도 거침없이 범하는 파계승이다.몇달 고생 끝에 어렵사리 촬영할 절을 구했을 때, <만다라> 제작진에는 식구가 한 사람 늘어 있었다. 촬영을 거절한 어떤 절에 기거하던 승려였다. 자기 절에선 촬영을 거절했지만, 자기는 관심이 있으니 촬영에 동행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왔고, 당시 임권택 감독은 불교 교리나 승려의 생활에 대해서 잘 몰랐던 터라, 어떤 식으로나마 영화에 도움이 되겠거니 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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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가 기꺼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불렀던 장 르누아르는 1차 세계대전 때 최전방의 병사로 참전했다. 그리고 그때의 부상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가 자서전 <나의 인생 나의 영화>에 남긴 회고담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전쟁이 벌어지면 으레 관능적 차림의 여가수들이 전방의 병사들에게 위문공연을 와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그들을 격려했다. 르누아르가 보기에 이건 꼴불견이었다. 병사들은 그런 노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여가수의 미끈한 허벅지만 좋았다고 한다). 최전방의 병사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오히려 18세기 말의 감상적 가요 <93년 파리>였다. 그 노래는 혁명기인 1793년에 한 젊은 귀족이 사랑하는 여공 리종을 만나러 파리에 왔다가 체포돼 단두대에 보내지는 사연을 담고 있다. 노래는 젊은 귀족의 반항적인 독백으로 이렇게 끝맺는다.“나는 비웃겠다. 참수인 상송을/ 그의 작업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더냐/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에,
어떤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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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프랑스 영화도시 칸의 인터뷰장에서 오시마 나기사를 비로소 만났다. 만난 게 아니라 그냥 멀찍이 지켜봤다. 그의 몸이 의탁한 휠체어를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이 끌고 있었고, 곁에는 이번엔 배우로 온 기타노 다케시가 서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한 문장을 넘어서지 않는 단호한 답변, 그리고 오만한 눈빛과 근엄한 표정이 위압감을 주긴 했지만, 그의 육신은 이제 늙고 병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오시마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내게 오시마는 늙을 수 없는 사람으로 기억됐었다.나는 오시마의 영화를 1990년대 중반,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의 추레한 2층 골방에서 낡은 비디오로 처음 만났다. 유명한 <감각의 제국>을 그보다 훨씬 전에 순전한 호기심으로 봤지만, 서대문 골방에서 <청춘잔혹이야기>를 봤던 기억이 굳이 첫만남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주인공인 청년 기요시가 더러운 낙태수술대 위에 잠든 연인 곁에서 사과를 질겅거리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잊을 수
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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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DVD가 나왔다는 소식과 인정옥 작가의 ‘내 인생의 영화’를 실으면서, 때가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복수 이야기를 해야겠다. 복수는 인정옥 작가가 쓴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여름 휴직에 들어간 직후에 메일을 보내느라고 PC방에 들렀다가 아침을 맞은 적이 세번 정도 있었다. 밤새 복수를 만났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무렵 어느 날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길가는 사람들에게 2002년의 인물 셋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노무현과 히딩크를 우선 말할 것 같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나는 거기다 복수를 더하고 싶다. 드라마가 끝난 뒤 <네 멋대로 해라>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수가 보고 싶다”고 적고 있다.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다” 혹은 “멋있다”가 아니라 그냥 그가 보고 싶은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가 정말 우리 시대 최고의 드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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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01년) 가을 <오아시스> 크랭크인 직전에 이창동 감독을 인터뷰했다. 길지 않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가진 술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이 불쑥 물었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거요” 우물쭈물하다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그는 왜 노무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1시간 동안 내게 강의를 했다.뜻밖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속으론 ‘이분이 왜 이러시나’ 하고 생각했다. 이창동 감독은 대중적 열광이나 대중운동을 신뢰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고, 그의 영화를 보고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축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있다. <오아시스>를 포함해 그의 영화 세편엔 각기 다른 파티장면이 나오는데 뜻밖의 방해자의 출현으로 늘 난장판으로 끝맺는다. 그렇게 체질적으로 잔치판에 동화되기 힘든 사람이 한 정치인의 열성 팬이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그러기엔 그는 생각과 자기 검열이 너무 많을 사람이다. 그런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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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경기 때 광장을 뒤덮은 응원단의 붉은 물결은 ‘그림’이 되었다.효순, 미선을 추도하고,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광화문의 촛불시위도 아름다웠다. 그 광경을 보고, 어느 신문은 시위문화가 성숙했다고 평을 했다. 시위문화가 시위대열에 선 사람과 시위를 저지하는 권력, 양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말이었다면 나도 동의하겠다. 시위라는 무리짓기 행위는 일종의 대중발언인데, 그것을 물리력으로,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힘이 있다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화염병이 촛불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그 글을 꼼꼼히 읽어보니 그런 뜻으로 쓴 것 같지는 않았다.또 어느 신문은 이런 대중집회 장소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부모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것도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게 모여서, 언니 누나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나라의 자존과 평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낸 저녁은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광장을 열어두니까 이렇게 좋지 않은
촛불과 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