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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당선 후 미국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첫마디는 “이제 누가 ‘이상한 사람들’인지 보라고!”였다. 지난 8월2일,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미네소타 주지사 팀 월츠는 TV 방송 출연 중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후보와 J. D. 밴스 부통령 후보에 대해 “좀 이상한 사람들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 발언 장면은 순식간에 SNS에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고, 짧고도 멋지게 핵심을 찌른 말이라고 민주당 지지자들 등에서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내 친구의 얼굴이 어두워진 건 그때였다고 한다. 2016년의 일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반”은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외국인 혐오자, 이슬람 혐오자들”이라고 하면서 한마디로 “한 떼거리의 한심한 것들”(basket of deplorables)이라고 부른 바 있었다. 당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이 발언을 크게 증폭하여 자
[홍기빈의 클로징] “Look who’s ‘weir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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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났다. 극장 밖을 나섰으나 여전히 깜깜하다. 마지막 회차였으니 당연하겠지만 문득 밤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바야흐로 어두운 시간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희미한 희망의 빛을 찾아 다시 깜깜한 극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다. 초조한 마음으로 몇편의 영화를 연이어 봤고, 희미하게나마 깜박이는 불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혹자는 성냥팔이 소녀가 잠시 추위를 잊으려 켠 작은 성냥불이 한줌의 환상에 불과하다며 가여워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현실도피와는 다른, 어떤 결연한 선택이라 믿는다. 세상을 뒤집지 못하는 자에게도 꿈은 허락되는 법이고 소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했다. 이 감각이 휘발되기 전에 몇 글자 남기고 싶어 서둘러 메모장, 아니 성냥불을 켠다.
첫 번째 성냥불, <아침바다 갈매기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을 수상하자마자 빠르게 개봉하여 더 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의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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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추천하여 독서토론을 했다. 며칠 전엔 같은 주제의 특강도 했다. 질문이 들어왔다. “선물을 하거나 받을 때, 돈과 실물 가운데 무얼 선호하느냐”고. 한 1초간 멈춘 후에 답을 했다. 돈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실물이라고.
성의가 오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굳이’ 돈을 주거나 받기를 원한다면 차라리 깔끔해서 좋지만, 그 성의의 구체성이 액수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돈은 증여이지 선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부모님처럼 명확히 돈을 선호하는 경우엔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드린다. 축의금이나 부의금처럼 ‘돈이어야 하는’ 증여 상황이 잦으니 그럴 때에도 그에 맞는 ‘값’을 치른다. 규격화된 증여에 따르는 세무 투명성을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게 좋다고 판단하여 내 계좌의 ‘수치’를 줄여 상대 계좌의 수치를 아주 약간 늘려놓는 방식을 취한다. 또 내게도 금전 증여, 정확히 말하면
[정준희의 클로징] 선물과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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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인가? 동거인의 죽음을 예감한 잉그리드(줄리앤 무어)가 선베드에 쓰러져 흐느낄 때, 유리창 너머로 다가오는 흐릿한 마사(틸다 스윈턴)의 형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마침 객석의 몇몇이 숨을 훅 들이켠 것도 같다. 아직 배우 틸다 스윈턴이 퇴장하기엔 이른 타이밍임을 고려하는 훈련된 관객들에겐 어렵지 않게 오해의 해프닝을 유추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다… 그러니 약속된 자살의 사인(닫힌 문) 이후 등장한 저 태연한 존재를 유령이라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귀향>의 어머니가 그랬듯 말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의 형벌로 항암 치료를 견뎠으나 결국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자궁경부암 3기 환자. 다크웹에서 구한 안락사 약으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시한부의 전직 종군기자. <룸 넥스트 도어>의 마사가 항시 지나치게 깨끗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묘사된다는 사실도 인물을 차라리 하나의 유령 또는 기호로 바라보게 한다. (투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쓰는 사람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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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언니. 생일 때 찾아오려고 했는데 지금에서야 오게 됐어. 미안해. 어떻게 지냈어? 요즘은 해가 쨍쨍한데도 비가 오고 벌건 날씨는 푸르러질 생각을 안 해. 그래서 때때로 시원한 맥주로 낮술을 마시면서 벌겋게 익기도 해. 유난히 더운 올여름, 언니는 무슨 과일이었을까?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데. /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색이 참 맑고 이쁘더라. 나한테 하늘은 유정이야. 오늘 지는 노을을 보고 (어느 색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파스텔의 유정을 떠올릴게. 내 바람일 수도. / 지나간 ‘색’을 모으면 아주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아. 그것이 유정을 향한 내 사랑과 그리움의 아우성일 거야.
2023년 8월1일, 민하가.
나의 유정. 나는 미국에 2주 정도 머물다가 왔어.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어. 왠지 모르게 외국에 나가면 언니 생각이 더 진하게 나. 밴쿠버로 떠날 때 언니를 놓고 왔다는 생각이 아직 깊이 남아서일까. 이제 격리를 하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그리워하는 모든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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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싸이가 말했다. 자는 동안의 세상이 궁금해서 잠을 잘 못 자겠다고. 그 말을 들은 김국진과 윤종신이 염소처럼 ‘메헤헤’ 웃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건 약간 선을 긋는 웃음이었다. 싸이의 저 증상은 뭐랄까, 불안으로 여기면 한없이 위로할 만한 일이지만, 성향으로 보자면 왠지 경계하고 싶은 속된 마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속된 것’이 정체성인 ‘속세형 아티스트’ 싸이의 말이었으니, ‘점잖음’의 미덕을 아는 90년대 연예인들에겐 다소 공감해주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었을까? 또 한번 이렇게 멋대로 짐작해본다.
21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유행한 풍조가 ‘엽기’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잔잔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당시엔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란 시대에 의문을 품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가 그대로 반영되는 결과적 존재 아닌가. 나는 한명의 작은 ‘엽기’로서 ‘엽기토끼’가 그려진 노트를 사고, <바부! 코리아>에 접속해 ‘노란국물’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잘 가 너무나 사랑했었어, <잘가> (더 자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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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뉴스를 끊고 살았다. 종종 멘털이 개복치급으로 약해질 때 일상을 버티는 방식 중 하나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압도적인 우위로 당선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기자회견을 연 날부터 뉴스를 보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이 <씨네21> 마감일인지라 정상적인 마감을 위해서라도 속 시끄러운 소식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건 스트레스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정도다. 마감날 글을 못 쓰겠다며 울분을 토하는 후배의 열띤 항변을 초점 없는 눈빛으로 흘려들으며 번뇌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그렇게 내 주변 자잘한 일들에만 신경 쓰며 버틴, 나름 평안한 한주가 될 줄 알았다.
살얼음처럼 얇았던 (가짜) 평화에 금이 간 건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으신다, 고 늘 생각해왔다.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실 정도이니 관심이 없으실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런 어머니가 어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받기 전에 먼저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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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과학이나 공학에 관심이 없다는 편견 때문일까. 그 편견을 깨고 여성 독자에게 호소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표지를 단 책들이 가끔 눈에 띈다. 젊은 남성 둘이 함께 쓴 과학책의 표지에는 후드티를 입고 안경을 쓴 대학원생처럼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이 서 있고 중년 남성 과학자가 쓴 책의 표지에도 언뜻 치마에 실험복처럼 보이는 겉옷을 걸친 여성이 있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이 쓴 인공지능 책에는 애교머리를 살짝 뺀 긴 머리에 발그레한 볼을 한 여성 청소년의 옆모습이, 여러 명의 물리학자가 함께 쓴 어떤 책의 표지에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작은 소녀의 실루엣이 보인다. 후자의 책을 쓴 저자를 찾아보니 남녀 물리학자가 섞여 있었다.
궁금하다. 도대체 왜 과학책의 표지에 여성 이미지를 쓰는 것일까? 여성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의도라는 나의 추측이 맞는 것일까?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을 보여주는 한 온라인 서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책들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이 책들을 가장 많이 구
[임소연의 클로징] 과학책 표지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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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스튜디오에 종종 붙는 수식어는,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에 어울리지 않게도) ‘변태’다. 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디테일에 변태처럼 집착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과학 자문을 담당한 어류 생체역학자 애덤 서미스는 제작진에 어류의 이동 방식을 포함해 대학원급 강연을 했다. 제작진은 실제 생물학에 기반한 빛의 질감을 연출하기 위해 물고기 비늘의 광학적 성질이 어떤 색깔로 나타나는지 학습하기 위해 실제 물고기를 해부하며 생물학을 공부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과학적 오류를 이유로 이미 작업 중이던 영상을 꽤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수정한 것이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산호초 지대에 차가운 물에서만 자라는 켈프라는 해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라따뚜이>는 생쥐가 요리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비과학적인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디테일은 집요하다. 레미가 주방에서 겪는 어드벤처(?)를 실감나게 묘사하게 위해 실제 생쥐가 냄비 물에
[임수연의 이과감성] 계속 타오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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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주인공의 눈물을 찍는 것도 주저했다. 한 병역거부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을 때다. 그는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몇 개월간의 경찰 조사, 몇 차례의 재판까지 충실히 겪은 뒤 최종 선고일을 맞았다. 최후진술을 마친 그는 법정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자 홀가분함, 슬픔, 그동안의 고생스러움과 앞으로의 고난 등이 떠오르면서 온갖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될 순간이었다. 그러니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야 하는데, 그의 곁에 서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그와 거리를 두고 선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안 찍을 수는 없어서 주저하다가 어정쩡하게 담고 말았다. 첫 작업이었고, 다큐멘터리 윤리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상황을 겪고 나서야 자문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가 눈물을 흘릴 때 카메라 드는 걸 주저했던 걸까?
누군가의 아픔, 괴로움, 고통 같은 것을 찍을 때면 유독 카메라가 흔들린
[장윤미의 인서트 숏] 흔들리는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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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을 맡은 지 딱 1년이 됐다. 원래 기념일이나 햇수를 잘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11월3일 프로게이머 페이커 선수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리빙 레전드의 눈부신 길을 목도하며 되뇐다. 아,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지난해 4회 우승으로 왕의 귀환을 증명했을 때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코너 ‘오프닝-편집장의 말’에 삐걱거리며 존경과 경탄을 짧게 기록한 적 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초월적인 업적은 때로 분야를 넘어 보편타당한 경이로움으로 연결된다.
이번 결승전을 라이브로 보며 심장이 크게 두번 두근거렸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짜릿한 역전 한타의 순간, ‘고전파’(페이커의 아마추어 시기 닉네임.-편집자) 시절을 방불케 하는 피지컬과 야수의 심장으로 채색된 경기 운영이 빛난 4, 5세트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윽고 폭풍 같던 환희의 순간이 지나간 뒤 대회를 마무리
[송경원의 오프닝] 영화의 운명, 경이로운 길을 따라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