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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을 느꼈다. 궁정 드레스를 입은 이자벨 위페르의 실루엣이 15분 동안 미동 없이 서서 쏟아내는 맹렬한 독백, 빛으로 공간을 조형하는 로버트 윌슨의 건축적 조명이 협공해 눈앞의 광경을 잠시 초현실로 변모시킨 탓이었다. <메리 스튜어트_Marry Said What She Said>는 죽음을 앞둔 밤에 메리 스튜어트(이자벨 위페르)가 남기는 편지이자 실존의 서커스라 할 만하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었다가 5살 때 프랑스로 도망쳤고, 세명의 남편을 잃었으며, 마침내 44살의 나이에 처형된 여자. 그 격렬한 생애를 다시 쓴 극작가 대릴 핑크니는 네명의 메리를 호출해 불가피한 역사와 광란의 춤을 춘 여인의 내적 분열을 탐색한다. 강렬한 시적 텍스트를 자랑하지만 정수는 제의적 형식주의를 극대화한 로버트 윌슨의 연출에 있다. 배우의 동작을 양식화하고 순간의 정지나 격변을 통해 리듬을 만드는 연출가의 손끝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연극적 시간성의 재감각이다. 하
[culture stage] 메리 스튜어트_Marry Said What S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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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채승혁(우도환)은 8살 때 자신이 병원의 실수로 잘못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후 가족을 떠나 이름을 ‘해조’로 바꾸고 방랑하듯 살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해조는 과거 연인, 조재미(이유미)를 결혼식장에서 납치하여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해조가 ‘가족’이라는 땅을 잃고 방랑하듯 넷플릭스 드라마 <Mr. 플랑크톤>에서는 모두가 방랑자다. 보육원에 버려진 날이 생일인 재미는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엄마’가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풍영어씨 충해공파 18대 종손이자 유서 깊은 종갓집 5대 독자”이자 한의사인 어흥(오정세)과 결혼하려 하지만 ‘조기폐경’ 진단을 받고 절망한다. 그러다 결혼식장에서 자신을 반강제적으로 끌고 가는 해조를 따라나선다. 어흥은 엄마 범호자(김해숙)의 기에 눌려 ‘나’로서 온전한 인생을 살지 못한다. 결혼식장에서 재미를 잃은 어흥도 전국을 떠돈다. 가출한 해조를 주워다
[오수경의 TVIEW] Mr. 플랑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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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히카 지음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하라다 히카의 음식 소설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것이 <낮술> 시리즈인데 이혼 후 밤새 누군가의 옆을 지켜주는 특이한 사무소 일을 하는 여성 쇼코가 퇴근 후 홀로 낮술과 함께 그 지역의 명물 안주를 즐기는 내용이 인물들의 소소한 사건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소설이다. 그외에 <우선 이것부터 먹고>나 <도서관의 야식> 역시 <낮술>처럼 일본 특유의 정겨운 음식과 주요 에피소드가 얽히며 인물들이 위로를 받거나 사건이 해소되는 내용이다. <헌책 식당>은 여기에 책이라는 중요한 주인공을 하나 더 등판시킨다. 하라다 히카의 음식 묘사는 항상 문장에서 은은한 빛과 맛이 배어나오는데 <헌책 식당>은 헌책방이 배경이 되어 여기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치유받는다. 아무리 ‘텍스트힙’이 대세라고 해도 책은 여전히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항시 화제에 오르는 미디어의
씨네21 추천도서 - <헌책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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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맥도나 지음 |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영화 <킬러들의 도시>(2008), <쓰리 빌보드>(2017), <이니셰린의 밴시>(2022)를 쓰고 연출한 마틴 맥도나는 1996년 <뷰티 퀸>이라는 희곡을 시작으로 극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필로우맨>(2003)이 출간되었다. 2007년에 최민식이 카투리안을, 윤제문이 카투리안의 형을 연기하며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무대는 경찰 취조실이다. 중앙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카투리안 카투리안이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채 그 앞에 앉아 있다. 경찰인 투폴스키와 아리엘이 들어와 카투리안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장면이 시작된다. 카투리안은 왜 잡혀왔는지 영문을 모르는 채로 무조건 협조하겠다는 뜻을 보이지만 경찰들은 시종일관 고압적이다. 카투리안은 도살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데, 또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에 대충 골라잡은 스무편이 죄다 ‘어린 여자애가
씨네21 추천도서 - <필로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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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엮고 옮김 | 창비 펴냄
“눈 내리는 막막한 벌판에 홀로 서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식으로 이 유한한 생을 살아야 옳은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문득 스스로에게 절실히 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공부법”을 담은 책.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 간행되어 큰 사랑을 받은 <선인들의 공부법>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세속적인 성취에 목적을 둔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나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공부의 도(道)를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책의 부제는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으로, 목차는 공자에서 시작해 장자, 주자, 왕양명에서 이황, 서경덕, 조식, 이이,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 등으로 이어진다. 해당 인물에 대한 간단한 해설 이후에는 그가 말한 공부에 대한 철학을 담은 문장을 한글 번역과 한자 원문을 병기해 소개한다.
공자의 말 중에서는
씨네21 추천도서 -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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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제 나는 안다/ 들뜬 기분으로 모든 걸 내어주는 일은 모두를 도망가게 한다는 사실을 나의 구멍을 들여다보면 너도 떠나가 버릴 걸 잘 알아.” 유선혜의 시 <그게 우리의 임무지>가 이렇게 심산한 마음을 드러내는 풍경을 응시하는 일은 무척 즐겁다. 시 속의 광경은 즐거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아아, 독자는 그저 행복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구멍 안에 무엇이 있는지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모두 내어보여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시는 SNS에서 바이럴되었다. 다음의 대목이다. “이건 내 폐예요/ 조금 지저분하죠?/ 제가 골초라…/ 이건 제 간이에요/ 조금 딱딱하죠?/ 제가 알코올의존증이라….” 장기를 모두 밖으로 꺼내 하나하나 소개해주고 싶던 시절로부터 멀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집의 표제작인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역시 어딘지 풋 웃음이 나오는 엉뚱함이 뜻밖의 필연처럼 보이는 조합을 만들
씨네21 추천도서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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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지음 | 비채 펴냄
2011년 5월, 문경에서 괴이한 시체가 발견된다. 한 남성 시신이 흰 속옷을 입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양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성경 속 예수의 죽음을 재현한 십자가형을 한 시신은 택시 기사를 하던 50대 남성으로 밝혀졌고, 경찰 탐문수사 결과 평소 그가 사이비종교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그의 종교 활동에 대한 증언은 제각각 달랐다. 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되었으나 워낙 엽기적인 데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자세로 시신이 발견되었기에 이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를 다루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가장 괴이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실존하는 사건과 죽은 이가 있기에 모든 접근이 조심스럽지만, 미스터리 작가들은 여기서 가지를 뻗어 각자의 다른 소설을 완성하기도 한다.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십가
씨네21 추천도서 - <십자가의 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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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괴이> - 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지음 / 비채 펴냄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 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 박희병 엮고 옮김 / 창비 펴냄
<필로우맨> - 마틴 맥도나 지음 /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헌책 식당> - 하라다 히카 지음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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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조승우의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햄릿>은 <그을린 사랑>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담당한 연출가 신유청이 참여하고 배우 조승우의 연기 경력 24년 만의 연극 데뷔작이란 점에서 일찍이 주목받았다. 조승우 외 박성근, 정재은, 김영민, 전국환, 김종구, 이남희 등 화려한 원캐스트 출연진을 꾸려 23번의 공연을 올린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선왕이 서거한 뒤 어머니 거트루드가 숙부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한다. 선왕 유령의 전언으로 그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계획한다.
<햄릿>은 복수극으로 통칭되지만 보복이라는 결과보다는 칼날을 겨누는 최후의 순간까지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햄릿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그린다. 그의 고뇌는 ‘복수를 하되 마음은 더럽히지 말라’는 선왕 유령의 명에서 비롯됐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괴로워하던 햄릿은 죽음으로 현실을 외
[culture stage]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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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어떤 섹스가 하고 싶어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질문을 2024년이 아닌, 성(性)이 금기시되던 1992년에 들었다면 어떨까? 금제시 작은 마을에 사는, 이름 그대로 ‘정숙’한 여성 한정숙(김소연)이라면 곤란한 미소를 짓고 눈을 피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판타지 란제리’라는 이름의 성인용품 방문판매를 시작한다. 정숙 외에 4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생계 때문에 나선 서영복(김선영)과 ‘신여성’으로 살길 원했으나 결국 ‘약국 사모님’으로 불리는 오금희(김성령)와 혼자 아이를 키우며 미장원을 운영하는 ‘차밍 미장원’ 사장 이주리(이세희)가 가세하여 ‘방판 시스터즈’가 결성된다. 이들의 활동은 시작하자마자 한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낸 ‘가족’ 같은 이웃, 심지어 가족에게도 배척당한다. “민망한 물건”을 판다며 매춘 업소로 신고당하거나 담벼락 낙서 테러를 당하거나 “더럽고 역겹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기도 한다. 그래도 ‘방판 시스터즈’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수모를 당하고도 생
[오수경의 tview] 정숙한 세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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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동재>는 국내 최초 스핀오프 드라마다. 왜 동재였을까. 사람들은 시즌2까지 나온 용두용미의 작품 속에서 왜 꼭 동재를 더 연장해서 보고 싶어 했을까. 동재의 무엇이 ‘최초의 스핀오프’를 만들어냈을까. 묵직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비밀의 숲>은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갈래에 숨은 진실을 파헤치는 법정 추리극이다. 진중한 극 안에서 서동재(이준혁)는 다소 돌출된다. 서부지검 형사3부 검사, 차장검사, 용산서 강력계 경위, 경찰서장, 대기업 회장 등 지위만으로 굵직한 인물들이 자신의 목표와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 예민한 경계를 앞세울 때, 서동재는 갈지자로 이곳저곳을 오가며 철면 얼굴을 들이민다. 경박한 건 아닌데 가볍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닌데 속마음이 빤히 보이는. 말씨와 행동 또한 대중에 친숙한 톤 앤드 매너여서 극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올리는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중이 서
[이자연의 tview] 좋거나 나쁜 동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