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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나는 의식 있는 소비자이자 바람직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이라는 세계의 시민이고 싶었고 교양 없는 속물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다.” <괴물들>은 이 고민을,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에서 시작한다.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폴란스키 영화에서는 버려도 되는 장면들 또한 단단하게 빛난다.” 고민. 폴란스키는 <차이나타운>을 만들었고, 13살 서맨사 게일리에게 약물을 먹여 성폭행을 했다. 이 모순 사이에서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던 남자 예술가들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는 경험을 해온, <뉴욕타임스> <파리 리뷰> 등의 매체에서 영화평론가, 출판평론가로 활동해온 클레어 데더러는 괴물의 목록을 작성하는 대신 “관객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여기에는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저간의 심리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 문제의 인물이 아직 생존하고 있어
[CULTURE BOOK]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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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시를 쓰고 읽는 것에 있어 살필 것들이 있다. 시를 쓰고 읽는 얘기에 관해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겠단 사람. 그들이 각각 취할 수 있는 태도. 시가 자리할 수 있는 지면이나 스마트폰, 태블릿, 누군가의 머릿속, 누구들의 입술 사이… 그런 매개체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의 눈과 손은 어떤 위치에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있을까. 물음이 끊이질 않는다.” <시 보다 2024>에 실린 차현준의 시작 노트 도입부다. <시 보다 2024>에 대한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한국 현대 시의 흐름을 전하는 특별 기획”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의 한국 시를 만날 수 있는 시 앤솔러지 기획이다.
“여기서부터 당신이 살던 행정구역이 낯설어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박또박 읽어보다가// 뒤를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표지판이 눈앞에서 멀어질 때// 두툼한 보조 배터리를 한 손으로 말아 쥔
씨네21 추천도서 - <시 보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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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종소는 후배의 출판사에 가서 일을 도왔다. 출판사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후배가 어렵게 꺼낸 지난달까지는.” 겸임교수로 8년을 일했지만 임용에 실패한 뒤 대학교와 연결된 리듬이 불규칙해지며 경제적 사정도 예외 없이 나빠진 종소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노인 우울증에 걸렸는데, 알고 지내는 후배의 말을 들은 그는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은은한 불안에 휩싸인다. 카페를 운영하는 영주는 아들이 학교에서 ‘압사 놀이’를 주도해 체구가 작은 학생을 기절시킨 사건과 관련해 학교를 방문하는 일을 남편과 논의한다. 아들 상현의 말에 따르면 “영상에서 본 참사 사건을 흉내내보고 싶었고 겨우 그 정도로 사람이 쓰러질 줄은 몰랐다”고. 영주는 카페에 자주 오는 손님을 본 남편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손님이 바로 종소이고, 영주의 남편은 종소의 임용을 방
씨네21 추천도서 -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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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지음 창비 펴냄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은 영화 <색, 계> <붉은 장미 흰 장미>의 원작이 된 소설들을 썼다. 그는 마치 <색, 계>의 이야기처럼 친일파 후란청과 사랑에 빠져 중국을 뒤흔든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이욱연은 <홀로 중국을 걷다>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며 장아이링의 단편소설 <봉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한다. 일본의 공습으로 공습경보가 울리고 일상이 멈춘 순간, 일상의 삶에 억눌린 채 의식의 수면 아래 잠재돼 있던 무의식 세계의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초면인 삼십대 남성과 이십대 여성은 서로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봉쇄가 풀리기 전까지. 짧은 소설 한편이지만 역사와 사회를 두루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지역별로 풀어가는 책이 바로 <홀로 중국을 걷다>이다. 이 책은 특히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이유로 중국 땅에 살았던 중국의 조선인들 이야기를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씨네21 추천도서 - <홀로 중국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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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비채 펴냄
<영매탐정 조즈카>의 속편.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행하는 여러 행동까지 자세하게 보여준 뒤, 범죄가 완벽하게 은폐된 듯한 상황에서 사건을 파고드는 영능력자 여성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전개로 이어지는 도서 미스터리(도서 미스터리라서 책 제목이 ‘인버트’다) 연작이다. <구름 위의 맑은 하늘> <포말의 심판> <신용할 수 없는 목격자> 등 세편이 실려 있다. <구름 위의 맑은 하늘>은 프로그래머 고마키 시게히토가 오랫동안 원한을 품고 있던 동창이자 회사 대표인 요시다 나오마사를 살해하면서 시작한다. 목욕을 하다가 미끄러져 사망했다고 위장한 뒤 자신의 알리바이까지 착실히 만들어둔 고마키는 옆집에 이사 왔다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저,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옆집에 이사 온 조즈카라고 해요.” 고마키는 옆집에 이사 왔다는 여성에게 마음이 설렌
씨네21 추천도서 - <인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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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트> -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비채 펴냄
<홀로 중국을 걷다> - 이욱연 지음 창비 펴냄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 보다 2024> - 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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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아카이브 펴냄
조던 필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겟 아웃>의 각본집이 출간되었다. <겟 아웃>의 각본은 2021년, 미국 영화, TV, 라디오 등 각본가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인 미국작가조합(WGA)이 2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의 투표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각본 101’ 1위에 선정되었다(<기생충>은 4위에 언급되었다). 조던 필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 오리지널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겟 아웃 각본집>에는 영화의 전체 각본은 물론, 박찬욱 감독이 쓴 한국어판 서문, UCLA 대학에서 흑인 공포영화를 주제로 강의하는 타나나리브 듀의 ‘<겟 아웃>과 흑인 호러 미학’ 분석글, 감독의 말, 삭제 장면, 대체 결말까지 <겟 아웃>에 얽힌 풍성한 읽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한국어판 서문은 단락을 맺을 때마다 “각본은 이렇게 쓰는 것이
[CULTURE BOOK] 겟 아웃 각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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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 시즌1은 선자(김민하)의 남편 이삭(노상현)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감옥에 가고, 선자와 경희(정은채)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서 끝난다. 시즌2는 동아시아 전쟁을 겪은 선자와 가족들이 오사카에 정착해 살아가는 과거 시점과 경제 호황기 끝물의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현재 시점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여 보여준다. 그런 전개를 통해 드라마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를 서게 한다. 정말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걸까? 죽기 전에 자신을 밀고한 ‘후 목사’(최준영)를 용서한 이삭이 보여준 자비, “역사를 움직이는 톱니바퀴”에 치여 자주 무릎이 꺾이지만 끈질기게 살아낸 선자와 경희가 보여준 생을 향한 묵묵한 의지가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건 아닐까? 또한 드라마는 역사와 인간은 ‘그림자’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노아(박재준)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앞만 보고 달리던 한수(이
[오수경의 TVIEW] 파친코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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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를 벗은 채 통나무 오래 매달리기를 하는 18명의 남성. 그리고 왕좌에 앉은 채로 그들의 경합을 바라보는 6명의 여성 리더. 이들은 여왕벌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여왕벌’이라는 단어는 남초 집단에서 홍일점이 되어 남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즐기는 여성을 뜻한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이 멸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왜 서바이벌에 단순 리더가 아닌 여왕벌이 필요한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물론 예능적 요소로서 불친절함을 택할 수는 있다. 전개를 보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피지컬 서바이벌의 장점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전투를 당연하게 수컷들이 이행하고 여왕벌은 말로 지령만 내리거나 남성들이 싸워 지켜낸 공을 받아 슛만 넣는 장면은, 결국 힘쓰는 노동은 남자만 하고 여자는 그것을 편하게 누리기만 한다는 고전적인 여왕벌 설전을 명쾌하게 뒤집지 못한다. 또 실무자와 리더가 동등하게 육탄전을 벌이지 않는 차등은 은연중 리더로서
[이자연의 tview] 여왕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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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인 홍경표와 정정훈의 영화 세계를 깊이 살펴보는 <빛의 설계자들>이 출간되었다.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해온 김성훈의 <빛의 설계자들>은 촬영감독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영화의 2000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홍경표가 목표물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어마무시한 맹수라면 정정훈은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능글능글하고 치밀한 설계자다.” 1990년대부터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온 홍경표 촬영감독은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를 거쳐 <유령>(1999)을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룩’을 만들어갔다. 이후 <반칙왕>(2000), <시월애>(2000), <킬러들의 수다>(2001)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차례로 찍으며, <챔피언>(2002), <지구를 지켜라!>(2004),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테크
[culture book] 빛의 설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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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지옥’ 재판관 유스티티아는 ‘거짓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을 실수로 처벌한다. 이 일로 인해 1년 안에 살인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 죄인 1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칙을 받고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몸으로 살게 된다. 빛나의 전략은 이렇다. 지옥으로 보낼 살인자라는 확신이 들면 일부러 가벼운 판결을 내려 풀어준 뒤 ‘진짜 재판’을 해 지옥으로 보내는 것. 그래서 그의 판결은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온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드라마는 빛나의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법이 얼마나 가해자에게 온정적인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지, 정의 구현에 무기력한지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인간 세계는 “정의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악마인 빛나가 정의 구현을 하는 주체가 된다. 빛나는 끔찍한 교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아동학대까지 한 가해자 모두 자신이 한 일을 똑같이 겪게 하고 ‘게헨나’(지옥
[오수경의 TVIEW] 지옥에서 온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