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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글을 읽다보면 필자의 태도가 감지되는 경우가 있다. 주어진 분량 안에서 자기 논지를 명확히 써내리는 데에 집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독자에게 말을 걸 듯 글을 풀어가는 이도 있다.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보다 화법의 특성과 관련된 것인데, 후자의 경우는 종종 책 너머의 필자에게 대화를 걸고 싶게 만든다. 이미 완결된 글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송경원 <씨네21> 편집장의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역시 그런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송경원 편집장은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뒤 2012년 <씨네21>에 취재기자로 입사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평론집엔 “15년간 영화와 대화를 나눈 한명의 필자가, 영화의 어떤 부분에 반응해왔는지 되돌아본 고백의 궤적”이 담겨 있다. 분석 저변엔 “자신을 감동시킨 영화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고, 이를 확인하
씨네21 추천도서 -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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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지음 / 창비 펴냄
푸른 하늘 위로 흩날리듯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들. 표지를 들여다볼 때마다 창문 너머로 초여름 한낮의 풍경을 내다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책장 넘기는 일이 한결 산뜻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여름에게>에서 최지은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리 가볍지 않다. 10살이 채 되기 전부터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의 부재를 차례로 겪으며 느낀 깊은 상실감, 외로움. 시인의 가난과 결핍을 곱게 바라보지 않던 주변 어른들이 남긴 상처에 관한 내밀한 고백들이 책에 빼곡하게 담겼다. 어른이 되어서야 마주한 마음속 어린이의 말에 최지은 시인이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유년의 경험을 복기한 결과다.
최지은 시인은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발표한 뒤 3년 만에 첫 산문집 <우리의 여름에게>를 내놓았다. 산문집에서 시인은 가족과
씨네21 추천도서 - <우리의 여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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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에 초대받아 스피커 앞 소파에 앉아, “보세요, 우리 집에 이런 레코드도 있답니다” 하며 보여주는 재킷을 구경하고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읽는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은 이 책에 실린 음반들에 대해 “개인적인 ‘호불호 보고서’”라고 적었는데, 기꺼이 파고들고 싶은 타인의 취향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나 싶다. 최근 조성진, 임윤찬의 활약으로 한국에서도 고전음악 팬층이 넓어지는 이때 가까이 두고 읽고 듣기 좋은 책이다.
하나의 곡에 여러 개의 해석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구성으로, 각 음반에 대한 설명이 길지 않아 다소간의 아쉬움은 있으나 그렇게 얻게 되는 넓은 시야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원한 구성의 묘가 아닌가 싶다. 필연적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해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데, 책에서 다루는 음반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어려울 때도 많다는 점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단정하게 해당 곡을 설명하고 각
씨네21 추천도서 -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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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트랜스젠더인 토미는 성별정정을 위한 인우보증서를 필요로 한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오스틴. IT스타트업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오스틴은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외모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사지연장술을 받은 참이다. 그에게 인우보증서를 받을 수 있을까?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는 트랜스 남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과 그 조건이 요구하는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미를 주인공으로 한다. 외모와 관련된 콤플렉스를 다루는 이야기가 주로 여성의 사정을 다루어왔다면 <리틀 프라이드>는 트랜스 남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는 보여지는 이를 타자화하지 않는 스트립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자신의 몸을 긍정한다는 일이 갖는 복잡한 함의를 생각하게 한다. 서장원은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데, 오로지 다정함만으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여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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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비채 펴냄
한국에서는 필립 로스라고 하면 말년에 쓴 <에브리맨>이 잘 알려져 있다. <에브리맨>이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통찰력에 방점이 찍힌 소설이라면 그의 1971년작 <우리 패거리>는 마치 기관총을 쏘듯 (미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마흔 즈음의 젊은 필립 로스를 만날 수 있는 정치 풍자 소설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미국 대통령 트리키다. ‘사기꾼’으로 해석 가능한 ‘트리키’(Tricky)라는 이름(정확히는 트릭 E. 딕슨이다)을 대통령에게 지어준 데 더해,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실제 연설 내용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우리 패거리>는 닉슨 행정부를 향한 조롱과 독설을 유머로 다루는 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트리키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논의할 만한 것으로 다루는 기자들 역시 이 희화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누가, 혹은 무엇이 정치를 코미디로 만드는가? 정치인들이 그렇게 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우리 패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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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거리 - 필립 로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비채 펴냄
소설 보다: 여름 2024 -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우리의 여름에게 - 최지은 지음 / 창비 펴냄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 송경원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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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떠났던 재벌 3세 송도영(전도연)이 딸 강해나(이지혜)와 함께 귀국해 집으로 향한다. 도영의 집은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으로 16살 생일에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다. 가족과의 반가운 해후도 잠시, 대를 이어 세습된 송씨 가문의 기업은 무능한 오빠 송재영(손상규)의 경영 실책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다. 송씨 가문의 운전기사로 복무했던 아버지를 둔 사업가 황두식(박해수)은 도산을 막을 방법으로 벚꽃 동산의 재개발을 제안한다.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대극장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공연의 제목에 유명 연출가의 이름을 명기한 것은 괜한 공치사가 아니다.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은 작품의 연출이자 각색 작가인 사이먼 스톤의 필치가 고전을 통제해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 설정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편집자)로 재창조한 사례다. 19세기 말
[CULTURE 스테이지]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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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남편 만나 팔자 펴라. 어차피 네 힘으로 인생 성공 못한다”는 황당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유언뿐 아니라 계모와 언니들과 (계모 뱃속의) 동생, 그리고 빚도 함께 남겼다. 생존을 고민하던 신재림(표예진)은 유언대로 상류층 사교 클럽인 ‘청담헤븐’에 입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담헤븐 대표이자 “MZ세대 재벌 8세” 문차민(이준영)과 엮이게 된다. 티빙 드라마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의 주된 설정만 보면 이 무슨 구시대적 발상인가 싶다. 하지만 드라마는 고전 동화 <신데렐라>와 ‘K드라마’가 무수하게 반복한 클리셰를 ‘대놓고’ 비틀며 의외의 웃음을 유발한다. 발랄하고 전복적인 ‘B급’ 유머만 있는 게 아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아닌 “흙투성이 흙수저”로 ‘재림’한 주인공을 통해 요즘 청년의 현실과 가치관을 영리하게 반영한다.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가 소환한 요즘 청년은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 한복판에서 자조하
[오수경의 TVIEW]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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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데이비드슨 지음 / 정지현 옮김 / 아트북스 펴냄
불이 켜진 창문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참혹한 사건의 전조를 의미하고,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에서는 소녀가 갖지 못한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뜻한다. 문화사학자 피터 데이비드슨은 시와 소설, 그림에서 불이 켜진 창문들을 찾아내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불이 켜진 창문>을 썼다. 이 책에 나열된 불 켜진 창문들의 풍경과 사연은 시대와 장소, 정서를 함축하는데, 피터 데이비드슨의 문장은 그 고요한 밤의 창문들 앞을 서성이는 느낌을 선사한다. 세기말의 여름 저녁 풍경을 보여주는 앙리 르 시다네르의 <달콤한 밤>은 1897년 작품으로 시다네르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찬사한 작가다. “발아래 땅은 그림으로 곧장 비치는 달빛에 흠뻑 젖었다. 나무 그림자는 스케치로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따뜻함과 고요함이 잠깐 멈춘 느낌이 강
[CULTURE BOOK] ‘불이 켜진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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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진행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사건이나 논쟁의 단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특히 두 번의 기자회견은 공통적으로 시각 정보를 발판 삼아 화제성을 이어갔다. 여성 대표가 주도하는 기자회견 자체가 워낙 드문 장면이었거니와 보편적으로 예측 가능한 공식 석상 복장과 달리 초록색, 노란색 등 유채색의 캐주얼한 의상은 기존 ‘공식’을 무시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되었다. 등장인물의 역동적인 표정은 또 어떤가. 어른의 책임을 말하며 오열하다가도 “죽긴 내가 왜 죽어” 하고 금세 얼굴을 갈아 끼우고, 기자의 면박에 “저를 혼내실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명확한 목소리로 선을 긋는 장면은 그 어떤 드라마에서보다 입체적이다. 그런 민희진 대표를 향한 2030 여성들의 지지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콘텐츠적 데자뷔랄까. <마녀의 법정> 마이듬(려원),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차현(이다희), <런 온> 서단아(수영) 등 일을 잘하기
[이자연의 TVIEW] 콘텐츠로서의 민희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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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글쓰기는 쓰고자 한 글과 쓴 글을 가능한 한 닮게 만들려는 노동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인 틈새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대체로 머릿속의 이상을 눈앞의 현실이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의 지평선을 훌쩍 넘기는 무언가에 당도하기도 한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뒤 2012년부터 <씨네21> 기자로 활동하다 2023년에 편집장이 된 송경원의 첫 평론집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가 출간됐다. 기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그가 찾아낸 영화 글쓰기의 해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만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첨언하자면, 만화, 애니메이션(<바람이 분다> <3월의 라이온> <환상의 마로나>)과 게임에 대해서라면 그의 분석은 언제나 좋은 읽을거리가 된다.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 <덩케르크> <1917>
[CULTURE BOOK]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