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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던 배우나 감독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직업이 영화기자라고 밝혔을 때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다. 매번 나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질문을 업으로 삼은 기자는 많은 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특권을 누린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누군가를 꼭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던 적은 거의 없었다. 감정 기복이 적은 편이라(실은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상태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 ‘우울이’가 바로 나다) 주변에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 악영향일까. 무언가를 강렬하게 동경하는 마음을 품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때는 좋아하는 대상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는 무딘 마음이 기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마음이 가벼워진 건 형형색색 개성 넘치는 팬심들을 마주하면서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했다면 당연히 행복했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애정을 기울여 주변을 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이미 충만하여) 전하지 못해도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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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평론가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해하곤 한다. 극장 영화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그리고 영상물에 대한 접근의 지리적·시간적 경계가 사라지다 보니, 관련 평론가들이 다루어야 할 물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그만큼 일자리와 수입이 늘어나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할 게 거의 확실하다. 평론이란 결국 (책, 잡지, 신문, 방송 및 금전적 보상이 있는 여타의 공개적 발언 기회를 포함한) ‘원고지 매수’에 의해 성과가 가늠되는 직업 영역인 까닭이다. 비평이 실리는 활자매체의 수와 열독률이 급감하는 조건에서, 속칭 ‘GV’(관객과의 만남)라든가 유튜브 등으로 이동해버린 평론의 장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듯하다.그래도 사람들은 종종 ‘별점’을 두고 이야기하곤 한다. 별점을 짜게 주기로 소문난 어떤 평론가가 다섯개 혹은 열개의 별들 가운데 절반 넘게 색칠을 해주면, 잠시간 웅성거림이 나타난다. 20자 비평 속에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일대
[정준희의 클로징] 논평은 넘쳐나지만 평론이 어려워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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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물리학인데 직업은 영화기자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도 쉽게 이해하시겠어요!”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물리학 지식’ 같은 제목을 단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아마도 상대성이론을 잘 알아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나온 기획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한국 관객수 1034만명이 모두 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가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게 아닌 뛰어난 대중영화 감독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2023년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수소폭탄의 반대자이기도 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인생 가운데 특정 시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극비로 진행됐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
[임수연의 이과감성] 과학과 윤리,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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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이르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흉내낼 수 없는 개성을 발산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초신성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폭발시켜 세상을 환하게 빛낸 뒤 거짓말처럼 사라진 작품들. 예를 들면 1980년대 과잉의 낭만이 녹아든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명목상으론 아직 완결나지 않았지만 사실 이미 쓸모를 다했다.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함에 그리움이 깃드는 법. 그 시절에만 허락된 어떤 반짝임은 아스라이 사라짐으로써 전설로 거듭난다.
두 번째는 세월의 모래바람을 꿋꿋이 버텨 시간을 이겨내는, 기적 같은 지속의 길이다. 무려 41년째 연재 중인 <유리가면>을 비롯해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미완성으로 남은 <베르세르크>, 권을 거듭할수록 챔피언에서 멀어져가는 <더 파이팅> 등 일본 만화계에서 장기 연재는 드물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본의 만화 연재 시스템은 인기작의 경우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하게 확장되는 구조라 작가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추리, 아니 물리 탐정 코난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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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 관련 학회에 갈 일이 있었다. 학회장 한쪽에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전시한 공간이 있길래 둘러보았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동물이나 아이,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대로다. 인공지능 스피커부터 돌봄 로봇 그리고 디지털 가상 비서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는 주로 친근한 외형이나 음성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처음부터 위협적이거나 지나치게 낯선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소비자들이… 급격한 변화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를 원했던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했던 말이다. 물론 작품 중에는 당연히(!) 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도 있었다. 서른개가 넘는 작품 중 두점이었는데 한점은 유명 예술가의 얼굴을 담고 있고 다른 한점은 인기 드라마 속 두 남성 인물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자는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이고 후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는 점에
[임소연의 클로징] 인공인간에도 성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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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은 내가 가장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밑단이 신발을 덮는 커다란 힙합바지를 사야 했다. 그 바지는 가을 학예회 때 H.O.T.의 <열맞춰!> 무대에 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구 동성로에는 ‘소금창고’라는 대형 보세 옷가게가 있었는데, 입구부터 매장 안까지 4m 정도 되는 긴 진열대에 모두 그 바지가 걸려 있었다. 수개월간 모은 용돈을 들고 가 오래전부터 찍어둔 바지(다리 라인을 따라 얇은 흰 줄이 선명하게 박힌)의 값을 치를 때, 나는 그 분위기와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핑클과 S.E.S.의 무대를 하는 친구들은 주로 무용실을 빌리거나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연습했지만, H.O.T.나 젝스키스 무대를 선택한 아이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모두 소각장과 옥상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춤을 잘추는 ‘춤신춤왕’의 ‘멤버 충원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새로 산 바지를 입고 노점에서 산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한심한 꼬라지들 구제불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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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가 달라도 축제는 대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올해 크게 흥행했다는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왔다. 몇해째 꾸준히 불황과 침체를 겪고 있는 출판 시장의 얼어붙은 분위기는 딴 세상 이야기다. 지난해보다 2만명이 늘어난, 무려 15만명이 방문했다는 숫자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어떤 기운이 행사장 내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양손 가득 굿즈를 들고 가는 사람, 사인이 담긴 한권의 책을 보물인 양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는 사람, 작가 강연을 들으려 기꺼이 긴 대기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문득 묘하게 영화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길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과표집된 공간은 외부와 격리된 채 이상한 열기로 들끓는다. 올해 도서전 테마이기도 했던 <걸리버 여행기> 속 이상향 ‘후이늠’처럼.
때때로 축제는 확인의 장소다. 당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공감해줄 사람들이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생존 신고라고 해도 좋겠다. 바깥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낙원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읽는 존재, 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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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해설가에게 “선수로 뛸 거냐?”라고 묻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평론가는 “정치 안 하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방의원 출신 정치평론가로서 나는 “뭐 하러 그 짓을 또 합니까?”라고 답한다. 물론 평론가로 사는 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올해도 그렇다. 비민주적인 진행자 교체에 항의해 한 프로그램을 떠나기도 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몇몇은 나를 모략하며 특정 정당 출신이라는 허위 사실을 씌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정치하는 것보다는 편하다.
의원은 신기한 직업이었다. 의회에서 관료나 다른 정치인과 치열하게 다투는 일, 길거리나 행사장에서 행인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일을 모두 한다. ‘싸우는 감정노동자’랄까. 평론가는 (조회수나 후원에 신경을 끈다면) 화면과 지면에서 할 말 하고 내려오면 그만이다. 정치인은 늘 표와 역학을 의식해야 한다. 당선하는 정치인은 소수고, 임기 끝나면 또 선거다. 돈은 돈대로 깨진다. 공공선에 복무하는 이타심으로 이 모든 것
[김수민의 클로징]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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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랜 친구 둘이 있다. 홍과 박. 그들과는 5살 때 만나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을뿐더러 거의 모든 방과 후 활동을 함께했고, 부모들끼리도 친해서 여행도 많이 다녔다. 박과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고, 홍은 중학생 때부터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모든 학원을 같이 다녔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같은 선상에서 서로의 곁에 있다.
박은 어렸을 때 식사를 굉장히 느리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녀는 항상 맨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아 급식을 먹었었고, 나는 기다려주었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밥 먹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득 느리게 먹는 박이 정말 신기해서 계속 관찰했다. 여러 번 씹기도 했지만 식사하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주 천천히, 다음 숟가락을 들기까지 오래 걸리는, 먹어야 해서 먹는 것 같았다.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나에게 그녀는 연구 대상이었다. 말도 별로 없었던 그녀는, 오랜 식사 시간이 끝나면 갈까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순도 100%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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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에 커다란 곰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골목의 입구였다. 순간 뭘 잘못 봤나 싶었는데 정말 곰 인형이 내 눈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검은 전선으로 여러 번 감아 묶어둔 것이었다. 긴 시간 비바람을 맞고 볕에 노출된 곰 인형의 털은 해지고 바랬는데, 심지어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어서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길가에 버려진 인형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이 쓰여 시선이 머무는데, 행인이 많은 골목길 한가운데에 곰 인형을 이런 식으로 묶어둔다? 이게 무슨 악취미인가. 대체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건가? 뒤로 물러나 잠시 지켜봤고,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갔다. 다들 전봇대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 익숙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고.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인형을 묶어둔 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일었다. 사람들이 꾸준히 지나다니는 길에서 튀는 행동을 한
[장윤미의 인서트 숏] 인형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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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에서 들려온 소식 중 특히 기억에 남은 건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조지 루카스의 한마디였다.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 중 영화에서 AI 사용에 대한 질문은 받은 조지 루카스는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건 마치 ‘나는 자동차가 잘될 거라 믿을 수 없으니 그냥 말 타는 일에 집중하겠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의견 표명을 할 순 있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스타워즈>의 창조주는 ILM을 설립해 디지털 기술 전파의 제일 앞자리에 섰던 것처럼 AI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예견처럼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우리는 이미 예정된 미래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목소리도 있다. SF 소설가 테드 창은 “인공지능은 의도와 지능이 없다”고 일축한다. 데이터의 축적으로 결과물을 유사하게 모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창작에 관한 한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예술은 선택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AI는 과정 없는 영화의 꿈을 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