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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시위가 예정돼 있어 용산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로서는 집회·시위 대비와 핼러윈데이의 질서유지를 모두 담당하게 됨으로써 경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에게 내려진 1심 판결문의 내용 일부다.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사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되자마자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했고 기어이 용산에서 취임을 맞았다. 늘어날 집회에 맞춰 경찰 인력을 증원하고 재배치할 시간이 없었다.
대통령실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확정 지은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 청산’을 내걸고 제왕적 방식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비용 집행은 예비비로 이뤄졌다. 예비비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예상할 수 없는 지출에 대비한 것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신규 정책 사업으로서 예산 편성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추가경정예산도 법령 개정도
[김수민의 클로징]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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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은 의외로 남들 놀 때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공휴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라면 어차피 약속도 없고 나가봤자 사람만 많은 때라 차라리 일하는 게 좋기도 하고요, 이런 인기 있는 날에 내 음악이 부름 받았다는 은은한 기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지요. 저에게 가을이 아름다운 건 여러 크고 작은 단체들이 인디 밴드 공연을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중한 전통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따사로운 가을날 저는 기타와 짐꾸러미를 메고 열차에 오릅니다.
그날은 구미의 복합문화공간 ‘각산살롱’ 의 오픈 축하공연을 하러 갔습니다. 요사이 정신이 없는 탓에 부실하게 먹고 잤더니 공연 가는 기차 안에서 멀미로 고생했습니다.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음원 사이트에 있는 저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했습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려보는 식이랄까요. 멜로디가 나오는 목과 코의 감각을 리허설해봅니다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다시 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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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작품을 봤다.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 25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원피스 팬레터>(ONE PIECE FAN LETTER)는 빈칸을 채워주는 선물 같은 이야기였다. 시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야에 가려졌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피스>에서도 의미가 남다른 정상 전쟁 2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본작의 주요 등장인물 대신 ‘원피스’를 추구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시점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재구성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휘두르며 각자의 꿈과 신념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들이 있는가 하면, 주먹 한방에 쓸려서 우수수 날아가던 엑스트라 해병1, 2, 3도 있다.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선 바다를 얼리고 지진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의 멋들어진 전투는 사실 재앙에 가깝다. 그럼에도 해병들은 보잘것없는 몸뚱이를 이끌고 언제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릴지 모를 무시무시한 전장에 서 있다. 왜. 무엇을 위해.
세상을 바꿀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해서 꿈과 신념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독립영화,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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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이후’(post-growth)라는 말이 있다. 20세기 후반의 전 지구적 산업문명은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경제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최고의 조직원리로 삼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극심한 불평등, 인구 위기, 사회 해체 등으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원리로 경제와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 그 새로운 대안적인 원리는 무한성장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담긴 함축된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면 단박에 현실을 조금도 모르는 낭만적 이상주의자라는 비웃음이 쏟아져나온다. 경제성장 없이 어떻게 산업사회의 조직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좋은 삶’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려면 마음 맞는 몽상가들끼리 모여서 공동체나 만들어서 조용히 살 일이지 떠들어대지 마라. 우리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힘차게 돌릴 것이다 등등.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이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홍기빈의 클로징] 성장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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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유리잔 안에 든 뜨겁고 맑은 찻물 속에서 팽그르르 돌아가는 홍차 티백이 한 장면의 중심일 수 있을까. 카페 테이블 위의 소서와 티스푼,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서 서서히 물드는 각설탕 한 조각은? 질문 둘. 창밖을 내다보던 주인공이 거리를 지나가는 노파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을까. 내친김에 쓰레기를 분리수거 중인 노인의 일과를 도와주기까지 한다면…. 질문 셋. 문득 닥쳐오는 운명적 예감이나 형언하기 힘든 직감을 포획하기에 영화는 적합한 매체일까. 대사나 내레이션이 없는 채로도 관객은 인물이 지닌 심오한 ‘느낌’과 공명할 수 있을까? 세개의 질문은 곧 하나의 연결된 물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가능성을 쥐어준다.
전염된 공동의 슬픔, 실체를 알기 힘든 상실감이나 연결감, 무언가 운명적인 것과 조우했다는 기묘한 확신 같은 것.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는 그런 것들을 향해 춤춘다. 지금껏 이를 종합하기에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운명이 말을 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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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야. 다시 써봐.” 오랜 지인이 등단을 했다. 국문과 졸업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동안 집필의 끈을 놓지 않은 의지만으로도 존경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축하 술자리, 지인은 대학 시절 내가 자신의 글을 보고 했던 ‘엉망진창’이란 한마디가 갑자기 떠오른다며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 묵은 응어리를 푸는 회포의 잔도, 나의 건방지고 못된 말에 자극받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는 훈훈한 성공담도 아니다. 그냥 문득 지금 그 말이 떠올랐다며, “네가 비평을 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는 내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했지만 실은 매 순간 번민의 늪 속을 허우적거린다. 이 걸작들을, 벅차오르는 순간을, 감히 이렇게 몇마디 조악한 단어들로 정리해도 좋은 것인가. 내가 뭐라고. 뭘 얼마나 안다고. 악의 없는 그의 미소가 안겨준 자괴감을 음미하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이 짓을 계속하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애매한 재능을 견디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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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과학자다. 모든 관심은 사회에서 시작하고 모든 고찰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국과 세계가 실로 대격변을 겪던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에 이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결정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사회 안에서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내게 이 사회는 영원한 숙제이다. 나는 사회과학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회를 지어 살아가는 한 사회에 대한 탐색과 질문 그리고 해답 찾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는 이런 사회과학의 느린 몸짓을 비웃으며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미국 사회과학은 왜 트럼프가 멀쩡히 살아 돌아와 기세등등하게 유권자를 후리고 다닐 수 있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유럽 사회과학은 홀로코스트의 비극 이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극우의 발호를 눈뜬 채 방임하고만 있다. 한국 사회과학은 우리 민주화 과정이 왜 이런 대통령과
[정준희의 클로징] 어느 부끄러운 사회과학자의 소심한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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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6시면 눈이 떠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떠졌다기보단, 어색하게 잠이 들면 해가 기다려졌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그토록 밤이 싫었다. 일어난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산책이었다. 그리고 매번,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은 아빠였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매일 이른 아침, 우리는 걸었다. 아주 천천히.
2018년 여름, 모든 감각이 무뎠다. 유난히도 더운 해였지만, 춥다고도 덥다고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쓰러지기도, 넘어지기도 잘했다. 그러면서 많이 다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약을 발라주며, 혹은 기절한 나를 업어주면서 당신도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곤 했다. 늘 뛰어왔기 때문이다. “여보, 민하가 또 쓰러졌어. 정신을 못 차려”라고 엄마가 연락을 하면, 아빠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나에게 달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희미한 내 시야 속에서 그는 항상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온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 아빠는 아무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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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의 무산 끝에 간신히 성사된 ‘트친’(트위터 친구)과의 만남. 나는 그와 SNS상으로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인터넷에서 줄곧 지켜봐왔다며 연신 “신기해요”라는 말을 반복했고, 취향에 맞는 선물을 가져왔다며 내게 2PM 택연의 포토카드를 주었다.
“그럼 고등학교 1학년이신 건가요?” “아니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거죠.” 저녁 식사 후 간단히 술 한잔 마실 것을 생각하며 나간 자리였는데 예상치 못한 트친의 신상 문제로 계획은 빠르게 수정되었다. 우리는 이태원의 피자 가게에 앉아 페퍼로니 피자 한판을 시켜놓고 콜라를 나눠 마시기로 했다. ‘당황스럽지만 절대 당황스러운 티를 내서는 안돼!’ 사회 통념상 나는 청소년인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성인이었으나, 내가 그를 보호하려 드는 순간 그는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나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그때 내가 뭘 했지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갔어 오지 않아, (2P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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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산처럼 높은 파도의 위용보다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더 깊은 여운과 잔향으로 기억된다. 좋은 드라마도 마지막 페이지의 결과보다 과정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완성되는 법이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열풍이 남긴 후일담을 들으며 어느덧 우리도 맹목적인 결과지상주의의 터널을 지나 과정을 즐길 정도의 여유가 생겼음을 실감했다. 우승의 영광은 나폴리 맛피아에게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좀더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를 써내려간 쪽은 아무래도 에드워드 리 셰프였던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애정은 간혹 차별과 공격의 언어를 동반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리의 서사를 응원하는 이들 중 일부는 호텔에 머물며 연습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그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며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한 에드워드 리의 화답은 그가 만든 어떤 요리보다 깊고 진한 맛을 전한다. “주방이란 무엇인가요? 주방은 화려한 장비나 고급 식재료뿐 아니라 열정과 사랑, 창의력을 발휘하는 곳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곧은 말, 너른 삶. 굽은 말, 부박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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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본능 아닌가요?” 최근 북토크에서 받은 질문이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의 저자로서 여러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토크를 해왔지만 여자 고등학생들만 모인 자리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여자의 본능,’ 아름답게 꾸민 여성이 등장하는 수많은 뷰티 제품 및 패션 광고가 전해온 메시지다.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책을 읽은 어떤 독자에게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이 반가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새들과 춤을>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춤을 추고 또 추는 수컷 새들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배에 노란 깃털이 가득한 어떤 수컷 새는 머리에 달린 몸 전체보다 긴 깃털을 사방으로 흔들어대고, 까만 몸통에 쨍한 파란색 깃털로 포인트를 준 또 다른 수컷 새는 나무 끝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폴
[임소연의 클로징]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