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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딸 손 하나 건드리기만 해… 가만 안 둬.’ 2023년 6월,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평상시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던 서러움을 그날따라 구구절절 술회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던 날. 잘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엄마에게서 온 문자 한통. 그것도 두 시간쯤 지난 후였다. 가만 안 둬. 그 짧은 문자 한통으로 날 울리는 모든 것을 무찔러주는 슈퍼우먼이 우리 엄마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 자녀 중 막둥이로 태어난 나에게 엄마는 강인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뭐든 물어보았고 허락을 맡았다. 엄마는 나에게 백과사전이었다.
좋아하는 오래된 기억 중 하나. 다음날 학예회 준비로 노래 연습을 하던 4~5살의 나. <바둑이 방울>이라는 동요를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 있는 엄마 앞에서 연신 불러댔다. 내가 20번을 부르면 엄마는 20번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세상의 모든 선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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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 중심이 몇개 있을까요?” 몇년 전 한 민주노조의 워크숍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결국 편집에는 쓰이지 않은 그날의 촬영본이 문득 떠올라 외장하드 폴더를 열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 공간에서 각자 중심, 가운데라고 생각하는 곳에 서보라고 말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맞히려고 노력 안 해도 돼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간의 끝에서 끝까지 거리를 재는 사람이 있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벽쪽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혼자 서 있기도 하고 무리 지어 모여 있기도 하다. 이제 각자 자신이 왜 이곳을 중심으로 삼았는지 설명한다. 저마다 중심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중심을 잡는 기준도 다르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오랜만에 그날의 촬영본을 열어본 건 이 말을 다시 보고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각자 왜 거기 섰는지는 알겠는데, 그런데 거기가 계속 중심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아도 괜찮을까.”
그날 서
[장윤미의 인서트 숏]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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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은 점에서 멈추지 않고 시차를 둔 채 선으로 이어져, 결국 면의 형태까지 퍼져 나간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처음 본 후 떨리는 손으로 메모장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간혹 굳이 언어로 옮겨 적는 것에 회의나 한계가 느껴지는 영화가 있는데 딱 그런 (기분 좋은) 무력감 혹은 도전정신을 안겨주는 작품. 오프닝에서 이미 끝남.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장면을 지나 낙원 같은 호숫가 수면 아래 지옥도가 감지될 때, 그 불온한 낙차가 모든 걸 집어삼킨다. 쨍하고 밝고, 푸르게 끔찍하다. 괴물 같은 영화.”
실은 이건 나중에 카페에서 생각을 정리해 기록한 버전이다. 극장에서 끄적인 메모장 제일 앞 페이지에는 그냥 딱 한마디만 적혀 있다. “와우….” 시간이 지난 뒤 말줄임표의 여백을 채워보려 애썼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를 1년 만에 다시 보고 똑같이 적는다. 와우. 그러곤 펜을 놓았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우리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사유의 보석함을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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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입학 직후 3월, 체육 교사가 배구공을 뿌렸다. 순간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말없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언더핸드와 오버핸드를 번갈아 구사하며 우리는 무아지경이 되었다. 공이 땅에 처음 떨어진 것은 종이 울린 직후. 그 친구와 나는 국민학교 배구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였다. “한 시간은 기본이지.” “기억나냐? 떨어트렸다가 대가리 박고 컴퍼스처럼 돌았던 거.” 어릴 적 몸에 각인된 것은 여러 편의 시퀄을 연출했다. 배구부에서 높인 점프력으로 구미 지역 국민학생 높이뛰기 대회에서 3위를 했다. 강원도 전·의경 체육대회에선 최우수 공격수였고, 대학 수업 때는 체대생들도 내 스파이크와 서브를 받지 못했다. 지방의원 시절에는 주부배구팀의 트레이너였다. 요즘은? ‘직관’은 곧잘 갑니다, 끙.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전문 코치가 부임해왔다. 라이트 공격수 겸 블로커로 발탁됐다. 주 44시간짜리 동계 훈련은 질적으로도 ‘지옥 훈련’이었다. 시대에 걸맞게(?) 몽둥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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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타임머신이다. 인류 최초는 아니지만 (아마도 최초의 타임머신은 ‘이야기’가 아닐까) 가장 직관적인 방식의 타임머신임엔 틀림없다. 흔히 추억의 옛 노래를 들으면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들 하는데,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좀더 직접적이면서도 복잡하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거나 빨리 감는 건 평범한 축에 속한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초대하거나 영화 속 시간을 스크린 바깥 현실까지 끄집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진짜 마법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데 있다. 반대로 영겁의 시간을 찰나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로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수많은 평행세계를 넘나든다.
영화제도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은 영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미래를 다녀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약속의 장소에서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을 미리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몰아서’ 본다는 건 특별한 체험
[송경원 편집장] 77회 칸영화제는 타임머신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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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겠다고 설친 지 10년쯤 되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최근 저의 음악 취향은 왜소하고 황폐해졌습니다. AI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로 허접하게 음악을 찾고, 감상보다는 확인한다는 느낌으로 듣습니다. 뭔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언제 마지막으로 가졌던가요.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냥 게을러져서인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 앨범도 아티스트도 노래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모양과 색깔로 앨범 커버를 찾고, ‘좋아요’ 표식으로 노래를 기억하고 맙니다. 이 행위를 ‘음악을 듣는다’고 표현해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단순하게는 이것은 시대의 흐름과 도구의 변화입니다. 애초에 음악을 어떻게 즐기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일 테니 시디플레이어 앞에서 가사지를 읽으며 노래에 집중하는 것이 플레이리스트 듣기보다 더 우위에 있는 행위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창작자는 이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정말로 기능하는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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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 인류와 생명체를 위협하는 긴급한 사안에 대해 힘을 합쳐 방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거대 기업을 위한 지도자를 지지해선 안됩니다. 원주민 생태변화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우리 자녀들과 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에 의해 입막음당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를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저도 오늘 밤 이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환경단체의 기조연설이나 유엔의 환경 관련 포럼의 발표가 아니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수상 소감이다.
사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는 그해 아카데미의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징크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번번이 눈앞에서 좌절된 그의 간절한 염원이 이번에는 이뤄질지에 많은 이들의 기대가 모였다. 하지만 인간 디캐
[송경원 편집장] 여전히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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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이고 근본적인 기술혁신이 벌어져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공포가 확산된다. 이에 대한 경제학 교과서의 표준적인 대답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에 가깝다. 새로운 기술이 확산되면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므로 그쪽으로 노동력이 이동하면서 생산성은 계속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낙관주의의 논리에 별로 설득력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주장에서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시기마다 나타났던 상이한 기술적 혁신들의 상이한 특성들, 그리고 그것들이 긴 시간 동안 진화해온 패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기술혁신’이라고 다 똑같은 성격의 것도 아니며,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노동력, 즉 사람의 대체’도 항상 똑같은 성격의 것도 아니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의 기술혁신은 개인적 집단적 차원의 인간의 노동능력을 하나씩 하나씩 기계가 빼앗아가면서 무력화시켜왔던 줄거리를 가
[홍기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람은 이제 퇴출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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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말이 좋거나 훌륭한 느낌을 대리하는 속어처럼 쓰이기 시작한 시대에 <베이비 레인디어>는 적확한 수식어를 빼앗겨 억울할 법한 시리즈다. 4만1천여통의 이메일과 350시간 분량의 음성 메일을 보내고 라이브 공연의 훼방을 놓는 걸로도 모자라 부모까지 협박한 여자가 경찰의 제지로 마침내 인생에서 사라진 순간. 코미디언 도니(리처드 개드)는 삶에 “이상하고 섬뜩한 침묵”이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스토커 마사(제시카 거닝)의 부재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산더미 같은 음성 메시지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폴더로 정리(특히 ‘칭찬 폴더’가 유용하다)하는가 하면, 그녀의 사진을 들고 자위하기에 이른다.
<베이비 레인디어>를 보는 사람은 번번이 포식자의 먹잇감을 자처하는 주인공을 답답해하는 사람과 도니를 부정할 수만은 없는 심정으로 모종의 거울치료에 동참하는 이들로 나뉜다. 어리석은 주인공이 필요 이상으로 수난받는 서사의 대부분이 작가의 악취미이기 이전에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혼란으로 걸어 들어가기, 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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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내 별명은 “지상 최고의 모범생”이었다. 무슨 그런 별명이 있나 싶겠지만 사실이다. 당시 국어선생님이었던 굼벵이는(죄송하지만 별명이 굼벵이셨다. 본명은 기억이…) 수업시간마다 나를 가리키며 “음, 다들 지상 최고의 모범생을 보고 배워라”라고 말씀하셨다. 친구들은 그때마다 킥킥댔는데, 그건 내가 국어책 밑에 무협지나 판타지를 끼워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 카무플라주가 절묘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는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그러니까 소설책을 읽으며 수업을 들었다. 이게 바로 멀티태스킹?
습관이 된 탓인지 그 후로도 수업시간에 수업만 들으면 좀이 쑤셨다. 뿐만 아니라 뭐든 한번에 하나만 하면 지루해 견딜 수 없었다. 산책할 때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하는 것처럼, 나는 산책을 하며 책을 읽었고 밥을 먹으며 책을 읽었고 헬스장에서 책을 읽었고 운전을 하며 책을 읽었다. 신호에 걸린 지돈의 차를 봤는데 책을 읽고 있어서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는 직장 동
[정지돈의 구름과 멀티태스킹하기] 멀티태스킹의 산만하고 사적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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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편하게 해.” 때로(사실 거의 대부분) 말은 내용보다 발화자의 중력에 끌려간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위치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로 소화될 수밖에 없다. 목요일 마감, 이번주도 어김없이 영혼이 탈탈 털린 뒤 잠시 넋을 놓고 멍 때리는 중이다. 원래 한창 바쁠 때 맹렬하게 딴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라, 한마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데스크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이번주 내내 뱉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편하게. 힘 빼고.
그러고 보니 요즘 유난히 기자들에게 이런 표현을 자주 던졌다. 그럼에도 정반대로 쉼표 하나 빈칸 하나 없이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정성으로 꾹꾹 눌러 쓴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차오른다. “힘 빼”라는 말이 “제대로, 열심히 하라”고 들렸던 걸까. “편하게 해”라는 말 뒤에 나도 모르게 “하지만 잘해야 돼”라는 행간을 추가한 건 아니었나.
개편 이후 하고 싶은 아이템이 꽉 차 있다. 강렬한 의지까지 불
[송경원 편집장] 적당해 지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