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북쪽 응원단에 관한 텔레비전의 특집방송을 봤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다는 뉴스 속에 빠져버리고 난 지금, 그 프로그램을 볼 때는 피식 웃으며 지나친 장면이 기억의 맨 앞줄로 기어나온다. 한판 붙게 된 남과 북의 여자레슬링 선수들이 애써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남북의 자매애를 상징하는 장면을 유도하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의중도 모른 척한다. 친밀감을 느끼면 경기진행이 어려워져서 저러는 거라는 해설이 곁들여진다.뒤집어 생각하자면, 대결의 긴장을 눅이기 위해서 북쪽 선수들과 응원단은 반도 남단까지 찾아왔고, 이두용 감독은 신작 <아리랑>의 프리미어를 하러 평양으로 갔던 것이다. 이라크 공습 계획을 밝힌 미국 정부는 반대로 자기네 국민들의 전의상실을 염려해서 이란 감독들의 입국을 차례차례 거부했던 것이고. 그러니까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호전과는 거리가 먼, 지극한 평화주의자들이라는 사실도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 그저 외면할 뿐이다.대화의 기
게임의 기초
-
[정훈이 만화] <동물의 왕국>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는?
[정훈이 만화] <동물의 왕국>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는?
-
공원 잔디밭에서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우리 아줌마들이 팥주머니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기다란 사각형 안에서 서른명의 사람들이 팥주머니를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나라별로 부스도 만들었다. 공원에 놀러나왔다가 만나는 구경거리다. 그 부스를 돌며 하얀 손수건에 아시아 각 나라 글씨로 사인도 받는다. 준비해둔 그 나라 음식들도 한점씩 맛본다.외국인 노동자들의 운동회날이다. 중앙의 무대에선 나무판과 스티로폼으로 네모난 방을 하나 후닥닥 만들어 놓는다. 일일 감옥 체험프로그램이라도 하려나. 구경꾼이 구경을 놓칠 리 없다. 영화상영을 합니다. 집을 짓던 엉터리 목수가 잡는다. 무슨 영화? <데모크라시 예더봉>일까, 한국에서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으니까 이런 데서 어울리긴 하겠네. 영화를 튼다는 방송이 나가자 아이들 대여섯이 신이 나서 달려든다. 그런 게 아니구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겁니다.엔지 필름을 잘라내지도 않은, 찍힌 순서대로
카메라 예더봉
-
[정훈이 만화] <디 아이> 귀신이 보여요
[정훈이 만화] <디 아이> 귀신이 보여요
-
-
50년 전, 찰리 채플린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을 떠났다. 미국에서 영화를 시작했고, 그 영화로 할리우드까지 빛낸 이 천재에게 미국은 입국 비자 말소라는 기발한 방식으로 추방령을 집행했다. 냉전체제 건설에 매진하던 반공의 본부 미국은 이 남자가 인간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하는 방식에 이름이나 색깔을 붙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미국과 채플린의 결별기.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미국발 블랙리스트 때문에 채플린의 영화들은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상영금지됐다. 정작 미국에선 추방 20년 뒤, 오스카 특별상이라는 화해의 악수를 창했는데 말이다. 웃음이란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사람들이나 웃을 수 있는 거라더니, 맞는 말이다. 그때의 사람들에겐 이런 일들이 분노를 안겨줬건만, 지금의 사람들에겐 코미디처럼 보인다.<위대한 독재자>의 디지털 복원판의 개봉을 앞두고, 채플린 특집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건 우연도 아니다. 압바
50년 뒤에
-
[정훈이 만화] <출동 6mm 현장속으로> 지하철 시민 헬스 이야기
[정훈이 만화] <출동 6mm 현장속으로> 지하철 시민 헬스 이야기
-
어느 날, 영어권에서 발행되는 어느 영화잡지에서 편집장의 글을 읽다가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다. 동종의 범죄자를 만났을 때 느낄 법한 그런 감정이었다. 그이는 영화비평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착잡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조리대에 올리는 영화들은 대부분, 올리지 않은 영화들보다 못난 재료가 아니다. 요모조모 뜯어보고, 음미하고, 감탄도 하고, 흠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제 입맛에 맞지 않아 타박도 하는데, 타박하고 때로는 화를 냈더라도 그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의 하고많은 영화들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그가 그렇게 쓰지는 않았다. 비유하자면 그런 내용이었다는 것이지).도리어 다른 영화들보다 더 ‘중요’하기에 평자의 손이 가닿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선택된 영화들이 비평의 해부를 당하고나면 결과적으로 그 자리가 좁아지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시장’이 제한된 영화들이 대상이라면 누군들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영화읽는 이들의 ‘과도한 의미부여
영화에 또 말걸기
-
[정훈이 만화] <몬스터 주식회사> 폭로는 안전한 곳에서
[정훈이 만화] <몬스터 주식회사> 폭로는 안전한 곳에서
-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일종의 성탄극으로 쓰여졌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요즘 같으면 텔레비전의 크리스마스 특집극 같은 것일 텐데, 즐거운 명절을 맞아 이웃을 생각하고 우리 안의 탐심을 다스려보자는 계몽적 뜻을 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단연 명편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다(적어도, 서양동화를 많이 읽고 자란 내겐). 서양의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가족들을 불러모으는 한국의 명절을 겨냥해 개봉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그런 종류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추석을 앞두고, 다시 두툼한 합본호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분량으로는 아주 작은 글 한편을 심어넣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련다. 9·11 테러 한돌을 앞두고, 스위스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우리의 해외기고가 임안자 선생이 이라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을 써줄 수 있다고 통지해왔다. 마침 이 다큐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고, 황혜림 기자가
메리 크리스마스!
-
[정훈이 만화] 2003학년도 졸업앨범 제작지침
[정훈이 만화] 2003학년도 졸업앨범 제작지침
-
신문사 편집국장 가운데 문화부 출신은 드물다. 한국사회의 권력 서열을 따라서인지 대부분 정치부나 경제부, 사회부 뭐 이런 부서를 거친 기자들이 국장자리까지 차지한다. 이유는 비슷한 것 같은데 문화부는 어느 신문사냐를 물을 것도 없이 인력난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요즘도 문화면을 펴보면 한면을 가득 채운 기사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기자 이름을 달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니, 흔하다.그래도 요즘은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한 사람이 두 분야, 심하게는 세 분야까지 ‘담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전문화시대라 부르는 지금도 그렇게 거룩한 르네상스맨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기사 생산시스템이지만, 문화부 기자 일을 오래한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시스템 덕을 많이 봤다. 정말이다. 유달리 부족한 문화예술적 기초교양을 일하면서 습득할 수 있었다. 예컨대, 음악을 담당하게 됐을 때는 태어나서 처음 피아노 교습소에 등록까지 해봤다. 최단기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