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북쪽 응원단에 관한 텔레비전의 특집방송을 봤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다는 뉴스 속에 빠져버리고 난 지금, 그 프로그램을 볼 때는 피식 웃으며 지나친 장면이 기억의 맨 앞줄로 기어나온다. 한판 붙게 된 남과 북의 여자레슬링 선수들이 애써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남북의 자매애를 상징하는 장면을 유도하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의중도 모른 척한다. 친밀감을 느끼면 경기진행이 어려워져서 저러는 거라는 해설이 곁들여진다.
뒤집어 생각하자면, 대결의 긴장을 눅이기 위해서 북쪽 선수들과 응원단은 반도 남단까지 찾아왔고, 이두용 감독은 신작 <아리랑>의 프리미어를 하러 평양으로 갔던 것이다. 이라크 공습 계획을 밝힌 미국 정부는 반대로 자기네 국민들의 전의상실을 염려해서 이란 감독들의 입국을 차례차례 거부했던 것이고. 그러니까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호전과는 거리가 먼, 지극한 평화주의자들이라는 사실도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 그저 외면할 뿐이다.
대화의 기운이 다시 충만해진 가을날, 북한 핵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왜 이 시점에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는지, 미국이 그 사실을 밝혔는지 분석들도 분분하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반도 남단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만큼 심사가 복잡한 이들은 없을 것이다. 햇볕정책의 실패라고 공격하는 쪽이건, 한국이 북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북미관계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건. 미국의 반응에 시청각을 집중하다가 북한과 이라크는 경우가 다르다는 발언에 안도하고, 핵문제를 대화로 일괄타결하고 싶다는 북쪽 관계자의 인터뷰 행간을 뒤져보는 이유야 물론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네고시에이터> 같은 할리우드영화로 치자면 이 대치극의 인질들이니까.
잡지 마감 틈틈이 선 자리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일간지들의 속보와 해설을 뒤져보다가, 아주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레슬링이 아니다. 스포츠의 긴장은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보아도 쾌락이 목적이지만, 이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