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001년) 가을 <오아시스> 크랭크인 직전에 이창동 감독을 인터뷰했다. 길지 않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가진 술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이 불쑥 물었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거요” 우물쭈물하다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그는 왜 노무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1시간 동안 내게 강의를 했다.
뜻밖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속으론 ‘이분이 왜 이러시나’ 하고 생각했다. 이창동 감독은 대중적 열광이나 대중운동을 신뢰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고, 그의 영화를 보고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축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있다. <오아시스>를 포함해 그의 영화 세편엔 각기 다른 파티장면이 나오는데 뜻밖의 방해자의 출현으로 늘 난장판으로 끝맺는다. 그렇게 체질적으로 잔치판에 동화되기 힘든 사람이 한 정치인의 열성 팬이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그러기엔 그는 생각과 자기 검열이 너무 많을 사람이다. 그런 그가 기껏 한표를 마련하기 위해 내게 1시간 동안 열강을 한 것이다(그의 한표 확보 노력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물론 정몽준씨의 지지철회가 게으른 나를 바삐 투표장으로 몰고 가긴 했지만).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나는 많이 배웠다. 난 이창동 감독의 강의를 들을 때까지 아니 그뒤로 한참 지나서까지도 투표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정치불신의 1등 공신은 1991년에 있었던 3당합당이었다. 그때 김영삼은 군부쿠데타의 주역 노태우와 몸을 섞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사고라고 선전됐다. 내 정치적 판단을 중지시킨 건 그 정치적 불륜 자체라기보다 그 불륜의 대가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가 집권 초기에 9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고, 내가 심정적으로 그 90%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3당합당 때는 나도 분개했지만, 그 시점에 이르러선 그게 정말 신사고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90%는 2년 만에 놀랍게도 10%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3당합당의 파렴치함에 대한 분개, 그 파렴치한에 대한 나를 포함한 90%의 국민의 지지, 그 지지도의 엄청난 추락이 불과 2, 3년 안에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아 정치란 건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이며, 그 세계에 대해서 내가 판단하고 분별하는 건 불가능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나의 정치불신은 내 상식에 대한 내 불신의 다른 얼굴이었다. 또 몇년 지나선 1980년대 초 대학생 시절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세 운동가 김근태, 김문수, 장기표씨가 모두 다른 당에 소속돼 서로 욕했다. 세상의 불의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사람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뛰어들어 서로 헐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외면하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3당합당 때 의원 노무현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함을 지르다 제지를 받고 끌려나왔다. 그 장면이 그의 당선 직후에 여러 번 방송됐다. 그걸 보면서, 나는 노무현이란 사람은 상식을 믿고 지킨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불현듯 상기했다. 그 상식은 한때 나의 상식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내 상식에 대한 나의 불신을 이제 접을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내가 정말 깊이 깨달은 건, 내가 희망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이제 희망을 비웃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강의를 듣다가 내가 물었다. “노무현이 그런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후보라도 되는 게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그가 답했다. “당신부터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그렇게 돼.” 정말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