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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는 일주일에 영화를 몇편이나 보나요?” 직무 탐구를 목적으로 한 특강에 참석하게 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다. 영화를 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영화기자는 비전문가보다 많은 영화를 보지 않겠냐는 짐작이 내포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결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스타워즈>와 같은 프랜차이즈물의 신작이 개봉한다면 복습 차원에서 전편을 다 몰아봐야 하겠지만,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한편의 영화를 여러 번 돌려 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영화를 보는 데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어느덧 업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를 오랜 시간 동안 보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사 구조가 복잡한 작품을 언론 시사에서 딱 한번 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때가 더욱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대상이다. 기억과 꿈, 마술과 물리학 법칙
[장영엽 편집장] 놀란 유니버스를 위한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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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은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작품은 그의 자서전 <비커밍> 출간 투어를 중심으로 하는 동시에 개인사를 비롯한 책 속의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책과 다큐멘터리가 같은 제목을 갖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해도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 생활의 지난함을 서술하던 자리에 환대하는 독자들의 얼굴을 채운 덕분일까.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결 밝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결코 평범치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데에는 선별된 내용과 조응하는 음악의 힘도 크다. 부드러운 관악기 사운드가 지배적인 재즈 스코어는 블랙 뮤지션 카마시 워싱턴의 솜씨로, 그는 일찍이 웨인 쇼터, 허비 행콕 등 재즈의 거장은 물론 스눕 독, 켄드릭 라마와 같은 톱 힙합 뮤지션과도 협업해온 색소포니스트이다. 솔로 앨범을 발표한 후로는 ‘파격적’, ‘우주적’ 등
[Music] 카마시 워싱턴의 감각 - 다큐멘터리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속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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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내내 눈치를 봤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면서 창밖을 힐끔힐끔 보다가, 비가 좀 잦아들었다 싶으면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을 놓치면 당분간 기회는 없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뛸 시간이다.
나의 첫 러닝 기록은 201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10kg이 불어서 돌아온 바람에 푹푹 찌는 여름 더위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달리기라는 건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널 때나 지하철을 잡아 탈 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보니 39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사람들이 길에서 러닝을 했다. 달리기를 단독으로 할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게 그때다. 뛰는 게… 재미있나?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다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본 대로 나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괜히 기분이 들떴다.
자신만만했던 태도가 무색하게 며칠 하다 말았다. 천천히 뛰는데도 숨이 턱을 넘어 코까지 차올랐다. 어렸을 땐 동네
일단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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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수학여행은커녕 입학식도 못 가봤고, 엠티라는 건 뉴스에서만 봤으며, 수영은 잘하는데 물놀이는 할 줄 모르는 데다, 언제나 많이 먹으면 안되고 놀면 그냥 ‘망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다. E채널 <노는언니>는 박세리(골프), 남현희(펜싱), 곽민정(피겨스케이팅), 정유인(수영), 이재영·이다영(배구) 등 전현직 여성 운동선수 여섯명이 모여 말 그대로 함께 ‘노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통, 방송 나오는 운동선수는 남자들이 많잖아요”라는 박세리의 말대로, 그동안 예능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여성 선수들을 다양하게 모은 기획부터 신선하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이자 여성인 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만큼 한층 더 흥미롭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을 시작해 대학교 3학년 때 은퇴하고 바로 코치가 된 자신이 ‘노잼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곽민정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딸을 낳은 직후 2014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남현희는 당시 출산
'노는언니', 우리 같이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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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녀 배달부 키키>를 다시 봤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보았다. 다른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수십년이 흘렀고, 그사이에 몇번이나 반복해서 봤지만, 그래서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설레고 조마조마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이를 먹으면 영화 한편을 다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책 한권을 한번에 다 읽는 일, 영화 한편을 다 보는 일, 드라마 한 시즌을 쉬지 않고 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원고지 10매를 빠르게 채우는 일을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이걸 특별히 불안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저 이전만큼 몰입하지 못할 뿐이지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일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소녀는 매번 하늘로 날아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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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 네 아빠 행방불명이다. 삼일째...
[정훈이 만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 네 아빠 행방불명이다. 삼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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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존재만으로 고마운
[장영엽 편집장] 존재만으로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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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영감의 원천이다. 3집 《Lianne La Havas》로 돌아온 리앤 라 하바스 역시 사람을 만나고 이별한 5년 동안의 이야기로 노래를 지었다. 2012년과 2015년, 각각 발매한 앨범들이 큰 성공을 거두자 본 이베어, 얼리샤 키스, 콜드플레이 등 톱 아티스트들이 리앤 라 하바스에게 연락을 했다. 그 음악가 중에는 프린스도 있었다. 프린스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2016년 친구이자 멘토였던 프린스를 잃은 리앤 라 하바스는 그가 남긴 말을 새기며 음악 작업을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이즈음 LA에서 살던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경험하는데, 같은 분야에 종사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잃어가던 음악가로서의 자존감도 이별 후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시킨다. 그리하여 리앤 라 하바스는 3집 앨범 《Lianne La Havas》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전 작들보다 덜 화려해진 편곡은 리앤 라 하바스의 숨결에까지 귀를 기울
[Music] 이별해서 다행이다 - 리앤 라 하바스 《Lianne La Ha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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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팝 콘텐츠를 즐겨 보는 편이다. 즐겁고자 보는 것이니 늘 즐겁기만 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K팝 콘텐츠를 소비하는것은 때로 불편하고, 죄책감을 자극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례한 중년 남자만큼 싫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콘텐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애교(aegyo)다. 애교 콘텐츠란 아이돌에게 아기 혹은 어린이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으로, “띠드버거(치즈버거)”,“기싱꿍꼬또(귀신 꿈 꿨어)”, “귀요미송” 따위가 있다. 아기 흉내라고는 했지만 진짜 영유아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운 매력을 보이는 것과도 다르다. “애교 하나 해봐”라는 말이 요구하는 것은 정형화된 동작이다. 10대 후반부터 성인에 이르는 연예인들이 발음을 뭉개고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거나 입술을 내밀며 한껏 과장된 표정을 짓는 등의 이상한 표현을 한다. 나는 이 애교 콘텐츠가 매우 불편하다. 애교 콘텐츠의 정형적 요소가 부정확한 발음, 사지를 가누는 법을 배울 때의
K콘텐츠와 인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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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2002) 이래 드라마 속에 검은 우의를 걸친 연쇄살인범이 수없이 등장했다. tvN <악의 꽃>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캐릭터 도현수(이준기)도 우의를 입었다. 아버지가 저지른 연쇄살인의 공범 혐의로 수배 중인 그는 자신을 알아본 기자 김무진(서현우)을 지하실에 감금한다. 비가 퍼붓던 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의를 입은 채 그는 사지가 묶인 김무진의 입에 김밥을 하나씩 떼어 넣어준다. “입맛에 맞을 거야. 너희 집 근처까지 가서 사왔거든.”
무슨 사이코패스가 김밥을 사다 먹이나! 김무진의 위장에 김밥을 남겨 경찰 부검에 대비하려 했다는데 말은 무시무시해도 도현수의 실제 수고는 산 사람과 협상하는 쪽에 쓰인다. 서스펜스에 엮어내는 괴이한 유머는 유정희 작가의 장기. 도현수는 김무진이 포털사이트 지식인에 올렸던 질문, 자기 과거가 드러나면 기자직에 영향이 있을지 묻던 내용을 본인 입으로 읽게 한다. 36살 남성의 목소리로 낭독하는 글의 시작은 이렇다
'악의 꽃', 어떤 사이코패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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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 / 상영시간 113분 / 제작연도 2007년
“이 나라에서 뭘 기대하겠어요?” 크리스티안 문주의 영화 <엘리자의 내일>(2016)에서 주인공 로메오는 영화 내내 이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2002)나 <신의 소녀들>(2012)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되풀이된다. 세월이 흘러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사회처럼, 감독의 분노와 절망도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그 오래된 환멸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제목은 영화 속에서 태아가 낙태되기 전까지 자궁에 머물렀던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수십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는 부패와 불법, 무기력이 어디서부터 비롯
[김호영의 네오 클래식] 크리스티안 문주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