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안 풍경> 제작 한양영화공사 / 감독 박종호 / 상영시간 119분 / 제작연도 1962년
1960년과 1961년에 유행한 가족 드라마가 결정적으로 기댄 장르 요소는 희극성이다. 희비극이라는 당시의 광고문구가 말해주듯 비극적인 내용이 그려지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밝은 정서를 유지하며 희극적인 요소를 곳곳에 배치하고 엔딩 역시 희망적으로 마무리한다. 소시민 코미디라고 불린 이유이기도 한데, 바로 그 주역은 서민 가족의 아버지로 분한 김승호, 또 그의 상사 역이나 수금하러 다니는 사람 같은 감초 역할로 코미디 파트를 책임지는 배우 김희갑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장르의 특성이 그렇듯, 1960년대 초반 가족 드라마 역시 장르적 관습에 균열이 일어나고 혼종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요소가 강해지거나 정극 멜로드라마의 세계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61년작 <돼지꿈>(감독 한형모)이다. 영화는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건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가족 드라마는 어떻게 변주되는가 '골목안 풍경'
-
[정훈이 만화] '이웃사촌' 도청과 감시에 있어서 완벽한 요원이죠
[정훈이 만화] '이웃사촌' 도청과 감시에 있어서 완벽한 요원이죠
-
이번호 특집은 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맹크>다. 이 작품에 ‘미로’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당황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서다. 1930, 40년대를 배경으로 당대 할리우드의 천재 작가이자 기인이었던 허먼 J. 맹키위츠의 <시민 케인> 각본 집필 과정을 조명하는 <맹크>는 대담하게도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사의 걸작과 1930년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에서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거침없이 대사를 쏟아붓는 초반부에 관람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자 여러분에게 <맹크>에의 도전을 제안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진입 장벽을 넘어선 이들에게- 실은 영화를 즐기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없는 장벽이다- <맹크
[장영엽 편집장] 올해의 미국영화
-
텅 빈 학교, 몰래 나눠 듣던 이어폰, 여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리던 축구화, 갑작스레 사라진 친구, 저녁노을을 향해 끝없이 밟는 자전거 페달. 하나같이 언제고 영롱하게 빛날 아름다운 청춘의 클리셰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 번째 미니앨범 《minisode1: Blue Hour》는 누구나 가슴 한구석 어렴풋이 품고 있는, 보는 것만으로 코끝에 푸른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이 익숙하고 생명력 넘치는 이미지를 정성스럽게 담고 있다. 전작 《꿈의 장: ETERNITY》로 데뷔 서사인 ‘꿈의 장’을 마무리한 이들은 시리즈물의 작은 에피소드를 뜻하는 ‘미니소드’(minisode) 형식을 통해 거대한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은 청춘의 조각들을 가볍게 꺼내놓을 기회를 잡았다.
첫곡 <Ghosting>은 도입부에서 곡 전개, 보컬, 사운드 운용까지 K팝보다는 슈게이징이나 드림팝에서 영향을 받은 인디팝 카테고리에 넣는 편이 옳은, 눈에 띄게 매력적인 트랙이다. 노래에 실려 우리가 기억하
[Music] 어린 시절이 절로 떠올라서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minisode1: Blue Hour》
-
-
11월 2일,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이 세상을 떠났다. 2007년 KBS 공채 22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개그 콘서트>의 간판스타 중 한 사람으로 떠올랐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방송 환경의 변화로 출연 프로그램이 줄어들고 코미디 무대보다 아이돌 관련 행사 무대에 더 자주 서게 된 이후에도 늘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카메라 앞의 예능인이라면 웃는 얼굴인 게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지선은 정말로 언제나 괜찮아 보였다. 아니, 그는 항상 괜찮다고 말했다. “하하하하하하!”라는 웃음이 그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알 수 없었던 걸까. 11월 7일 방송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헤아릴 수 없어 가늠하지 못했던 당신의 아픔에 뒤늦은 안부 대신 안녕을 보냅니다”라는 작별 인사를 그에게 건넸다.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사랑했던 박지선은 자신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캐릭터를 여러 차례 연기하고 악성 댓글에 시달리면서도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박지선 부고를 접하고' - 안녕,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
[정훈이 만화] '구직자들' 오늘은 일을 좀 구해야 할 텐데…
[정훈이 만화] '구직자들' 오늘은 일을 좀 구해야 할 텐데…
-
웹툰 <승리호>가 처음으로 공개되던 날, 카카오페이지에 가입했다.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작으로 거론되던 한국영화 프로젝트의 세계관을 웹툰으로 먼저 만난다는 기대감이 컸다. 무료로 공개된 에피소드만 가볍게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달가량의 연재 예정분을 결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업데이트된 에피소드를 다 보고 나서도 헛헛한 마음은 가시지 않아(이래서 완결되지 않은 콘텐츠를 구독하는 건 위험하다),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각종 웹툰과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의 내가 몇 시간 만에 얼마만큼의 유료 콘텐츠를 결제했는지는 오프더레코드로 남겨두고 싶다. 웹콘텐츠에 중독되면 답이 없다는 지인의 말을 짧고 굵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국내 스토리텔링 콘텐츠 산업의 중추로 확실히 자리 잡은 웹소설과 웹툰의 강점은 독자로 하여금 다음 화를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몰입의 기술을, 여타의 스토리텔링 매체보다 치열하게 갈고닦
[장영엽 편집장] K-스토리 전성시대
-
영화 <베이비티스>의 두 주인공은 많은 면에서 참 다르다. 중산층 부부의 외동딸로, 갤러리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모던한 저택에 사는 밀라.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격리 명령을 받고 거리에서 마약을 사고파는 모지스. 죽음을 앞둔 10대 소녀 밀라가 우연히 모지스를 만나 경험하게 되는 이 첫사랑 이야기에는 두 사람의 성격, 배경, 외모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간극만큼이나 시대적·장르적으로 멀리 떨어진 음악들이 공존한다.
일단 밀라의 엄마가 피아니스트라는 설정에서 클래식 음악이 자연스레 나온다. 밀라 역시 엄마의 간곡한 권유에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관대한 선생님을 만난 덕에 이들의 레슨 시간에는 아프리카 바이올린 사운드와 힙합이 접목된 컨템포러리 뮤직이 흐르기도. 밀라와 모지스가 함께 보내는 시간 역시 어느 때는 70년대 영국 포크 음악으로, 어느 때는 10대 뮤지션이 만든 청량한 비트의 팝 음악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제각각인 음악들이 절묘히 어우러진 작품이 몇이나 될까. 이
[Music] 음악과 이야기의 대화 - 아만다 브라운 <베이비티스> O.S.T
-
시내의 한 작고 오래된 서점이 문을 닫았다. 서점을 지날 때나 볼일이 없을 때도 근처에 일이 있으면 종종 들러보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결국’이라는 건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은 그 서점이 처음 문을 열었던 십수년 전부터 있었다. 손님이 많진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소박한 상점이나 가게들을 보면 이 가게는 어떻게 유지해 나가고 있을까? 유지가 될까? 벌이가 될까? 하는 걱정이 늘 앞선다.
그런 걱정은 가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방 외진 곳에 들어선 아파트를 보면 한두 가구도 아닌 이 많은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 궁금하고, 싱가포르처럼 작은 도시국가의 만원 전철 틈바구니에서도, 프랑스의 한적한 지방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가 드문드문 불이 켜진 집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학문적 연구를 시작했다거나 어떤 통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막연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떻게 먹고사세요?
-
드라마를 보다 보면 악의와 음모로 작동하는 세상을 개인이 돌파하는 이야기에 익숙해진다. 주인공에겐 경로를 정하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맞는 선택에 보상이 따른다. 드라마 바깥에선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이 그렇다.
젊은이들의 창업기를 다룬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엔젤’이 있어야 돌아가는 드라마다. 엔젤은 ‘스타트업 초기에 자금지원과 경영지도를 해주는 투자자’를 뜻한다. 또한 18살에 보육원에서 자립해 갈 곳이 없던 시절의 한지평(김선호)을 거둔 최원덕(김해숙)도 천사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상대로 핫도그를 팔던 원덕은 월세방 전단지 앞에 망연하게 섰던 지평을 자신의 가게에 머물게 했다. 박혜련 작가는 사람이 성장하고 다음 스테이지를 밟는 이야기에 머물 공간, 숨 돌릴 시간을 마련해주는 이의 역할을 크고 중요하게 두었다. 현실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냐 묻는다면, 현실이 이래서 그런 존재가 절실하다고 답하는 드라마다.
원덕의 손녀 서달미(배수지)는 스타트업 육성 공간
<스타트업>, ‘엔젤’이 필요해
-
<엑소시스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슬픈 영화 중 하나다. 리건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약간 견딜 수 없어진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대체, 이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왜 하필 얘인가. 리건은 영화배우 크리스의 외동딸인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해괴한 소리를 하고, 오줌을 싸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자해를 하고…. 리건은 묻는다. “엄마, 내가 왜 이러죠?” 그리고 또 말한다. “무서워요.”
실제로 영화 <엑소시스트>는 무섭다. 12살짜리 아이에게 악마가 들러붙은 이야기니까. 심지어 영화는 ‘리건’이 여자아이라는 설정을 아주 교활하게 활용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은 그 명장면들은 모두 악마가 ‘리건’의 몸을 처참하게 학대하는 순간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학대는 공교롭게도 악마의 농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리건의 몸에 주삿바늘을 찌르고, 기계 속에 몸을 집어넣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