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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자들은 자주 자신의 몸을 고무줄 다루듯 한다. 끊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당겨보는 것이다. 줄이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지고 위태로움을 감지해도 ‘아직은 늘어나니까’ 더 당겨본다. 툭! 끊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나서야 내 몸과 마음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경험은 인생 1회차의 누구라도 겪어봤을 비극. 처음부터 알고 조절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한계라는 것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알기도 어렵거니와 정신적·육체적 불능의 상태를 증명해야만 휴식을 허락하는 노동환경에서는 자꾸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앞서 말한 비극을 경험하고도 거기서 얻는 결론이 오래가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체력은 물론 당면하는 문제의 종류도 달라지니, 때맞춰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그에 맞게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기예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능숙해지지 않는 자기 돌봄의 과업 앞에서 무력해져본 사람이라면 전진희가 올해 초 발표한 음반 《Br
[Music] 때로는, 흐르는 대로 - 전진희 《Brea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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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이 쌓여간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모든 죽음이 쌓일 수는 없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죽음이 착실히 쌓여간다. 나는 밀려드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나의 한톨 목소리가 그 무수한 죽음의 의미를 호도하거나 왜곡하거나 대상화할까봐 어지럽다.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 국가만 아니었다면, 혐오만 아니었다면, 빈곤만 아니었다면, 전쟁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죽지 않고 살아갔을 사람들.
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당당함을 떠올렸다. 그녀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세상 앞에 담대했던 사람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한심한 일들을 생각했다. 도대체 그가 그녀가 된 것이 뭐가 그리 문제여서, 뭐가 그렇게도 ‘심신장애’여서 강제 전역을 시켜야 했던 것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그녀가 갑자기 국가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떤 죽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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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괜찮았다. 매주 기업을 찾아가 할인을 비롯한 각종 프로모션에 관해 협상하는 유튜브 예능 <네고왕2>에서는 지난 3월 5일, 드디어 구독자들이 열렬히 요청해온 아이템인 생리대를 다뤘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거리 인터뷰를 진행한 방송인 장영란은 재수 중이라는 스무살 여성들에게 ‘밥 사 먹으라’며 지갑에 있던 현금 십만원을 화통하게 털어줬고, 세상을 향해 “나 생리해요! 생리합니다! 생리가 뭐 죄예요?”라고 속 시원히 외쳤다.
본사에서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생리대 흡수력 테스트도 기만적인 파란 액체가 아니라 붉은 액체로 진행됐고 장영란은 늘 그렇듯 상대의 넋을 쥐락펴락하는 ‘네고’를 펼쳤다. 비록 이 프로그램 자체가 기업과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홍보 성격을 띠고 있긴 해도, 여성의 필수품인 생리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에 관해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할인 행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잠시, 불과 몇달 전 해당 기업인 동
달라스튜디오 '네고왕2', 네고왕이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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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레베카>와 영화 <레베카>의 내용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레베카>를 처음 보던 날, 나는 시작부터 하염없이 졸았다. 가난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러브 스토리라니, 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많이 좋아한다. 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과 관점이라고 믿고, 오래된 소재와 클리셰는 역사를 뚫고 살아남은 귀한 재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베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지금과 조금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꽤 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참을성도 별로 없었다. 내가 읽고 싶은 게 없고, 보고 싶은 게 없으면 쉽게 흥미를 잃었다. 그런건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문에 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서 무척 후회했다. 여자주인공이 호텔을 떠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이름 없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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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의 주인공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의 미노루, 이사무 형제다. 그토록 갖고 싶은 TV를 사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단식과 침묵 투쟁을 일삼는 이 작은 악동들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표지를 고르는 내내 편집부의 모든 기자들이 눈에 하트를 담고 있었다는 점도 여담으로 전한다). 오즈 야스지로가 <안녕하세요>를 만든 시기가 1959년이니, 두 형제를 연기한 시타라 고지(미노루 역)와 시마즈 마사히코(이사무 역) 배우는 지금쯤 아버지로 나왔던 류 지슈의 극중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번호를 만들며 문득 두 사람의 근황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니 시타라 고지는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고, 시마즈 마사히코는 1970년대에 영화계에서 은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즈의 영화 속에서 두 배우는 언제나 ‘안녕하세요’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밥통과 주전자
[장영엽 편집장] 그들 각자의 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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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초간의 침묵)….” “아니, 이거 지금 라디오입니다~.”
SBS 라디오에서 일주일에 한번 <애프터 클럽>이라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7명의 디제이가 매일 새벽 1시에서 3시까지 맡아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데, 심야방송인 만큼 디제이들의 음악 취향이 많이 반영된 선곡이 특징이다. 처음 섭외되었을 때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송이다. 중간 멘트 없이 음악만 두 시간 틀 수도 있고 직접 만들어온 음원을 틀 수도 있고 아무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니 덕원씨도 뭐든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지만…. 윤덕원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엄청 자유롭고 충격적인 방송이 되기보다는 진행자의 성향에맞는, 적당히 내성적이고 친근한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방송이다 보니 코너가 다양하거나 많지 않다. 사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해주는 ‘괜찮지 않은 일’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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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청량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청량을 애써 눈앞에 들이밀어도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하기 일쑤다. 청량은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요즘 대세인 팝적인 세련됨을 보여주기도 쉽지 않은 의외로 까다로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온앤오프는 그런 정해진 고난의 길을 기꺼이 구도자의 자세로 걸어온 그룹이다. 그 침묵의 여정은 <Complete>와 <사랑하게 될 거야> <스쿰빗스위밍> 등이 온통 뒤섞인 채 온앤오프와 청량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암묵적 동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ONF: MY NAME》은 그런 온앤오프의 첫 정규 앨범이다. 우회하지 않으리란 건 예상했지만 앨범은 생각보다 훨씬 흔들림 없는 직구로 승부한다. 데뷔 앨범 《ON/OFF》부터 4년간 호흡을 맞춰온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황토벤’ 황현과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호흡은 《ONF: MY NAME》
[Music] 청량한 가요의 맛 - 온앤오프(ONF) 《ONF: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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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가 인기다.’ 이 문장은 매우 진부하다. 떠오르는 콘텐츠는 아직 대중이 알기 전에 전해야 맛이 나는데 신문에서조차 잔뜩 소개되어 마치 트위터에서 시작된 밈(meme)이 공중파 TV의 광고에서 생애를 다하는 모습처럼 시의성을 잃어버린 듯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씨네21> 독자들이라면 트렌드세터이거나 혹은 트렌드보다 본인의 취향이 확고한 분들일 터이니 그 어느 쪽에도 진부한 문장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코너가 ‘디스토피아로부터’란 걸 생각하면 클럽하우스의 인기는 의미심장하다. 클럽하우스는 정책상 실명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병기해놓아 그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하거나 연락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도 그 연장선에 이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클럽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쉽게 생업으로 돌아가는 것을 ‘현생으로 복귀한다’며 ‘클생’과 ‘현생’을 분리해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롭다.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ENTJ or INTJ’같이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클생’에서 ‘현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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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토요일은 트위터 ‘트친’들과 SBS <펜트하우스2> 본방을 달리고 일요일은 넷플릭스에 올라온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본다. 김순옥 작가의 센 불에 빠르게 들볶이다가 ‘Phoebe(임성한)’ 작가의 약불에 서서히 조려지는 것이 요즘 주말 밤의 의례다.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다음 향신 간장에 조리면 동파육이 되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음식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이 임성한 스타일이다.
두 드라마를 보면 유독 귀에 꽂히는 대사가 있다. <펜트하우스>의 단골 대사, “지금 뭐 하자는 거야?”는 곤란한 상황을 돌파하는 다급한 계략을 비웃으며, 때로 상대가 뭘 할지 알지 못해 불안한 심경으로 한회에도 여러 번 반복된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속도감은 단순히 빠른 사건 전개로 설명하기 부족하다. 그의 전략은 시청자의 이성의 속도를 추월하는 데 있다. 실현 가능성을 따질 틈 없이, 해 버리고 인과를 만드는 김순옥 월드를 지켜보는 내 입에서도 가장 많이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 언쟁의 스펙터클, 임성한 스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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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 제작 세기상사주식회사 / 감독 정진우 / 상영시간 104분 / 제작연도 1966년
1957년 <황혼열차>(감독 김기영)로 데뷔한 배우 김지미는 말 그대로 스타의 신전에 올랐던 인물이다. <별아 내 가슴에>(감독 홍성기, 1958), <비오는 날의 오후 3시>(감독 박종호, 1959) 등 일련의 멜로드라마에서 비운의 히로인을 체화하며 전후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다. 김지미가 유독 더 빛난 이유는 미모의 스타라는 달콤한 찬사에만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중반부터 그는 조연도 마다하지 않고 연기 폭을 넓혀갔는데, <혈맥>(감독 김수용, 1963)에서 맡았던 양공주 옥희 역이 대표적이다.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영화계의 평가도 이즈음 사라졌다.
1960년대 중후반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트로이카 배우군을 형성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할 때도, 김지미는 또 다른 축을 이루며 스타와 배우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무엇이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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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는 게이 클럽 최고의 댄스걸이다. 현란한 손동작으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는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그는 클럽 밖에서 신민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되었으나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지 못한 그는 더이상 병역 판정 검사를 미룰 수 없어 검사장으로 향한다.
신민호라는 사회적 자아를 가진 신미의 검사장에서의 하루를 다룬 <신의 딸은 춤을 춘다>(2020)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 짐작하게 하는 단편영화다. 검사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인공이 리얼타임으로 대면하게 되는 온갖 편견과 차별, 폭력의 순간들은 보는 이의 숨통마저 조인다.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은 게이 클럽에서 신미에게 호감을 표했던 남자와의 조우다. “진짜 팬”이라던 그는 “저런 사람 역겹다”라며 검사장을 찾은 신미에게 유독 모질게 군다. 그러나 신미는 개인에게 실망하기보다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에 대한 차별과 혐오
[장영엽 편집장] 디스토피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