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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음악의 역사에서 메인 테마는 주로 금관악기나 현악기로 연주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존 윌리엄스의 작품을 떠올려보라.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슈퍼맨>의 메인 테마 선율은 모두 관악기가 박력 있게 치고나가는 방식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또 어떤가.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등 서정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엔 언제나 현악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강렬한 음색의 관악기와 풍부한 울림을 가진 현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하는 건 고전시대부터 이어져온 일반적인 문법이나, 이 틀 안에서 선율과 리듬만으로 차별화를 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법. 자기 복제를 거듭한다는 비판이 서서히 쌓일 무렵 할리우드의 음악계가 찾은 대안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였다.
그의 음악에는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뉘앙스가 가득했고, 작곡가의 개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작품에 따
[Music] 목관악기의 비밀 -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엠마누엘 파후드 《Air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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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사람들이 꽤 많이 이동했다. 설은 한해를 시작하는 큰 명절이기도 하고,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되자 여러 사정으로 ‘모이지 않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결혼 12년차. 우리 집의 명절 준비도 순탄치 않았다. 친정에는 진작에 가지 않기로 했으나 시가가 문제였다.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니 설날에는 꼭 밥 한끼 같이 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바람이 가볍지 않았다.
효와 관습을 둘러싼 갈등은 당위나 관념으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이리저리하면 안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당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본래 그런데다 서로 무감(無感)하지 않고 사랑과 부담이 얽혀 있으면 더 어렵다.
세배를 하네 마네 어디서 하네 식사를 하네 마네 한참 말이 오갔다. 심지어 설날 당일까지도 결정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운해하시고 나는 마음이 상하고 남편은 내 눈치만 보다 연휴가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복잡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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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이 봤다면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있어”라며 깔때기 칼을 꺼내 들었을 게 분명하다. 입시 명문이지만 수상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품은 이곳 새라여자고등학교에는 충격적인 과거, 급식실의 울음소리, 의문의 죽음, 그리고 안은영 대신 이 사건을 해결할 추리반이 있다.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은 tvN <더 지니어스> <대탈출> 등을 연출한 정종연 PD가 그동안 공포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기묘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종종 등장했던 ‘여고’ 이미지를 활용해 만든 미스터리 어드벤처 예능이다. 박지윤, 장도연, 재재, 비비, 예나는 이 세계관의 전학생들이자 방과 후 활동으로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추리반을 선택한 별종들이다.
셜록 홈스 시리즈에 나오는 ‘춤추는 인형’ 암호를 혼자 연구해본 사람, 소년 탐정 김전일보다 먼저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라고 외치고 싶었던 사람, 탐정 자격증 따는 방법을 진지하게 알아본 적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 소녀 탐정의 꿈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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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한다.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온 주인공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성장하는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이 만화책에는 아주 특별한 지점이 있었다. 이야기는 수유잼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유는 이치코가 어릴 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과일이다. 그녀는 떫고 시큼한 이 작은 열매들을 주워 깨끗하게 씻고 씨를 빼낸다. 중량의 60% 정도 되는 설탕을 넣고 거품을 걷어가며 졸인다. 그 과정이 수채화 같은 그림으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물론 요리의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만화는 <리틀 포레스트>가 전부는 아니다. 다만 이치코는 요리의 재료를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사지 않는다. 그녀는 재료를 산과 들에서 직접 채취하고 수확한다. 거기에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게 시골 생활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내가 먹을 걸 만들고, 저장하고, 살고 있는 터전을 가꾸는 것. 봄을 맞이하며 겨울을 준비하고, 새해를 맞이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작은 숲을 가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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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비> 제작 연방영화주식회사 / 감독 조해원 / 상영시간 106분 / 제작연도 1965년
196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한해 200편 가까이 만들어졌다. 그 많은 영화들 중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은 유명 감독이 만들었거나 흥행에 성공한 각 장르의 대표작 정도로 한정된 것이 사실이다. 즉 흥행 수익이라는 선명한 목표를 최우선 가치로 만든 수많은 대중영화는 그 존재나 면모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1960년대 한국영화를 장르로 분류해보면 크게 멜로드라마, 코미디, 액션 스릴러, 사극, 청춘영화 그리고 당시 한국영화계만의 독특한 장르라 할 문예영화(문학을 원작으로 한 예술영화)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의 장르 법칙을 한국영화에 이식하는 건 어떤 장르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특히 미스터리 스릴러의 난이도가 가장 높았다. 할리우드영화처럼 만들고 싶지만 잘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장르로, 무엇보다 관객의 호기심을 마지막까지 끌어갈 수 있는 정교한 설계의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숨겨진 걸작 '불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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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메이저 IT 기업 두곳이 한날한시에 온라인으로 임직원 간담회를 연다는 소식이 화제였다. 한 회사는 성과급 산정에 대한 불만이, 또 다른 회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인사 평가 제도에 대한 비판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터라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두 회사를 둘러싼 문제 제기는 임직원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세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많은 언론은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부당한 처우에는 행동으로 맞서는 MZ세대의 특성이 두 회사의 경영진을 긴장케 했다고 진단했다.
기사를 읽으며 지난해 <씨네21>이 기획했던 90년대생 영화인 50인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일을 사랑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삶도 그에 못지않게 존중받았으면 하고, ‘헝그리 정신’으로 불합리함을 포장하는 태도는 사절이라던 많은 이들의 답변은 ‘(개인의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단어를 주요 키워드로 언급했던 80년대생 영화인들의 나날들로부터 많은 것이
[장영엽 편집장] ‘뉴노멀’ 시대에 걸맞은 인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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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옛날 생각이 나서 자꾸 눈물이 나.’
잠들기 전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하다. 어떤 옛날 생각이 나는데? 하고 물어보니 ‘젖병’이라고 한다. 젖병? 그래 젖병. 아기 때 쓰던 젖병은 나중에 분유를 떼면서 장난감이 되었다가 홍제천에서 떠내려가버렸다. 나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떠내려가는 젖병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날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던 것 같은데, 젖병아 안녕 하고. 그 뒤로 몇년이 지나서 아이가 갑자기 젖병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처럼 자기 전에 갑자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고, 낮에 책을 보다가 눈물이 가득하길래 물어보니 젖병 생각이 난다고 한 적도 있었지. 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젖병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오늘도 그렇다고 했다.
괜찮아? 어떤 기분이야?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슬픈 기분인지(추억이 많은 젖병을 떠나보냈으니까) 그리운 건지(어린이집만 졸업해도 동생들에게 ‘그때가 좋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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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을 아는가? 국가무형문화재 1호다. 조선 시대 선조의 공을 기리기 위해 행하던 제사, 즉 종묘제례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인데 작사, 작곡은 세종 대왕이 맡았다. 그전까지는 중국의 아악이 연주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 대왕이 친히 가사를 짓고 노래도 만들었으니 도대체 세종 대왕은 못하는 게 뭔가 싶다. 종묘제례악은 이렇게 15세기에 지어져 최근까지도 매년 서울의 종묘에서 제사와 함께 악가무의 형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 레퍼토리인 셈이다. 유교와 제례라는 권위로 점철되어 감히 건드릴 수 없던 이 음악이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인 해파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로 재탄생되었다.
종묘제례악은 크게 왕조의 군사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부분과 학문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해파리의 음반에는 이중에서도 군사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정대업’ 악곡 시리즈의 제일 첫 노래들인 소무와 독경이 한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에 여기
[Music] 종묘제례악이 힙해지다 - 해파리 《소무-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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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노래 몇개를 좋아하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자우림 앨범을 찬찬히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탈>의 가사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이런 가사가 한국에 또 있었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아내가 김윤아 또래인데, 환경 활동가 시절에 새만금 농성을 시작하면서 삭발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공교롭게도 자우림 1집은 1997년 11월에 나왔다. IMF 경제 위기와 함께, 딱 한번 한국에서 만개하려고 하던 다양성의 시대, 그런 흐름의 날개가 꺾였다. 군사정권 이후 획일성을 강요받던 그 시기가 미처 정리되지 않고 우리는 21세기를 만났다. 일탈을 대놓고 노래 부르던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문화는 사관학교라는 비유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기획사 연습실로 들어가거나, 자신의 목줄을 쥐고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탈>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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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의 첫 방송을 기다리는 동안, 제목으로 삼은 대사를 입 밖으로 내도 괜찮을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후배의 화장품 파우치에서 립스틱을 빌리는 선배가 하필 사용 기한이 한참 지난 채로 굴러다니던 립스틱을 집었을 때 정도? 물론 저런 내용이라면 제목으로 뽑히지 못했을 것이다. 제목의 도발은 어떤 이들에겐 짜릿한 상상의 재료가 될 것이고, 나 같은 이들에겐 짜증 섞인 관심을 끌기 적당하다.
화장품 회사 마케터 윤송아(원진아)를 따르는 후배 채현승(로운)은 송아가 같은 팀 상사 이재신(이현욱)과 비밀리에 사내연애 중임을 알게 된다. 선배가 행복해 보이니 짝사랑을 접을 찰나, 재신이 다른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것을 목격한 현승은 이를 송아에게 고해바친다. 제목이자 첫회의 엔딩 대사는 저따위 남자를 만난다고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쳐 바를 필요 없다는 뜻. 매회 엔딩마다 로맨스 장르에서 골백번 반복된 대사가 감미로운 중저음으로 나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연애가 전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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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무렵 클럽하우스에 가입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음성 기반 소셜 미디어로 화제가 된 클럽하우스는 국내에 론칭하자마자 큰 화제를 모았다. <씨네21>에서도 발 빠르게 가입한 몇몇 기자들이 “이건 한번 써봐야 한다”라며 참여를 권했지만, 각종 SNS와 뉴미디어 플랫폼을 모니터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요즘, 주목해야 할 플랫폼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클럽하우스에 처음으로 접속한 날, 주제가 없는 방에 들어갔다. 영화기자, 영화 홍보마케팅 담당자, 포스터 디자이너, 배우가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즉흥적인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그 대화를 청취하는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각본 없는 만남과 ‘라이브’의 특성을 가진 매체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살얼음판 같은 순간도 종종 경험했지만, 예기치 못한 이들과 연결되는 의
[장영엽 편집장]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