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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업에서 나는 쪽글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글을 쓰게 한다. 그 대신 중간고사와 학기말고사를 따로 보지는 않는다. 주로 다음 수업에 다룰 내용들을 미리 생각해보게 하거나, 그날 수업에서 다룬 얘기를 좀더 새겨보는 얘기들을 주제로 낸다. 최근에 ‘54세의 어느 황사 가득한 봄날’을 주제로 냈다. 수업의 주제는 자연현상 중에서 ‘늙어가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스스로도 그런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20대 초반인 학생들이 지금 내 나이가 되면 어떻게 될까? 아니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해놓고 나니, 나도 안 해본 생각들을 좀 하게 됐다. 과연 나는 그 시절까지 살아 있기나 할까? 30여년 후,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건강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장담할 수가 없다.
지금 20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10대 연구를 몇년간 좀 해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54세의 어느 황사 가득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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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남화흥업주식회사 / 감독 임권택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69년
거장 임권택이 흥행영화를 양산하는 직업 감독으로 살았던 시기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1956년 <장화홍련전> 제작 현장에서 처음 영화 일을 접했던 그는 1961년까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서 수련하다 26살인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한다. 1960년대 임권택은 주로 사극과 액션, 때로는 코미디 장르를 오가며 진지한 예술적 대상이기보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를 붙들고 있었다. 그는 이때의 자신을 “저질흥행감독”으로 낮춰 부른다.
유현목, 김수용, 이성구 같은 감독들이 문예영화에 집중하던 1960년대 후반, 그는 오로지 흥행 가치에 집중하는 영화를 솜씨 좋게 만들어 충무로 제작자를 만족시키는 감독이었다. 1969년 7편, 1970년 8편, 1971년 7편의 영화를 만든 3년은 양산의 정점이었다. 임권택은 “(처음으로 작가적 자의식을 투영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교감의 문법 '사나이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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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동료 제작자들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더군요. 씨네2000은 씨네21 자회사냐고요. 아마 두 회사가 같은 해(1995년)에 생긴 데다 이름도 비슷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함께 가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씨네21>의 창간 15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에 참석한 영화 제작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의 말이다. <여고괴담> 시리즈를 기획한 눈 밝은 제작자이자, 한국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수많은 영화계 행사의 연사를 맡았던 그는 언제 어디에서든 좌중을 웃음 짓게 하고 귀 기울이게 하는 진귀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씨네21>과 오래오래 함께하자던 이춘연 대표가 지난 5월 11일, 71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 얼마 전 막을 내린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의 시사회, 지난 3월 후원이 중단됐음을 알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앞날을 모색
[장영엽 편집장] 함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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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검색해보지는 않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책의 말들’과 ‘겨울서점’ 키워드를 팔로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이고 있다. 어쨌든 책을 쓴 사람으로서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읽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저자로서 느끼는 바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고 떠올리는 생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내가 드러내지 않은 감정까지도 읽어내는 독자들을 보면서 독자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라서 흠칫 놀랄 때도 있다. 그 내용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에 기반한 비판이거나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나를 당황시키는 건 그렇지 않을 때다. 매주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안다.
유튜브 채널을 보지 않고 책부터 읽었거나 책만 읽은 독자들과는 달리 유튜브를 한번이라도 본 독자들은 나의 상을 머릿속에 그린 상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젊은’ ‘여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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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험한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어린아이처럼, 어느 봄에 나는 그 말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학교를 어설프게 졸업했고,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었고, 1집 앨범을 내고 나서 밴드 활동은 어떻게 흘러갈지 확신이 없던 시기였다. 앨범 발매 후 유일하게 나간 보도는 밴드가 무기한 활동을 중단한다는 이야기였고, 어떤 활동도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원치 않는 방학이 시작될 판이었다. 그때 작업했던 노래가 <잔인한 사월>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때 이 곡을 쓰고 발표하면서 그 방학은 짧은 봄방학으로 끝나게 되었고, 길다면 긴 인디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당시 동네슈퍼 지하에 자리한 작업실은 비가 오면 물이 새곤 했다. 혹시나 녹음할 때 다른 소리가 들어갈까봐 새벽에 지하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을 해야 했다. 봄은 한창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봄인데도 땅속에 묻혀 있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봄빛은 푸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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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내, 집에 햇빛이 들지 않았다. 1층인데다 지대도 낮아서였다. 햇빛은 매일 아침 베란다 문턱 언저리에 살포시 머물렀다가, 금세 사라져버리곤 했다. 나는 그게 참 불만스러웠다. 이 집에 살면서 식물을 키우거나(키울 생각도 없었으면서), 햇빛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딱히 그런 무드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약간 분이 났다. 하지만 집이 이렇게 생긴 걸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작업을 하다 무심코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있는 걸 보았다. 평소 같으면 절대 그 자리에 빛이 들지 않기에 나는 조금 놀랐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햇빛이 내 얼굴을 환하게 비추면서 책상 부근까지 길게 들어왔다. 나는 잠시 놀라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동시에 보송보송했다. 더이상 매섭게 건조하지 않았다. 계절이 변한 것이다.
<로건>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로건과 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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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의자 좀 옆으로 갖다붙여 앉아야~.” 이번호에 소개한 최성열 사진기자의 아카이브 기사는 11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독립영화 막걸리 파티의 한순간을 조명한다.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인원이 몰려드는 바람에 종업원들이 이동할 자리도 없어 주인아주머니의 구수한 타박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옆 사람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촘촘히 끼어 앉아 다 함께 ‘건배’를 외치던 사진을 보며 인산인해였던 영화제의 밤 풍경은 이제 정말로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렸구나 싶다.
해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공식 데일리를 발행해온 <씨네21>의 마감 풍경 역시 코로나19와 함께 바뀌었다. 정상 개최를 선언한 올해의 전주국제영화제는 팬데믹 이후 기자들이 가장 오랫동안 현장에 머문 영화 축제이기도 했는데, 온라인 데일리팀으로 참여한 김성훈·조현나·남선우 기자, 최성열 사진기자를 대면한 횟수가 손에 꼽는다.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취재와 마감을 하고 저녁 식사
[장영엽 편집장] 소셜 디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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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유튜브 속 나의 눈길을 끈 영상은 “카메라 잡아먹었다는 김선호의 추억여행씬”이었다. 2009년 연극으로 데뷔해서 2017년 TV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장장 8년 넘게 현장의 무대를 지키며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 김선호는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지금도 꾸준히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해변으로 추억여행을 가서 동영상을 찍는 모습에 엉뚱하게도 연기 감독을 자처하는 행인과 어촌의 촌부들이 참견을 하고 카더가든의 발라드가 오버랩되는 엄청난 혼종의 7분여는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도록 긴장시킨다.
마지막 대사에 이르면 본인도 이것이 무엇인지 헛갈려하는 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영상은 다름 아닌 캐논의 카메라 광고였다. 정신없이 몰아쳐도 제품 기능 소개와 효용까지 빠뜨리지 않아 정체 모를 동영상을 광고라고 분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드라마와 코미디, 뮤직비디오와 광고가 포함된 이 영상을 그저 광고라고만 치부하기가 미안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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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태창흥업주식회사 / 감독 이성구 / 상영시간 101분 / 제작연도 1968년
195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영화가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장르와 문법을 소화하는 데 몰두하고 나름의 길을 찾는 데 성공했다면 1960년대 초부터는 서구의 누벨바그를 의식해 기성영화계에 도전하는 신인감독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충무로 상업영화 시스템 속에서도 영민하게 모던 시네마의 길을 개척해갔다. 그 최전선에 있던 감독이 바로 이성구다. 그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한 신예프로덕션의 첫 번째 작품 <젊은 표정>(1960)으로 데뷔한 후, 역시 신예프로덕션이 제작한 <정열 없는 살인>(1960)을 두 번째 작품으로 연출했다.
전자는 닛카쓰 태양족 영화의 영향이 감지되는 청춘 영화이고, 후자는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의 범죄소설을 이성구가 직접 각색한 스릴러다. 두 작품 모두 일본영화계를 경험한 재일 교포 출신의 전홍식이 프로듀서였고, 김지헌이 각본을 맡았다.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플래시백의 고전 '장군의 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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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1년 새 한국인의 영화 축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이 샤론 최 통역사와 함께 감독상의 시상자로 나서고,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2021년 오스카는 한국영화계의 저력을 다시 한번 글로벌 무대에 선보이는 자리였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만큼 지난해부터 SNS로 실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시작한 <씨네21> 취재팀의 하루도 덩달아 숨가쁘게 흘러갔다.
특히 올해는 김성훈, 송경원, 임수연, 김소미, 남선우 기자가 트위터의 새로운 음성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인 ‘트위터 스페이스’(#TwitterSpaces)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해설했다. <씨네21>을 통해 스페이스 기능을 처음 접한다는 소감부터 세 시간 반 동안 단 한 차례의 휴식도 없이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인 기자들이 놀랍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주간지의 긴 호흡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청취자들과 교
[장영엽 편집장] 오스카의 밤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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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점이 ‘페미니스트가 아니한 자’를 찾는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이 공고는 삭제되었지만, 이와 같은 차별은 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분노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민원을 넣고,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뒤끝 나쁜 결과를 본다. 차별은 잘못이 아니라 ‘논란’으로 남고, 이 일을 잊기도 전에 다음 차별 사건이 또 발생한다. 또 분노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본다.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찬바람을 맞다 몸싸움에 밀려났던 게 2017년이었던가? 2016년이었던가? 2007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깔고, 콘센트가 있는 기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던 것은 2018년이었나? 2019년이었나? 소위 보수개신교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유엔의 권고사항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던 건 언제였더라?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에 막혀 건물에서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