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겨울은 배우 출신 감독들의 영화를 연달아 만나볼 수 있는 시즌이 될 것이다. 지난 11월17일 개봉한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를 시작으로 유태오 감독의 <로그 인 벨지움>(12월1일 극장 개봉),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감독의 <언프레임드>(12월8일 OTT 플랫폼 왓챠 공개)가 관객을 만난다. 이 세편의 영화는 배우 출신 감독들의 영화가 단 한번의 반짝 이벤트나 외유가 아님을 알리는 준수한 사례다. 1331호 조은지 감독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번호에서는 <로그 인 벨지움>을, 다음호에서는 <언프레임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지면을 마련할 예정이다.
픽션과 리얼리티가 섞인 유태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로그 인 벨지움>을 보면 배우들이 왜 연출에 매혹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벨기에 앤트워프의 어느 호텔에 갇힌 그의 공간에는 늘 이동식 삼각대와 조명, 배터
[장영엽 편집장] 배우, 감독이 되다
-
지난해 10월 중순, 나는 헛소문으로 인한 온라인 괴롭힘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데다 송무변호사 일이 늘 책상머리에 앉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생업과 윤리성에 직접 관련된 거짓 소문이 집요하게 돌고, 수백명, 아니, 1인이 복수계정을 만들고 여러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SNS의 특성상 내가 느끼기에는 수천명이 나를 비난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고, 어찌 사람이 억울한 일 하나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보면 지나갈 일이겠거니 했다. 몇달이 지났다.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못 본 셈 치던 사이에 오히려 소문과 괴롭힘은 점점 더 덩치를 키웠다. 내가 프로 의식이 없고 무능하고 인권 의식이 없다는 전문성 비하에서, 내가 남자와 결혼했고(그러므로 페미니스트로서 실격이고) 자기모에화를 하는 프로필 그림을 사용하고 있으며(그러므로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시간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
-
가사를 쓸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또 만들어진 가사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문장을 뒤집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자’, ‘우리 좋았었던 날은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 좋았었던 날을 모두 놓아두지 않고서는 돌아설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 우리가 함께했던 날의 십중팔구는 잊어버리자’,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 때로 아닐 수 있겠지만 대체로 힘겨운 하루일 것이다.’
엄밀하게 규칙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꾸어본다. 1천피스 퍼즐을 맞추다가 그림을 보고서는 더이상 맞출 만한 것이 없을 때 아무 조각이나 일단 갖다대보는 것처럼. 지나가는 차 번호판의 숫자를 그냥 더해보는 것처럼. 때로는 단순히 순서를 반대로 놓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조금 논리적으로 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우리는 끝없는 과정에 놓여 있어
-
언젠가 지인의 집에서 여러 명이 함께 TV를 본 적이 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마침 방영 중이던 <타짜>에 시선이 머물렀고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리를 비웠던 친구가 돌아와 TV를 보더니 1초 만에 영화의 제목을 맞히는 게 아닌가. 배우도, 영화 제목을 소개하는 자막도 없이 오직 담벼락만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말이다. 대체 어떻게 무슨 영화인지 알았냐는 좌중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내가 <타짜>를 40~50번은 봤는데 아무려면 담벼락을 보고 무슨 영화인지 모를까.” 흔치 않은 일화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타짜> 몇십번 봤어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첫인사라는 이번호 조승우 배우의 인터뷰를 읽으니 담벼락만 보고도 이 영화가 <타짜>인 줄 알아챌 사람이 대한민국에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최동훈 감독의 <타짜>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지 15주년이 되었다. 2006년 추석
[장영엽 편집장] '타짜'가 우리에게 남긴 것
-
-
최근에 집에서 <무신: 용의 귀환>이라는 2020년에 제작된 중국영화를 보았다. 물론 무료라서 본 것이기도 하고, 조자룡 얘기라서 본 것이기도 하다. 아내는 최근의 중국영화들을 선전영화라고 질색하고, 그런 걸 보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간다. 가끔씩 중국 고전을 다룬 영화 중에서 의외로 재밌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재미없다. 유명한 조자룡의 장판교 전투를 다룬 영화이기는 한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여주인공이 중반까지도 못 가고 바로 죽어버려서 김이 샜다. 그 후에 영화는 산으로 갔다. 조자룡 나오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보고, 한신 나오는 영화도 설령 가짜 영화라도 본다. 그건 나의 판타지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망했다. 스팅이 출연했고, 음악은 토토가 맡았다. 나는 재밌게 봤지만, 사람들의 판타지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때 O.S.T 음반을 샀고, 아직도 가끔 듣는다. 뒤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판타지 비즈니스
-
제작 세경영화 / 감독 이두용 / 상영시간 154분 / 제작연도 1980년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 체제가 종말을 맞았지만 ‘서울의 봄’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권 찬탈을 목적한 신군부는 1980년 5월17일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참혹하게 무력으로 진압했다. 1980년 9월1일 간접선거를 통해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10월27일 제5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최후의 증인>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당국에 처음 시나리오를 접수한 때가 1980년 2월이고 영화제작신고서상의 착수 일자도 이때였지만, 이두용 감독은 1979년 5월부터 주연 하명중, 촬영기사 정일성 등 스탭들과 전국을 누비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1980년 9월 본편 검열이 진행됐고 네 군데의 화면 삭제만 지시받으며 비교적 무난하게 검열 합격증을 받았다. 빨치산 무리에 손지혜(정윤희)가 윤간당하는 장면 일부와 공권력의 비위를 드러내는 세 장면이 잘려나가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역사의 비극을 좇다
-
‘실버 취준생 분투기’라는 글을 읽었다. 매일신문이 주최하는 ‘매일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의 수상작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예순아홉의 작가는 황혼이혼을 한 뒤 ‘먹고살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4년간 분투한 경험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이력과 경력이 화려하면 채용이 어렵다는 시청 직원의 말에 두장 빼곡히 채워넣은 이력서를 구겨버리고 수건 접는 노동자, 백화점 청소부, 어린이집 주방 선생님과 요양 보호사와 장애인 돌봄 노동자를 거치며 작가가 경험한 초유의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 속 노인의 초상에 대한 씁쓸하면서도 서늘한 진실을 전한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남긴 작가가 고맙기도 했다. 그가 육십을 넘겨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기로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자들은 영영 환갑을 넘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취업지망생에게 어떤 나날들이 펼쳐질 수 있는지
[장영엽 편집장] 노인을 생각하다
-
얼마 전, 겨울서점에는 아주 진지한 주제의 영상이 올라갔다. 내가 삶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 때 읽는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삶의 의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입장에서 사람들과 내밀한 경험을 나누는 의미 있는 영상이 될 것이었다. 내밀한 만큼 그동안 만들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서점의 상황으로 보든 시기적인 측면으로 보든 이제는 이런 영상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고, 비정기 시리즈로 영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올린 지 5일 만에 1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은 400여개 이상, 좋아요는 5천이 훌쩍 넘어갔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책을 다루는 영상이 이 정도의 반응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이 영상의 주제에 반응했고, 내용에 공감했다는 뜻이었다. 댓글의 내용도 하나같이 진지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절절한 진심과 경험을 털어놓았다. 서로가 서로의 댓글을 읽으며 위로받았고 힘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침의 늪
-
이번호 표지는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다. 프랑스에 위치한 어느 주간지의 제작 과정을 ‘보이는 영화’로 완성한 이 작품을 소개하기에 <씨네21>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매체가 있을까 싶다. 편집장의 관점에서는 다소 오싹한 대목도 있었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잡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편집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편집부를 진두지휘하던 그는 자신이 만들던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부고 지면 주인공이 되어, 편집장과의 한때를 회고하는 기자들의 문장으로 기록된다. 평생 잡지 마감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아꼈던 필자들이 전력을 다해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잡지를 만들어준다면 주간지의 편집장에게 그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김현수, 임수연, 조현나, 남선우 기자가 참여한 기획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웨스 앤더슨은 잡지 <뉴요커>의 열렬한 팬이었다. 시도 때도 없
[장영엽 편집장] 잡지를 만든다는 것
-
도로시와 토토가 들어 있는 집을 들어올린 회오리바람처럼, 세상을 흔들어버린 바이러스와 함께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며 변화의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익숙해지길 바랐지만 변화가 다시 다른 변화를 추동하는 도미노 같은 연쇄반응은 매일의 적응 또한 만만치 않게 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멀미를 덜어드리기 위해 먼 시점의 상수가 있음을 알리려 오랜만에 책을 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동료들, 선생님들과의 교류에서 얻은 배움을 숙고의 시간을 더해 정리해야 하는 일이라 좀처럼 엄두를 내기 어려웠지만, 물리적 이동이 제한되며 시간이 허용된 것 역시 어려움 속에서 주어진 작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으면 알려야 할 책무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알릴 것인가가 그다음으로 따르는 질문이 된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와 같은 세칭 4대 매체가 가진 위상과 영향력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한 동영상 플랫폼과 글로벌 OTT는 다양성과 접근성을 기반으로 수년 전부터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28일, 짧지만 꽤나 긴 시간
-
<병태와 영자>
제작 화천공사 / 감독 하길종 / 상영시간 115분 / 제작연도 1979년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뇌하던 하길종은 1979년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뒀다. 여섯 번째 작품 <속 별들의 고향>(1978)과 일곱 번째 작품 <병태와 영자>가 각각 1979년 흥행 1위와 5위를 차지하며 그의 상업적 역량을 확인시킨 것이다. 1978년 11월에 개봉한 <속 별들의 고향>은 명보극장에서 다음해 1월까지 상영을 이어가며 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1979년 2월에 개봉한 <병태와 영자>는 스카라극장에서 18만 관객을 모았다. 자신의 연출작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2월28일 세상을 떠난다. 하길종의 마지막 작품 <병태와 영자>는 <바보들의 행진>(1975)의 속편으로 만들어졌다. <바보들의 행진> 때는 작가 최인호가 자신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고래를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