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쓸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또 만들어진 가사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문장을 뒤집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자’, ‘우리 좋았었던 날은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 좋았었던 날을 모두 놓아두지 않고서는 돌아설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 우리가 함께했던 날의 십중팔구는 잊어버리자’,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 때로 아닐 수 있겠지만 대체로 힘겨운 하루일 것이다.’
엄밀하게 규칙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꾸어본다. 1천피스 퍼즐을 맞추다가 그림을 보고서는 더이상 맞출 만한 것이 없을 때 아무 조각이나 일단 갖다대보는 것처럼. 지나가는 차 번호판의 숫자를 그냥 더해보는 것처럼. 때로는 단순히 순서를 반대로 놓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조금 논리적으로 수학 시간에 배웠던 ‘대우’를 이용해보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뒤집어놓았을 때 별 의미 없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 이 문장은 아무 말이나 그냥 갖다붙인 것이구나 깨닫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뒤집어도 본래 의미가 변하지 않아서 같은 생각의 다른 버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정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주 슬픈 말이 되기도 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쓰다보면 항상 그렇다.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거짓말이 되거나 말하기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오랜 시간 골똘히 생각해왔다. 거짓말을 갚을 기간을 아주 긴 할부로 하거나 위악적으로 불편함을 강조하고 나면 부끄러움이 조금은 덜어지곤 한다. 티 하나 없는 얼굴로 밝게 위로를 말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전에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고 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최근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장예원 전 아나운서의 책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를 다시 보았을 때도 이런 습관이 발동해서, ‘끝이라고 해서 클로징 멘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로 바꾸어 읽어보았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무척이나 슬퍼졌다. 원래 책의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괜히 혼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미안합니다, 장예원 아나운서님, 새로운 도전 잘하고 있지만 파이팅!!)
많은 경우에 끝은 클로징 멘트도 없이 다가온다. 왜 다음 앨범이 안 나오지, 왜 요즘은 활동이 뜸하지, 하는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마지막이 온다. 그런 소식은 한참 뒤에야 들리거나 혹은 영영 들리지 않는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끝은 차라리 아름답다.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역량의 남은 부분을 더 해보기 위해서가 아닌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투자해야 하니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던데, 꼭 삶 전체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들이 끝나고 시작되는 일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좋은 음악을 계속 들려주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는 자리를 떠야 한다는 생각이 다투게 되는 때. 클로징 멘트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상황에까지 놓인다면 애초에 선택권도 없어질 테지만 지금은 그래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니까.
이럴 때 그런 고민 대신 다시금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고 담담하게 선언하고 있는 노래들이 있다. 끝을 받아들이고 클로징 멘트를 준비하기보다는 다시 신발끈을 매고 묵묵히 걷고자 하는. 래퍼 최엘비의 3집 앨범 《독립음악》은 좌절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던 시간 속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앨범 마지막 곡인 <도망가!>에 피처링을 했다.앨범은 전반적으로 오랜 시간 자신에게 있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스스로 서겠다는 메시지가 주였지만 피처링을 의뢰받은 <도망가!>는 현실과 꿈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서 가사를 쓰면서도 남의 일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최엘비보다 좀더 일찍 음악이라는 길을 택해 걷고 있지만 막상 그 꿈조차 현실임을 깨달은 입장에서 젊은 뮤지션의 등을 밀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던 가사는 노래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하고 랩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긴 하지만 덕분에 나 역시 많은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도망가!> _feat. 브로콜리너마저
내 친구 널 기억해
넌 진 게 아냐 절대로
우리들을 무섭게 쫓아오던 현실과
이제는 나란히 걷기에
난 이제 도망가볼게
네 짐은 내가 맡을게
그래서 어디 가는 데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은 못 해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말이야
끝엔 뭐가 있을지 몰라 나도
네 꿈은 가져갈게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는
낙원은 없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사실은 이 길에 도착이란 건 없어
우리는 끝없는 과정에 놓여 있어
이 정도 하면 뭔가 보일 줄 알았는데,
또 현실이 닥쳐온다
뒤는 내가 맡을게 일단 가
엘비야 돌아보지 말고 하나 둘 셋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