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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녀>
제작 한립물산주식회사 / 감독 김기영 / 상영시간 120분 / 제작연도 1972년
김기영 감독은 1960년작 <하녀>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서구영화의 문법과 장르 관습들을 자신의 것으로 다시 창안했고, 영리한 연출과 제작의 효율성이 빛을 발하며 상업적 성공과 미학적 성취가 동시에 창출됐다. 그의 아홉 번째 극영화 <하녀>가 전체 32편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다. 연출자로서의 김기영은 타고난 천재성과 부족한 제작 기반에서 비롯된 작가주의적 태도를 기본적인 덕목으로 체화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그는 대중적 흥행성을 영화 제작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하녀> 이후 특유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예의 그 독창성을 여러 장르들과 접합해본 김기영은 1960년대의 흥행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자 1970년대 초입 다시 중산층 부부와 식모 사이에 벌어진 기이한 이야기를 꺼내든다. 제작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하녀'와 '화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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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와 마녀>의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의 천재들>을 읽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설립자인 스즈키 도시오가 쓴 이 책은 지난 3월 국내 출간된 바 있다. 책의 부제는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 책의 원류가 된 <땀투성이의 지브리사>라는 제목에 더 마음이 가게 된다.
특히 지브리 신화의 출발점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 과정의 일화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당시에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지만 완벽주의자인 그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톱 크래프트라는 회사의 스탭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으나, “아침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젓가락으로 이등분해서 아침과 저녁에 절반씩 먹”고 그 이외에는 오직 일만 하는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데 지친 톱 크래프트의 스탭들이 &l
[장영엽 편집장] 영화를 소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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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관심 있던 책의 광고를 읽다 호기심이 푸시시 식어버렸다.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가져와 인간의 가학성에 대한 주장의 근거를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립 짐바르도가 1971년 행했던 이 실험은 평범한 스탠퍼드대학교 학생들이 무작위로 감옥의 간수와 죄수 역할이 주어지자, 역할에 충실하다 못해 간수들은 가학적인 폭력을 가하고 죄수들은 폭동을 일으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환경만 주어지면 누구든지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의 단골 근거로 쓰인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드러내는 실험으로도 지겹게 출현한다.
문제는 이 실험 곳곳에 거짓말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윤리적인 이유로 재현할 수도 없는 이 실험은- 여기서부터 이미 ‘동일한 조건하에서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심리학 실험 검토 원칙의 열외가 되어버린다- 사실 알려진 것과는 다른 실험이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이 부분을 밝히고 있다. 실험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연구 결과를 연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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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 이야기인데, 서울대학교에서 국립대 법인화를 밀어붙이려는 대학본부와 학생들이 충돌해서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몇몇 학생들이 본부 앞 잔디밭에서 자발적으로 만든 페스티벌에 몇몇 인디밴드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대학본부와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이름을 합쳐서 ‘본부스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것 같은 이 기획이 예상치 못하게 발전하게 되자, 대학본부에서는 공연 전날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서 셔틀버스로 길을 가로막는 웃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치러진 이 페스티벌은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때 본부스톡에 참여한 팀 중에 내가 활동하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도 있었다. 당시에 우리는 홍대 상상마당에서 ‘이른열대야’라는 이름으로 장기공연을 하는 중이었지만 행사 취지에 공감해 공연을 하기로 한 상태였다. 밴드의 모든 장비가 공연장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황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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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은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동네의 모든 비디오 가게에서 항상 대여 중인 영화였으니까. 두편은 기본이고, 다섯편씩 들여놓은 가게들도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가 담긴 플라스틱 박스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들어오냐고 물어보면 사장님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이제 빌려갔으니까 아마 사흘 후?”
그리고 사흘 뒤에 가면 또 같은 대답을 들었다. “이런, 이번에도 사흘 후에 와.”
속이 탔다. 학교에 가면 온통 <쥬라기 공원> 이야기뿐이었다.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정말 그렇게 재밌어? 그렇게 무서워? 그렇게 신나? 그래서 나는 엄마를 달달 볶았다. 제발 좀 빌려다 줘. 진짜 보고 싶단 말이야. 결국 엄마는 비디오 가게에 몇번이나 찾아갔고, 여러 번의 시도와 예약 끝에 결국 <쥬라기 공원>을 집에 들고 왔다!
막상 영화를 보게 되자 나보다 동생이 더 흥분했다. 그 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동생 ‘팀’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다시 볼 수 없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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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는 후기가 주변에서 하나둘씩 들려오고 있다. 전화나 방문, 온라인 신청을 통해 ‘잔여 백신’을 맞은 경우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우리 동네 잔여 백신 현황을 생각날 때마다 새로고침해보지만 ‘0’이라는 숫자는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이던데, 접종했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성공했나 싶다.
<씨네21> 취재팀에서도 임수연 기자가 발빠르게 접종에 성공해 기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백신 접종률이 지난 5월 말을 기점으로 세계 평균 접종률을 뛰어넘었다고 하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올가을 무렵이면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전세계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올해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과 접종하지 못한 이들간의 (일상에서의) 적지 않은 격차가 예상된다.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고 나서부터다. 올해 7월
[장영엽 편집장] 백신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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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발표된 곡들이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로 발매되어 듣기 어려워진 아이돌 그룹 ‘매드몬스터’의 4번째 싱글 《내 루돌프》 뮤직비디오가 3주 만에 조회 수 500만건을 가볍게 달성하고 순항 중이다. 영상에 달린 3만개가 넘는 엄청난 댓글까지, 그야말로 우리를 ‘맫며들게’ 만들고 있다.
감동한 ‘60억 포켓몬스터(팬클럽 명)’ 팬들의 호응의 글들은 공동창작 수준의 창의성을 보여주며 조회 수보다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컴백 무대는 스타들의 공식처럼 Mnet 음악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 가졌고 시공간이 일그러질 만큼 아우라를 발산하는 아이돌 그룹의 위용을 자랑하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어진 패션잡지 <에스콰이어> 화보는 “필터 썼나 의심될 정도의 비주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멤버인 탄과 제이호의 미모를 감출 수 없는 인터뷰가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자 늘 그렇듯이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준며들다 ‘맫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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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쇼러너’(Showrunner)라는 단어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드라마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 방’(writer’s room)에 소속된 모든 작가들을 총괄하고, 매 에피소드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쇼러너는 그야말로 시리즈의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다. ‘떡밥의 제왕’이라 불리는 J. J. 에이브럼스처럼 국내에서 막강한 팬덤을 형성한 쇼러너도 있으나, 메이킹 필름이나 블루레이 코멘터리를 통해 종종 관객을 만나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할리우드 감독들에 비해 미국 드라마 쇼러너들의 제작기를 직접 들어볼 기회는 드물었다.
그러던 차에 김성훈 취재팀장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미드 <굿 닥터> 제작자로 잘 알려진 엔터미디어콘텐츠 이동훈 대표를 취재하던 중 할리우드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쇼러너로 활약 중인 한국계 시나리오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다. 멀게만 느껴지던 미국 드라마 업계에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장영엽 편집장] 할리우드 ‘작가 방’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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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오랜 시간 알던 분들과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육아와 아동에 관한 영상 콘텐츠인데, 참여하는 분들은 아동교육과 부모교육, 그리고 오디오 콘텐츠 제작에는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이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우리의 회의는 많은 시간 콘텐츠 내용에 대한 토의와 영상 제작에 대한 초보자들의 공부와 설레발로 채워지고 있다. 이를테면 ‘카메라를 뭐를 써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볼까요?’ ‘아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 관련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또 너무 진지해지고. 아무튼 그런 상황인데, 그 와중에 오디오 녹음과 편집, 후반작업 경험이 있는 내가 오디오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회의 중에 제작 공간의 소음 문제와 음성 수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칵테일파티 효과’를 설명하게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칵테일파티 효과’는 수많은 소리가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우리가 미숙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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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까운 사람은 종종 말한다. 내가 장국영에게 너무 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다가, 0.1초 만에 태도를 바꾼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후하다니? 장국영은 감히 내가 후하게 평가할 사람이 아니야. 장국영은 슈퍼스타야. 미남 배우와 아이돌의 상징이라고. 그런 슈퍼스타는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없어. 모든 것에 완벽했어. 타고난 재능과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고. 그런 얼굴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진짜 완벽한 스타라고!
이어 나는 만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보게 됐을지 모르는 가상의 필모그래피를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아마 젊은 시절보다 더 풍부했겠지. 뭔들 못했을까. 장국영인데! 그래서 더 안타까워한다. 조금만 버텼더라면, 무난하게 시간을 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지 않았다면 나의 이런 주책맞은 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은연중에 이야기한 적은 많은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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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영화 <인트로덕션>은 담담한 마음으로 관람하다가 어퍼컷을 세게 얻어맞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되는 작품이다. 송경원 기자는 이번호 기획 기사에서 “시작의 지점 바로 앞, 문 앞에 선 존재들의 시간을 그러모은 영화”라는 감상을 덧붙였는데, 그의 표현처럼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전조감으로 가득했던 영화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다가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주인공 영호(신석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만나려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선택하고 싶었던 직업을 택하지 못하고, 지키려던 사랑을 지키지 못한 그는 겨울 바다에 몸을 담근다. 감기 걸리겠다며 걱정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조금만 바닷속에서 버텨보겠다던 청년은 파도에 휩쓸리고 물을 먹고 추위를 이기지 못해 다시 뭍으로 나온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움직임이 <인트로덕션>의 마법 같은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시린 겨울 바다의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짐작하는 것은 결코 같
[장영엽 편집장] 인트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