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오랜 시간 알던 분들과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육아와 아동에 관한 영상 콘텐츠인데, 참여하는 분들은 아동교육과 부모교육, 그리고 오디오 콘텐츠 제작에는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이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우리의 회의는 많은 시간 콘텐츠 내용에 대한 토의와 영상 제작에 대한 초보자들의 공부와 설레발로 채워지고 있다. 이를테면 ‘카메라를 뭐를 써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볼까요?’ ‘아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 관련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또 너무 진지해지고. 아무튼 그런 상황인데, 그 와중에 오디오 녹음과 편집, 후반작업 경험이 있는 내가 오디오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회의 중에 제작 공간의 소음 문제와 음성 수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칵테일파티 효과’를 설명하게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칵테일파티 효과’는 수많은 소리가 들리는 시끄러운 파티 중에서도 인간이 서로의 목소리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도 인간이 관심을 기울인 내용에만 집중해서 들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식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제작 과정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소리가 녹음하면 더 들리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외부의 소리가 조금 있더라도 대화에 집중하면 잘 들리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 팀의 경우에는 녹음 장비와 방식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결정하면 좋을까 하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결론은 그래도 녹음을 해놓으면 생각지 못한 소리가 나중에 들려서 불편함을 줄 수도 있으니 장비에 조금 신경을 더 쓰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지만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은 적당한 선에서 하자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신경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화면도 있고 대화를 하는 경우에는 좀 낫지만 음악 녹음 제작 과정에서는 작은 소리의 디테일에도 아주 민감해진다. 얼마 전 작업을 마치고 믹싱 중이던 노래의 경우 그냥 들어서는 잘 티가 나지 않는 공백 때문에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이게 설명하려면 좀 어려운데, 노래를 마치고 나서 노래를 하지 않는 부분에도 그 순간의 공간에 흐르고 있는 아아아주 작은 소리가 들어가게 되는데, 마이크를 통해 이 신호가 증폭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라낸 것만으로 잘라내기 전과는 다른 야아아악간의 위화감이 생기게 된다. 녹음 당시에는 -60dB 이하의 신호였던 부분이라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 믹싱과 마스터링을 통해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공백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해야 할까?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 같지만 귀가 조금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 차이에 대해 인지를 한 상태라면 이 공백이 지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밴드 멤버들도) 이 차이를 한귀에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들린 차이는 없던 것으로 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중간에 지워진 공백을 하나하나 찾아서 채운 다음 작업을 마무리했다. 어떻게 됐는지는 곧 발매될 새 앨범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새롭게 좋은 곡들도 만들었고, 꼼꼼하게 작업했다.
예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설프게 처음 홈 레코딩을 시작했던 시절에는 좋은 소리에 대한 감각 자체가 별로 없었다.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고 사용했던 장비들도 어설펐다. 요즘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입문용 제품들의 품질도 상당히 뛰어나지만 그때는 어휴…. 처음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는 4트랙 레코더를 사용하기도 했고, 곧 컴퓨터로 녹음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악한 구성이었다.
1집 앨범을 녹음하려고 레코딩 스튜디오에 갔을 때 그곳의 좋은 스피커와 기재들을 통해서 이전에 집에서 녹음한 곡을 듣고 부끄러웠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만든 음악이 어떤 소리인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 오히려 겁없이 이것저것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평지인 줄 알고 지나왔는데 돌아보니 낭떠러지에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기분과 비슷하게, 그 뒤로는 뭘 해도 부족함이 먼저 보이곤 한다. 그 부끄러움의 간극을 메꾸려고 이것저것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데 외려 더 신경 쓰고 배워갈수록 더 어려운 것은 기분 탓일까?
새로 산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너무 선명하게 촬영되는 까닭에 스스로의 모습을 찍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엉망인 글씨로도 열심히 가사 노트를 썼었는데(글씨로 표현되는 웅얼웅얼거림이 그곳에 있었다), 막상 다시 보기 쉽고 알아보기도 쉬운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애매한 상태의 가사 덩어리를 쓰기가 좀 그렇다. 노래를 녹음하려고 좋은 마이크와 장비를 연결하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왠지 대단한 실수를 계속 하고 있는 기분이다.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용례를 가진 표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표현해야 하는 입장에 선 사람으로서 적당한 흐릿함이 없이는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영상 콘텐츠도 그냥 잘 모르는 상태로 일단 좀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잘 모르고 어설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했던 실수들을 생각해본다. 전자와 후자가 반반 정도만 되어도 참 좋았겠다 싶지만 글쎄, 좋게 봐줘야 한 10분의 1 정도가 아닐까. 딱 그만큼만 기억되고 싶다. 나머지 부끄러움은 혼자 감당할 몫이겠지만.
<1/10> _브로콜리너마저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우리가 아파했던 날은 모두
나 혼자 기억할게
혹시 힘든 일이 있다면
모두 잊어줘 다 나의 몫이지만
듣고 싶은 말이 남았다면
네가 했던 말 다 너에게 줄게
우리가 살아 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우리가 아파했던 날은 모두
나 혼자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