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문희)을 만나러 온 금철(김희라)은 경찰과 대치한다.
제작 남화흥업주식회사 / 감독 임권택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69년
거장 임권택이 흥행영화를 양산하는 직업 감독으로 살았던 시기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1956년 <장화홍련전> 제작 현장에서 처음 영화 일을 접했던 그는 1961년까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서 수련하다 26살인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한다. 1960년대 임권택은 주로 사극과 액션, 때로는 코미디 장르를 오가며 진지한 예술적 대상이기보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를 붙들고 있었다. 그는 이때의 자신을 “저질흥행감독”으로 낮춰 부른다.
유현목, 김수용, 이성구 같은 감독들이 문예영화에 집중하던 1960년대 후반, 그는 오로지 흥행 가치에 집중하는 영화를 솜씨 좋게 만들어 충무로 제작자를 만족시키는 감독이었다. 1969년 7편, 1970년 8편, 1971년 7편의 영화를 만든 3년은 양산의 정점이었다. 임권택은 “(처음으로 작가적 자의식을 투영해 만든) <잡초>(1973) 이전의 영화들은 모두 불태워버리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흥행을 겨냥해 만들었던 50편의 영화에 그의 영화적 고민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세계영화의 조류를 체득해갔고 상업영화라는 틀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에서 영화언어를 실험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모색하고 있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임권택의 1969년작 <사나이 삼대>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다. 해외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던 시절, 조금이지만 일본 도심의 풍경이 영화에 담긴 것은 결코 과소하지 않은 흥행 요소였을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는 일본의 한 역에 열차가 도착하는 모습을 원경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한밤 대한민국 거류민단 본부에서 나온 남자가 세단에 쫓겨 도망가고 막다른 골목길에 갇힌 그는 차에서 내린 남자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죽기 전 그는 살려달라며 한 남자를 부르는데 바로 차 안에 앉아 지켜보던 금철(김희라)이다. 죽은 남자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성당을 배경으로 대담한 필치로 쓴 오프닝 크레딧이 나온다. 흘러간다기보다 말 그대로 등장하는 크레딧 자막의 존재감이 심상치 않은데, 배우 문희 그리고 박노식과 김희라가 보이는 두숏에서 차례로 김희라, 문희, 박노식이라는 이름이 박력 있게 어우러지며 그들이 맡은 배역들이 극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예비한다.
조총련계 가네무라 조직의 보스 박호남(박노식)은 금철을 거둬들여 조직의 2인자로 키운다. 죽은 남자는 금철의 친구 상현(강민호)으로 민단의 사무실에 드나들다 발각된 것이었고, 범인을 알고 싶은 여동생 미연(문희)은 직장이 있는 오사카로 돌아가지 않고 도쿄에 남는다. 가네무라 조직은 일본 교포들의 북송 사업을 맡고 있는데 이를 방해하는 민단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금철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당시 검열신청서에 제작사가 작성한 문장을 빌리면 “조총련계의 만행과 주인공의 사상 전향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암흑가의 남자 금철이 “밝은 태양 아래로 돌아와 새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펼쳐간다. 미연은 조직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금철을 받아들이고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보스 호남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호남 일당이 미연을 잡아가 협박하자 금철은 할 수 없이 민단의 유력자를 처단하러 가고, 계략에 휘말려 겨우 민단 사무실을 빠져나오지만 호남은 차에 타려는 그를 총격한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그를 의문의 신사가 데려가 치료해주는데, 바로 1대 가네무라(장동휘)다. 흑백으로 처리된 플래시백을 통해 가네무라의 전사가 펼쳐진다. 일본 야쿠자들과 결투하던 가네무라는 가야마(김칠성)를 비롯한 경찰들이 잡으러 오자 자리를 피하는데, 이때 2인자 호남은 가네무라의 다리에 단도를 던져 체포되도록 만든다. 가네무라가 감옥에 가자 호남이 조직의 보스, 즉 2대 가네무라에 올랐던 것이다.
호남 일당은 금철을 잡기 위해 다시 가네무라의 딸 미옥(최인숙)을 납치한다. 임권택은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것은 촌스럽다는 듯이 시나리오의 장면과 묘사를 과감히 생략하며 속도를 내지만, 마지막 20분만은 전력을 불어넣는다. 자수하겠다며 가네무라의 집을 나선 금철이 단신으로 호남의 사무실을 습격하는 것이 시작이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총격 액션은 이 영화의 백미다. 또다시 금철은 호남의 총에 맞지만 호남은 가네무라가 던진(원래 호남이 가네무라에게 던진) 단도에 쓰러진다. 다시 반격하려는 호남은 결국 금철의 총에 절명한다. 가네무라 삼대를 한방에 몰아놓고 펼치는 액션 신은 1960년대 후반 임권택이 이미 장인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그는 액션영화에 서부극의 미장센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임을 체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이 도열한 풀숏과 클로즈업을 과감하게 오가는 숏의 연쇄는 액션영화에 걸맞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두숏의 간격을 아예 하나의 테이크로 연결해버리는 몇몇 장면에서는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미연을 위로하기 위해 금철이 성당을 찾아온 장면에서 시작된 그의 시점숏은 인물에 카메라가 다가가는 트랙업 숏과 결합하며, 비극적인 두 남녀의 상황과 감정을 설득력 있게 잡아낸다.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금철의 시점숏을 눈여겨보는 것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하길종이 있기 전 임권택은
만신창이가 된 금철은 미연과 다시 만나기 위해 비틀비틀 성당으로 향한다. 그사이 미연의 모습과 그의 얼굴을 빠른 편집으로 교차시키는 몽타주 시퀀스가 이제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집중하기를 신호한다. 금철이 성당에 들어서자 흔들리는 시점숏으로 단상의 십자가가 보인다. 경찰들이 성당을 에워싸고 투항을 권하지만 의식을 잃어가는 그는 총질을 해댈 뿐이다. 그때 다카하시 신부가 아이를 유산하고 정신병원에 있던 미연을 데려온다. 이제 금철의 시점숏은 성당으로 들어서는 미연의 모습을 흐릿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변주되어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미연의 정신이 돌아온 순간 빅 클로즈업을 장악하는 문희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이 영화는 배우 문희의 대표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데, 임권택은 이만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의 매력을 활용한다. 같은 해 만들어진 임권택의 <비나리는 고모령>으로 데뷔한 김희라 역시 대배우의 자질을 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 그의 목소리는 신성일의 후시녹음 목소리를 도맡았던 성우 이창환의 음성이다. 신인 배우 김희라가 액션 장르에서 신성일의 지분을 이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영화의 엔딩, 확성기 마이크를 든 다카하시 신부는 “들립니까”라며 성당 안의 금철에게 말을 건다. 이는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 휴교령이 내린 대학 캠퍼스에 울려 퍼지던 확성기의 외침, “들립니까”를 떠오르게 한다. 하길종이 청년, 정확히 대학생들과 교감하던 1975년의 그 목소리에 앞서 임권택은 1960년대 말 변두리 청년들에게 나름의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