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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번역가 오미주(신세경)와 배급사 대표 박매이(이봉련)네 욕실 문에는 샤워하다 살해당하는 <싸이코>의 유명한 장면이 걸려 있다. 낮은 온도의 유머 코드를 공유하는 둘간의 대화는 언제나 ‘척 하면 척’이다. 아니, 척 하면 척 노리스까지 갈 법한 이들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그 양반’이 진심으로 신기하다. 미주는 직업 특성상 총을 많이 접했다던 그 양반에게 “직업이 뭔데요. 뭐, ‘존 윅’이세요?” 물은 적이 있다.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기선겸(임시완)은 <존 윅>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킬러구나’ 하는 사람이다. 살아온 배경, 관심사가 다른 이들이 엮이는 거야 드라마에선 예삿일이지만 JTBC <런 온>은 마음을 말로 전하는 어려움까지 섬세하게 짚는다.
찰떡처럼 말의 합이 맞는 상대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면 내가 모르는 화제로 눈을 빛내는 사람을 턱을 괴고 바라보는, 그런 시작도 있다. 접점이 없는 이들이 서로 호감을 느끼면 상대의 말을 주의
드라마 '런 온', 대화로부터 싹트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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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고백> 제작 동성영화공사 / 감독 조긍하 / 상영시간 140분 / 제작연도 1964년
195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를 하나 꼽는다면 단연 멜로 드라마일 것이다. 사실 멜로드라마는 우리가 편하게 쓰는 말이긴 하지만 규정하기 까다로운 용어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구 영화 학계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멜로드라마는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최루물(weepies), 사극, 범죄 스릴러 등 다양한 하위 장르들과 결합한 혼성적인 영화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가족 멜로드라마, 모성 멜로드라마처럼 특정한 하위 장르로 좁혀볼 수도 있다.
전후 한국영화의 비평 지면으로 한정해 얘기하자면 멜로드라마는 통속영화와 동의어인 동시에 대중영화의 품질을 파악하는 일정한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잉된 요소로 눈물을 강요하거나 개연성 없는 이야기로 만듦새가 엉성하다면 ‘신파조’ 멜로드라마라고 낮춰 불렀고, 서구영화의 것들을 지향하고 나름 성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멜로드라마의 대가 조긍하가 연출한 '육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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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기자와 만화잡지 <뉴타입>의 한국판 전 수석기자였던 김익환씨가 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리포트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년간 일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록(316억8천만엔)을 훌쩍 뛰어넘어 개봉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로운 기록(1월 18일 기준 361억엔)을 써내려가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무려 2644만명의 극장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심야시간대(오후 11시30분)에 방영한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구체적인 흥행 요인은 이번호 기획 기사에 자세히 소개했으나, 핵심만 말하자면 천우신조의 타이밍과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확장성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예기치 못한 흥행에 크게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쩌면 경쟁작이 되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애
[장영엽 편집장]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흥행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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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연말에 작성했습니다. 원고의 ‘올해’는 2020년을 뜻합니다.-편집자)
2020년은 모두에게 힘든 해였다. 연말을 맞아 더 허무한 마음이 들기 전에 올 한해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상반기에 예정되었던 공연과 스케줄은 모두 취소되었고, 하반기에는 전에 없던 정도로 일이 없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연말에는 거리두기 2.5단계 확대 실시로 준비했던 공연도 모두 취소되어 비대면 공연으로 전환한 참이었다. 연초부터 회사의 스탭들과도 아쉽게 작별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고, 밴드 멤버 변동까지 있었으니 내외적으로 정신없는 일년이었다.
하지만 올해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니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예년에 비하면 활동에 제약도 많았고 힘 빠지는 순간이 많았음에도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공연은 취소되었지만 준비했던 곡을 음원으로 발표했고, 방역 지침을 이행하다 보니 매출이 반 이하로 줄었지만 여름 공연을 진행할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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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이나 피부과에서 꼼짝없이 누워 장시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복병은 음악이다. 비틀스의 <Yesterday>를 가야금으로 연주한 버전이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가슴 아파도>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한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좋은 의도- 익숙한 팝이나 가요를 어렵게 느껴지던 고전 악기로 편곡하여 두 장르의 화합을 도모하고 확장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겠다- 가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곤 한다.
애초에 대중음악은 클래식과 박자의 강세부터 다를뿐더러 가창곡의 경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감정이나 리듬감에 의해 음의 길이나 음악적 뉘앙스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요소가 편곡과 연주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보 단계에서 제거되기 십상이다. 마치 영어 가사를 한글로 받아 적어 읽을 때 유실되는 발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악기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피아노로
[Music] 《브리저튼》(Bridgerton) OST 세련된 편곡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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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자면 단골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단골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손님으로 어느 가게를 자주 가서 단골의 자격이 충분해졌더라도 주인이 나를 아는 체를 하는 순간, 그곳을 더는 들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런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 같다.
과거 일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예전 집 근처 편의점에서 늘 비슷한 시각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직원이 말을 건넸다. “이 아이스크림 맛있죠? 저도 맛있더라고요.” 대충 그렇다고 쑥스러워하며 대답은 하고 나왔지만 그 이후부터는 다시는 거기에 가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내 존재를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비밀 요원도 아니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익명의 ‘손님1’이고 싶은데, 한순간 ‘이 근처에 살고, 매일 특정 아이스크림을 비슷한 시간대에 사 먹는 20대 남자’로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단골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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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죠. 달려야만 했고, 불안했고…”, “내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냅다 달렸어요. 전력 질주.” 달리기 얘기인가 했는데 일, 아니 삶에 관한 고백이었다. 4부작으로 방송된 Mnet <달리는 사이>는 데뷔 4년차부터 14년차까지 20대 여성 가수 다섯명이 여행하며 러닝 코스를 함께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달릴 때 숨차면 오히려 속도를 낮춰. 그래도 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니), “저는 늘 앞일을 걱정해서 하루를 망쳐왔어요. 그런데 오늘 달린 산길은 커브가 많으니까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거예요. 다음 길에 가서야 알 수 있더라고요. 가서 보면 되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자” (유아) 등 이들이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진다.
‘달리기’와 ‘일하기’의 의미가 겹치고, 비슷한 생활 속에서 비슷한 압박감을 느껴온 동료와 가까워진 출연자들은 점점 깊게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낸다. “무
Mnet '달리는 사이' - 느려도, 쉬어도, 멈춰도 괜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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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3일,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영화제 형식의 페스티벌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집행위원회는 “코로나19 유행과 극장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한국영화계의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단편영화는, 또 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긴 고민의 시간”을 가진 끝에 영화제 운영 종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진감독들의 다채로운 장르적 감각을 발굴하고 나홍진, 조성희, 엄태화, 장재현 감독 등 200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감독들의 등용문이 되어줬다는 점에서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운영 종료 소식은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으로 지난해 말부터 연이어 들려오는 각종 영화 사업과 영화제 운영 중단 소식이 일련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와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인디다큐페스티발과 미쟝센단편영화제.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하던 존재들의 사라짐은
[장영엽 편집장]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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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을 생각하면 입을 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부조리한 이야기로 전개되던 가사를 포효하던 패기가 그렇고, 여러 솔로 작업에서도 감각적인 언어와 탁월한 음율로 부르던 노랫말이 그의 입에서 두드러졌다. 할 말이 많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했고, 그가 고른 낱말과 문장과 이야기들은 갈수록 깊이를 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입을 닫았다. 11년의 공백을 깨고 2019년에 발표한 《가볍고 수많은》에선 사람들이 기대하던 가볍고도 수많은 백현진표 감정을 담은 가사로 출렁거렸는데, 이번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청각적 기호들만으로 채운 음반을 냈다. 열세개의 트랙은 A1번부터 A7번까지, B1번부터 B6번까지 건조하디건조한 제목으로 나열돼 있고 크라임 신(Crime Scene)이 찍힌 야간 CCTV 같은 아트워크만이 이야기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일한 단서다. 모든 곡은 전자음으로만 구성되었고 B 트랙에서야 귀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는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Music] 낯설지만 압도적인 - 백현진 《Csimplex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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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니. 기이한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뒤덮고, 사람이 끊임없이 병들어 죽어나가는데도 ‘새해’가 올 수 있구나. 이래서 ‘세월’을 가리켜 참 ‘속절없고’, ‘가차 없다’고들 하는구나.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려 했을 때 꽤 망설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메일 끝에 종종 “무탈하게 지내세요” 라고 적긴 했지만 왜인지 입이 썼다. 일단 ‘감염’은 ‘무탈하게 지내고 싶은’ 내 의지와 소망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태이며, 무엇보다 일신의 무탈을 비는 내 소망이 조금은 ‘보신주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탈’이 났고, ‘탈’이 날 확률이 높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안위를 돌보고 개선하지 않는 이상 ‘무탈’은 그저 요행일 뿐이지 않은가.
‘건강하세요’라는 말도 버석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형용사를 명령형으로 사용하는 것부터가 입에 붙지 않을뿐더러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건강’이 곧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신체’라는 뜻의 ‘유용성’과 ‘정상성
[오혜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두에게 복된 새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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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인공지능(AI)의 오류는 종종 로맨틱한 계시로 쓰였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서 벗어난 곳을 안내해 운명의 상대 앞으로 이끌거나, AI 스피커가 엉뚱한 대답을 하며 앞으로 일어날 만남과 사건을 예언하기도 했다. 한데 MBC every1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의 냉장고 AI ‘장고’는 맛이 간 인간을 귀신같이 골라낸다. 펠리컨 전자 ‘음성인식 스마트 가전 유비쿼터스 혁신개발팀’ 과장 대행 서지성(송하윤)은 말한다. “음식물이 어떤지를 말해 달랬더니 인간이 어떤 상태인지 감별하고 있는 미친 냉장고”라고.
사용자가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주면 보관 중인 식재료를 바탕으로 다음날 메뉴를 추천해주는 간단한 기능도 자꾸 실패해 지성의 애를 먹이던 장고는 기판 합선 이후, 허용되지 않은 데이터를 긁어와 인간을 판별하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카드사용 내역과 은행 잔고, 사적인 메신저, SNS 기록, CCTV 영상까지 뚫고 분석한다. 장고는 지성과 결혼을 앞
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A.I. 가라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