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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TV를 보다 눈물을 줄줄 흘린다면, 아마도 SBS <TV동물농장> 때문일 테다. 안타까운 사연이나 심하게 다친 동물의 기적 같은 재활에 감격하지만, 이를 돕는 여러 사람들의 인내와 애정, 책임감이 감정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반대로 방치되거나 유기된 동물의 사연에도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 외에 인간을 향한 분노와 혐오를 함께 느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일수록 배후의 인간에게서 감지되는 덕목이나 윤리에 더 예민하고 엄격해진다. 동물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 또한 출연자 무리에 단기 임대 동물이 투입되는 형식의 문제점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의 ‘상근이’가 ‘국민견’으로 인기를 끈 이래 같은 종의 유기견 증가가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동물과 함께하는 삶의 일부만 전시하거나 특정 종에 대한 선망을 부추기는 예능은 더이상 고운 눈으로 보기 어렵다.
JTBC <마리와 나> 역시 강호동식 호형호제 예
[유선주의 TVIEW] 반려인 맞춤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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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몇해 전, 마당에 깔아놓은 잔디가 누렇게 죽어가던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마당 한 귀퉁이의 그네에 어머니와 세련된 투피스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미인이었는데 두 사람은 아주 진지하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저 여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해서 기웃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집과 우리 동네의 내 또래 아이들 집에 교학사의 아동 도서가 배달되어왔다. <세계 전래동화 전집> <어린이 자연 과학 만화 전집> <어린이 글짓기 교실>, 이렇게 세 가지 전집이었다. 우리 집 앞집에 살던 친구 집에도 나와 비슷한 구성의 교학사 전집들이 배달되었는데, 친구의 책들 중에는 나에게 없는 <우주 소년 아톰>이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우주 소년 아톰>을 보다가 가슴이 저릿저릿하는 이상한 감정을 경험했다. 그것은 슬프기도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이것이 만화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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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 카페에 앉아 뭔가 정리해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슴이 텅 비어 자그마한 진동에도 천둥이 치듯 쿵쾅거릴 것이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야 비교적 선명한 사실관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실과 기분이 적당히 분리되고 나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때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수가 있다.
문제는 하루가 아니라 평생을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영화는 프레임과 컷이 아닌 냄새와 질감으로 기억되고, 구체적인 서사가 아닌 뭉쳐진 이미지 그 자체로 동공 저 안쪽에 조각칼로 새겨지듯 각인된다. 그런 영화들에 관해서는 좀체 글을 쓰기 어렵다. 썼더라도 나중에 읽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인생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투명하기 때문에 ‘삶’을 뒤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여름, 종로2가의 (지금은 없어진)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그 모든 혼란과 혼돈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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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간 데이비드 보위를 종종 떠올리게 된 계기는, 그가 직접 작곡하고 불러 1969년에 싱글로 발매된 <Space Oddity>를 통해서였다. 일단 들을 일이 많았다. 우주로 발사된 탐사선에 문제가 생기고 톰 소령(Major Tom)이 우주 미아가 되어 사라져버린다는 내용의 노래다. 고장난 우주선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마음을 교신으로 전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한 낡은 바에서 <Space Oddity>가 흐를 때였다. 도전을 망설이는 월터(벤 스틸러)에게 환상으로 나타난 셰릴(크리스틴 위그)이 이 노래를 불러주고, 그는 헬기에 오른다.
사실상 10년 만의 장편을 만든 프루트 챈의 홍콩영화 <미드나잇 애프터>(2014)에서도 <Space Oddity>를 들을 수 있었다. 운전기사(임설)를 필두로 팻(임달화), 잉(혜영홍), 치(
[에디토리얼] Ground control to David Bow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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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이자 화가이기도 한 기린은 지난 몇년간 꾸준히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그는 뉴잭스윙과 알앤비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90년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기린은 90년대를 유행이나 향수가 아니라 ‘멋’으로 대우하고 체화한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인류 대다수에게 그렇듯 기린에게도 세상은 살기 힘들었다. 혈혈단신으로 투지를 불태웠으나 그는 가끔씩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쳐갈 때쯤 다행히 마음 맞는 동료를 규합하기에 이르는데,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에잇볼타운’(8BallTown). 기린이 재규어중사, 플라스틱키드(Plastic Kid), 위키즈(WEKEYZ), 요요(Yoyo) 등 자신과 음악적 색깔이 맞는 뮤지션과 함께 설립한 레이블이다. 뭔가 무협소설의 첫장 같지만 대충 사실이니 그냥 넘어가자. 레이블 설립 후 처음 발표하는 단체곡인 이 노래는 그동안 기린이 드러낸 음악적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은 물론
[마감인간의 music] 낭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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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히말라야> 안드로메다에 계신…
[정훈이 만화] <히말라야> 안드로메다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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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이트풀8>의 오프닝이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작 <괴물>(The Thing)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세 가지다. 광활한 설원의 스코프와 배우 커트 러셀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서부극보다는 호러의 배음처럼 들리는 이번 음악은 지금까지 팝송 컴필레이션만으로 사운드트랙을 엮어온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최초의 오리지널 스코어이기도 하다. 기억이 희미해 다시 꺼내본 <괴물>은 짐작보다 더 깊이 타란티노의 의식에 촉수를 뻗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눈보라 속에 고립돼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들, 느긋한 듯 긴장된 공동휴게실 풍경, 간헐적인 하드 고어와 마지막 장면의 톤까지 <헤이트풀8>는 <괴물>과 은근슬쩍 평행선을 그린다.
01/03
‘타란티노 감독 여덟 번째 작품.’ <헤이트풀8>의 웅장한 오프닝에 폼나게 박힌 자막을 보고 흠칫했다. 겨우 여덟편? 열댓편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도중(途中)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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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90)에서 신영복 선생은 문신을 “불행한 사람들의 가난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돈도 지식도 배경도 없는 민초들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뚱이에 그린 그림이 문신이란 이야기다. 그래서 문신은 일견 위협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서글픈 그림이다. 국내 첫 개봉 때 <폴 뉴먼의 탈옥>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폭력탈옥>이란 제목으로 TV에서도 방영됐던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의 <쿨 핸드 루크>(Cool Hand Luke, 1967)에서, 도로공사에 투입된 죄수들 중 ‘타투’(워런 피너티)는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진다. 헐떡이는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는 붉은 인어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힘에 겨워 일그러진 그의 표정과 땀으로 범벅된 그의 고단한 가슴은 그 순간 문신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쿨 핸드 루크>는 힘없는 사람들이 문신보다 더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웃음과 노래,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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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사를 했다. 서가를 정리하다 20년 전에 구입한 <삐딱하게 보기>를 펼쳐본다. ‘자본주의에 가장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라는 모순된 명성을 가진 슬라보예 지젝, 그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무렵의 책이다. 지젝은 소설이나 영화 또는 농담 따위에서 그럴듯한 예를 끌어오는 재주가 있는데, 이 책에 인용된 여러 이야기 중 두 가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나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쓴 <조너선 호그의 불쾌한 직업>이라는 과학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우리의 우주는 존재하는 우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우주들을 창조하는 우주의 예술가들과 그렇게 창조된 우주에 파견된 예술비평가가 등장한다. 주인공 부부는 파견된 예술비평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후 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그에게서 절대로 차창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듣는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목격한 부부는 경고를 어기고 차창을 내린다. 그들은 열린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무정형의 세계와 지연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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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다. 86아시안게임이 있었고, 88올림픽이 있었던 그 시기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박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살짝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초등학생 시절 산수완성, 이달학습, 다달학습에 이어 중학생 때는 마스터 수학, 하이레벨, 고등학생 때는 정석, 집중탐구. 그렇게 많은 문제집을 풀었는데도 왜 수학은 포기하게 되었을까. 하다못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할인쿠폰을 어떻게 적용하면 이익인지, 40% 세일에 추가 20% 세일을 하면 도대체 그 옷이 얼마인지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하고 나서도 쉽게 알아내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확실했던 건 수학이 재미가 없었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식으로만 풀던 문제들은 방정식 수준에서는 통했지만, 미적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새로운 곡을 녹음하는 것, 세계사 시간에 로마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수학은
[김호상의 TVIEW] 응답하라,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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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오래간만에 상경한 수녀님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속세의 때라고는 묻지 않은 데다 감수성 예민하며 안목 높기로 소문난 수녀님에게 어울리는 영화라면… 숭고한 신념과 인간적인 두려움 사이에 놓인 수도사들의 이야기라는 예술영화 <신과 인간>? 하지만 수녀님은 마음이 언짢았다. “제가 수녀원에서 올라왔습니다. 날마다 수녀님들만 보고 살아요.” 이건 마치 부서 회식으로 부장님이랑 <오피스> 보는 경우랄까,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서울대 견학 가는 꼴이랄까, 수녀님 죄송합니다. 사실 수녀님은 염두에 둔 영화가 따로 있었다. “저도… &%$ 보고 싶습니다.” 네? “… (단호하게) 댄.싱.퀸.이요.” 아아, 수녀라고 하여 마음에 품은 날라리의 꿈 한 자락이 없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때 신촌 마돈나 엄정화가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유부녀 10년의 한이 맺힌 춤사위를 풀어헤치는 <댄싱퀸>을 보았다.
몇년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줌마 아니라 줌바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