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과 추석 시즌에 단골로 걸리던 영화가 있었다. 해마다 1, 2, 3…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연휴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들 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있었다. <나 홀로 집에> 시리즈라든지, 최근에는 <러브 액츄얼리>가 그 범주에 들어가겠다. 모바일과 PC로 비선형적 시청이 일상화된 2015년에도 그 시즌의 영화나 단골 프로그램들은 존재한다. MBC의 <아이돌 육상 대회>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올 타임 페이버리트로는 성룡 영화를 비롯한 소림 무술영화가 빠질 수 없다.
그 성룡과 소림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명절 특집 파일럿으로만 SBS에서 방송되던 ‘소림사판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소림사>가 20부작 정규 편성에 나섰다. 족장(여기서는 사형이 되겠다) 김병만을 필두로 하여 이미 명절에 소림사에 다녀온 장미여관의 육중완이 함께하고, 남녀 제자들이 남소림사와 북소림사로 나뉘어 제자 수련을 받는다. <정글의
[김호상의 TVIEW] 소림사가 시작한 무한도전
-
<간츠>의 만화가 오쿠 히로야의 신작 <이누야시키>(오경화 역, 대원씨아이 펴냄)는 외계인에 의해 육체를 로봇으로 바꿔치기 당한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다. 가공할 외계 기술이 집약된 기계 육체는 둘에게서 ‘인간’을 빼앗아간 대신에 ‘신’에 가까운 능력을 준다. 노인 이누야시키는 자신의 가공할 능력을 자각하자 이를 약자를 돕는 일에 사용하려 하지만, 소년 히로는 충동적으로 남용한다. 결국 선과 악으로 대립하게 될 둘의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던 단행본 4권의 한 지점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 히로의 악행을 막기 위해 이누야시키를 찾아낸 안도는 그가 불치병이나 암 환자들을 치유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기적을 행하는 이누야시키를 진정한 ‘히어로’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안도.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던 둘을 입구에서 기다리던 의료진 몇명이 가로막는다.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는 그들은, 이 병원에 다른 난치 환자들도 많다며 둘을 다시 병원으로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동기가 아닌 태도의 문제
-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2014)이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세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게 불과 1년 전인데, 올해 여름 개봉한 <몬스터 헌트>(2015)는 더 난리가 났다. 자세한 기록과 내용은 이번호 특집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중국 영화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여러모로 산업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또한 한국 감독들의 중국 진출,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 그리고 한•중 합작영화의 다변화 등 충무로의 현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중국영화의 현재를 다루는 특집은 이번호부터 1030호까지 <씨네21>의 흙수저 김성훈 기자의 지휘 아래 무려 3회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최근 중국영화가 도대체 얼마나 달라졌기에 그러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번호 전체 잡지를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느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홍콩 감독들이 현재 중국 상업영화의 크리에이티브를
[에디토리얼] 중국영화계의 일대 전환기를 목도하며
-
“음악을 한 단어에 담는다면, 그 단어는 무엇이 될까요?” 명베이시스트 빅터 우튼(Victor Wooten)이 유튜브의 영상 속에서 수강생들에게 묻는다. 학생들이 제시한 대답들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나 감정”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좀 있어 보이고 싶었는지 음악을 “스펙트럼”이라고 정의한다. 학생들의 대답을 다 들은 빅터 우튼은 마치 현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 좋다”라고 먼저 단서를 단다. 그러고는 “전세계의 레슨 캠프를 돌아다니며 이 질문을 했을 때, 그 누구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음악은 ‘음표’나 ‘스케일’이라는 대답. 마찬가지로 음악이 ‘테크닉’이라거나 ‘모드’(선법)라는 대답도”라고 말한다. 그래, 옳다구나. 음악이란 건 그러니까,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보컬이든 악기든) 그것이 어디까지나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곤 한다. 예컨대 당신이 기타리스트 박주원이나 록 밴드 라이프 앤드 타임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이들의 음악이
[마감인간의 music] 음악의 기본
-
-
[정훈이 만화] <특종: 량첸살인기> 트래픽 스틸러 남기자
[정훈이 만화] <특종: 량첸살인기> 트래픽 스틸러 남기자
-
※<슬로우 웨스트>의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더 홈즈맨>의 주인공 힐러리 스왱크는 서부극 전통에 충실하게, 밭을 힘겹게 쟁기질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 공동각본가 겸 감독이자 주연인 토미 리 존스는 프레임 안으로 굴러떨어지듯 입장한다. 그의 캐릭터 떠돌이 조지 브릭스(토미 리 존스)는 주인이 비운 집을 무단 점거했다가 마을 주민들이 굴뚝에 폭약을 투척하자 내복바람으로 뛰쳐나온다. 얼굴을 뒤덮은 검댕은 특유의 깊은 주름을 우스꽝스럽게 부각시키고 떡진 성긴 머리칼에서는 김이 피어오른다. 많은 출연작에서 이 배우가 보여준 하늘이 두쪽 나도 미동 없는 ‘마이 웨이’의 화신 같은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평소 존스가 긍지와 책임감을 안고 세태를 말없이 한탄하는 인물을 연기했다면 <더 홈즈맨>의 그는 척박한 세상과 더불어 적당히 미치고 야비해진 노인네다.
09/28
소년은 스코틀랜드에서 대양을 건너 신대륙의 콜로라도에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무렴, 꼬마야
-
조상과 관련한 두 가지 실화. 아는 학생이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여권과 현금, 신용카드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가까스로 미국인 친구와 연락이 닿아 위기를 모면했다. 일단 며칠 굶은 한국 학생에게 미국 친구는 햄버거를 사주었고 한국인은 미국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때 미국인 왈, “괜찮아, 우리는 언제나 너희 나라를 도와주었잖아. 한국전쟁 때부터”.
얼마 전, 몽골에서 이주하여 한국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많은 농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지역은 ‘코리안’보다 ‘코시안’ 아동이 많았고 노인들만 사는 동네에 몽골 여성들은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 초등학생들이 고려시대 때 원나라의 침략과 삼별초의 난을 배우게 되었다. 한국 학생들은 이 ‘역사’에 분노하였고 “조상의 원수를 갚는다”며 몽골 어머니를 둔 친구들을 구타했다.
고려를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국가라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인은 국가를 대표하지 않는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기록자들
-
연쇄살인사건으로 소란스러운 경기 동부와 인접한 강원도의 작은 마을 ‘아치아라’. 십년간 범죄 없는 마을이었던 이곳에서 여성의 백골이 발견된다. “그 여자도 당했대요? 당했죠? 그죠?” 폴리스라인 너머로 탐욕스러운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동네주민의 말은 그러니까, 여자가 강간을 당했을 거라는 확신이다. 소름이 끼쳤다.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폐쇄된 공동체의 어두운 비밀과 위선을 파헤치는 이야기들이 취하는 잠깐의 푸근함과 순박함조차 가장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골 마을의 외지인 여교사.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한 구성원들의 범죄. 비밀을 캐는 경찰관. 귀신을 보는 아이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부터 미드 <트윈 픽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뜨거운 녀석들>이나 영화 <도희야> <이끼> <불신지옥> 등을 떠올릴
[유선주의 TVIEW] 아는 동네 이야기…
-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모래내에서 신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한 달 전부터 어머니는 동네가 좋지 않다며 걱정을 했고, 어머니를 도와 집을 보러 다녔던 군대를 갓 제대한 삼촌은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면쩍게 웃었다. 신촌 로터리에서 서강대 가는 길과 동교동 가는 길 사이에 노고산동으로 가는 좁은 왕복 이차선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좌우에는 니나노집 또는 색싯집이라 부르는 술집들이 100여m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해가 지면 짙은 화장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술집 앞에 나와 앉아 술손님을 기다리고 밤이 깊어지면 젓가락 장단과 유행가 소리가 울려퍼지는 그런 곳이었다. 모래내의 택지개발을 위한 공터에서 들개들을 쫓아다니거나 백련산을 오르내리며 놀았던 나는 간밤에 손님이 남긴 소주와 환타 오렌지를 정체불명의 주사기에 담아 친구들 입속에 쏘아넣거나, 술주정뱅이들이 싼 오줌 지린내가 코를 찌르는 노고산동 놀이터의 수돗가에서 콘돔에 물을 받아 터뜨리며 노는 정겨운 새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333m 높이의 도쿄타워에서 뛰어내렸다
-
“국정 영화잡지를 만들자.” 10년도 더 된 오래전, 타 영화잡지의 한 선배가 그런 얘기를 꺼낸 적 있다. 믿기 힘들지만 월간지 <키노>와 <스크린>과 <프리미어>를 비롯해 주간지 <씨네21>과 <필름2.0>과 <무비위크>와 <씨네버스>, 그렇게 무려 7개의 영화잡지가 공존하던 시절, 1박2일 출장으로 다들 모였던 누군가의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때였다. 영화잡지 수가 반 토막난 지금 오히려 타 잡지에 어떤 기자가 있는지, 아무개 기자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수시로 교류를 가졌었다. 해외 출장을 가서 같은 방을 쓰는 일도 잦았고, 거의 모든 한국영화가 촬영현장 공개를 하던 때였으니까, 비록 소속된 잡지는 달라도 꽤 친하게 지내던 때였다.
물론 그 선배가 농담처럼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당연히 친분 때문이 아니라 잡지들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다. A잡지는 섭외에 성공했는데 넌
[에디토리얼] 국정 영화잡지도 만들자?
-
그룹 이름과 앨범 이름 모두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쪽에 가깝다. 솔직히 나도 ‘이게 뭐지?’ 하면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앨범을 중간 정도 들었을 때 확신했다. 이거, 물건이구나. This is a thing.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것, 불완전함의 부각이라는 의미를 지닌 와비사비룸은 에이뤠, 제이플로우, 장유석으로 구성된 힙합 그룹이다. 그리고 와비사비룸의 두 번째 EP인 《물질보다정신》은 요즘 발매된 그 어떤 한국 힙합 앨범보다 확고한 정체성과 색깔을 지니고 있다. 비록 이 앨범에 담긴 그들의 메시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앨범 내내 유지되는 그들의 선명하고 각 잡힌 태도가 주는 쾌감을 거부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탄탄하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섞이고 변하기 전’의 힙합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프로듀서만의 기운과 변칙을 군데군데 더해 신선함을 불어넣는 솜씨가 놀랍다. 수준의 차이는 늘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 결정된다. 랩 역시
[마감인간의 music] 밥말리처럼 나도 원초적인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