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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그걸 내면 뭐가 좋은데?” 열여섯살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천진하게 반문한다. 당시 열아홉살의 기획사 신입사원이었던 닉 시멘스키는 소녀를 녹음실로 데려갔고, 다음 일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두 사람은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 뒷날 닉이 매니저를 그만둔 후 에이미의 약물 중독은 악화된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이미>에 담긴 인터뷰에서 닉은 한번도 본인의 마음을 언급하지 않지만, 그가 찍은 비디오와 회고담을 보고 듣는 동안 우리는 이 매니저가 에이미를 어떤 식으로든 사랑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에이미는 닉이 촬영한 영상 속에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다. “에이미, 네 작은 중심엔 뭐가 있어?” 화면 밖에서 닉이 묻는다. 멋쩍게 답을 피하며 담요 아래 숨는 소녀의 이마 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영원의 햇빛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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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에서 톰 행크스의 연기는 <다빈치 코드>와 <레이디킬러>를 한꺼번에 면책하고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백 투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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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던 한해라고 일년을 정리하곤 하지요. 나는 살짝 비틀어 이렇게 말해보고 싶네요. 올 열두달이 아주 ‘가지가지’하더라고. 워낙에 가지를 좋아해서 그 보라에 반해서 요 가지에게만큼은 불평을 싣지 않으려 했으나 어쩌겠어요. 그게 딱 그 맨홀에 그 구멍인 것을요. 생각해보니 집 앞 손바닥만 한 텃밭에 심었던 가지 농사도 올해는 가뭄이 들어 망조였지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요. 가만, 여러분들은 괜찮았는데 나만 매번 실패를 실패에다 감아댔던 걸까요.
며칠 전 3호선 지하철을 탔는데요, 도르르 노란색 실이 두툼히 감긴 실패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거였어요. 철로의 덜컹거림에 따라 노란 실패는 바퀴도 아니면서 전투적으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지 뭐예요. 그런데 서서 가는 사람이나 앉아 가는 사람이나 누구 하나 줍지를 않아요. 그게 특별한 재주여서 그 묘미를 감상하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누군가가 실수로 흘린 실패였을 텐데 나 몰라라 그저 쳐다보고들 있는 거예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날 보러와요? 점집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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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행아(정려원)와 리환(이동욱). 놀이터에는 그들의 이름처럼 예쁘장한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서 있다. 어릴 때 부모를 암으로 잃고 혼자가 된 행아는 리환의 집에서 그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며 자랐다. 리환은 행아를 지켜달라는 행아 아빠의 유언을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게 지켜왔다. 남매처럼 자란 사이, 유년기의 트라우마, 위암과 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의 그림자가 드리운 인연의 시작은 행아의 아버지와 리환의 어머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중 공공연하게 KBS <가을동화>(2000)와 <느낌>(1994)을 불러내는 tvN <풍선껌>은 그야말로 공중전화를 쓰던 즈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효가 다했다고 생각한 이야기는 꽤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유사한 멜로드라마에서 가족은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의 자리에 위치하고 <풍선껌> 역시 마찬가지다. 모성애나 효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세팅하고, 그로 말미암은 집
[유선주의 TVIEW] 뻔해 보여서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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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면, 시칠리아는 약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비칠 것 같다. 양떼들이 거니는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얼굴들에 대한 인상 같은 거다. 시칠리아의 ‘신화’가 전세계로 확산된 데는 <대부>(1972)의 역할이 컸다. 주로 유럽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시칠리아는 <대부>가 발표된 뒤, ‘지중해의 낭만’을 자극하는 데 있어서는 그리스와 맞먹는 세계적 명소로 격상된다. 알다시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탈리아 이주민의 아들이다. 그는 시칠리아를 신화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이클(알 파치노)이 전쟁 같은 경쟁을 벌이던 살벌한 도시 뉴욕을 벗어나자마자 도착한 곳이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코를레오네(Corleone)이다. 부친 비토 코를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이름은 이 고향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이곳은 동시대의 공간이기보다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린 풍경화처럼 제시된다. 니노 로타의 감성적인 음악은 그런 기분을 증폭시켰는데, 뉴욕에서 시칠리아로의 이동은 마치 비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고대 그리스의 목가적 이상향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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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드라마 <송곳>이 종영되자마자 가장 먼저 들려온 질문이었다. 그럴 만하다. 시작부터 <송곳>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이 드라마가 <미생>의 인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냐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한 이 시점에서 돌아보건대 시청자들의 호감과 상찬에도 불구하고 <송곳>은 <미생>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들려오는 이 질문. 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그러나 이 질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왜 <송곳>이 <미생>이 되지 못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성립하려면, 먼저 ‘<송곳>은 <미생>이 되려고 했는가’에 대한 해석상의 합의가 먼저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송곳>이 <미생>을, 아니 <미생>이 <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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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1994)에서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누아레)가 망명생활을 위해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로 오게 된다(원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무대인 칠레를 이탈리아로 옮겼다). 모든 인민이 사랑하는 위대한 시인이자 사회주의자인 그가 오면서 마을은 들썩거린다. 그에게 편지를 전해줄 우체부를 고용한다는 말을 들은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마을 여자들이 흠뻑 빠져 있는 그가 도대체 누군가 싶어 담당 우체부가 됨과 동시에 처음으로 작품을 찾아 읽어본다. “난 시들고 멍한 느낌으로 영화 구경을 가고 양복점에 들른다. 독선과 주장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고 있는 덩치만 큰 백조처럼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우편배달부는 그 마지막 문장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깊은 인상을 받는다.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도저히 뭐라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을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라고 표현한 마지막 시구
[에디토리얼] 당신의 올해의 한국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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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2010년에 그는 <Baby>를 통해 사랑스런 꼬마 이미지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해야 ‘악동’, 보통은 ‘비호감’으로 불리는 중이다. 저스틴 비버는 이런 시선에 대답을 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11월에 발표한 신곡 <I’ll Show You>에서 그는 왜 자신이 철없는 행동들을 일삼았는지 털어놓고 있다. 그것도 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서.
“내 삶은 영화 같아. 모두가 지켜보지. 번개처럼 압박감이 찾아올 때 항상 옳은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아. 그건 마치 내가 완벽해지길 바라는 거야. 사람들은 내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 삶이란 쉽지가 않더라고. 난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내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줘. 하지만 넌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지.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해. 내가 보여주겠어. 내가 보여주겠어.”그래서일까. <I’ll Show You>의 뮤직비디오는 예전처럼 파티 걸들로 가득한
[마감인간의 music] 비버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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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007 스펙터> 파워블로거 뽄드군
[정훈이 만화] <007 스펙터> 파워블로거 뽄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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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말 결산을 대비해 놓친 수작을 따라잡는 이삭줍기철이 돌아왔다. VOD로 직행한 오스트레일리아 공포영화 <바바둑>은, 분만하러 가는 길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7년째 싱글맘으로 과로하며 살고 있는 아멜리아의 이야기다. 엄마를 짓누르는 피로와 우울을 감지한 아들 사무엘은, 밤마다 동화 속 괴물 바바둑의 끔찍한 노크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호러에 과연 초자연적 현상이 있긴 한 걸까? <악마의 씨>나 <케빈에 대하여>와 동시상영해도 어울릴 영화지만 <바바둑>은 충분히 독창적이다. 아멜리아 역의 에시 데이비스는 발성부터 액션까지 모든 수단을 구사해, 여성 심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서슴없이 표현한다. 미술팀이 제작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팝업(pop-up) 동화책을 들춰보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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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냉전시대 첩보영화 <스파이 브릿지>에는, 흔한 의미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둘, 그리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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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의 동화 <황금 거위>에는 ‘웃지 않는 공주’가 등장한다. 걱정이 된 왕은 공주를 웃기는 사람에게 공주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수많은 구애자들의 실패 끝에, 욕심을 부리느라 황금 거위에 줄지어 손이 붙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야 공주의 봉인된 웃음이 터지게 된다.
웃지 않는 공주와 여왕에 관한 민담과 동화는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공주를 웃긴 것은 거지, 두꺼비, 때론 어떤 특정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어느 잔혹동화에서는 공주를 웃기려고 줄타기를 하던 광대가 발을 헛디뎌 목이 부러진다. 그제야 공주가 깔깔 웃는다.
짐작건대 ‘웃지 않는 공주’ 이야기는 웃음을 추방한 근엄한 중세 권력에 대한 민중의 풍자에서 비롯됐을 거다. “예수는 웃지 않았다”는 통설에 기반해 웃음을 금지한 중세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과 해학.
하지만 이 우화는 실제 역사에도 등장한다. 공주 대신 왕후다. 중국 주나라 유왕은 포나라를 정벌하고, 아름다운 ‘포사’를 얻게 된다. 포사에 빠진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공주를 웃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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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포크록 가수 시토 디아스 로드리게스는 1970년대 초 두장의 음반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음반들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로드리게스 본인도 가수로서의 입신에는 실패한다.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국에서 묻힌 그의 노래는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그 사실을 20여년 후에야 알게 된 그는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 드라마틱한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가 바로 2012년 개봉해 우리나라에서도 나름의 반향을 일으킨 말릭 벤젤룰 감독의 <서칭 포 슈가맨>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니 로드리게스가 유명해진 남아공에도 그들만의 슈가맨은 존재한다. 그리고 JTBC가 새로 만들어낸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은 그 영화의 모티브를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지만 현재는 잊힌 노래와 가수를 찾아내 재조명한다. 이지의 <응급실>,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 리치의 <사랑해
[김호상의 TVIEW] 우리나라의 슈가맨, 슈가송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