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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환상적인 일탈’을 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토마스 만에 따르면 역시 그곳은 베네치아다.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밝힌 사실이다. 토마스 만이 그 일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에로티시즘의 위반이 상상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테다. 베네치아는 ‘금지’라는 문명의 명령에 반항하도록 유혹하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를 ‘믿을 수 없는 미녀의 유혹’에 비유했다. 일탈은 그 유혹에 몸을 맡기는 행위일 테다. 일탈, 곧 죄를 짓는 불안이니, 어쩌면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금지를 위반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폴 슈레이더의 광기의 도시
폴 슈레이더는 아직도 감독이기보다는 발군의 시나리오작가로, 또 비범한 영화비평가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슈레이더는 마틴 스코시즈의 대표작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등의 시나리오작가이자,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죽음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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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영화제 데일리 마지막 9호를 작업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풍성하고 즐거운 만남이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씨네21> 또한 영화제와 함께 스무살을 맞은 해라 그 기분이 더 특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데일리 사무실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데일리 후반부를 책임진 신두영 편집기자에게 서울로부터 “차 좀 빼달라”는 한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빨리 KTX 타고 가서 차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손홍주 사진부장의 걱정까지, 그렇게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함께 영화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주차 문제여서 굳이 ‘서울행’을 할 필요는 없었음도 밝혀둔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특집을 보면 알겠지만, 올해 부산은 그야말로 화려한 게스트들의 성찬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특집호 커버를 장식한 탕웨이를 비롯해 하비 카이틀, 나스타샤 킨스키, 소피 마르소, 나가사와 마사미 같은 배우들은 물론 허우샤오시엔, 지아장
[에디토리얼] 부산에서 띄우는 첫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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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너 요새 뭐하니?”였단다. 청춘이란 곧 청년실업(혹은 3포)이란 공식이 생리가 되어버린 작금이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영화인들에게 저 생리란 경기를 타지 않는 생의 사실이다. 공상하고 궁상 떨고 꿈꾸는 게(때로는 악몽이지만) 직업인 영화인들은 몇번의 명절을 지나도 철들지 않는 철부지 어린이나 같기 때문이다. 철부지가 직업병이라. 그걸 다시 되새기고 싶었을까. 추석날 나만의 성장영화들을 다시 꺼내보며, 차례상 배추전을 팝콘 대용으로 처먹었던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가?
가출하고, 장례 지내고, 귀가하기
먼저 성장영화는 가족영화가 아니다. 성장영화에서 가족은 언제나 분열적으로만 등장하며, 성장을 임무로 하는 어린이 주인공에 대해 으레 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탠 바이 미>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형 대신 네가 죽었어야 했어”라고 말한다.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에게도 적이란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였고, 나아가 자신을 멸
[곡사의 아수라장] 대지에서 하늘로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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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댄스가 기존의 주류 음악들을 뒤흔들고 있다. 밴드들이 신시사이저를 탑재하기 시작했고 힙합 아티스트들도 하우스 히트곡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주류로 올라간 일렉트로닉 댄스는 변화를 주도하는 동시에 변화를 ‘당하고’ 있다. 디스클로저의 2집 앨범 《Caracal》은 이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일단 이 앨범은 클럽뿐만 아니라 일반 팝 팬들을 위해서도 만들어졌다. 멤버 가이 로렌스는 앨범 발표 전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번 앨범에는 클럽 음악이라고 할 만한 곡은 없습니다. 물론 클럽 음악에 영향받은 곡들이죠. 댄스 비트를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부 <Latch>나 <White Noise>처럼 완전한 팝 구조를 가진 곡들입니다.” 주류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대중적 팝의 요소를 강조했다는 뜻이다.
참여한 보컬들도 글로벌급 슈퍼스타들이다. <Noctural>에는 위켄드가, <Magnets>에는 로드가, <Hol
[마감인간의 music] 일렉트로닉 댄스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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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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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남도에서 상경하여 박봉으로 소문난 업계에서도 평균을 밑도는 월급을 받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서울 시내 다가구 주택 소유주가 된 동료가 있었다. 서울 생활 20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절대 지갑을 열지 않아 ‘이 첨지’(첨지라고 하면 왠지 얄밉게 들려서 이 첨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출판사 디자이너 이씨는 열살 어린 부하 직원이 커피를 사러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컵을 들고 따라가 절반을 갈취했고, 평일엔 구내식당에서, 주말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부족한 단백질은 법인카드를 쓰는 야근 저녁이나 회식에서 3인분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보충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했다. 월급이란 어차피 노는 이에게나 일하는 이에게나 공평한 것, 그러니 회사 일은 대충 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겼고, 그렇게 남는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법인카드로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러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놀러 나가기 전에 옷 갈아입으러 돌아온 사장에게 들키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성실한 나라의 리처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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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870년 콜로라도로 배경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슬로우 웨스트>의 서부는 시공을 초월한 이민자들의 혹성처럼 보인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랑과 희망을 찾아 콜로라도까지 온 열여섯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는 아일랜드 혈통의 현상금 사냥꾼,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아프리카인, 북구에서 온 굶주린 가족, 독일계 지식인과 차례로 조우한다. 이들 대부분은 생존 이외 삶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다. 한편 이 영화의 실제 로케이션은 뉴질랜드-중간계다. 낯선 별에 떨어진 순진한 영혼은 실망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한다. 광각으로 집채만 하게 찍힌 버섯에 다가가는 소년을 올려다보는 숏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 같다. 이 희한한 서부극이 자연스레 환상성을 끌어들이는 순간 중 하나다.
09/09
<사도>는 스스로 택한 역사적 소재의 어떤 부분이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상세히 살펴 착실하게 극화했다. 흔히 사극의 필수 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자상혐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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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애도의 물결로 넘치게 했던 시리아 난민 소년의 사진. 한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연일 사진을 올리며 에이란을 추모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부끄러움이 치받쳤다. 쉽사리 그 애도 행렬에 동참할 수 없었다.
과연 시리아 난민 소년이 한국에서 그런 비극을 맞이했어도 우리는 그렇게 슬픔에 전염됐을까? 세계에서 난민에 가장 박하기로 유명한 여기 한국, 시리아 난민 신청자 수백명 중 단 3명만 허용한 바늘귀 나라에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자스민에게 필리핀으로 돌아가라 윽박지르고, 이주 어린이를 위한 법안에 태연하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여기, 지독한, 인종차별국에서 시리아 난민 소년에게 보내는 연민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걸까.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싶지만, 어쩌면 우리는 연말 구세군 냄비에 던져넣는 동전으로 가난한 타인에 대한 1년치 무관심을 면책받는 것처럼, 시리아 소년 사진에 대한 연민으로 잔인한 현실에 대한 무관심의 알리바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를 위한 거울을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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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적인 아픔은 있지만 미모의 커리어우먼인 하리(고준희). 100번이 넘는 낙방을 경험한 취업준비생 혜진(황정음)은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룸메이트다. 혜진은 초등학생 때 첫사랑인 성준(박서준)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설렘을 안고 만나러 가는데, 훈남으로 변한 성준을 차마 만나지 못하고 하리를 대역으로 내보내게 된다.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빠른 전개를 앞세운 1화를 보면 이미 성준과 하리, 혜진의 삼각관계 구도가 충분히 예상된다.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문법에도 충실하다. 필요할 때 터져주는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와 혜진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슬로모션으로 잡아주는 화면. 만화적 상상력과 우연성, 과장스런 대사의 세트도 건재하다. 단지 이 뻔한 드라마가 시청자를 매주 화면에 잡아두는 이유는 뻔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의외성을 끼워넣는 선 굵은 섬세함이 적중한 데 있다. 혜진으로 가장해서 성준을 대신 만나
[김호상의 TVIEW]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탄탄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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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우리를 신으로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 영화 <파이트 클럽>(1999)의 원작자로 유명한 척 팔라닉의 처녀작 <인비저블 몬스터>(최필원 역, 책세상 펴냄)에서 한 캐릭터가 묻는다. 그에 따르면, ‘별별 인간들’이 다 나오는 TV 속엔 채널마다 ‘다른 인생’이 있고, 매 시간 바뀌는 인생들이 ‘생중계’되며, 우리는 그들 모르게 세상을 훤히 ‘들여다본다’. “신은 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지켜보고 있다가 지루해지면 채널을 바꾸는 것뿐이야.” 그러니 TV 앞에 앉은 우리도 신과 다를 바 없다는 거다.
백남준의 설치미술 <TV 부처>(1974)가 언뜻 떠오르면서도, 지금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듯한 얘기 같다. 전지전능한 신은 그 전능함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상이 지옥이 되어가는 꼴을 내버려두며 곤궁에 처한 인간들을 절대로 구하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TV 뉴스 속 온갖 병폐와 부조리와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神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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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가 어디 하루이틀이겠냐만 이번 주는 더더욱 그렇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라고 쓰고 싶지만 낮은 아직도 한여름인 추석 때 고향을 다녀와 그렇고, 영화의 전당 비프힐 1층에 자리를 마련한 <씨네21이 기록한 BIFF 20년의 기억> 사진전을 채운 사진들을 보면서도 그렇다. 물론 이번 주 특집도 그렇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요즘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라는 <무서운 집>의 양병간 감독, 구윤희 배우를 인터뷰하고 ‘변화하는 1인 미디어’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편으로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일부 기능이 종료된다 하여 서둘러 백업을 받고 있는 상반된 기분이라니. 하이텔을 쓰다가 프리챌의 굴비를 보면서 신세계라 감탄하고, 또 아이러브스쿨을 시작하면서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을’이라며 피천득스러운 울분을 쏟아냈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하루 만에 백업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마우스질을 그만두었다. 이
[에디토리얼] 흑역사 조정하여 추억피크제 도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