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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최근 몇년간 그를 주목해왔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1)랩을 잘한다. 한국말 랩의 플로를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자신의 아트 크루(IAB)가 있다. 청각과 시각을 늘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3)래퍼로서 그간 당연시되던 ‘타협’을 하지 않고도 큰 성공을 이루어낸 ‘아이콘’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의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태도’다. 먼저 <Always Awake>에서 그는 꿈을 위해 항상 깨어있는 세상의 모든 젊은이에게 악수를 건넨다. “우리는 늘 젊고, 꿈꾸고, 깨어 있어야 해!” 한편 그의 다른 노래 <Dali, Van, Picasso>는 자신의 예술가적 영감과 열정을 세 위대한 화가(살바도르 달리, 반 고흐, 피카소)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빈지노는 “절대 훔칠 수 없는 내 아이덴티티/ 예술가들은 이게 뭔지 알겠지”, “아마도 내가 그렇듯 예술에 미친 애들은/ 느끼고 있겠지 칼에 찔린 듯이” 같은
[마감인간의 music] 젊고, 꿈꾸고, 깨어 - 빈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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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무언가 확인할 게 있다는 듯 그는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다. 거미줄을 걷고 날파리떼를 쫓으며 따라 들어간 그곳에 작은 터가 있었다. “아직 멀쩡하네!” 남자는 웃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회한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쳤다.
움막이었다. 아름드리나무에 줄을 묶고 대나무와 비닐을 엮어 만든 초라한 움막. 몸을 뉘일 만한 너비조차 안 되는 곳이었다. 저기서 누가 지냈냐고 묻자 그는 다시 웃었다.
“우리들의 뒷간이었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 산 319번지 덤불숲에 해고노동자 이인용과 동료들의 뒷간이 있었다. 앞산은 거대한 석회석 광산이었다. 동양시멘트 소유 49광구. 2015년 2월21일, 이곳에서 암석 파쇄 장비를 보수하던 예순한살의 노동자가 쇳덩이에 맞아 숨졌다. 유령 도급업체 소속,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 ‘진짜 사장’은 동양시멘트 사장이었고, 불법을 저지른 자도, 죽음을 쉬쉬하던 자도 그 사장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직접 고용 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숲, 아스팔트, 49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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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가 “정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말하며 뜻을 꺾자, 아들은 법과대학에 못 가겠다고 한 것이 막연한 반항임을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아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소박한 부모님은 공부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이는 자식이 거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지 대단한 출세를 소망하지 않았다. 몇년 후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바로 변호사로 나서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많은 친구들이 겪었던 가족의 반대나 실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입학한 30년 전 법과대학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았다.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온 학생, 미달이었던 그해에 배짱 지원으로 합격한 학생, 대단한 노력 없이도 여러 시험을 유유히 통과한 기이한 수재, 인문대나 예술대에 갔어야 할 낭만파, 철학에 심취한 괴짜가 고루 있었다. 정치상황이 심각했던 만큼 사회파 학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는 대학 졸업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목표를
[조광희의 디스토피아] 3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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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어떤 것 중 굳이 우선순위를 가리거나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 자체를 힘겨워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내 인생의 영화’를 소개해달라니 정말이지 어려운 미션이 아닐 수 없다.
동네에서 ‘비디오 가게 아들’로 불리며 반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신작 비디오를 가장 먼저 보던 초등(국민)학교 시절부터 어쩌다 보니 (아마도 최후의 물리 매체로 예상되는) 블루레이를 직접 만드는 ‘비디오 제작 업자’로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당시를 살아온 시대의 풍경과 함께 박제된 듯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이른바 ‘인생 영화’를 꼽는다면 대부분의 할리우드 키드가 그렇듯 스티븐 스필버그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들로 리스트가 채워지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굳이 ‘인생’을 거론하면서까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영화로 더 집요하게 범위를 좁혀보자면 역시 <멜랑콜리아>(감독 라스 폰 트리에, 2011)라는 작품이
[내 인생의 영화] 백준오의 <멜랑콜리아> 블루레이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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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 <칠전팔기 구해라>라는 드라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슈퍼스타 K> 김용범 PD의 기획.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시선을 끌었던 건 기획의도였다. <슈퍼스타 K>가 되지 못한 사람들, 즉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드라마에서 다시 흐른다. 아예 새로운 기획이 아님에도 조금만 뒤집고 설정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tvN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흥미로운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타이틀 이후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들이다. 사랑하는 연기를 하고 나면 사랑이 싹트는가,의 실제 예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이 점에 주목한다. 어긋난 사랑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를 배치하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감정선의 변화를 추적한다. “연인 역할을 하고 나면 실제 연애 감정이
[김호상의 TVIEW]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사랑하는 연기 후엔 사랑에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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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인천상륙작전> 인천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정훈이 만화] <인천상륙작전> 인천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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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책상물림이라고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 과소평가였지.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 또한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 하셨으니, 이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자 일군의 교수들이 분연히 일어섰다. 미학과 교수들이 인문대 구역 환경 미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이 미학이 그 미학이 맞는지는 논외로 치도록 하자).
문제는 이거였다, 나 하고 싶은 거 하자고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기로 교수 뺨치는 직업은 사장밖에 없다는 것. 교수들의 노예주 근성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청소부 청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몸소 잡역부 사무실까지 행차한 다음 보석과 정신과 진료까지 주선하는 <굿 윌 헌팅>의 착한 교수도 명함 한장 주머니에 챙기기가 귀찮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조교한테 넘기더라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초대형 명함 지갑인 줄 착각했어.
어쨌든 노예를 부려먹으려면 일단 노예가 있어야 한다. 미학과 교수들은 묘목을 옮기고 땅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교수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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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잘 즐기고 돌아왔다. <씨네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데일리를 통해 만난 감독들 중 나카시마 데쓰야와 고이즈미 노리히로 감독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예전 에디토리얼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바로 두 감독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몇해 전 한 해외 비평가가 ‘한국 감독들은 왜 그렇게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집착하는지’ 물어본 적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심지어 1위 <명량>과 2위 <국제시장>으로 시작하여 9위 <베테랑>과 10위 <괴물>에 이르기까지,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원작이 있는 영화가 단 한편도 없다(물론 <명량>의 원작은 이순신의 <난중일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아마도 현재 세계영화계 전체를 놓고 봐도 이례적인 일일 것이다. 당장 상반기 한국영화만 봐도 그렇다. 이번 호에서 듀나,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부러운 일본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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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을 주제로 한 영화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고스트 버스터즈>(Ghostbusters, 1984) 리부트가 미국에서 개봉했다. 빌 머레이를 비롯한 초기 ‘버스터즈’들은 나오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 추억이 깃든 1980년대 소년, 소녀들에겐 아쉽겠지만 유령 사냥꾼들은 ‘걸 크러시’(girl crush)라는 시대 조류에 따른 건지 전부 여성으로 교체되었다. 이제 막 쏟아지기 시작한 외국 리뷰 웹사이트를 보니 평론가와 관객 사이에 호불호가 제법 갈린다. 원래 몸 쓰는 전투 요원들이 아닌 ‘과학자(맞다, 이과 출신들이다) 여성’들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은 내용을 떠나 퍽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흥겨운 멜로디에 누가 들어도 대번 ‘80년대식’임을 알 수 있는 레이 파커 주니어의 주제곡은 지금 들어도 명곡이다. <유령 대소동>이란 제목으로 방영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에도 고스란히 멜로디가 실렸다. 시리즈의 영원한 마스코트, ‘먹깨비’와 ‘마시멜로 맨’은 <
[마감인간의 music] 유령 대소동 - Various Artists, <고스트버스터즈>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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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밤. 심야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다. 주차장을 가긴 번거로워 대충 건물 뒤편 으슥한 곳에 차를 댔는데 근처에 패스트푸드점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 잠깐 쉬러 나온 모양이었다.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흔한 광경일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마음 한켠이 덜컹 내려앉았다. 분명 안에서 바쁘게 일하다가 잠깐 쉬러 나온 것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둥실 떠 있는 달빛 아래에서 반팔을 입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를 보고 죄책감이 느껴졌다면 너무 감상적인 걸까. 당시 나는 영화를 막 개봉시키고 실망스러운 흥행 결과에 심란해져 있었다.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어 영화를 보러 나왔는데 한쪽 세계에서는 그 시간까지 몸을 움직이며 돈을 벌고 잠깐의 휴식조차 남의 눈을 피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대중예술을 한답시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과연 그들의 일상에 대한 존중이 내게 있었던가, 하는 죄책감과 반성이었다. 순간이었지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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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실제론 조연이었다)이라는 문구로 광고한 판타지영화 <던전 드래곤>(2000) 개봉 소식에 “보러 가자, 소극장에 개봉하면”이라고 친구와 결의하던 순간을. 그리고 그날이 왔다. 요즘처럼 비가 죽죽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는 극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었고, 친구는 오지 않았다. 나는 비에 젖은 채 홀로 똥 같은 영화를 보았다. 나름 즐거운 기억이다. 이렇듯 옛날부터 판타지영화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 이하 <워크래프트>)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워크래프트>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영화다. 물론 게임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듯,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개봉도 하기 전에 로튼토마토에서(<디 워>(2007)보다 낮은) 21점을 받았다며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잘나신 평론가들의 박한 점수는 얼라이언스의 결집
[내 인생의 영화] 송승언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언젠가 <오버워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