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무언가 확인할 게 있다는 듯 그는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다. 거미줄을 걷고 날파리떼를 쫓으며 따라 들어간 그곳에 작은 터가 있었다. “아직 멀쩡하네!” 남자는 웃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회한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쳤다.
움막이었다. 아름드리나무에 줄을 묶고 대나무와 비닐을 엮어 만든 초라한 움막. 몸을 뉘일 만한 너비조차 안 되는 곳이었다. 저기서 누가 지냈냐고 묻자 그는 다시 웃었다.
“우리들의 뒷간이었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 산 319번지 덤불숲에 해고노동자 이인용과 동료들의 뒷간이 있었다. 앞산은 거대한 석회석 광산이었다. 동양시멘트 소유 49광구. 2015년 2월21일, 이곳에서 암석 파쇄 장비를 보수하던 예순한살의 노동자가 쇳덩이에 맞아 숨졌다. 유령 도급업체 소속,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 ‘진짜 사장’은 동양시멘트 사장이었고, 불법을 저지른 자도, 죽음을 쉬쉬하던 자도 그 사장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직접 고용 노동자들의 반 토막도 안 되는 임금을 받았다. 악질적인 신분 차별이 일상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이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개선을 요구한 건 마땅했다.
오죽하면 고용노동부마저 위장도급 판정을 내리고 시정을 지시했을까. 반가운 판정이었건만 노동자들에게 날아온 건 대량 해고 통보였다. 2월28일, 101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다. 광구 앞 노숙 농성이 시작됐다.
몸서리나게 추운 두메산골의 2월, 초라한 뒷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을 누다가 문득 사무쳤을 이인용의 울분을 잠시 생각해본다. “어둔 밤 라이터를 켜고 일을 보다가 마른 낙엽에 불이 붙으면 어찌할까 걱정했던” 기억,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졌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웃었다. 석달을 광구 앞에서 싸우고 내려왔다. 누군가 구속되었고, 누군가는 투쟁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물세명이 남았다. 광화문 미대사관 옆에 동양시멘트 본사가 있다. 그 앞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가 지금 그들의 49광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