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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2016)을 본 뒤로 주인공 혜선(심은경)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정확히는 혜선의 옷이었다. 허벅지가 훤히 다 보이는 짧은 기장에 가슴과 둔부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재의 원피스. 게다가 통굽의 힐까지. 잠에서 깬 혜선이 남자친구인 기웅(이준)을 찾아 여관방을 나서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나왔을 옷이다. 예기치 않은 좀비의 습격을 피해 달리던 혜선은 신발 두짝을 잃는다. 사태가 악화될수록 혜선의 착장이 수상해 보였다. 경찰서 지구대로 피신한 혜선이 “저희 노숙자 아니에요”라고 말하자 경찰은 혜선의 맨발로 시선을 한번 보낸 뒤 “괴물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다”며 윽박지른다. 생존을 위해 혜선이 땅바닥에 눕거나 굴러야 할 때마다 슬쩍슬쩍 보이던 하얀 속옷. 혹은 속옷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원피스의 무용함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 모를 좀비떼의 출현 앞에서 필사의 탈주를 해야 하는 혜선은 어쩌자고 저 쓰잘머리 없는 원피스를 입은 걸까.
[정지혜의 숨은그림찾기] <서울역>을 보며 테리 이글턴을 떠올리고, 현실과 <부산행>의 엔딩을 이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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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공간의 형태가 이미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때가 있다. 아리엘 클레이만의 영화 <소년 파르티잔>(2015)이 그런 경우이다. <소년 파르티잔>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도시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중정으로 이루어진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분쟁 중인 혹은 분쟁 후의 지역으로 보이는 도시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이는 모더니즘 양식의 집합주거가 흩어져 있고, 쇠락한 도시의 황량함과 비교되는 밝은 기운의 중정 모습이 외부 세계와 대비되어 나타난다(촬영지는 조지아의 트빌리시다). 외부 세계와 분리된 공간이라는 아이디어는 건축에서 자주 반복되는 개념이다. 아마도 자연이라는, 위험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었을 이 공간 형식은 외부 세계가 도시로 바뀌면서, 오염된 세상 안의 ‘오아시스’라는 의미로 변화된다. <소년 파르티잔>과 같이 숨겨진 중정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 특성으로 인해 안과 밖의 연결 고리
[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도시 속 공간을 서사의 도구로 사용하는 좋은 예 <소년 파르티잔> <김씨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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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흉터를 가면으로 가리고 살아온 4황자 왕소(이준기). 기우제에 나타난 4황자에게 흙을 던지고 흉물 취급을 했던 고려 백성들은 그가 화장으로 흉터를 감춘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 “용의 아들이시여!” 하고 납죽 엎드린다. ‘아름다운 외모를 제일로 여기는 고려’라더니 과연! 정신없이 웃는 와중에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현대에서 고려로 영혼이 옮겨간 해수(아이유)가 급히 만들어 발라줬던 수제 컨실러가 워터프루프인지 아닌지 따위가 걱정스러워졌다. 기대를 접고 나면 산만하게 즐기게 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SBS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가 그렇다. 좀 허술해도 아름다운 얼굴을 느긋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으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담는 카메라가 캐릭터의 인간다운 반응을 억누를 때 맞닥뜨리는 불쾌감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4황자가 해수의 손목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이고 상처 입은 짐승 같은 표정으로 바라볼 때, 해수는 신체를 구속당
[유선주의 TVIEW]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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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아수라> 악인들, 지옥에서 만나라
[정훈이 만화] <아수라> 악인들, 지옥에서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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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학생회가 남긴 빚더미에 시달리던 황폐한 대학 시절, 어떻게든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남은 1년간 무위도식하며 새로운 빚더미에 앉을 수 있을 테니까.
첫 번째 시도는 대규모 야외 행사가 많은 연말을 노려 따끈하게 데운 정종과 어묵을 파는 거였다. 산 중턱에 자리한 우리 학교는 11월만 돼도 한겨울 혹한을 자랑하는 중부 산간지역, 일기예보를 볼 때면 강원도 기온을 찾아보는 편이 나은 서울 시내의 툰드라 지대라고 할까, 캠퍼스에서 하산하면 일단 하의 한벌을 벗으면서(스타킹 위에 레깅스, 레깅스 위에 바지를 입고 다녔다) 가본 적도 없는 겨울 산행의(여름 산행이라고 가본 적 있을까마는) 기분을 만끽하는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었다. 정종 포차를 열면 추위에 얼어붙어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가던 수백명의 학생들이 좀비떼처럼 몰려들겠지, 정종행. 지나치게 많이 벌어 돈방석에 올라앉으면 어떡하나, 다른 단과대를 상대로 돈놀이라도 해야 하나.
마침내 결전의 날, 바람은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마술사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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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방과 연필, 그리고 일본쌀만 있으면 돼요.” 어느덧 팔순이 된 에미 와다 의상감독(1937년생)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다. 일본영화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감독이 아닌 사람으로는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래 영화 스탭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그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1991)와 <8 1/2 우먼>(1999)을 비롯해 홍콩으로 건너가 <백발마녀전>(1993), <영웅>(2002) 등을 작업하며 세계적인 의상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조동오의 <중천>(2006) 의상감독을 맡으며 방한했을 때 인터뷰를 진행한 적 있다. 맵고 기름진 음식을 먹지 못해 중국과 한국에서 작업할 때 힘들었다며, 일본쌀로 지은 밥과 한국 김으로만 식사를 해결했다고 했다. 아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한국영화 기술 스탭들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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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존재하는 CD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MP3 음원으로 음악 세상의 주인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음악 생활도 변했다. MP3 플레이어에 음원을 넣고 수많은 음악을 동시에 듣는 경험은 신세계였으나 열성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면 질리기도 쉬워졌다.
하나 다행스러운 역설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천 덕에 평생 모르고 살았을 밴드를 알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더 페인즈 오브 빙 퓨어 앳 하트라는 긴 이름의 밴드가 그렇다. 200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결성한 이 젊은 인디 팝 밴드는 속삭이듯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소음처럼 배경에 깔린 연주가 특징이다. 여전히 마니아를 다수 보유한 슈게이징 장르의 알파이자 오메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보컬과 기타를 맡은 킵 버먼과 현재는 탈퇴한 페기 왕, 알렉스 내디어스를 주축으로 결성했다. 2009년 첫 스튜디오 음반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는 인디 음악 애호가와 비평가들에게
[마감인간의 music] 21세기 슈게이징의 지금 - 더 페인즈 오브 빙 퓨어 앳 하트, 《Days of Aba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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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둥이 잘린 고목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오래된 벽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땅에 떨어진 꽃 한 송이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영화에서는 더이상 기억과 작은 감정의 이야기들이 없다. 영화 속 역사와 뜨거운 감정은 여전히 넘쳐나면서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는 점점 드물어져 간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마치 그처럼 영화도 소비한다. 재미, 장르를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모순과 분노도 소비한다. 요즘의 상당한 영화들은 적의를 이용한다. 사람들은 영화에 드러나는 사회적인 모순에 쾌감을 느끼지만 그 모순은 스스로의 내부를 향하지 않고 적의 안에 머문다. 영화는 또 그처럼 곧잘 역사를 이용하지만 열등감을 벗어버리려는 보상 심리를 넘어서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기억은 하잘것없이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싼 세계가 그렇고 많은 영화가 그렇다.
은유는 사소함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사소함에 대한 시선을 잃어버린 영화들은 온통 직설화법으로 넘쳐난
[내 인생의 영화] 김종관의 <부운> 사라질 샤미센 소리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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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는 꼭 죽어야 쓰것는디.”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의 주인공이 털어놓는 여망은, 관심을 호소하는 외로운 노인의 제스처가 아니라 진담이다. 열여덟살에 결혼해 가족을 보살피는 보람만 알고 살아온 여인은, 자식을 여의고도 살날이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역으로 느낀다. 매일 그녀의 손길을 요하는 살아 숨쉬는 존재는 이제 마당의 식물뿐이다. 돌연 아들을 앞세운 해, 심은 적도 없는데 돋기 시작한 화초들을 보며 할머니는 놀란다. “내가 꽃 좋아하는 걸 알고 하느님이 꽃나무를 뿌려주셨나보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마움과 더불어, 지친 당신을 구태여 지상에 붙드는 신의 의지에 대한 탄식이 서려 있다. 장성한 손주와 노쇠한 자식들의 걸음도 뜸해진 집. 박삼순씨는 안방 미닫이에 풀밭과 나비 그림 스티커를 붙여 마당을 집 안에 들인다. 잠든 할머니는, 나비를 꿈꾼다.
09/10
10년 떨어진 시대적 배경을 택한 일제강점기 드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그날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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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처음 하는 거라고, 영화를 하던 사람이라고 하니 건네는 말들이 있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영화연출 경험이 무대연출에 도움이 되리란 보장이 없기에, 나도 걱정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겁 없이 용기냈던 이유가 있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 또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영화를 보는 관객과 연극을 보는 관객이 다른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들을 상상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연극을 대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그런 믿음이 연극연출에 대한 도전을 부추겼다.
주변인들의 예언은 적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극이라서가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점과 시야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들이었다. 그런 일들은 늘 있기에 이 지면에서 사사로운 언급은 피하겠다. 어쨌든 생각보다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첫 공연을 올렸다.
재밌는 건 그때부터였다. 배우들과 관객이 한 공간에 있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작품이 만들어지는구나,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객석과의 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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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오 솔레 미오>와 더불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가곡이다. 두곡 모두 남부 이탈리아의 노래다. 태양을 찬양하는 <오 솔레 미오>는 나폴리의 노래이고,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나폴리 바로 아래 있는 조그만 도시 소렌토의 노래다. <오 솔레 미오>는 밝고 힘찬 사랑의 찬가다. 반면에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떠나가는 연인에게 호소하는 구슬픈 연가다. 노래의 첫 소절인 ‘바다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에서부터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고향의 ‘바다’라는 단어에서 금방 애절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산업화 과정에서 낙후된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은 일을 찾아, 이탈리아의 북쪽으로, 또 외국으로 대거 떠났다. 떠난 연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동원하는 단어가 고향의 바다, 공기, 오렌지 나무 같은 소렌토의 자연이다. 그만큼 소렌토의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뺏을 만큼 매력적이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를 여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