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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으니까.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식당에서 어린이 일행이 오르르 몰려 다녔다. 동행한 어른들이 키오스크와 씨름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구누구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란히 앉은 어린이 셋은 말없이 넓은 창 너머 푸르른 정원을 구경했다. 그 눈에 무엇이 담기고 마음에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전시보다 이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물관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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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홀리데이> 신간을 보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홀리데이> 매거진은 지역과 여행을 다룬 잡지로 세계에서 유명한 잡지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이 잡지도 사연이 있다. 1946년에 창간한 <홀리데이> 매거진과 현재의 <홀리데이> 매거진은 큰 차이가 있다. 1946년과 1977년 사이 뉴욕에서 만들어지던 <홀리데이>는 작가와 사진가에게 원고 길이도, 여행 경비도 제약 없이 전세계 곳곳의 지역과 여행의 본질을 탐구하기를 원했다. 헤밍웨이, 잭 케루악 같은 작가들은 <홀리데이>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판형도, 분량도 적어지던 <홀리데이>는 갑자기 폐간을 알린다. 모든 것은 끝난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홀리데이>는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의 <홀리데이>와 지금의 <홀리데이>는 큰 차이가 있다. 37년 만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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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동네 미용실과 카페도 자주 눈에 띈다. 나도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휴가의 테마는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좋아’ 혹은 ‘반자본주의적으로 살아보기’이다. 사실 이 말의 본뜻은 ‘느리고 게으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돈이 아닌 시간으로 사치를 부려보기로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무해한 플렉스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일. 정해진 일과가 아니라 무계획과 비효율 속에서 즐거움 찾기.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가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며칠은 서울에서 정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기분을 내며 돌아다녔다. 적당히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머물러보는 것이다. 낯선 시간에 낯선 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화요일 아침 7시30분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대한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주현 편집장] 나의 여름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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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만큼 디스토피아적인 소재가 있을까. 그런데 대다수의 재난영화는 사실 그다지 디스토피아적이지는 않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종일관 디스토피아적인 상태의 불편함과 암울함을 견뎌줄 관객이 많지는 않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이들 영화가 다루는 재난은 주로 재난 자체의 기승전결 서사(敍事)를 갖는다. 임박한 파국을 예측해서 경고하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는 기존 시스템의 관성이 있다. 극의 초반기에는 답답하게도 후자의 힘이 압도적이지만, 결국 당도한 재난 앞에 전자의 예지와 역량이 빛을 발하고, 이들의 분투 덕에 재난은 ‘극적으로’ 그래서 ‘대충’ 극복되곤 한다.
이와는 다른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서사는 주로 ‘재난 이후’를 소재로 삼는다. 인간이 멍청해서든 무력해서든 회복할 수 없는 재난의 결과로 펼쳐진 지옥도 위에서, 또 인간은 분투한다. 마치 재난이 소재인 듯하나 실제로는 정치가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이 새로운 ‘자연상태’에 대한 해석은 영화마다 조금씩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서사(敍事, 序詞, 署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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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디서 작업하세요?’
누구를 만나든 날씨 이야기와 함께 꼭 나누는 질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일하는가. 예전에는 나만 모르는 작가들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아 미어캣처럼 둘러봤다면 지금은 안다. 그게 그거인 것을. 다만 내 몸이 원하는 장소와 방법이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잊었던 선택지를 발견하기 위해 질문을 꺼내놓고는 한다. 한 가지의 공간과 방식, 도구에 탑승해 글을 쓰다가 그것들의 힘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것들로 옮겨 탑승해 달리는 거다. 그래서 나는 지난 <씨네21>의 ‘LIST’ 코너에서 언급했듯이 <민음사TV>의 ‘문박싱’,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의 홈쇼핑st편을 좋아한다(홈쇼핑st 말고도 언니들의 이야기는 다 좋아한다!!). 물론 <씨네21>의 ‘LIST’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갖는 일할 때 곁에 두는 도구에 대한 애정을 듣다 보면 강력한 희망과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구글 시계가 내 책상 위에 있
[김세인의 데구루루] 긴장과 이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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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의 마음이란 뭘까. 살면서 연예인을 좋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순수한 마음이 적극적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혼자만의 애정을 조용히 간직하는 것에 만족하는 고독하고 내성적인 팬이었달까. 성향도 성향이지만 나 때는… 그러니까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엔, 기껏해야 TV와 라디오와 잡지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살면서 최초로 좋아한 연예인은 이승환이다. 라디오에서 그의 재담과 노래를 듣고 반해 그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챙겨들었다. 인터뷰와 사진이 실린 잡지를 사서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그러곤 밤마다 일기장에 다양한 종류의 고백과 다짐을 써내려갔다. “승환 오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도 음악을 할 거예요. 제가 작곡한 곡을 꼭 불러주세요.” 1990년대 초등학생 팬의 마음은 그런 거였다. 유치하고 귀엽고 순수한 마음. 그러면서도 한없이 진지한 마음. 그것이 결국 팬의 마음이겠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적극적
[이주현 편집장] 팬덤 플랫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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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를 꼬옥 안아주세요>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봤다. 영화 포스터에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한 인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노인돌봄 로봇 ‘효돌이’다. 업체 공식 웹사이트에는 효돌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여성 노인의 사진 아래로 “24시간 부모님 곁에서 정서·생활·인지 건강을 도와주는 AI 돌봄 로봇”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효돌이는 음성으로 복약 시간 알림이나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치매예방 퀴즈를 낸다. 종교말씀이나 노래, 이야기 등을 들려주기도 한다. 노인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다가 이상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기능도 있다. 유용해 보인다.
‘꼬옥 안아달라’는 감성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덤덤했다. 그래서 참 좋았고 다행이었다.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이 로봇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을 보며 마음 아파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영화는 내가 그런 감정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한 할머니 집에 사회복지사가 방문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노인을 돌보는 로봇은 왜 아이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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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왜 슬퍼요?” 한 패션지 기자가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고 적힌 포스터 앞에 서서 내게 물었다. 나는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만 너에게서 좀더 기가 막힌 대답을 듣고 싶다’라는 그의 표정을 최선을 다해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제목으로 공연을 열고 입장료를 받았으니, 그럴듯한 의미를 만드는 것 역시 내게 주어진 몫이었다.
“흔히 K팝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미성년자 아티스트에 대한 착취와 초과노동, 커다란 팬덤을 확보한 남자 아이돌 멤버의 부도덕한 사생활, 경쟁적으로 벌이는 소모적인 팬 활동, 그로 인해 그들에게 가해지는 경멸적인 시선….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K팝에만 심장이 뛰는 나 자신까지. 노래를 노래로만 즐길 수 없는 복합적 슬픔이랄까요?”
말을 하는 내내 스스로가 사기꾼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기대 너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려주려 했는데, 내 입은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쉬지 않고 대의를 만들었다. K팝이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너만이 날 울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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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 극장가는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앞다퉈 경쟁하는 여름 대목이다. 올해도 저마다 압도적 재미를 자신하는 영화들이 개봉일을 확정 짓고 출격 준비를 마쳤다. 시리즈 통틀어 역대급 재미를 선사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7월12일 개봉했고, 7월19일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가 하이힐을 벗은 바비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7월26일엔 밀수판에 뛰어든 해녀들의 이야기인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개봉하고, 8월2일엔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이 우주로 스케일을 넓힌 <더 문>과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만든 실종 외교관 구출 작전 <비공식작전>이 나란히 개봉한다. 8월9일엔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주연의 디스토피아 재난물 <콘크리트 유토피아>, 8월15일엔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펜하이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주현 편집장] 작지만 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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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정당과 의회를 통해 점진적으로 구현하는 정치 노선이다. 7월은 여러 사민주의자들이 마지막 숨결을 남긴 달이다. 1914년 7월31일 장 조레스. 1947년 7월19일 여운형. 1959년 7월31일 조봉암. 그리고 2018년 7월23일,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어온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2007년 7월부터 두달간 나는 그의 캠프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이었다. 당원들에게 행사에 초청하는 전화를 걸고, 그의 연설이나 토론에 어울릴 카피를 짜고, 그에게 쏟아진 음해에 반박하는 논리를 구성하는 일을 했다. 화장실이나 흡연 공간을 다녀오던 나는 때때로 복도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는 수줍은 소년처럼 배시시 웃으며 눈길을 내렸다. 그는 쉰둘,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진면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경선 후반부에 그와 대화할 기회가 부쩍 늘어났었다. 그는 ‘떠나간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늘 “우리가, 내가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7월의 사민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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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다시 왔을 때 모든 것이 좋았다. 트렌드의 첨단을 달린다고 자부하며 길쭉샐쭉 올라간 건물을 조금만 지나면 다큐에서나 나올 법한 고궁과 한옥이 나온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환상의 도시.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금세 어디론가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도다. 그리고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관계도, 일도, 사랑도. 심지어 삶까지도.
잠깐 영화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우리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정한 얼굴을 한 채로, 사실 울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로의 여행뿐이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와 해준처럼. 서래와 해준은 고궁에서 가장 밝게 웃고, 포옹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코트 안을 뒤진다. 현실에서 비소와 냉소로 모든 것을 일관하는 현대인은 시대착오적인 공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모든 가면을 벗고 자신을 서로에게 맡긴다. 그렇게 상대가 얼음송곳으로 자신을 찌를 것이라 두려워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상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뉴요커의 서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