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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함. 기이하고 괴상망측하다는 뜻이다. 조금 더 길게 풀자면, 평상의 것들과는 너무도 달라 예측하거나 헤아리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통시장을 찾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는 일이야 그저 식상할 뿐 기괴할 것까지는 없었다. 총선 전이고, 게다가 설 연휴를 앞둔 차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가 한손에는 날것의 털 뽑힌 목 잘린 닭의 아랫부분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시장상품권 뭉치를 펼쳐 든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머리는 이물질이 낀 톱니바퀴마냥 덜컥거렸다.
‘저게 대체 무슨 장면인 걸까?’
본래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장면을 보면 잠시간 멈칫할 수는 있다. 그래서 그 사진이 실린 기사를 읽어보았다. 보통은 제목이라도 보거나 맥락을 담은 문자 정보와 결합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도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양계농가들의 시위 장면도 아니고, 지역화폐 활성화를 부르짖는 시장 상인도 아닌데, 게다가 그 두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생닭,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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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과장을 보태) 잡지 제작 에너지의 삼 할은 실수를 바로 잡는 작업에 투입된다. 몇번을 체크해도 안 보이던 오타는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인쇄만 들어가면 잃어버렸던 동전마냥 데굴데굴 잘도 나온다. 오타로 인한 좌절감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고 간혹 이름이나 제목이라도 틀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에게 혼쭐이 났지만 마지막엔 꼭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던 게 생각난다. 그렇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 말이 당사자 입에서 나오면 곤란하다. 그건 염치의 문제다. 부끄러움이 없어지면 둔해지고, 둔해지면 습관이 된다. 주변에서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말에 더 창피하고 무겁게 느껴질 때까진 아직 괜찮은 거다. 스스로 괜찮다고 합리화하기 시작한 순간이야말로 진정 위험신호를 울려야 할 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화제다. 2월1일 개봉한 이 비밀스런 영화는 설 연휴 크고 작은 영
[송경원 편집장] <건국전쟁>, 믿음과 염치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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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인 지인과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이름은 ‘이과 여자’. 제목에 ‘문과 남자’가 들어가는 과학책도 있다는데 이과 여자 둘이 ‘이과 여자’ 이름으로 못할 것 없지 싶었다. 기획 회의 후 지인은 팟캐스트 로고로 써보면 어떻겠느냐며 핑크 베이지색으로 그려진 짧은 단발머리 여자의 얼굴 이미지를 보내왔다. 인공지능이 생성해준 이미지라고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유료 이용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의 첫 요청은 “이과 여자”를 표현하는 로고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뒷머리를 동그랗게 묶은 여자의 옆얼굴 주위로 막대그래프, 원자구조. 여성 성별 기호 등이 원형으로 배치된 이미지였다. 비교를 위해 “이과 남자”도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과 남자는 다부진 표정으로 정면을 보는 남성의 얼굴이었는데 넥타이를 매고 각진 모자를 쓰고 있어 군인 장교처럼 보였다. 배경에는 원자구조와 톱니바퀴, 시험관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여자와 남자를 한번씩 해보고 나니 “이과 사람”은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과 여자와 퀀텀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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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r Coaster> (청하, 2018)
청하의 <Roller Coaster>를 들을 때 나는 언제나 B를 떠올린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만난 B는 PC방 야간 아르바이트 동료였다. 빈자리가 도통 나질 않는 대학가 인기 PC방에서 나는 청소와 고객 응대를 맡았고, B는 간편식품을 조리하고 배달하는 것을 담당했다. 기억 속 B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일찍 졸업하고 싶어서 계절학기를 듣는다던 그는 편의점, PC방, 교습학원 보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친구들의 펑크난 아르바이트를 메꿔주는 만능 대타로도 활약했다.
그래서 B의 무단결근은 큰 사건이었다. PC방 사장은 B가 일하는 1년 동안 단 한번도 연락 없이 잠수를 탄 적이 없었다고 몇 차례나 반복해서 말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B가 걱정되는 건 사장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일전에 딱 한번 가본 적 있는 B의 집을 찾아갔다. B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인종이 없는 쇠문을 노크했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넌 Roller Co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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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이 자주 풀린다. 잘 꾸미고 다니는 편도 아니지만 늘어진 신발 끈을 치렁치렁 끌고 다니는 행색마저 못 본 척 지나가긴 쉽지 않나 보다. 끈 제대로 묶으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듣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게 꽤 재밌다. “너 신발 끈 풀렸어”라는 짧은 말에도 미세하게 색과 두께가 다른 감정이 실린다. 넘어질까 불안한지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쓰러움과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있다. 간혹 답답함 섞인 푸념이 들려올 땐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물론 세상은 내 풀린 신발 끈 따위는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바쁘게 돌아간다. 그래서일까. 잠시 쭈그려 앉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새삼 감사하다. 풀린 신발 끈이 아니었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생각, 대면하지 않았을 감정들이 그제야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명절이 되면 으레 하는 일들이 있다. 주간지 입장에선 그중 하나가 합본호 제작이다. 2주치 분량을 만드는 큰 이벤트인 만큼 적재적소 어울릴 아이템 찾는 데
[송경원 편집장] 신발 끈을 고쳐 매며 생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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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은 언제 박차고 나갈까요?” 2023년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즈음 한 방송국 PD가 물었다. “아직은 있고 싶은가 봅니다. 영부인 못 건드리는 거 보세요.” 2022년 9월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진상이 더 불거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한 발언이 반박되었지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건희’라는 금은 차마 밟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저도 살려고 그랬던 겁니다”?). 탈당을 예고할 무렵에야 야권의 김건희 특검론에 편승했는데, 그때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천사”, “군계일학” 따위의 상찬을 늘어놨다. 고발사주 사건 전날 손준성 검사에게 보낸 이미지 60여장이 뭔지 설명하지 못하는 천사, 딸이 부당하게 만든 스펙을 대입에서 쓰지 않았음을 입증 못하는 일학이라. 그는 대통령을 바로잡으려다 밀려난 게 아니다. 자신이 밀려나는 수준에 맞춰 명분을 갖다붙였을 뿐. 그들이 한창 쿵짝이 잘 맞던 시절은 어땠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윤석열), “20대 여성은 어젠다
[디스토피아로부터] 내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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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선배는 물론이고 동료 에디터 들. 심지어 항상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던 편집장까지 모두 원탁에 둘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소리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대화를 멈추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마치 녹색 기사를 처음 대면한 원탁의 기사들처럼. 선배만이 눈을 몇번 깜빡이며 어리바리하지 말고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가면서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침묵은 깨지지 않는다. 겨우겨우 선배 옆자리에 도착하고 주변을 향해 죄송하다는 의미의 묵례를 몇번 하고 나서야 정적이 깨진다.
편집장은 ‘맛과 요리’ 부서에 어울리는 풍채를 지니고 있지만 둔하거나 무거워 보인다기보다는 듬직해 보인다는 표현이 좀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먹는 것에도 진심이고, 먹는 것에 대해 쓰는 것도 진심처럼 보였다. 에디터들이 가져오는 기사 하나하나 주제를 다시 잡아주고, 표현을 고쳐주고, 내용을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요리 섹션: 기획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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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쓰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대체로 애정을 가진 어떤 것에 집중하고 애쓰는 상태를 드러낼 때 꺼내는 말인데 긍정보단 부정적인 상황에 곧잘 쓰인다. “괜찮아, 마음 쓰지 마.”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주름 사이 걱정거리를 새기고 다니는 내 꼴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술 한잔에 사연을 주워 삼키더니 서둘러 대화를 끝냈다. 굳이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한 건 ‘마음 쓰지 말라’는 친구의 당부에 담긴 배려를 알기 때문이다… 라고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서다. 마음은 사용하면 닳아 사라지는 소모품일까. 정해진 총량을 넘어가니 여유도 바닥난다. 미안하면서도 차마 마음을 나눌 기력이 없다.
사실 ‘마음을 쓴다’는 표현보다는 ‘마음이 쓰인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때론 의지 바깥에서 작동하는 것들이 우리를 있어야 할 자리로 이끌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박 긁어도 더 남은 게 없었던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샘솟는 걸 느낀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인
[송경원 편집장] 마음이 쓰여, 마음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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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는 명함만 한 종이에 내 이름을 써서 준다. 어린이에게도 종이에 이름과 좋아하는 동물을 써달라고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단연 인기이지만,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호랑이, 도마뱀, 토끼, 코알라, 장수풍뎅이, 물고기…. 그리고 유기체. 유기체? “저는 과학을 좋아하는데 동물도 과학이라서 좋고, 동물은 모두 유기체니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어린이가 한창 유기체 공부 중인 것만은 알 수 있다.
누군가 특정 용어를 유난히 자주 사용한다면 높은 확률로 그 말을 최근에 배운 거라는 농담이 있다. 나는 거기에 웃지 못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도 아닌데,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거나 지식을 얻으면 호시탐탐 그걸 티 내려 한다. 근래에는 ‘포스트휴머니즘’,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말을 신이 나서 자주 썼다. 그래도 글로는 쓰지 않는다. 글로 쓰면 수준이 금방 드러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조차도 몰랐던 청소년 시절에는 ‘패러다임’을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로운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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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들어가 토끼를 잡는 법’에 관한 재미난 만평이 있다. 4시간의 수색을 마치고 나온 CIA는 “모든 정보원들이 수풀 하나하나 돌 구석까지 샅샅이 정밀수색한 결과 토끼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고 결론짓는다. FBI는 24시간이 지난 뒤 “토끼는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KGB는 20분 만에 만신창이가 된 곰 한 마리를 끌고 온다. 곰은 자백한다. “저는 토끼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토끼입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노 베어스>를 보다가 문득 이 웃기고 섬뜩한 만화가 떠올랐다. 때론 조금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 소련 수사 기관의 무능과 부조리를 조롱하는 이 4컷 만화를 지금 다시 보니 공포를 동력 삼아 작동하는 권력의 설계도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때때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한 사람, 한 집단, 한 국가의 역사는 선형적으로 인식되지만 시선을 대륙, 지구
[송경원 편집장] (이제) 여기엔 곰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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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 나도 그렇지만,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말일 테다. 가족으로만 구성된 회사는 있을 수 있어도, 가족의 화목함을 기대할 만한 회사란 없다. 가족조차도 애초에 화목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목적이 있는 기업, 특히나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는 화목함이 아닌 다른 운영 원리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고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가족 같은 회사란 가족보다도 못한 회사의 다른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도 전에 대학이란 곳에 학생이 되어 다닐 때에도, 같은 ‘족’(族)자가 붙는 단어인 민족이란 말이 쓰일 때 거슬린 적이 많았다. 게다가 그 거대하기만 한 민족을 좁디좁은 가족으로 환원하는 어법은 더욱 싫었다. 국토를 어미나 누이의 몸으로 환유하고, 침략자를 그 여성 신체를 유린하는 이민족 남성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돋아 올랐던 소름. 내가 침략당하는 민족에 속한 남성‘으로서’ 같이 분노해주길 바랐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분노는 오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들이 그렇게도 밉고 우스워 보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