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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회전하던 차가 코너 모서리에 걸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다행히 근처에 다른 차들은 없었다. 놀라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차를 갓길로 옮기고 내려서 살펴보니 부딪친 난간 모서리가 생각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위치에 있었다. 나만 실수한 것은 아닌 듯 난간은 몇번이나 차가 긁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차를 살펴보니 범퍼가 긁혀 있었다. 모서리가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헤드라이트 안쪽의 플라스틱 부품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시간을 뺏기고 수리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될 텐데. 또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조금만 더 넉넉하게 간격을 잡고 돌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후회한다고 해서 일어난 사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어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그럴 수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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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했다.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지고 강호 독일도 일본에 패하면서 초반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세계 영화계가 긴장해야 할 만큼 개막 첫주 카타르 월드컵의 시나리오는 흥미진진하다. 오늘은 가나, 우루과이, 포르투갈과 함께 H조에 속한 대한민국의 첫 경기가 있는 날이다. 한창 마감 중인 <씨네21>의 사무실은 그저 고요하다. 겨울의 월드컵은 처음인데 이맘때는 이런저런 연말 결산 기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고, 나를 제외한 기자들은 영화만 사랑하는 종족들이라 올해는 월드컵 특집도 못하고 넘어가게 생겼다. ‘영화의 일기’가 아닌 ‘월드컵 일기’라도 맡기고 싶은 김혜리 편집위원의 아이디어(“예전에 <가디언>에서 영국 감독들로 축구팀을 짠 적 있는데 웃겨 죽음…”)에 힘입어 축구 에디토리얼이라도 쓸 수밖에.
이제부터 가상의 한국 영화감독 남자 축구대표팀을 꾸려보려 한다. 어쩐지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시무시한 팀을 완성할
[이주현 편집장] 한국 영화감독 축구팀 베스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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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 이란에서는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마흐사 아미니는 22살 여성으로, 지난 9월13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어 구금 중 의문사했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의 의문사가 지병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희생자가 지하철역 근처에서 구타당하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이 목격했고, 시신의 CT검사 결과 머리 골절과 출혈이 확인되었다.
머리카락을 보일 자유는 머리카락을 왜 가려야 하는지, 히잡이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와 무관하다. 어떤 이유도 ‘내가 내 몸에서 보일 부분과 보이지 않을 부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하는 수많은 이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여성들은 앞장서 자신의 히잡을 불태우거나 벗어 들었다. 그러나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는 강경 진압되고 있다.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이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거리로 나온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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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작 <그날이 오면>(On the Beach)은 요즘 보면 일종의 멀티버스 영화처럼 보이는 이야기다. 옛날에 나온 SF 중에는 이렇게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저절로 멀티버스나 대체역사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 그 미래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영화 내용이 실제와는 전혀 다른 과거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 영화의 배경은 1959년에서 5년 후인 1964년이다. 즉 이 영화는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내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1964년은 60년 가까이 지난 한참 과거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영화의 내용을 두고 우리가 사는 우주,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시나리오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발단은, 1964년에 커다란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고 호주를 중심으로 남반구의 일부 지역에서만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영화를 접
[곽재식의 오늘은 SF] 서글픈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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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원피스>가 현재 진행형이었다니. 1997년 일본의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를 통해 첫 연재가 시작됐으니, <원피스>를 탄생시킨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와 해적 루피를 비롯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그리고 팬들이 함께 쌓아온 시간만 무려 25년이 넘는다. 100권이 넘는 단행본, 1000화가 넘는 TV애니메이션, 15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그야말로 대항해가 아닐 수 없다. 올여름, 15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원피스 필름 레드>가 일본에서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랜만에 <원피스>의 호방한 모험과 그 놀라운 생명력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원피스>와의 첫 만남은 만화방이나 PC방에서 공강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던, 시간은 많고 돈은 없던 스무살 대학 시절에 이루어졌다. 만화광 친구가 추천해줘 <원피스>를 집어들었지만 캐릭터들의 황당한 개성에 곧장 적응하지 못했
[이주현 편집장] 다시 시작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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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과 페스티벌은 대학 시절 혼용돼 쓰였던 단어들이다. 차이는 잘 몰랐다. ‘카니발리즘’은 서로 모여서 사람의 살을 나눠 먹던 고대의 사건, 일종의 인육 행사에 기원을 둔다는 걸 배울 때, 충격적이었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에는 아들들이 모여서 자신들이 죽인 아버지의 살을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 친부 살인과 식육이라는 행사가 국가 기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프로이트의 설명은 나에게는 문화 충격이었다. 카니발이 아버지 등 국가의 권위와 관련되어 있다면, 페스티벌은 신과 관련되어 있다. ‘허용된 과잉’이라는 페스티벌의 다른 정의는, 기존의 질서를 일시 정지하고 새로운 신의 질서를 만드는 기존 질서 파괴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두환 시절 군사정권이 여의도에서 개최한 국가적 행사인 ‘국풍81’은 전형적인 페스티벌이다. 일종의 관제 페스티벌인데, 그것이 진짜 페스티벌이 된 이유는 행사 이후 많은 청소년들이 광장에서 음주와 함께 나름 자신들의 질서 파괴 행사를 벌였기 때문이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청년들 그리고 페스티벌과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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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아이가 저녁 시간에 일기를 쓰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반갑고 귀엽기도 해서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 들어보니 패닉의 <뿔>이었다. 반가워서 어떻게 이 노래를 알게 됐느냐고 물으니 방과 후 교실에서 배웠다고 한다. 세상에. 신기해서 ‘아빠도 어렸을 때 이 노래 들었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테이프를 선물해줘서 엄청 들었지. 그때 듣던 테이프도 작업실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고 말해주곤 같이 신나게 불렀다. 군데군데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있었지만 아직도 노래 가사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그 친구가 S.E.S보다 핑클을 좋아했으며 그중 특히 이진씨를 좋아했다는 것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기억이 났다.
아이들에게 한때의 대중가요를 들려준다는 것은 시간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가 어린이들에게도 전해질 만한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년기에 들었던 ‘동요’ <산할아버지>나 몇몇 산울림의 노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이적 아저씨와 나의 감춰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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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았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솔직히 영화를 예매하는 것부터가 곤혹이었다. 여보님께 영화 보러 가자고 말할 때마다 영화 제목이 외워지질 않았다. 10월 내내 일정이 꼬여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영화 볼래? 그 에브리… 어쩌고.” “에브리씽 에브리… 아무튼 양자경 나오는 영화 있잖아.” “그… 저번에 말했던 양자경 영화” 하며 매번 자신없이 중얼거리다 결국 “에브리 그거”까지 단어가 줄어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문단의 첫 문장을 쓸 때도 구글에서 제목을 검색해 Ctrl+C, Ctrl+V로 붙였다. 혹시나 실수할까봐.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모든 것, 모든 곳, 모두 한꺼번에’라고 지으면 안되는지? 줄여서 ‘모모모’라고 부르기도 좋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지어도 외우기 어렵긴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보단
[이경희의 오늘은 SF]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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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촬영 현장. 복숭아의 도시이자 마틴 루서 킹의 고향이자 나에겐 마블의 도시로 기억되는 그곳에서 블랙 팬서, 채드윅 보즈먼을 만난 적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처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모습을 드러낸 보즈먼이 당시 히어로 경력이 꽤 찬 스타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스칼렛 요한슨만큼이나 여유롭게 블랙 팬서로 합류한 소감이며 자신이 맡을 임무에 대해 들려줬던 기억이 난다. 이후 <블랙 팬서>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고유한 캐릭터와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슬프게도 2편이 제작되기 전 그의 부고가 들려왔다. ‘채드윅 보즈먼의 블랙 팬서’는 2018년의 모습으로 영원히 머물러 있겠지만 와칸다 왕국의 블랙 팬서 이야기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와칸다 포에버>)를 통해 계속된다. 티찰라(채드윅 보즈먼)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16
[이주현 편집장] 정훈이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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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마음으로 망연자실 앉아 있다가 뭐라도 틀어놓고 싶어 유튜브를 실행했다. 간절한 마음에 보고 또 본 수많은 뉴스가 알고리즘에 반영되고, 한편 여러 유튜버가 업로드를 미루면서 펼쳐진 추천 영상의 광경이 있다. 사건, 사고를 다루는 각종 프로그램들. 진지한 시사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패널들이 나와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 많았다. 어떤 프로그램에는 형사들이 나오고, 어떤 프로그램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프로그램은 패널들이 둘로 나뉘어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고, 어떤 프로그램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화를 내고…. 그 광경 앞에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의의는 명확하다. 사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촉구하거나 범죄 수법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 방송에서 다뤄지면서 여론이 움직여 재수사를 하게 된다든지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때도 적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시청하면서도 이것은 좋은 시청이다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든 사건은 ‘썰’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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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나온 영화로 <제3의 공포>가 있다. 중저 예산의 덜 알려진 외국영화가 한국에 소개될 때 간혹 엉뚱한 번역 제목을 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도가 지나치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The Stuff>다. 그 뜻은 물건, 어떤 것, 무엇인가를 말한다. 3이라는 숫자도 없고 공포와도 관련이 없다. 영화를 보면 극중에서 사람들이 간식으로 먹는 생크림처럼 생긴 음식에 ‘The Stuff’라는 제품명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제품명으로 사용된 고유명사라고 보고 제목을 ‘스터프’라고 붙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2022년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영화 제목도 그대로 한국에서 공식 제목으로 쓰는 시대이니, ‘스터프’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데 1980년대에는 굳이 번역한 제목을 썼다. 번역을 하더라도 적당히 ‘물건’이나 ‘그것’ 같은 제목을 붙였다면 통할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뜬
[곽재식의 오늘은 SF] 활기찬 제3의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