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 영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지요. 집중력 있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항상 모든 영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우 따뜻하고 순수한 영화 잡지. 앞으로도 활동할 때마다 꼭 만나게 되겠죠.” <씨네21> 기자 및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영화 부문 ‘올해의 여자배우’에 선정된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가 전해온 감동적인 인사말이다. 탕웨이의 깊고 진실하면서도 개구진 눈빛, 자유로운 생각과 따스한 목소리가 자동 연상되는 애정의 인사를 받고 나니 지면을 빌려 이 말에 꼭 화답하고 싶어졌다. “그럼요, <씨네21>은 앞으로도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할 거예요. 앞으로도 영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출몰할게요. 그러니 영화를 향한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만 챙겨서,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언제고 편안히 이야기 나눠요.”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통해 배우의 오롯한 존재감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의 개성과
[이주현 편집장] 어디든, 영화가 있는 곳이라면
-
“나중에는 서울에 살고만 있어도 성공한 시대가 될 거야.” 90년대 후반, 친구들하고 나눴던 대화 중에 들은 얘기다. 그 시절 이공대생들은 첫 직장이 지방인 경우가 많았고, 상대가 포함된 문과 계열은 주로 서울이 첫 직장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그렇게 사소한 차이로 직장의 위치가 갈렸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친구들은 서울에 남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웃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서울만 남은 공화국의 모습으로 한국이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노무현 정권 때 엄청나게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폐교를 사들여서 뭔가 행사를 하는 게 유행했다. 그때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싼값에 좋은 건물을 샀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학교가 문을 닫지 않게 사회적으로 버텼어야 했다. 초등학교가 없어진 곳에는 젊은 부부가 살 수가 없다. 저출생과 탈지방이 만나면서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학교 붕괴가 이제 대학까지 올라왔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집중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두가 서울로 떠나고 나면
-
가수 이승기씨가 데뷔 이후로 음원 수익을 한푼도 정산받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톱스타로 오랜 시간 성과를 내왔음에도 응당 받아야 할 인세를 받지 못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것이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알고 있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물며 그 정도 되는 사람도 이런 일을 겪는데 실제로 수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인디음악은 원래 돈이 안되니까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에 제대로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액수를 떠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도 흐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내 창작물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온 축에 속한다. 물론 더 적게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업물을 직접 제작하고 관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작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약이나 합의가 없었던 적도 있고 그 행방을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인세를 보내며
-
나름 한국에서 사이버펑크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이어서인지 가끔 사이버펑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SF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이나 답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내가 주로 답변하는 방식은 이렇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사이버펑크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활극이다. 혹은 가까운 미래의 암울한 첨단 기술이 잔뜩 등장하는 ‘펑크한 장르’다. 하하, 물은 축축하고 고담시는 고담에 있다.
모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사이버펑크를 접한 적 없는 사람에게 사이버펑크를 설명하는 건 마치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일과 같다는 말이다. 사이버펑크에 대해 지금 당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냥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를 읽으시길. 나는 가끔 이 서브 장르가 그저 <뉴로맨서>라는 왕릉의 부장품을 도굴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미학적으로는 <블레이드 러너>와
[이경희의 오늘은 SF] 망한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투쟁하기
-
-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한해를 보낸 것 같은 착잡한 마음과 특별한 계획 없이 한해를 맞이할 때의 조급한 마음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시기다. 이맘때 직업적으로 하게 되는 일 중엔 올해 최고의 영화와 시리즈를 꼽아보는 결산이 있다. 연말 결산은 아득한 기억을 구체적 작품으로 소환하는 일인 동시에 개별의 나무가 아닌 숲의 형상을 더듬어보는 작업이다. 아무튼 올해도 어김없이 결산의 시기가 돌아왔다. 이번주엔 영화 결산에 앞서 시리즈 결산을 먼저 준비했다. 놓친 작품들을 복습하느라 몸과 마음은 분주했지만, 한해 동안 화제를 모았거나 사랑받은 시리즈들을 쭉 정리하다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시간들이 이 작품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구나 싶다. 피곤한 노동의 굴레에서 우리를 잠시나마 해방시켜준 작품들에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올해 시리즈의 트렌드 중 하나는 법정물의 유행이었다. ‘2022 드라마의 경향과 트렌드’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어느 때보다도 검사와 변
[이주현 편집장] 이 시리즈들 덕에 즐거웠다
-
조금만 웃어볼까요, 는 내가 일을 시작한 뒤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주로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사진기자나 포토그래퍼가 하는 말로, 저 뒤에 이어지는 말로는 계속 웃어볼게요, 조금만 더 웃어볼게요, 자연스럽게 웃어볼게요 등이 있다. 처음 몇년은 물색없이 웃다가 언젠가부터는 웃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씀드린다. 그래도 지면에 사진을 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웃는 사진이 좋기 때문에 매번 같은 주문을 받게 된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고, 지면으로 나를 처음 만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나쁠 것 없으니 여전히 웃는다.
웃음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웃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시선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가끔 그 복을 뚫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거나, 본인도 모르게 사람을 쉽게 본다. 젊은 여자의 경우 이런 난처함은 배가된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이성적 호감이 있는 줄 안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전문성보다는 인간성을 본다. 워낙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웃을 수 있을 때까지는 웃을 수 없다
-
이미 다른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 있지만 2022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되짚어보고 싶은 영화로 <소일렌트 그린>(1973)이 있다. 영화는 미래 세계가 서서히 비참한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이 이런저런 모험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결말에 가까워지면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새로 나온 식품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한동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소일렌트 그린의 성분이 뭔지 밝히며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인 SF 명대사로 자주 언급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 탓인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과거만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의 진짜 구경거리가 뭔지 보다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이 영화는 망해 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괴롭게 사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 속의 세상은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망해 가는
[곽재식의 오늘은 SF] 1973년에 상상한 2022년
-
12월2일(한국 시간) 열리는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E조 최종전은 역사적인 경기가 될 예정이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심판진이 피치 위에 서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경기에서 휘슬을 불게 된 최초의 여성 주심은 프랑스의 스테파니 프라파르. 그는 2020년 여성 심판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주심을 맡은 바 있다. 독일과 코스타리카 경기에선 브라질의 네우자 백, 멕시코의 카렌 디아스 심판이 부심으로 함께 나선다. 1930년 월드컵이 시작된 이래 여성이 주심을 맡은 것도 여성 심판으로만 심판진이 꾸려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저기서 “이것은 스포츠계의 또 다른 진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작지만 큰 걸음을 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경기를 조율할 수만 있다면 심판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시작되는 경기지만 이 경기만큼은 선수 때문이 아니라 심판 때문에 꼭 챙겨 보고 싶다.
여성 심판 얘기를 꺼냈으니 자연스레 여성 축구팀
[이주현 편집장] 한국 영화감독 여자 축구팀 베스트 11
-
<주말의 명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시린 손을 비비며 단관 개봉 극장의 영화표를 줄 서 예매하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 중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다. 십수년 전 지상파 예능에서 대본 없이 (혹은 대본 없는 것처럼) 예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던 리얼리티 쇼가 비방송인들로 대상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댄서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던 오디션이 각광받았다. 그래도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계라는 범주의 생활인들과 지향점이 연예인을 꿈꾸는 후보자들이라 일반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최근에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청춘 남녀가 풋풋한 설렘으로 상대를 찾던 예전의 짝짓기가 이제는 높은 연령대 출연진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확장된다. 그다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Please, be kind
-
얼마 전 기후 위기에 대한 소설을 겨우 마무리했다. 고작 100페이지짜리 중편을 쓰는 데 반년을 소진했으니,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시간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원고인 셈이다. 지난해 나는 같은 기간 동안 600페이지짜리 장편을 썼다. 글밥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입장에선 완전 망한 거지.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백지를 펼쳐놓고 보냈다. 문득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져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매일 확증 편향되는 멍청함의 양에 비해 한편의 소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나 미미하고 비효율적이지 않나?
늦은 새벽, 한참 텅 빈 화면을 노려보다보면 문득 기이한 위화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니, 글쎄 내가 소설가라니. 근데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냥 재미난 책이나 읽고 신작 애니메이션이나 챙겨 보던 덕후였는데. 그저 즐겁자고 소설 몇자 끼적였던 것뿐인데. 언제부터 어울리지도 않게 온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양 거들먹
[이경희의 오늘은 SF] SF로 세계와 싸우기
-
어이쿠,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회전하던 차가 코너 모서리에 걸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다행히 근처에 다른 차들은 없었다. 놀라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차를 갓길로 옮기고 내려서 살펴보니 부딪친 난간 모서리가 생각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위치에 있었다. 나만 실수한 것은 아닌 듯 난간은 몇번이나 차가 긁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차를 살펴보니 범퍼가 긁혀 있었다. 모서리가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헤드라이트 안쪽의 플라스틱 부품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시간을 뺏기고 수리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될 텐데. 또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조금만 더 넉넉하게 간격을 잡고 돌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후회한다고 해서 일어난 사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어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그럴 수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