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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공물이 사람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오히려 사람을 닮은 모습이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X축에 표시된 인간과의 유사성이 50%를 넘어가면서 호감도를 나타내는 Y값이 갑자기 음(-)의 영역, 즉 비호감의 영역으로 떨어지며 그래프는 움푹 파인 골짜기 같은 모양이 된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서 오히려 기괴해 보이는 로봇이나 사이보그를 두고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알리타의 과하게 큰 눈은 ‘예쁘장한 소녀’ 사이보그를 불쾌한 골짜기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대유쾌 마운틴’은 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인간과의 유사성이 100%에 근접하여 호감도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인터넷 밈이다. 나는 최근에야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원하는 외모와 복장, 포즈 등을 텍스트로 주면 그에 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쾌한 골짜기 너머 ‘대불쾌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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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당신께>는 같은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던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편의 글이 한통의 편지가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들여 쓴 글이다. 그의 글은 술술 읽히면서도 왠지 쓸쓸하다가 웃기고 힘이 나곤 한다.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페이지가 슬금슬금 넘어가는 바람에 열심히 오랫동안 만든 음식을 한입에 홀랑 먹어버린 것만 같았다. 괜히 감자튀김 봉투를 뒤집고 손가락을 한번 빨게 되는 기분이다. 항상 그랬지만 유독 이번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은 왜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전자책으로 읽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 산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으로 보는 <당신께>는 놀라웠다. 두쪽을 모아 읽으니 작은 크기의 책을 펼친 것과 비슷해서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화면의 해상도나 터치에 반응하는 것도 내가 알던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한편의 글이 보통 두어 페이지 정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연재가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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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는 추리의 기본이다. 사건 발생 시각에 어떤 사람이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은 곧 그가 사건 장소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등장한 과학 이론인 양자 이론은 알리바이가 모든 물체에 대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양자 이론은 무엇이든 정밀하게 따져 계산할 때에는 한 물체가 동시에 두 군데 이상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고 치고 계산하는 방식을 택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생각이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게 말이 되나 싶어 어디인가에 잘못 생각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양자 이론은 검증을 견뎌냈고 지금은 가장 믿을 만한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자 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두축으로 인정받는 다른 이론으로 상대성이론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기로는 상대성이론도 양자 이론 못지않다. 상대성이론은 돌을 허공에 던지면 땅에 떨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돌의 속도와 날아간 거리를 정밀하게 계산하기
[곽재식의 오늘은 SF] 양자 중력 이론으로 보는 별나라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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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고작 5편은 무엇인가요?’ 스필버그의 유년기가 담긴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개봉을 앞두고 국내의 영화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설문을 청했다. 영화 창작자의 시선으로 본 스필버그의 역작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스필버그 감독님 영화 중 다섯편만 뽑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진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류승완 감독)는 답이 날아왔다. 끝내 순위까지는 못 정하겠다며 무순으로 응답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바쁘기로 소문난 감독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응답해준 건 스필버그가 영화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들의 감독’이기 때문이리라. 설문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죠스>와 <E.T.>는 상위권에 포함되었지만 스필 버그에게 7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쉰들러 리스트>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스필버그의 초창기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반세기를 아
[이주현 편집장] 당신의 스필버그 영화 베스트5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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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규제가 풀리면서 이제는 극장 안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뭔가를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 관객은 이전 규모로는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전성기를 맞았다. 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해보자.
가성비로 따지면 극장은 OTT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그냥 TV만 틀면 나오는 드라마 역시 가성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제작비를 어떻게 구해왔든, 광고가 얼마가 붙었든, 시청자에게는 전적으로 무료다.
영화의 최전성기는 1929년 대공황기였다. 경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가난해졌고, 영화만큼 값싼 놀이도 없었다. 채플린이 최전성기를 맞았고,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같은 공포영화들도 이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그 뒤로 영화는 늘 위기라고 그랬다. TV가 등장하면서 매체로서 라디오의 전성기가 끝났고, 연이어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총천연색을 자랑하던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영화의 ‘포스트 코로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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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목 따라간다더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의 모든(에브리씽) 상을 휩쓸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까지 7관왕. 이처럼 주요 상이 한 작품에 몰리는(올 앳 원스) 경우는 극히 드물다. 스포트라이트가 한 작품에 쏠릴 경우 자칫 시상식이 싱거워질 수도 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양자경과 조너선 케 콴의 수상 소감을 비롯해, 수상 직후 여기서도 저기서도(에브리웨어) <에에올>의 오스카 7관왕이 회자되었다. 물론 <에에올>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작품상 후보작 중 <에에올>보다 더 재밌게 봤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따로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오스카의 결과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수상 결과만큼이나 시상식의 흥행을 좌우하는 것이 수상 소감이라면
[이주현 편집장] 양자경의 글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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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주말이 있다. 어디 한번 나가볼까 하다가도 그냥 집에 있기를 선택하는 나는 이럴 때 냉장고를 뒤져보곤 한다. 그동안 묵어 있던 냉장고 속 재료를 먹어버리려는 것이다. 마침 음식을 포장할 때 받은 콜라가 남아 있고, 요리할 타이밍을 놓쳐 얼려두었던 토막닭이 있다. 급한 대로 모서리를 잘라 썼던 간 마늘 얼려놓은 것들을 꺼내서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둔다. 칼이 잘 들지 않지만 뜨거운 물에 담갔다 빼면 체중을 싣는 것만으로도 무리하지 않고 잘라낼 수 있다. 청양고추 썰어놓은 것이 두 봉지가 있길래 하나로 합치고 일부를 간장, 콜라, 마늘 그리고 기타 양념들과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얼어 있던 닭이 적당히 녹고 나서 양념에 재운 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니 먹을 만한 닭구이가 되었다. 두끼 정도를 닭을 먹으니 살짝 물리는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 맛있었고, 재료를 버리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았다.
애초에 먹을 만큼만 구입하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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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은 우주를 탐험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스타 플릿 우주선의 선원들은 겉보기엔 평범한 우주 군인같아 보일지 몰라도 하나같이 머리가 좋다. 개중에 가장 근육 바보처럼 보이는 선원조차 위기 상황이 오면 온갖 천문물리 용어들을 불경처럼 줄줄 읊어대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과학 장교들은 거의 마법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떻게 외딴 복도 구석에 있는 패널 하나를 뜯어 전선 몇개 바꿔 끼우는 것만으로 우주선 전체의 방어막이 10분 더 버티게 만드는지.
이 진보한 과학자들이 우주를 탐험하며 체득한 교훈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왔다. 궁금하다면 <스타트렉>의 첫 시리즈를 다시 한번 찾아보시길.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낡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백인 남성 함장이 온갖 비키니 차림의 외계 여성들과 엮이는 꼴도 우습고, 적대 종족인 로뮬란과 클링온을 다루는 방식도 도저히 섬세하다곤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낡음
[이경희의 오늘은 SF] 힘겨워하는 우주 과학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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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모두 삼고초려의 자세로 섭외를 해야 한다! 거절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두번 세번 설득 또 설득을….” 거듭된 거절에 약간의 위기의식이 찾아왔을 때쯤이었을까. 드라마 작가 인터뷰 원이슈 특집호를 준비하는 비장한 각오가 기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삼고초려라는 단어까지 쓰고 말았다. 급하긴 급했나보다.
“섭외되셨나요?” “아직 답 기다리고 있어요.” “결국 거절하셨어요. ㅠㅠ” “최종 거절인가요?” “네, 새 작업에 들어가서 도무지 시간이 안 난대요.” <한겨레21>의 황예랑 편집장과 수시로 나눈 대화들은 ‘이거 참 산 넘어 산이군’의 반복이었다. <한겨레21>에서 함께 드라마 작가 특집호를 만들어보자고 연락이 온 건 2022년 10월경이었다. 앞서 <한겨레21>은 문학 작가와 비문학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두번의 ‘21 WRITERS’ 시리즈를 선보였고, 그 세 번째로 드라마 작가 인터뷰를 <씨네21>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했
[이주현 편집장] 22명의 드라마 작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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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의 나이를 통 짐작하지 못한다. 전에는 누가 장난스럽게 “저 몇살 같아 보여요?” 같은 질문을 하면 속으로 질색하면서 백살 같다고 대답하곤 했다. 다행히 요즘은 그런 걸 묻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덕도 있고, 어느덧 주위에 나와 나이 경쟁할 만한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따금 독서 교실 어린이들이 나에게 몇살이냐고 물어보기는 한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백살이라고 대답한다.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는, 어린이를 딱 보고 몇 학년인지 알아맞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 더 전문가다워 보일 것 같아서다. 물론 못 맞힌다. 한번은 강연장에서 “학교에 있다 보면” 하는 중학생 참가자를 교사로 착각해 실례를 했다. 마스크 탓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진땀이 났다. 이렇게 감이 없는 나이지만, 한눈에 알아보는 학년이 있다. 바로 중학교 1학년이다.
이들은 일단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하다. 몸집보다 옷이 큰 경우가 많다. 신입생들은 대부분 넉넉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중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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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추리소설 작가 로널드 녹스는 추리소설을 쓸 때 규칙이 있다면서 10개의 규칙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반전이랍시고 처음 우리가 탐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범인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만들면 안된다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규칙을 다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다섯 번째 항목, “중국 남자가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이다.
이게 뭔 황당한 소리인가 싶은데, 그것은 당시 영미권 대중소설계에 퍼져 있던 해괴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 당시 작가들은 대중소설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마귀와 요괴와 통하며 괴상한 주술을 사용한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녹스는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사실은 공중부양을 해서 도망쳤다”, “범인은 얼굴을 바꾸는 술법을 이용해서 경찰을 속였다”라는, 터무니없이 신비로운 기술이 등장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명 높은 중국 남자 금지라는 규정이 추리소설에 꼭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20세기 초중반까
[곽재식의 오늘은 SF] 친근한 고스트 버스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