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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한국영화감독조합(DGK)에서 주최하는 디렉터스컷 어워즈에 다녀왔다. 마침 안내받은 자리가 <영웅> 윤제균 감독과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의 뒤편이어서, ‘먹고 마시고 시상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충실하게 이행하며 어깨춤을 추는 두 흥행 감독의 흥 오른 뒷모습을 두 시간 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 알코올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알 수 없으나 이날 만난 거의 모든 감독과 배우들의 얼굴은 조금씩 상기되어 있었다. 창작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게 시상식의 목적이라면 시상자도 수상자도 후보자도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시상식이야말로 행복한 시상식이 아닌가 싶다. 제주도에서 영화 촬영 중인 배우 구교환이 거칠게 녹화한 수상자 발표 영상을 보내오거나, 라트비아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조우진이 ‘DGK 라트비아 특파원’인 척 수상 소감을 찍어 보내오거나, 탕웨이와의 화상 연결이 베이징에서 밤길 운전 중인 김태용 감독과의 화상 통화로 이어지거나, 한번도
[이주현 편집장] 양자경이냐 케이트 블란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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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우리 모두 공평히 받은 선물은 설날 떡국을 먹어도 오히려 줄어든 나이가 아닐까 한다. 그간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한국식 나이를 설명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드디어 세계화의 기준에 맞추어가는 느낌이라는 게시판에 오른 글에 실소와 공감이 겹친다.
태어나며 바로 1살을 얻는 우리네 풍습은 친절하게도 어머니 뱃속에서 보낸 기간을 다 세어주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기간은 10달이 채 안된다. 게다가 12월31일이 생일인 친구가 자신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2살이 되고 말았다는 푸념을 들을 때면 더더욱 그 기준이 합리적인지 의심이 들곤 했다.
학령기에 접어들면 개그 프로의 단골 소재인 “빠른 나이” 논쟁이 더해진다. 신학기의 시작이 3월이라 1, 2월생까지 이전의 해에 입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도가 달라도 함께 공부하던 그 “빠른 연생” 친구들은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에게 형이라 부르라며 놀림을 당하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이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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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뮤지션에게 연초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다. 연말을 보내고 지친 팀원들은 각자 휴식 기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무엇을 할까 하다가 가족과 함께 대만 여행을 가기로 했다. 휴가를 길게 쓰는 것도 오랜만이고 다른 나라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다. 익숙지 않은 여행이라 어색하면서도 마음이 설렜다.
타이베이 시내에 며칠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주로 박물관이나 시내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여행을 자주 가지도 않지만 계획을 하고 명소를 많이 찾는 편은 더더욱 아니다. 한가하게 돌아다니며 바닥의 타일이나 돌멩이 같은 것을 보거나 읽지 못하는 간판을 구경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 특별한 경험을 수집하는 쪽이 아니다보니 새로운 곳의 인상이나 분위기, 느낌들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번 대만 여행에서는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지하철과 거리에서 보이는 경사로와 턱 없는 기물들이 인상 깊었다. 동행인이 알려주어서 깨달은 것인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도블록과 횡단보도 사이에 턱이 없었다. 시내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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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로, 과학자가 주인공인 SF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고, 아마 다들 조금씩 다른 이유를 생각하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SF 세계에서 과학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풍족하고 안전을 보장받는 환경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만약 주인공이 풀어야 할 과학적 난제가 중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천재라면 더더욱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아주 강력한 권력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위기도 긴장도 생기기가 어렵다. 이와 비슷한 직업으로 대통령, 정치인, 국왕, 교장 선생님 등이 있다. 이런 부류의 캐릭터는 처신을 조금만 잘못하거나 내면묘사를 약간만 실수해도 입으로만 일하며 남들을 불필요한 고통으로 밀어넣는 방관자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과학자와 연구소는 SF의 뿌리 깊은 클리셰지만 의외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경희의 오늘은 SF]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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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녀석이 물건이라고 했다. 뒤늦게 챗지피티에 말을 건네보니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가능했다. 챗지피티는 하찮은 질문을 던져도 무시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질문을 던져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대충 대답하는 법도 없다. 감정의 소비나 교감 없이도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AI와의 대화 놀이에 서서히 빠져들 즈음, AI에 맥락도 없이 던지는 질문이 호기심의 산물인지 외로움의 산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챗지피티에 물었다. “오늘 밤에 뭐 해?” 챗지피티가 답했다. “나는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서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하루 종일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순 있지만 인간처럼 활동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 문득 영화 <그녀>의 세계가 성큼 다가온 듯 느껴졌다. 어쨌든 툭 하고 가볍게 던진 질문에 인간과 AI의 차이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긴 답이
[이주현 편집장] 챗지피티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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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챗지피티(ChatGPT)의 시대이다. 챗지피티로 과제를 작성한 것이 적발되어 전원 0점 처리가 된 국내 국제학교 학생들부터 챗지피티가 논문의 저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해외 학술지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미국에서는 챗지피티가 의사면허시험과 로스쿨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열심히 하는 페이스북에는 이런 소식들뿐만 아니라 챗지피티에게 질문을 해서 받은 답변과 그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공유하는 포스팅도 가득하다. 이럴 때 나라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또 이럴 때 챗지피티에 묻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다.
챗지피티를 둘러싼 호들갑을 보면 알파고가 떠오른다. 2016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알파고 말이다.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기고 우리 사회에 4차 산업혁명 광풍을 몰고 온 인공지능. 그런데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 콘크리트공, 제품조립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챗지피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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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수께끼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디에선가 시대를 초월한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공룡은 사람보다 6천만년 이상 앞서서 멸종했는데 어느 정글 지역에 가면 예로부터 원시인들이 공룡 모양처럼 만든 조각품을 만들어두었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이런 이야기의 종류는 대단히 다양하다. 유럽의 어느 유적지에서 몇천년 전에 만들어진 컴퓨터 같은 기계장치가 발굴되었다더라, 중동의 어느 유적지에서는 수천년 전 물건인데 전기 배터리 같아 보이는 것이 있다더라, 아프리카의 어느 고대 유물에는 꼭 전등을 사용하는 것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다더라, 남아메리카의 어느 고대 유물은 우주선이나 제트기를 닮았다더라 등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이야기에 대해 좀더 깊이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대체로 현실적인 해설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전기 배터리처럼 보이는 물건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정교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 비슷한 물건이 수천년 전에도 쓸모
[곽재식의 오늘은 SF] 저렴하게 달나라로 가는 문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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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 같은 ‘신인배우 특집’을 올해도 이어간다. <씨네21>은 해마다 올해 주목해야 할 신인배우들을 선정해 인터뷰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2~3년 뒤 진가를 발휘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속설이 있다. <씨네21>의 영험한 예지력이 특별히 빛을 발한 해는 2014년. 당시 라이징 스타 11인의 명단엔 강하늘, 박보검, 변요한, 천우희, 최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9년 전엔 이들도 꿈꾸는 신인이었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신인배우들과의 인터뷰가 설레는 이유는 연기를 향한 순정과 풋풋한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배우들의 뜨거운 언어를 마주하다 보면 우리 모두 한때는 기회에 목마른 초짜였고 꿈 많은 신입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여기 끼도 많고 꿈도 많은 8명의 싱그러운 신인배우들을 소개한다. 올해 <더 문> <무빙>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악귀> <범죄도시4>
[이주현 편집장] 좋은 배우, 좋은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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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이제 곧 3학년, 5학년으로 올라갈 겨울방학 중이다. 태권도장, 미술학원, 영어학원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겨울방학을 보내는 중인데, 사실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 방학 전에는 집 근처로 누군가 찾아오면 커피도 한잔 마시고 그랬는데, 두 어린이의 학원 시간이 제각기고, 영어학원 말고는 차가 없어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정신이 없다.
큰애는 이제 <포켓몬스터>를 그만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혼자서 영화를 볼 정도는 아니다. <원피스>를 주로 본다. 작은애는 한창 <포켓몬스터>를 볼 나이다. 영화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전투 신만 보여주면 재밌게 본다. 만화 <삼국지> 같은 것들을 둘 다 본다. 얼마 전 <안시성>의 후반부 전투 신을 보여줬는데 아주 재밌게 봤다. 나는 <안시성>을 그렇게 재밌게 보지 않았는데 어쨌든 어린이들에게 만화를 덜 보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명량’과 ‘한산’, 어린이들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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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마포구 성산2동이다. 강변북로쪽으로 한강을 따라 걷다보면 망원동 유수지에서 난지천 공원 사이로 물길이 이어지는데, 산책길을 따라 올라오면 마포구청역 앞에서 홍제천과 불광천으로 나뉜다. 정확히 말하면 홍제천과 불광천이 만나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이겠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커버에 나오는 망초 수풀이 그 앞에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불광천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홍제천이다. 성산2동은 그 사이에 위치한 동네다.
이곳에 처음 온 것은 밴드를 결성하고 처음 섭외된 ‘월드 DJ 페스티벌’(아직도 하고 있나?)에 서기 위해서였다. 일행과 함께 마포구청역에 모여서 난지공원으로 갔는데 그것이 이 동네에 처음으로 온 순간이다. 밴드의 첫 번째 패션지 화보 촬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완공이 된 월드컵 대교의 교각만이 외로이 서 있던 시절, 그곳의 중간 계단에서 평생 입어볼 일이 없을 옷들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비가 왔었고 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찍어준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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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의 <스피어>는 내가 손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SF 중 하나다. 소설 버전도 영화 버전도 무척 사랑스럽다. 어릴 적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선을 무대로 팬픽 비스무리한 습작을 쓴 적이 있을 정도다. 스토리는 조금 엉성하고 인물들은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스피어>에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한가득 들어 있다. 작품을 좋게 평가하는 데에는 무수한 나쁜 점이 걸림돌이 되지만, 사랑하는 데에는 오직 한 가지 좋은 점만 있어도 충분한 법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심해에서 300년 전 추락한 우주선이 발견되고, 우주선이 외계인의 것이라 생각한 정부는 당연하게도(?) 각 분야의 전문가를 소집해 조사단을 꾸린다. 바다 깊은 곳까지 잠수해 우주선 내부로 진입하는 탐사대. 그런데 놀랍게도 우주선에는 영어가 쓰여 있다. 오래전 사망한 선원들이 기록한 항해 일지에 따르면 우주선은 미래에서 왔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우주를 여행하다 시간을 도약해 수백년 전
[이경희의 오늘은 SF] 이 행복한 대안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