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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거미에게 쫓기는 악몽에서 깨어난 제시카(드완다 와이즈).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을 잠식한 상상적 이미지인 거미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어린이책 작가다. 유부남인 맥스와 결혼하여 두딸 테일러(태건 번스)와 앨리스(파이퍼 브라운)를 얻은 제시카는 자신이 유년 시절 살던 집으로 이사하여 새로운 삶을 꿈꾼다. 어느 날 작은 딸 앨리스는 지하실에 있던 곰인형 ‘천시’를 발견하고 상상친구로 지내기 시작한다. 영화는 동심의 탈을 쓴 상상친구 천시가 공포의 대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공포의 근원지는 제시카의 유년 시절이며, 그렇게 대물림된 공포는 앨리스와 제시카,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른다. 영화는 동심과 공포를 접합시키려는 다양한 요소들, 이를테면 수상한 이웃, 지하실의 문, 벽의 낙서 등을 제시하지만 익숙함이 공포로 바뀐다는 비교적 안전한 공식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가족 서사와 판타지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리뷰] 친근한 대상이 공포로 바뀐다는 두려움과 당혹감 사이, <이매지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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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작가인 주환(송훈)은 책의 소재를 수집하기 위해 딸 하영(윤하영)과 하영의 친구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느 성장영화들처럼 아이들의 꿈에는 일상의 크고 작은 고민들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 와중에 주환의 딸 하영은 꿈이 없다고 말한다.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의 딸에게 주환은 간절히 바라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정령의 편지를 건네고 꿈꾸는 시간들을 만들어주려 한다. <한밤의 판타지아>는 아이들의 일상에도 판타지로 부를 만한 순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정령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앞세워 동화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대입시켜보자고 호소하는 영화다. 변화된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이제 향수 어린 우리의 유년 시절을 상기할 수 있다. 다만 동반자살을 하려는 가연(이가연)과 가연의 어머니를 아이들이 구한다는 설정이 꼭 필요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울부짖는 이미지들은 영화의 드라마를 완성시키기보다는 도리어 영화가 아이들을 다루는 시선에 의구심만 불러일으킨다
[리뷰] 아이들은 죄가 없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한밤의 판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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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산다는 전설이 있는 충북 영동의 이매리 둠벙에 세명의 외지인이 도착한다. 일생일대의 월척을 낚으려는 낚시꾼 병진(이종윤), 가난에서 벗어나 암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려 비트코인을 하는 청년 혁수(윤경호), 이매리 둠벙을 조사하러 온 대학원생 윤주(최예은)가 그 주인공이다. 셋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둠벙의 화를 불러온다. 이동주 감독의 데뷔작 <둠벙>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한국인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리려 한다. 기성세대의 갑질과 청년세대의 한탕주의, 외모콤플렉스가 각각 슬래셔와 SF, 크리처 등 B급 장르의 문법으로 표현된다. 시도는 모범적이나 영화의 완성도는 초보적이다. 기시감이 강한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어떤 미학적인 야심도 보이지 않는 안일하고 낡은 연출, 과잉된 음악 활용이 더해져 호러 장르의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다. 노골적인 사회비판마저 감독만의 개성 있는 시선이 부재하는 탓에 일차원적으로 다가온다.
[리뷰] 웅덩이에 빠지고 싶은데 거기에 물이 없는 비참함, <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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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귀찮”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고교생 나기(시마자키 노부나가). 세계 제패라는 꿈을 안고 학교 축구부를 창설한 부유한 도련님 레오(우치다 유우마)는 범상치 않은 발놀림을 가진 나기를 목격하고 그를 영입한다. 동아리, 전국대회에 이어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선발 프로젝트 ‘블루 록’에 입성한 두 사람은 극한의 트레이닝에 돌입한다.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 대한 아니메적 해석을 선보인다. 현실 축구의 논리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전원 스트라이커 축구’라는 도발적인 구상은 블루 록 세계관이 지닌 태초의 매력이다. 시리즈의 조역인 나기가 극장판에서는 서사와 시점의 우위를 점하는 주역으로 발탁되어 캐릭터의 천재성에 걸맞은 애크러배틱 플레이를 보여준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관한 직업적, 존재적 난제를 탐구하며 세계 최고의 자질을 다시 묻는 드라마가 매력을 더한다.
[리뷰] 당신은 잘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나요, <극장판 블루 록 –에피소드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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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야간열차에 잠입해 있던 40인의 무장 강도가 본색을 드러낸다. 열차에는 운송 회사 사장과 그의 딸 툴리카(타냐 마닉틸라), 툴리카와 비밀 연애 중인 특수부대원 라토드(락샤)가 타고 있다. 졸지에 40 대 1의 싸움으로 열차 안 시민들을 구해내야 하는 특수부대원이 객실 칸을 돌파해나가며 악을 처단하는 과정을 담은 <킬 KILL>의 구조는 진부할 정도로 단출하다. 인도 카스트제도의 계급 충돌과 반란을 은유하며 <설국열차>의 형식을 오마주하지만 작품의 묘미는 그 주제보다는 고어함에서 찾을 수 있다. 열차 객실의 기물을 영리하게 활용한 마셜 아츠로 시동을 건 뒤, 연인을 잃은 주인공 라토드의 분노가 격화된 시점부터는 멈출 줄 모르는 무자비한 폭력의 질주기 시작된다. 라토드를 연기한 배우 락샤의 데뷔작이다.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국내 개봉판은 높은 수위의 신체 훼손이 그대로 담긴 무삭제본이다.
[리뷰] 고어액션과 신파를 연료삼아, 일단 달린다, <킬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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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던 계나(고아성)는 한국에서 장녀로서의 삶, 직장생활에 지난함을 느낀다. 더이상 답이 없다고 생각해 결국 오랜 연인인 지명(김우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그곳에서 재인(주종혁)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적응해나가는 한편, 계나는 여유를 갖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장건재 감독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소설가의 동명 소설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2010년대지만, 10여년이 지난 현재도 2030의 현실과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영화와 문제의식은 유의미함을 잃지 않는다. 계나를 중심으로 한국과 해외에서의 삶의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한편, 뉴질랜드 이민자들을 경유해 이방인의 삶의 이면까지 조명한다. 기자로서 착실히 적응해나가는 지명과 계나의 가치관의 차이 또한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리뷰] 시간 차가 무색한 현실, 미래를 위한 해결책은, <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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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류아벨)이 경상북도 문경시로 떠난다. 3일간의 휴가를 빙자한 사회로부터의 도피다. 문경은 예술 전시 등을 기획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느 사회생활이 그렇듯이 쉽지 않은 난관들이 그를 괴롭힌다. 가장 큰 걱정은 한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초월(채서안)의 존재다. 업무 실력도 뛰어나고 성실하며 함께 일하기도 편한 후배이지만, 회사 사람들은 초월의 성과를 이기적으로 활용할 뿐 그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생각을 통 하지 않는다. 결국 초월이 회사에서 자취를 감췄고, 문경은 심란한 마음에 초월의 고향인 문경으로 돌연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곳에서 문경은 비구니 가은(조재경)과 주인 잃은 강아지 길순이를 우연히 만난다. 푸르른 녹음의 문경에서 길순이의 주인을 찾던 문경과 가은은 유랑 할매(최수민)라 불리는 노년의 마을 주민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할매의 손녀인 유랑에게 얽힌 아픈 과거를 듣게 된다. 그렇게 문경, 가은, 유랑은 각자의 아픔을 속에서 바깥으로 꺼내 나누며 치유의 시간을 가
[리뷰]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미덕을 품고, <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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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어그로’ 파티였다. SNS에서 주목받는 77명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몸값(팔로워 수)이 표시된 넥밴드를 하고 경쟁하는 넷플릭스 예능프로 <더 인플루언서> 말이다. 첫 미션부터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어그로를 끌고, 일부 남성 ‘유튜버’들은 팔로워가 많은 ‘틱토커’들부터 떨어뜨리자고 선동한다. 2차 미션인 라이브 방송(라방)은 더 자극적이었다. 시청자를 많이 확보하고 유지해야 생존하는 상황. 남성 출연자들이 ‘충격 고백’, ‘수입 공개’ 등의 제목을 걸거나 ‘먹방’으로 시청자를 모을 때 여성 출연자들은 소위 ‘벗방’ 수준의 노출을 감행했다. 이렇게 여성의 몸을 자극적으로 전시하고, 경쟁적으로 ‘도파민’에 절여진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이 인플루언서라고? “어찌 됐든 시선만 끌면 돼. 뭐가 어찌 됐든”의 세계관으로 보면 그렇다(고 한다). 이 틈에서 뷰티 유튜버 이사배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극 없이 퀄리티로 승부를 보는 것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나?”라며 소신을
[CULTURE TVIEW] '더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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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리 변호사(남지현)는 대형 로펌에서 이혼팀에 배정됐지만 사실 부부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다. 그에겐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한유리의 아버지는 가족을 배신하고 불륜을 저질렀고, 이러한 기억은 그를 결혼과 연애에 무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비혼. 인간은 애초에 서로 뭘 나눌 수 없는 이기적인 동물이야.” 맹세의 제스처가 그의 의지를 내비추지만 드라마는 그에게 뜬금없는 시련을 준다. 어느 날 눈떠보니 한 모텔, 동료 변호사 전은호(표지훈)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심지어 난데없는 고백까지 이어진다. “우리 만나보자. 한유리, 전은호 서로 캐주얼하게 알아가보자고.” 여기서 잠깐 한유리를 되짚어보자. 그는 어떤 설정을 지닌 인물인가. 한유리는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로펌 대표 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의 이혼소송을 전담하게 된다. 심지어 이혼소송을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정평난 차은경이 한유리에게 변호를 직접 의뢰했다. 어엿한 직업인으로서 한유리는
[CULTURE TVIEW] '굿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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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창수(허동원)의 자살로 충격에 빠진 소희(조윤희)는 변호사로부터 한통의 연락을 받는다. 죽은 남편이 한적한 시골에 지은 늘봄가든이라는 건물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언니 혜란(김주령)의 우려에도 소희는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떠나고, 그곳에서 불가사의한 일들을 겪는다. 구태진 감독의 데뷔작 <늘봄가든>은 대한민국 3대 흉가로 거론되는 늘봄갈비 괴담에서 출발한다. 신선한 시도로 꼽히는 <곤지암> 역시 3대 흉가 중 하나였던 곤지암 정신병원을 소재로 사용했다. <곤지암>이 정신병원의 공간적 특징을 살리고 서사는 축소해 경제적으로 공포심을 형성했다면, <늘봄가든>은 허구적 괴담에 서사적 부피감을 부여하려 한다. 하지만 호러 장르의 익숙한 문법과 사회문제의 자극성을 추출하여 구성한 이야기는 섬뜩함보다는 피로감을 자아낸다. 공간적 특성을 활용하지 못한 채 진행되는 영화를 보며 괴담의 유명세만을 활용하려는 제목에 대한 깊은 의문이 든다.
[리뷰] 괴담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늘봄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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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알렉산더(엘란드 요셉손)는 은퇴 후 시골의 외딴집에서 어린 아들 고센과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부자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세상의 종말을 부를 만한 세계 전쟁이 발발했음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다. 알렉산더는 본인의 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세계적 혼돈의 원인, 그곳에서 예술이 지니는 역할, 나아가 가족과 겪었던 과거의 개인적 시간을 토로하고 감정을 분출한다. 그 끝에서 알렉산더는 자신의 지난날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선택에 이르고 아들 고센에게 자신이 믿고자 했던 세상의 가치를 물려준다. 20세기 영화사에서 진정한 예술가, 영상 시인 등으로 불리며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던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유작이다. <희생>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간소한 컨셉과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수십년 동안 타르콥스키가 주창하던 예술론과 믿음의 가치관이 방대한 대사와 넉넉한 속도의 이미지로 전환되어 영화를 지탱한다. 1995년 한국 최초 개봉 이후 30여년
[리뷰] 타르콥스키의 예술과 믿음의 가치,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