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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김지영)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슬픔을 꾹 눌러 담은 채 제주에 내려간다. 그녀는 제주에 간 날 우연히 바다에 빠져 죽으려 하는 준우(배수빈)를 구한다. 다음날 준우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그의 집에 간 영희는 그가 클래식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죽은 어머니가 남긴 메모에 적힌 클래식 음악을 틀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영화엔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 감독의 서정적인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티 없이 맑은 제주 바닷가 풍경과 빛을 한껏 활용한 정적 촬영,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으려는 두 캐릭터의 관계, 감독이 엄선한 클래식 음악이 그 증거다. 두 배우의 연기도 이 영화만의 빛바랜 필름 사진을 보는 듯한 감수성을 한껏 살린다. 다만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물에 빠진 파리와 같은 이미지로 인물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연출이 반복되는 점 등이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한없이 착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담는 빛바랜 문법,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트라비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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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 성진(강승호)을 포함한 온 가족이 제사를 위해 대구 고향집으로 모여든다. 무더위 속에서 전을 부치는 여성들과 옆방에서 한가로이 고스톱을 치는 남성들.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은 성진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여느 명절날과 다름이 없다. 전통을 중시하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가업을 둘러싼 의견들이 술기운을 타고 맞부딪힌다. 넉살 좋은 손주들 덕에 우여곡절을 겪던 제사가 겨우 마무리된다. 그런데 정정하던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임종을 맞이하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긴장감이 점차 격해지기 시작한다. <장손>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대가족에 얽힌 이야기를 그려낸다. 하지만 세대간 불통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포장하지는 않는다. 각 인물의 사연을 훑는 시선은 놀랍도록 차분하고 섬세하다. 해학이 담긴 영화는 끝내 보편적인 공감대에 닿는 데에 성공한다.
[리뷰] 솟구치는 설움마저 정(情)으로, 죽을 듯 밉다가도 괜스레 한번 돌아본다, <장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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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맞아 콜리견 래시와 함께 이모 집에 놀러간 플로(니코 마리슈카)는 헨리와 클레오 남매를 만난다. 눈부신 자연 속에서 뛰노는 즐거움도 잠시,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던 동네에 강아지들이 연이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플로가 잠시 한눈판 사이, 헨리와 클레오의 강아지 피파가 실종된다. 소년 소녀는 기억을 더듬어 납치범들이 머무는 호텔로 향한다. 용의자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는 상황에 믿을 것은 영특한 래시의 동물적 감각뿐이다. <래시: 뉴 어드벤처>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돌아온 래시>를 원작으로 한 <래시 컴 홈>의 후속작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그려낸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빈약한 캐릭터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강아지를 위한 연기상이 있다면 올해 수상자는 단연코 래시 역을 맡은 밴딧이다.
[리뷰] 어린이만을 위한 멍멍이 재롱 잔치, <래시: 뉴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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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낳아 강남으로 이사, 정치부장으로 승진, 이후 편집국장 역임. 앞선 목표들은 올해의 기자상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이 신혼여행에서 세운 그녀의 인생 계획이다. 하지만 쌍둥이를 임신한 상황에서도 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던 그녀의 삶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어릴 적부터 더딘 모습을 보인 둘째 아들 지우(빈주원)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것.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상연은 장애 아동의 부모로서 낯설고 서툰 길을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한다.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는 언론인 출신 작가 류승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로서 겪은 일화를 담은 원작처럼 영화는 장애 아동의 육아를 맡게 된 부모 상연의 현실에 집중한다. 자녀의 장애 판정 직후 느낀 당혹스러움, 육아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들, 주변인들의 차별적 시선들과 그로
[리뷰] 연민과 낙담 대신 덤덤하게 고백하는 아이와 나를 지키는 법,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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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을 보는 10대 고스족 소녀 리디아 디츠(위노나 라이더)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딸 하나를 둔 엄마가 됐다. 그는 ‘고스트 하우스’라는 심령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는 영매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여전히 비틀쥬스(마이클 키턴)의 환시를 보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의 옆에는 쇼의 프로듀서이자 어딘가 수상쩍은 약혼자 로리(저스틴 서룩스)가 있다.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는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리디아의 아버지 찰스 디츠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딜리아(캐서린 오하라)와 리디아 그리고 아스트리드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삼대의 여자들은 생전 찰스가 아꼈던 집(이자 전편 <비틀쥬스>에서 디츠 가족이 이사왔던 그 집)에 다시 모인다. 찰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시회와 장례식 그리고 리디아와 로리의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 아스트리드에게 제레미(아서 콘티)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비틀쥬
[리뷰] <웬즈데이> 세대에게 소개하는 8~90년대 버튼의 전성기, <비틀쥬스 비틀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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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 <딸에 대하여>, 시리즈 <돌풍> <최악의 악> <여신강림> 등 출연
밥
농부가 심혈을 기울여 재배한 쌀로 갓 지은 밥을 사랑한다. 농사 짓는 이와 밥 짓는 이의 정성이 모인 그 순간! 채소를 미친 듯이 때려 넣은 밥, 콩 반 쌀 반을 넣어 만든 밥, 곤드레밥, 버섯밥 등등 레시피도 다양하다. 칙칙칙 뚜껑 돌아가는 소리가 좋아서 1인분을 지어도 압력솥에 쌀을 안친다.
하늘 보기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종종 “여행이나 떠나고 싶다”라고 하지 않나. 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복잡한 마음이 바로 상쾌해진다. 만일 바다가 보고 싶은데 당장 갈 수 없다면 답답할 텐데, 하늘은 빌딩 속이든 가로수길이든 어디에나 공평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어바웃 타임>의 삽입곡으로도 알려진 <거울 속의 거울>을 사계절 내내 듣는다
[LIST] 임세미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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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디즈니+ /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출연 에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 마거릿 퀄리, 윌럼 더포, 홍차우, 요르고스 스테파나코스/ 공개 8월3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예술적 완성 혹은 피로? 어느 쪽이든 란티모스적 스펙터클임이 확실하다
“어떤 이는 학대하길 원하고, 어떤 이는 학대당하길 원하지.” 영화의 문을 여는 유리스믹스의 신스팝 <Sweet Dreams>만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오랜 주제를 재치 있게 요약하는 노래가 또 있을까. 세편의 독립된 우화에 동일한 배우들이 출연해 역할을 변주해가는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감독의 전작들을 선명한 참조점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는 <송곳니>의 가족 권력 구조를 기업 세계로 확장했다. 신격화된 상사 레이먼드(윌럼 더포)로부터 삶을 통제 당하는 로버트(제시 플레먼스)가 살인 명령을 거절하면서 결국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이야기다. &l
[OTT 리뷰]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아일린’ ‘우씨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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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북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의 지하 단체 IRA의 도이린(케리 콘던)과 그 일당은 폭탄테러를 저지른 뒤에 수사망을 피해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도망친다. 이곳에는 살인에 환멸을 느껴 은퇴하고 마을에 정착하려는 살인청부업자 핀바 머피(리엄 니슨)가 있다. 그러던 중 핀바는 도이린의 동생이면서 아동성애자인 커티스로부터 마을의 여자아이를 지키기 위해 커티스를 공격한다. 이에 분노한 도이린은 핀바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원맨>은 <테이큰> 속 리엄 니슨의 이미지를 재탕하는 액션영화 중 하나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오랫동안 제작한 감독은 이 영화를 리엄 니슨식의 <그랜 토리노>로 그리려 한다. 북아일랜드 출신인 리엄 니슨이 <마이클 콜린스>에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를 연기했던 이미지와 액션 스타로서 가진 이미지가 배합되어 흥미를 이끈다. 다만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회피한다.
[리뷰] <그랜 토리노>를 몰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리엄 니슨, <원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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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데이지 리들리)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반드시 죽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죽음과 자신의 죽은 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환기가 된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어느 날, 프랜은 새 직장 동료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와 친해지고 둘은 데이트를 하기에 이른다. 로버트는 자신의 치부까지 내보이며 프랜과 가까워지길 원하는 반면 프랜은 로버트와 깊은 관계를 맺길 망설인다. 영화는 프랜이 상상하는 죽음을 구현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건조한 현실과 높은 채도의 몽환적인 죽음의 이미지가 갖는 괴리는 프랜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해왔다는 방증이 되어준다. 프랜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아도 갈등을 거듭하며 로버트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로맨스를 넘어 한 인물이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법을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리뷰] 죽음이 아닌 삶을 꿈꾸게 하는 당신이란 존재,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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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에 문외한인 신입 기자 코타로(오노 겐쇼)에게 크래프트 위스키 기획 기사가 배정된다. 가업을 이어 코마다 증류소를 운영하는 루이(하야미 사오리)와 다른 증류소간 대담을 옮겨 적는 일이 전부지만, 코타로는 갑자기 맡게 된 취재에 어려움을 느낀다. 한편 루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만들던 최고의 위스키, ‘코마’를 복원하는 데 열중이다. 코타로와 증류소 직원들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위스키를 되살리려는 루이의 열정에 감화되고, 루이를 도울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코마다 위스키 패밀리>는 가족이 대대로 제작해온 위스키 코마의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마스터 블렌더 루이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위스키 초보인 기자와 증류소 재건에 힘쓰는 젊은 사장이 함께 유서 깊은 실제 일본 증류소를 탐방하며 친절한 위스키 입문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위스키의 제조 공정을 따라가며 안정적인 가족드라마를 완성한다.
[리뷰] 짙은 피트 향보다는 프루티함이 도드라지는 안정적 피니시, <코마다 위스키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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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키코(스기사키 하나)는 동네에서 주목받는 인사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무슨 이유로 이사를 왔는지 궁금해하는 주민들의 시선을 받지만 아랑곳없이 새 삶에 집중한다. 그러나 심신이 약해진 나머지 길바닥에 쓰러져버리고 곧 떠도는 어린 소년(구와나 도리)의 도움을 받는다. 소년의 팔에 난 상처에 먼저 눈이 간 키코는 소년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졌음을 직감하고 보호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52헤르츠의 고래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겨온 여성이 의지할 친구들을 만나 구속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보여준다. 다른 고래들은 듣지 못하는 음역대를 가져 외로운 52헤르츠 고래들처럼 세상의 외로운 이들을 감싸안으려는 카메라의 의지적인 시선이 영화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리뷰] 더 다양한 농도로 표현할 수 있었던 고통, <52헤르츠 고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