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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는 도입부부터 실수를 저지른다. 설정 자막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설정 자막이나 내레이션 자체가 절대악인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최소한의 문장으로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면서 관객을 새롭고 낯선 곳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의 도입부 자막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지만 그 설정이 지루하고 진부하다면 시청자들은 시작하자마자 탈출을 생각하게 된다.
설정에 확신이 서는 순간 결말까지 내용이 다 보인다
설정이라는 건 이렇다. 해수면 상승 기타 등등으로 지구는 끔찍한 곳이 됐다. 인류는 달과 지구 사이에 스페이스 콜로니들을 만들었고 그중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전쟁이 난다. 이제 반쯤 지옥 같은 곳이 된 지구는 콜로니에 자원을 공급하는….
하나도 안 맞는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기타 등등 온갖 재난을 다 합쳐도 지구인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지구다. 스페이스 콜로니 사람들이 부럽다고? 지구에 똑같은 시설을 만들면 된다
[비평] ‘정이’, 너무 오래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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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공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두고 실패를 운운하는 게 의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질 두명의 목숨이 희생되긴 했지만 <교섭>은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21명을 구출한 성공 이야기 아닌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만 본다면 영화는 이제껏 봐온 유사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교섭에 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 인물이 한때 실패한 임무에 따른 트라우마를 극복한 뒤 기어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성공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대식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라크 인질 구출 작전에서 실패를 맛본 대식은 그때 생각이 때때로 밀려들어와 괴로운데, 비슷한 사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면서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손에 쥔다. 비록 두명의 목숨을 잃었지만 나머지를 구출하면서 대식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에는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에 짓눌린 무기력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 실패인지 성공인지 단정하기 애매한 순간만
[비평] ‘교섭’, 실패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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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의 기다림>은 이야기의 매혹에 대해 떠드는 적당한 범작으로 취급받다 잊히고 있는 것 같다. 내게는 이런 평가를 움직일 만한 힘도, 의욕도 없다. 다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본 뒤부터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호흡하듯 이야기하는 정령의 마음으로. 그 장면은 최고의 장면 뒤에 나온다. 지니(이드리스 엘바)의 이야기에 감명한 알리테아(틸다 스윈튼)는 첫 번째 소원을 말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를 원해요. 둘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확인하듯 하룻밤을 보낸다. 피어나는 붉은 증기. 반짝이는 검은 밤. 영화의 하이라이트임을 직감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미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몽환적이었던 지난 밤과 다르게 지나치게 선명하고 또렷한 얼굴. 그것은 간밤의 열기와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채로 티없이 투명한 아침을 맞이했을 때의 민망함을 상기시킨다. 환상에서 일상으로의 아
[비평] ‘3000년의 기다림’, 홈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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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서 그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고수하던 노아 바움백 감독이 돈 드릴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가 궁금했다.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공황에 빠진 군중의 좌충우돌을 담은 원작이 떠올랐을 수 있다. 또 유사한 시기 발달한 인터넷 기술에 따른 소셜 미디어의 확장과 함께 극단적인 우경화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태가 원작이 묘사한 히틀러와 우중에 관한 내용을 생각나게 했을 수도 있다. 감독의 관심사인 부부나 가족의 풍경을 그린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특히 마지막 추정은,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와 그 사이에서 점증하는 감정을 포획한 블로킹으로 부부와 가족의 심정적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이번 작품에도 어김없이 이어진 데서 더욱 심증을 굳히게 한다. 다만 이러한 블로킹과 편집이 영화의 스펙터클과 관계한다는 점이 새롭게 눈에 띈다.
스펙터클이 관념에서 경험으로 내려오면
두 시퀀스를 예로 들어보자.
[비평] ‘화이트 노이즈’, 비극이지만 희극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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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사이로 소리가 들린다. 내연남과 통화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소심한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외면하거나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요소>의 주된 무대인 부부의 집에서 소리는 프레임의 견고한 경계를 넘어 들린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남편은 아내와 대화하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집 안에 진동하는 하수구 냄새를 맡지도 못하지만, 실내에 울리는 소리만큼은 분명하게 듣는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화면에 침입하지 않는다면, <희망의 요소>의 영화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집 안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채로, 상대를 바라보지도 않고 주변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남자는 그러나 많은 것들을 듣는다.
첫 장면은 선언적이다. 4:3 비율의 비좁은 화면 위로 아내의 상처난 발과 발을 붙잡는 남편의 손이 나타난다. 어떤 설명도 없이 누군가의 손과 발이 과감하게 스크린에 떠오른다.
[비평] ‘희망의 요소’, 더이상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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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 나오는 동화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우리의 머릿속에 <피노키오>의 줄거리는 희미해져 있지만, 제페토가 피노키오에게 했던 거짓말만큼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바로 “거짓말을 하면 네 코가 길어질 거야”라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라는 말과 ‘가장 유명한 동화’라는 말은 같은 말일 수도 있다. 동화 혹은 넓게 봐서 픽션이라는 것은 결국엔 전부 거짓, 즉 가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동화는 선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형제 자매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 나쁜 일에는 벌이, 착한 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비평]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제페토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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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에는 놀라운 장면이 담겨 있다. 놀라움은 단지 감탄의 표현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물리적인 자극에 의한 원초적 반응을 가리키는 말이다. <엉클 분미>에서 유령이 사람들 사이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공포영화에 맞먹는 서늘함을 지닌다. 다만 유령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여느 공포영화의 문법과 갈라진다는 점을 덧붙여야 한다. <엉클 분미>에서 유령은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하거나, 혹은 생전 그대로의 목소리로 나타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본다. 사람들은 유령과 어울려 대화하고 시선을 맞추며 천진한 미소를 짓는다. 나아가 인물이 복제된 듯 분화하는 순간도 있다. 외출을 준비하던 통(사크다 카에부아디)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유령이 방금 자신이 있었던 곳에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함을 목격한다. 이 장면은 섬뜩하고 놀라운 동시에 그가 출몰한 곳이 텔레비전 앞이기에, 매체에 영혼을 빼앗긴 존재의 클리셰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유령을
[비평] ‘메모리아’, ‘카메라-눈’ 이후 ‘사운드-눈’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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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뮤지컬영화 <영웅> 덕분이다. 영상 예술인 영화는 소설, 연극, 만화, 웹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장르의 원작을 영화화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뮤지컬영화가 별로 제작되지 못하는 것은 뮤지컬(현장성)과 영화(스크린을 통해 전달)의 관람 형태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영화에서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뮤지컬영화가 시도된 것은 2006년 뮤지컬과 호러를 접목한 <삼거리 극장>(감독 전계수)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 올해 이례적으로 ‘국내 최초’를 표방한 두편의 뮤지컬영화가 등장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 2022)와 ‘오리지널 원작’ 뮤지컬영화인
[비평] ‘영웅’,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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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연출 정대윤)이 14화에서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2022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드라마는 1화에서 주인공의 억울한 죽음과 환생 설정을 공개한 후 ‘순양그룹 회장 되기’라는 목표를 향해 빠른 전개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동명의 원작 웹소설(2017년 문피아 연재, 산경)과 드라마의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순양그룹이라는 재벌 기업에서 오너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40대 윤현우 팀장은 비자금 세탁 중 살해되고 순양 재벌가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1987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게 된 윤현우/진도준(송중기)은 자신을 용도폐기 가능한 머슴 취급했던 재벌 2세와 3세들을 하나씩 격파하고 회장 자리에 앉는다.
‘회·빙·환’이 유행하는 이유
<재벌집 막내아들>의 서사 구조이자 서브 장르인 회귀·빙의·환생(회·빙·환)은 2010년대 초부터 웹소설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빙의·환생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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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바타>의 할렐루야 산은 내장된 광석들이 이룬 자기장으로 인해 공중에 떠 있다. 중력과 자기장의 저 완벽한 균형이 깨진다면 땅으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한편의 작품에도 자기장이 있다. <아바타> 시리즈의 거대한 가장자리를 둘러싼 자기장은, 우리가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시탐탐 우리의 감각을 끌어당겨 균형을 빼앗으려 든다. VFX의 성취에 제압된 나머지 제법 풍성한 영화의 내면을 보지 못하거나, 확인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제작비 액수가 사실인 양 회자되거나, 작품 곳곳의 상징이나 뒷얘기 등을 입시 문제 정답 찾듯 알아낸 다음 이거야말로 혁신이라고 추켜세우는 태도 같은 것들이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현대인의 감각은 돈과 기술에 의해 쉽게 흐트러진다. 기술은 이야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며, 돈은 기술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함을 익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혹은 우리의
[비평] ‘아바타: 물의 길’, 인류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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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드컵 기간 중에 언론에서 ‘할많하않’이란 문구를 접했다. ‘상대방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두려울 때’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왕조가 끝나고 일제강점기를 겪고 다시 군사정부를 통과하면서 사실을 말한다는 것의 두려움을 처절하게 느꼈을 터, 공포감은 터진 입을 막는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왕조 사극이 스릴러 장르와 결합하는 것의 바탕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혁명이 부재했던 한국의 옛 역사에서 왕은 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올빼미>에도 그런 대사가 나온다. “왕을 갈아치울 수도 없고.” 잘못을 저지른 왕이 악한 마음을 먹으면 도무지 대적할 방법이 없다. 현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제왕적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괴상한 짓거리에 능한 현직 대통령을 막을 수가 없다. 버럭대며 안 하겠다고, 혹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럴 때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는 상상. &
[비평] ‘올빼미’, 사실을 말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