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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 페라라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신작 <제로스 앤 원스>는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VOD 서비스로 직행한 이 영화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주된 무관심과 소수의 지독한 악평으로 채워져 있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비슷한 편인지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지만 IMDb에 등재된 평점은 페라라 영화 가운데 가장 낮은 3.3에 불과하며 적잖은 평들이 이 영화의 터무니없는 단점들을 지적한다. 이변이 없다면 <제로스 앤 원스>는 대중은 물론 시네필에게조차 환대받지 못하고 있는 페라라의 최근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별히 거센 불평과 비난에 시달리는 실패작으로 취급될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제이제이(에단 호크)가 플랫폼의 노동자들을 지나쳐 로마의 텅 빈 밤거리를 걷는 도입부의 몇 장면만으로 나는 이 영화에 사로잡혔지만, 영화에 쏟아진 악평에 맞서 적극적인 반론을 펼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장인들의 장르영화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엉성하고 조악하기
김병규 평론가의 ‘제로스 앤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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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등장하는 최악의 인간은 일단 두 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율리에(르나트 라인제브), 다른 하나는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최악이 되는 사정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에이빈드의 경우, 그 사정은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에 꼭 들어맞아 보인다. 그는 파티에서 율리에를 마주치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6장(‘핀마르크 고원’)에서 쓰인 3인칭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에 따르면, 에이빈드는 사랑에 빠진 것이 애인인 수니바(마리아 그라지아 디 메오)를 배신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자신이 최악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르웨이어 원제인 <Verdens verste menneske>, 즉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을 뜻하는 이 말에는 사랑과 관련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말일 테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의도한 최악의 인간은 다른 누구보다도 율리에이기
소은성 평론가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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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에서 단채널비디오 <소셜심>(2020)이 소개됐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지점은 ‘지난 이야기’라는 말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18분 남짓의 영상이니 ‘지난 이야기’라고 언급할 만한 내용은 사실상 없다. ‘지난 이야기’의 반복은 실체 혹은 실효성이 없는 지칭의 반복이자 일종의 챕터로 기능한다. 이는 실제 시리즈 영화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감을 주었다. 시리즈 영화의 핵심은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예고하는 부록처럼 보이는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시리즈 없이 시리즈를 구축하는 <소셜심>은 시리즈 영화가 우리를 매혹하는 지점이 다름 아닌 연속된다는 환상에 있음을 가정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반복은 ‘루프’로 순환하는 미술관의 영사 방식과 어울려 미술관 속 영상 상영에 관한 자기 반영적 코멘트로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요아킴 트리에의 <사랑할 땐 누구나
김소희 평론가의 챕터 혹은 디지털에서 발견한 필름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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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에 관한 해석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다. 영향받을까봐 쳐다도 안 보고 나의 영화 체험에서 출발해 글을 썼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두 번째 관람하기 전까지 <놉>의 마지막 장면을 OJ(대니얼 컬루야)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왜곡된 기억이 영화를 약간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어 다행이었다. 영화에 OJ가 등장하는 숏(이하 ‘OJ 숏’) 다음으로 돈 되는 영상, 일명 ‘오프라 숏’이 등장한다. 그것은 폴라로이드 필름에 인화된 하늘에 떠 있는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하 ‘오프라 숏’)이다. ‘오프라 숏’이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OJ 숏’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OJ 숏’을 다분히 사진처럼 구성하기 때문에 두숏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저 너머 먼 곳’이란 문구가 적힌 사각의 문 프레임 안에 말 ‘럭키’를 타고 서 있는 오빠 OJ의 모습은 동생 에메랄드(키키 파머)의 간절한 믿음
오진우 평론가의 <놉>, OJ는 살아 돌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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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빗줄기를 뚫고 영화관을 찾았다. 스크린엔 또 다른 재난이 있었다.
얼마 전 <비상선언>을 보지 않은 지인과 이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다 생긴 일이다. <비상선언>을 보고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다소 개략적으로 이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전혀 몰랐다는 말을 하며 다른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내가 말한 정보가 그의 선택에 얼마큼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제야 깨달은 것은 <비상선언>의 외피를 이루고 있는 어떤 요소에서도, 세월호 참사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 <비상선언>을 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영화의 어떤 요소가 그러한 감상을 불러일으킨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비상선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재난
김철홍 평론가의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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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이나 인터뷰를 더하지 않은 이 영화의 선택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안드리아 아놀드의 <카우>는 출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 영화의 주인공은 낙농장의 젖소 루마이고, 루마를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삶 자체가 출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기에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루마의 정체성은 동물이라기보단 가축에 가깝다. 그렇기에 오프닝 시퀀스의 극적인 출산 장면이나 엔딩의 충격적인 죽음 장면보단 오히려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가축으로서의 범상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이 영화의 성격을 더 잘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장에서 길러지는 가축에게 자유나 애정은 응당 주어지지 않는다. 숨 막히는 현실과 비극적 운명을 답답해하며 불현듯 이동과 여행, 탈출과 이별을 감행했던 아놀드의 극영화 속 ‘인물’들과 달리, 그의 첫 다큐멘터리 <카우>의 ‘젖소’ 루마는 어딘가로 떠나지 못한 채 농장의 일부로 살아가야만
박정원 평론가의 '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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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마지막 통신이 꺼지고 착륙을 포기한 KL501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다. 승객들은 휴대폰을 통해 각자의 가족과 마지막 통화까지 마친 상태다. 카메라는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 비행기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실루엣을 뒤에서 잡아준다. 마치 악당을 물리친 후 석양 저편으로 사라져주는 카우보이처럼. <비상선언>에서 섬뜩함을 느낀 순간은 생화학 테러를 벌인 류진석(임시완)의 광기 어린 표정을 마주했을 때가 아니다. 석양 저편으로 깔끔하게 퇴장하려는 비행기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 불쾌한 소름이 돋았다. 바이러스 치료제가 불투명한 상황 탓에 한국에서마저 착륙을 거부당한 승객들은 자발적으로 하늘에 머물기로 한다. 목적지를 잃은 저 비행기는 어디를 향해 날아가는 걸까.
<비상선언>, 위험하기보다는 게으른
달리 질문하면 조종간을 잡은 박재혁(이병헌)은 비행기를 어디에 추락시킬 생각이었던 걸까. 바이러스가 가득하니 어느 산간 지방에 내리는 것도 나쁜 선택이었을 것이
송경원 기자의 ‘비상선언’과 ‘헌트’가 제거해버린 것들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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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여파를 남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엔데믹 시대다. 관객은 얼마나 극장에 돌아왔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으로 올해 7월1일부터 8월7일까지 관객 집계를 2019년 같은 기간의 수치와 비교해봤다. 2022년 해당 기간 관객수는 21,433,249명. 2019년 같은 기간은 28,825,027명으로, 올해가 2019년의 약 74%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되고 <범죄도시2>가 ‘이제 사람들이 극장에 간다’는 신호를 준 뒤 여름 대작들이 개봉한 시기, 2019년 대비 4분의 3 정도의 관객이 극장을 찾은 것이다. 이유는? 상영작들도 다르고 코로나19 영향 또한 잔존해 있지만, 역시 관람료 인상의 영향이 클 것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을 비교해보자. 올해 해당 기간 극장 매출액은 222,270,137,116원. 2019년 같은 기간엔 241,936,701,679원이었다. 92% 수준이다. 4분
송형국 평론가의 ‘엔데믹 극장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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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퇴적되는 사건들의 장력은 영화의 끝에 가서 하나의 얼굴로 도착한다. 가뿐함과 충만함을 동시에 가로지르는 크리스의 얼굴. 그 얼굴을 만들어낸 것들을 헤아려본다.
영화는 비행기를 타고 막 어딘가에 도착한 커플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비행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자동차에 짐을 실은 후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설정한다. 그러자 안내 음성이 나온다. “1시간48분 뒤에 도착합니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절묘하게도 영화 자체의 러닝타임과 조응한다. 안내 음성을 듣고 기대에 찬 얼굴로 웃는 두 사람의 모습 또한 영화의 시작을 마주한 관객의 입장과 묘하게 중첩된다. 여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출발한다.
우연일지도 모르는 이 사소한 시간 단위의 일치는 앞으로 전개될 ‘영화 속 영화’에 대한 희미한 예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기대감을 더욱 특수하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이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성지’와도 같은 포뢰섬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커플로 등장하
김예솔비 평론가의 ‘베르히만 아일랜드’, 떠남의 몸짓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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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외계인’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낯선 존재를 다루는 영화의 방법을 생각해봤다.
최동훈의 영화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순간은 쌍둥이라는 설정에 관한 연출자의 일관된 관심이 드러날 때다.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형제와 <암살>의 안옥윤과 쌍둥이 언니 미츠코, <전우치>에서는 쌍둥이로 표현되는 대신 전생에 마주친 여인과 똑같이 생긴 현대의 인물 서인경이 등장한다. 이런 영화적 분신(分身)들을 최동훈은 적극적으로 배치해왔다. 똑같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의 출현은 목격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정체를 숨기는 속임수를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반대의 삶에 던져진 인물들의 운명적 소용돌이를 영화에 도입하는 기제로 쓰인다. <암살>의 주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면에서 안옥윤은 암살 대상인 친일파 아버지가 미츠코를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거울이 깨져버리자, 건조한 임무의 수행자이던 안옥윤에게 멜로드라마적 정념의 복수자라는 면모가 덧붙는다. 안옥
김병규 평론가의 '외계+인' 1부와 '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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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의 진정한 주인공은 한산대첩이 아니라 바로 이순신이어야 했다.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개봉 이후 놀라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가속도를 감안한다면, <명량>을 넘어설 기세다. 그렇다면 <한산>은 정말 이름값을 하는 역작으로 영화사에 남을 것인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산>에 찬물을 끼얹거나,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를 따지는 케케묵은 논쟁을 벌이고자 함이 아니다. <한산> 시사회에서 필자는 이 영화가 단순히 이순신을 ‘다룬’,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데 실망했다.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한 다음날 다시 한번 상영관을 찾았지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영화비평가와 대중에게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이 영화가 이순신을 다룬 역사물임에도 이순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쳤다. 실제로 대중은 9점
남송우 교수의 ‘한산: 용의 출현’, 사실과 허구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