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지난 3월 콘솔게임 역사상 최다 월간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글로벌시장 정보 업체 슈퍼데이터는 3월 전세계 디지털게임 매출액 또한 1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하며 코로나19 이후 게임 업계의 선전을 알렸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직격탄을 맞은 영화산업과 달리 방구석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를 안전하게 즐기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게 된 것 같다. 더군다나 최근 뭇 게임이 구현하는 가상현실의 퀄리티는 이미 그 자체로 영화적인 경험과 맞먹는다. 영화 같은 드라마, 영화 같은 게임이라는 말이 있듯, 스토리텔링 산업의 최종 콘텐츠로서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려왔던 영화는 이제 게임을 비롯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는 여타의 콘텐츠 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시점에서 게임과 영화의 관계를 다시 고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이
[장영엽 편집장] 게임과 영화의 관계 맺기
-
2013년 5집 앨범 이후 가뭄에 콩 나듯 활동하던 더 스트록스가 2020년, 6집 앨범 《The New Abnormal》을 드디어 발표했다. 7년. 무려 7년이 걸렸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왜냐고 물었더니, 뭐, 그냥, 좀 사이가 안 좋았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한다. 그렇게나 오래 걸렸다면 음악적인 발전을 빙자한 여러 시도가 있었을 법한데 막상 들어보니 오히려 소박하다. 80년대 신스팝의 레퍼런스를 끼워넣으면서 90년대를 소환하는 인디록과 개러지가 교본처럼 정확하게 들린다. 새로움을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실망일 수도 있지만, 얼터너티브의 얼터너티브가 대세인 요즘 음악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앨범이다. 특히 마지막 트랙 <Ode to the Metz>의 후렴구와 옥타브를 넘어 시원하게 터지는 줄리언 카사블랑카스(리드싱어)의 노랫소리는 내 안의 통속성을 후비고 떼창 욕구를 자극한다. 스트레스 쌓인 도시 운전자가 차 안에서 볼륨을 끝까지 틀어놓고 목청
[Music] 떼창 유발자들 - 더 스트록스 The Strokes
-
중학교 시절,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 H와 종종 하교를 함께하곤 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진입로를 지나 학교 아래에 다다랐을 때 빨간 소형차를 보았다. “혹시 너희 2학년이니?” 차 앞에 서 있던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네.” “나, 6반 제일이 엄마인데, 6반은 아직 안 끝났니?” 6반이라면 우리 옆 반이었다. 우리 반이 종례가 늦게 끝나서 하교 때 이미 그 반은 아무도 없었다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집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시내에 있는 학원에 갈 거라고 하자, “제일이 데리러 온 건데, 제일이는 먼저 갔나 보네. 대신 아줌마가 너희들 학원까지 태워줄게”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 올랐다. 제일이라는 친구의 존재를 그날 처음 알았다. 학원까지 가면서 아주머니는 우리의 이름을 물었고,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아들 제일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다. 사는 곳이며, 아들이 나온 초등학교, 그가 가장
사월의 기억
-
아기(Baby), 동물(Beast), 미녀(Beauty)가 등장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광고계의 ‘3B 법칙’처럼 한국 예능계에는 ‘남자, 아기, 백인’을 등장시키면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 마침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이하 <어서와~>) 벨기에 편에 등장한 세 살짜리 아기 ‘우리스’는 이 세 가지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출연자다. 벨기에의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90년대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르완다 편 직후에 벨기에 편을 편성한 제작진의 무지와 무신경에 대한 비판이 슬쩍 묻혔을 만큼, 예능에서 귀여움은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어서와~> 벨기에 편에서 드러난 건 또 다른 측면의 무지와 무신경이다. 여행에 참여하지 않은 우리스의 엄마는 원래 자신보다 남편이 아이를 많이 돌보기 때문에 둘이 같이 잘 지낼 거라며 걱정 없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제작진은 계속 ‘엄마의 부재’를 강조하며 ‘아빠 육아의 한계’를 웃음 포인트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아빠가 애 보는 거 처음 보나?
-
-
<미몽> 제작 경성촬영소 / 감독 양주남 / 상영시간 48분 / 제작연도 1936년
영화 <미몽>이 담고 있는 1930년대 중반의 식민도시 경성은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인식해온 일제강점기의 모습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라 잃은 울분과 슬픔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것처럼 보이고, 자동차와 기차 같은 서구 근대 문물이 만들어낸 속도감에 이미 익숙한 듯 행동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비싼 옷을 찾아 헤매는 ‘데파트’(백화점)로 시작해, 어른들의 욕망이 오가는 카페와 호텔 장면까지 보고 있자면, 소비문화를 탐닉하는 수준이 아니라 데카당한(퇴폐적인) 공기까지 감지된다. 영화는 사람들의(무)의식적 욕망을 포함해 당대의 사회문화를 기록하고 반영하는 매체라는 말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식민지의 풍경이 전혀 거짓된 묘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대중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매체라는 영화의 본질에 이르면, 이 영화의 층위는 좀더 복잡해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신파극 '미몽'
-
[정훈이 만화] '건즈 아킴보', 우승 상금이 십 만 달러?!
[정훈이 만화] '건즈 아킴보', 우승 상금이 십 만 달러?!
-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는 금세 대답하면서, ‘당신은 시네필인가요’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저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누가 봐도 영화광인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을 뜻하는 ‘시네필’이란 단어는 언제부턴가 대다수의 영화 팬들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거리감을 가지게 된 듯하다. 영화라는 매체예술의 외연이 확장되고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또한 다각화된 이 시대,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영화를 향한 사랑의 행위들을 설명하기 위해 시네필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씨네21> 창간 25주년을 기념하는 연속 특집의 세 번째 기획이자 마지막 특집인 ‘우리 시대의 시네필’은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스크린>과 <로드쇼>, <씨네21>과 <키노>, 프랑스문화원과 서울아트시네마, 영화마당우리와 서울영화집단. 담론을 형성하는
[장영엽 편집장] 당신은 시네필인가요?
-
지난 3월 ‘도이체 그라모폰’이 주최한 온라인 스트리밍 콘서트에서 그는 단연 튀는 존재였다. 세계 최고 클래식 레이블의 연주자들이 ‘피아노의 날’을 맞이해 하는 행사라는데,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가정용 업라이트피아노로,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곡이 아닌 자작곡을 연주하다니.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라이브를 공짜로 듣고 그들의 집 구경도 하는, 코로나 시대에 맞이한 반짝 행운으로 이 행사를 기대했던 국내 팬들에게 네덜란드 뮤지션 윱 베빙의 순서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의 역사에서 현재가 어느 좌표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몇 백년간 음악은 장조-단조 체계 위에서 복잡성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 복잡성이 절정에 달한 끝에 조성 자체를 거부하는 무조음악이 탄생했고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니멀리즘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음악은 다른 차원을 향해 가고 있다. 음악의 필수 3요소- 선율, 리듬, 화성- 외에
[Music] 소리를 탐구하다 - 윱 베빙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물이 도착했다. 두툼한 분량이지만 다 읽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후보자명과 정당명을 유권자에게 빠르고 확실하게 주지시키겠다는 실용적 목적으로 제작된 이 선거공보들을 읽는 심사는 답답하다. ‘미래, 기회, 경제, 통합, 위기, 국민, 개혁, 혁명’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정당이 없고, 모든 문장에 느낌표가 남발된다. 그야말로 전력투구의 문장들이 눈앞을 어지럽힌다.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후보 얼굴 사진이 실리고, 뒷면에는 직업과 기족관계, 학력 및 경력, 재산 상황과 세금 납부 실적 및 전과기록이 적힌다. 이 작은 책자에 수십년의 인생사 세목을 구겨넣고, 그 와중에 정치적 비전까지 기입해야 하니 참으로 고단한 글쓰기였을 테다. 한데 바로 그 짤막한 문장 몇개, 후보의 시선 처리, 셔츠 소매 모양, 넥타이 색깔 따위가 그의 정치철학과 자아상을 반영하도록 면밀하게 계산된 ‘기호’라는 점이 선거공보의 묘미다. 모든 문장을 “충성” 운운하는 군사화된
코로나19 시대의 선거 유감
-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지역사회에서 명망을 쌓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곁에 있는 삶. 완벽하다고 여겼던 세계가 완벽한 기만이었음을 알게 된 지선우(김희애)는 외도한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가슴에 의료용 가위를 꽂는다. 선우의 상상 속에서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며 선우가 느끼는 환멸에 공감하는 한편, 완벽함의 기준에 의문이 생겼다. 비에 젖은 양말을 현관에서 벗기 귀찮아 거실에 발도장을 찍고 다니는 남자. 조리 중인 갈비찜을 꺼내 쩝쩝거리며 뜯어먹더니 식탁에 흘린 양념 국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손가락만 춥춥 빨아대는 태오가 외도하기 전엔 괜찮았단 말이야?
원작의 남편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에서 방영한 <닥터 포스터>를 같이 보았다. 무능하긴 매한가지. 저쪽은 그래도 가사 노동과 아들 양육에 참여한다. 집을 나가라고 트렁크를 싸놨더니 만취해 기어들어온 태오가 ‘꿀물’을 달라고 했던 장면이 원작에선 그냥 ‘물’이다. 느릿한 좀비도 이 땅에
<부부의 세계>, 거짓과 헌신으로 유지되는 세계
-
[정훈이 만화] <n번째 이별중>이별 통보를 막기 위해 현재 n번째 이별중인데…
[정훈이 만화] <n번째 이별중>이별 통보를 막기 위해 현재 n번째 이별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