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도이체 그라모폰’이 주최한 온라인 스트리밍 콘서트에서 그는 단연 튀는 존재였다. 세계 최고 클래식 레이블의 연주자들이 ‘피아노의 날’을 맞이해 하는 행사라는데,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가정용 업라이트피아노로,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곡이 아닌 자작곡을 연주하다니.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라이브를 공짜로 듣고 그들의 집 구경도 하는, 코로나 시대에 맞이한 반짝 행운으로 이 행사를 기대했던 국내 팬들에게 네덜란드 뮤지션 윱 베빙의 순서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의 역사에서 현재가 어느 좌표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몇 백년간 음악은 장조-단조 체계 위에서 복잡성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 복잡성이 절정에 달한 끝에 조성 자체를 거부하는 무조음악이 탄생했고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니멀리즘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음악은 다른 차원을 향해 가고 있다. 음악의 필수 3요소- 선율, 리듬, 화성- 외에 음향이라는 영역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것. ‘같은 음을 연주하더라도 어떤 질감으로 구현할 것인가.’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은 어떤 사운드로 채울 것인가.’ 조성으로도, 조성이 아닌 것으로도 해볼 건 다 해본 끝에 현재의 음악가들은 소리 그 자체를 가장 열렬히 탐구하게 되었다.
윱 베빙의 최신 싱글 《Ala》는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다. 2분 내내 3박자를 유지하며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진행되는 이 곡에는 페달을 밟는 소리는 물론, 해머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가 두드러지게 담겨 있다. 베빙이 업라이트피아노의 상판을 떼어내고 연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음이 곧 음악이 된 시대가 됐다. 우리의 귀가 과거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미래의 클래식은 만들어지고 있다.
PLAYLIST++
《Solipsism》
2015년 발표된 윱 베빙의 데뷔앨범. 손목 부상으로 접었던 뮤지션의 꿈을 결국 놓지 못하고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만들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피아노로 집 부엌에서 3개월에 걸쳐 녹음한 이 음반은 스포티파이에서 6천만 스트리밍을 기록하기도. 도이체 그라모폰의 이사 크리스티앙 바드주라가 베를린의 술집에서 우연히 이 음반을 듣고 감동해 그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비킹구르 올라프손 《Bach Reworks(Pt.1)》
역시 도이체 그라모폰 소속의 피아니스트로 온라인 콘서트에서 윱 베빙의 바로 앞 순서에 출연했다. 피아노의 컨디션을 의도적으로 변형하고,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접목시키는 등 익숙한 바흐의 음악을 음향적으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한 앨범. 클래식 연주자의 퍼포먼스가 악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상으로 확대됨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