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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를 다녔고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며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한때 이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고 법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문과와 이과 구분이 그때만 해도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거대한 선택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련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화학, 수학1, 수학2 등을 숨차게 배우고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다시 한번 큰 결정을 내렸다. 문과로 전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예술과 철학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수학과 과학만 머리 빠지게 공부하고 있자면 즐거우면서도 숨이 막혔다. 유기화학 단원이 재밌어 죽겠으면서도 미술사 책에서 읽은 내용이 자꾸 생각났다. 파동 단원이 너무 흥미로우면서도 음악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생각들을 충분히 숙고해보기도 전에 배워야 할 분량과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밀려왔
혼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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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2014년 비가 “지금 어디야 XX놈아 내 전화 빨리 받아라/ 지금부터 내 여자한테 전화하면 죽는다”(<차에 타봐>)라는 노래를 당황스러울 만큼 감미로운 창법으로 불렀을 때? 2017년 “15년을 뛰어/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깡>)라고 자랑하며 자만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을 때? 2018년 주연을 맡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을 둘러싼 여러 해프닝 및 흥행 실패로 ‘1UBD(엄복동)=17만(총관객수)’이라는 단위가 자리 잡았을 때? 아니면… 6개월 전 유튜버 ‘호박전시현’이 “1일 1깡 여고생의 깡”이라는 제목으로 근육을 형상화한 상의에 체육복 바지 입고 교탁 옆에서 춤추는 영상(누적 조회수 327만)을 올렸을 때?
한 시대를 가진 적이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 안타까운 선택을 거듭하
'놀면 뭐하니?', 자아도취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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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제작 동서영화기업사 / 감독 윤용규 / 상영시간 76분 / 제작연도 1949년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전으로 식민지 조선은 해방을 맞았다. 이때부터 1948년 남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1950년 6·25전쟁으로 충돌하기까지 약 5년간, ‘조선영화’는 남한의 ‘한국영화’와 북한의 ‘조선영화’로 나뉘어졌다. 해방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반도를 지칭할 때 여전히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처럼, 해방기 영화계 역시 일제 시기에 이어 조선영화라고 불렀고, 이러한 호칭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호명의 문제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시기 한국영화는 후기(탈)-식민주의 과제부터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 그리고 국가와 영화의 관계까지 해방기의 어지러운 정치사회상을 몸소 새기고 있다. 우선 해방기 극영화의 대표작 <자유만세>(1946)와 <해연(일명 갈매기)>(1948)부터 생각해보자. 해방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월북 영화인 관련 쟁점과 <마음의 고향>, 그리고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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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콜 오브 와일드' 나는 벅이라고 해
[정훈이 만화] '콜 오브 와일드' 나는 벅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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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SF웹툰 <승리호>가 카카오페이지와 다음웹툰 플랫폼에서 공개됐다. 무료로 공개된 3편의 에피소드는 이틀 만에 39만뷰(카카오페이지)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웹툰 <승리호>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영화 투자·배급사 관계자들로부터 ‘2020년 가장 기대되는 영화’로 손꼽혔던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와 세계관과 캐릭터를 공유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동안 <신과 함께> <강철비>와 같이 인기 웹툰이 영화화되는 사례는 적지 않았어도 영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웹툰이 제작되는 사례는 드물었고, 그마저도 영화의 프리퀄이나 후일담을 다루는 선형적인 서사구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되 “40%는 재창조된 스토리” (웹툰 <승리호>의 홍작가)를 전개하겠다는 웹툰 <승리호>의 행보가 더욱 궁금했다.
카카오페이지에 무료로 공개된 세편의
[장영엽 편집장] IP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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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터커의 진가를 알게 된 건 <HBO> 드라마 <뉴 포프> 덕분이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TV시리즈 <영 포프>의 후속작인 <뉴 포프>의 타이틀 시퀀스에 소피 터커의 <Good Time Girl>이 쓰였는데 수녀들의 도발적인 춤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불경스러운 멋이 날리는 강한 펀치에 머리가 띵해질 지경이었다. 소피 터커는 소피 홀리 웰드와 터커 핼펀으로 이루어진 혼성 일렉트로 팝 듀오다. 팝이라고 하기에는 90년대 하우스에 받은 영향이 크고, 노래가 들어간 트랙이 많지만 무대 위 그들에겐 DJ 부스가 필수다. 2016년에 발표한 데뷔 싱글 《Drinkee》와 2018년의 첫 정규앨범 《Treehouse》가 줄줄이 그래미어 워즈 후보에 올랐고 요즘 잘나가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지금쯤 온갖 페스티벌에 나와 춤추는 관객의 심장박동수를 올리고 있어야 할 소피 터커에게도 2020년이 찾아왔고, 그리하여
[Music] 이동제한 시대의 하우스 파티 BGM - 소피 터커 Sofi Tuk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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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다. 법률문장을 쉽게 고쳐 쓰자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높임말로 쓰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런 흐름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은 한글이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한국어 문법을 일부 차용한 일종의 외국어나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법률문장에는 국가의 사법권을 행사하고 법적 개념을 정립한다는 목적이 있다. 개념어가 최대한 하나의 뜻을 가져야 하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는 내가 ‘작가도 변호사도 글 쓰는 직업이니 비슷한 일이겠지’라는 착각으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게 분명 한글을 사용한 글이긴 한데, 내가 알던 그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번역가로 일해온 경력이 법률문장론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법률문장론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 중에 ‘
언어의 효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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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생운동을 하다가 대기업에 입사해 재벌가 사위가 되고, 장인 대신 4년간 감옥에 갔던 한재현(유지태). 그는 대학 시절 첫사랑이었던 윤지수(이보영)를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상대방측 부모로 만나게 된다. 기차역엔 눈이 펑펑 내리고 재현은 20년도 더 지나 나란히 선 지수를 향해 입을 뗀다. “설국이네요. 여긴….” 대한제국 황제가 정7품 애마에게 “왜 그래 맥시무스”라고 말하는 장면보다 천배쯤 버겁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입이 트인 재현은 학부모 입장으로 존대를 하다가 이내 20년 전 허물 없던 사이의 말투를 오가며 혼자 한참을 떠든다. 그가 말하는 동안 지수의 얼굴은 울음을 참느라 서서히 일그러진다. 할 말이 너무 많이 쌓이면 헛돌게 마련이고,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잃기도 한다. 당신들은 무슨 세월을 살았길래.
tvN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연희대 93학번 신입생 지수(전소니)와 91학번 운동권 재현(진영)이 사랑하던 93년부터 95년까지의 시간과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그들이 살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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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감독 사라 폴리가 어린 시절에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를 매우 좋아한다. 소설 <그레이스>의 판권을 사고 싶다는 그 당찬 포부가 단박에 거절당했다는 결말까지도. 17살의 소녀를 사로잡은 <그레이스>는 캐나다의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이 실화는 알면 알수록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실제로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사건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고, <그레이스>를 쓰기 전 이미 드라마 극본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무슨 사건이었길래 이 영민한 여성들을 모두 사로잡은 것일까.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치정 살인사건이었다. 1843년, 그레이스 마크스는 살인사건으로 체포된다. 그녀가 일하던 집의 주인 토마스 키니어와 가정부 낸시 몽고메리를 살해한 혐의였다. 이때 낸시는 임신 중이었다. 그레이스에게는 제임스 맥더모트라는 공범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사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때 그레이스의 나이는 겨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무늬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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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카페 벨에포크' 고객 맞춤형 가상현실로 고객이 원하는 바로 그 순간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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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20주년을 맞았다. 2000년 5월 20일,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뒤 21세기 걸작 영화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 작품의 시작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난 5월 20일 각종 SNS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진과 글이 쏟아졌다. <화양연화>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났던 순간을 추억하며 <씨네21> 홈페이지에서 아카이브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지아장커 감독이 2001년 <화양연화>에 대해 쓴 리뷰다. 그는 20년 전 영화 <플랫폼> 상영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폐막작의 감독으로 부산에 온 왕가위와 조우했다고 한다. 지아장커는 부산에서 <화양연화>를 보지 못했으나, 영화제를 찾은 젊은 관객이 십중팔구 손에 든 <화양연화>의 팸플릿을 보고 이 영화가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유행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화양연화>는, 지아장
전주에서 만나요, 천천히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