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시들고 멍한 느낌으로 영화구경을 가고 양복점에 들른다. 독선과 주장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고 있는 덩치만 큰 백조처럼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일 포스티노>(1994)에서 평소 문학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우편배달부(마시모 트로이시)는 바로 그 마을로 망명생활을 오게 된, 그리하여 우편물을 갖다 주러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된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누아레)의 시를 우연히 읽고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설명을 부탁하는 그에게 네루다는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져. 나는 내가 쓴 것 이상으로 내 작품을 더 설명할 수는 없어”라고 답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 이렇게도 덧붙인다. “그냥 우편배달부 일을 해. 많이 걸으니 살도 안 찌고 얼마나 좋아. 시인들은 나처럼 다 뚱뚱해.”
물론 시를 쓰고 싶다는 그를 완전히 모른 체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냐는 물음에 “해변을 따라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시(詩), 우리 영혼의 가압장
-
어떤 음반을 소개할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마침 고대하던 비가 내린다. 그래서 이번 호엔 장마철에 멍하니 창밖을 보며 듣기 좋은 음반을 소개한다. ‘밴드 오브 호시즈’의 《Why Are You OK》라는 음반으로 6월10일 발매한 따끈따끈한 신보다.
미국 시애틀 출신의 이 얼터너티브 록 밴드는 2006년 정규 음반 《Everything All the Time》을 공개한 후, 컨트리와 포크라는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인디 록에 섞어내며 평단과 대중의 고른 호평을 받아왔다. 2004년, 밴드의 중심이자 매력적인 목소리로 열성 팬을 보유한 벤 브리드웰이 (지금은 탈퇴한) 베이시스트 크리스 얼리와 드러머 팀 메이닉과 의기투합하여 결성했다. 첫 음반의 기념비적인 첫 싱글 <The Funeral>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이들은 금세 전국구 밴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밴드 오브 호시즈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음반 《Why Are You OK》는 기존 팬은 물론 그들의 음악을 처
[마감인간의 music] 가볍게 흔들기 좋은 - 밴드 오브 호시즈 《Why Are You OK》
-
어쩌다가 세명의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내 어머니, 아내의 어머니, 한 동네 사시는 그 어머니. “모신다”는 말은 거창하고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으므로 수정한다. 어쩌다가 세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이 말도 이상하다. 바꿔 말한다. 어쩌다가 세 어머니와 만나고 있다.
사실 ‘그 어머니’를 잘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시는 그 어머니는, 어쩌다가 우리집 큰애와 인연을 맺는 바람에 만나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주로 그 어머니/할머니를 만난다. 나는 늦은 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인상 깊은 말씀이 있었다. “나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다”는 말이었다. 당신 얘기는 아니고, 당신의 동생에 관해 얘기하다가 결론처럼 하신 말씀이라 했다. 여러 사정 때문에 낳아준 엄마 곁을 떠나 길러준 엄마 곁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고,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뒤이은 번민과 갈등, 새롭게 싹튼 정에 관한 얘기였다. TV드라마 같지만, 그래서 평범한
[노순택의 사진의 털] 나쁜 끝은 없다 착한 끝은 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엔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 각자의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 뭐가 들을 만한 얘기인지 가려 듣는 것도 일이다. 약장수 같은 자극적인 어조로 목소리를 높이고 그러다 싸움이 붙고 누군가는 사이비 같은 복음을 전파하고 또 누군가는 사람들이 보건 말건 부끄러움도 모른 채 배설을 하기도 한다. 광장에 들어온 이상 피할 도리는 없다. 이쯤 되면 이 광장에 피로감이 생길 만하다.
지난해에 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대사는 이랬다. “인터넷을 혐오한다.” 본인이 투영된 여배우 역할이었기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린 대사였는데 인터넷이 혐오스러운 게 비단 유명인에게 국한된 일일까 싶긴 하다. 익명으로 무장된 무책임한 댓글들은 부분이다. 클릭 수에 의지하는 기사들은 팩트보단 자극으로 일관돼 피로감에 무게를 더한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광장을 나와 내 삶에 영향을 준다.
거듭된 혐오와 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사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광장 안의 못난이
-
-
류성희 미술감독(<아가씨> <올드보이>)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나를 울게 만드는 사춘기 영화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엘리펀트 맨>(1980)은 지금도 꼭 혼자서만 본다. 신파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영화 앞에선 맥을 못 추고 눈물을 쏟아낸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당시 나는 아직 진로에 대한 정확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막연히 미술대학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입시 실기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주변의 만류에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입시라는 거대한 공포 앞에서 음악과 영화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던 그 시절, 비디오테이프를 구해보기도 어려웠던 때라 온 가족이 모여 보는 TV 명화극장이 낙이었는데, 아마도 그날은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었나 보다. 동생들에게는 오랫동안 돈을 모아 어렵게 구한 핑크 플로이드의 중고 원판 음반을 던져놓았다. 내 여형제들은 모두 당시에는 드물었던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의 광팬이었다.
[내 인생의 영화] 류성희의 <엘리펀트 맨> 이것이 연출이구나
-
※<양치기들>의 스포일러가 6월4일 일기에 있습니다.
<아가씨 가까이>는, 영화 <아가씨>를 찍거나 <아가씨>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박찬욱 감독이 찍은 이미지를 모은 사진집이다. 빛과 바람조차 인위와 선택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영화현장을,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 하나로 대뜸 낚아채며 감독이 느꼈을 해방감을 짐작할 수 있다. 독자마다 베스트 컷이 천차만별인 이 사진집에서 내 마음이 기우는 사진은 37쪽의 <아가씨, 촬영팀>이다. 히데코(김민희)의 방에 자리잡은 정정훈 촬영감독을 포함한 촬영부와 그립팀을 담은 스냅숏이다. 여섯 인물의 시선은 모두 어긋나 있으나, 같은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그저 망연자실한 것일 수도!).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동일한 번민이라는 점 때문에,‘십자가 강하’나‘예수 재림’을 그린 서양 종교화를 보는 듯하다.
06/03
어제 저녁 무주산골영화제에 도착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인 캠핑장을 산책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양들의 침묵
-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나폴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렸던가. 하지만 나폴리는 그 모든 것 이상이다. 나폴리의 풍경은 사람의 감각을 잃게 한다.” 그리고 괴테가 이 책에서 소개한 뒤 더욱 유명해진 말이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도시 나폴리’인 만큼, 도시의 풍경이 뛰어나다는 주장일 테다. 밀라노가 북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이라면, 남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은 나폴리다. 그런데 밀라노 같은 북부 산업도시를 본 뒤, 나폴리에 도착한다면, 아마 여행객들은 괴테의 말을 믿기 어려울 것 같다. 풍광 이전에 혼란과 가난에 먼저 압도되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며칠 동안의 여행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에겐 괴테와 같은 아름다운 기억을, 또 누군가에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두 얼굴의 도시가 나폴리일 것이다.
웨스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나폴리, 남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 <고모라>, <나폴리의 황금> <도시 위의 손>
-
점집에 갔다가 관목에 불이 붙어 꽃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 점쟁이는 내가 3n살에 무당이 될 테니 슬슬 이쪽 공부를 시작하라고 했다. 수상한 점집 체험담이야 흔해빠졌고 복채 약간으로 이야깃거리를 얻은 셈 치려 했는데, 구체적인 시기의 언급만큼은 떨칠 수가 없었다. 문제의 그때까지 노심초사하다 지나고 나니 어찌나 억울한지.
직업이 바뀐다는 소리에도 이렇게 휘둘리는데, 내 운명에 큰 칼이 있어서 가족과 주변을 해친다는 예언에 짓눌린다면 그 삶이 얼마나 피로할까? MBC <운빨로맨스>의 심보늬(황정음)는 호랑이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야 동생이 죽지 않는다는 끔찍한 예언에 매달리고 도사에게 의지한다. 액땜용 소금을 휴대하고, 노란색과 주홍색 조합이 마치 인간 부적으로 보이는 옷을 차려입고 호랑이띠 남자를 찾아다니는 여자의 절박함이라니. 납득은 하지만 다시 공감하기 싫은 마음이 컸다.
미신을 질색하는 호랑이띠 제수호(류준열)와의 로맨스는 당연히 트러블
[유선주의 TVIEW] <운빨로맨스> 무엇을 믿을까?
-
[정훈이 만화] <컨저링2> 욕심은 금물
[정훈이 만화] <컨저링2> 욕심은 금물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환상특급>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게 있다. 소년이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 부모는 사이가 나쁘다. 부모가 또 다투는 동안 소년은 혼자 동굴 사파리에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유리벽으로 막힌 방들이 있다. 방 안에는 부부가 한쌍씩 들어가 있다. 소년이 지나가는 동안 그들은 소년에게 우리가 얼마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구애하고 설득한다.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나서 큰소리로 외친다. 마지막 방에 이르러 소년은 어느 소박해 보이는 부부를 발견한다. 이 부부는 소년에게 뭘 사줄 수 있는지 말하는 대신 사랑해주겠다고 말한다. 다음 장면에서 소년은 마지막 방에 갇혀 있는 부부의 손을 잡고 사파리를 떠나고 있다.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소년의 부모는 예의 그 방에 갇혀 떠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향해
애타게 부르짖는다.
한편의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순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영화들은 관객의 사랑을 얻길 갈구한다. 겉으로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장르적인 소재를 뜻밖의 방식으로 다루는 <비밀은 없다>
-
홍상수도 나쁜 남자다, 라고 영화평론가 김경욱은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2004년 <씨네21> 451호에서 김경욱은 ‘페미니즘의 비평적 딜레마를 응시하기’라는 제목의 비평을 통해 “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용서가 안 되는데, 홍상수의 영화는 도마 위에도 오르지 않는 것일까?”라고 묻고 “결국 홍상수든 김기덕이든, 그들 영화 속의 남성 인물들은 고통의 자리를 껴안거나 게임의 형식을 가져와서, 여자를 즐긴다. 그들 영화가 주는 지옥 같은 경험은 그 즐거운 향락에 있다”고 썼다. 심지어 홍상수의 영화에 한해서는 “여자들은 매번 남자들의 성적 욕망과 이기심의 대상으로 축소되고 소비된다. 여자가 완강하게 거절할 때 폭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섹스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대신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언제나 하고 싶어 하거나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이때는 홍상수 감독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홍상수와 페미니즘, 그 비평적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