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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다는 이유로 괜히 사랑스러워지는 것들이 있다. <브루클린>을 보고 극장 밖을 나서던 날, 문득 배가 고파졌다. 극장 주변이야 번화가라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도 몇 군데 있었지만 굳이 동네 근처 시장골목 백반집을 찾아갔다. 조금 과한 양념과 조미료로 기억되는 대수로울 것 없는 가게인데 꽤 자주 찾는 편이다. 크고 작은 핑계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무래도 가까워서다. 때로 애정은 물리적인 거리에 비례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괜히 살갑게 느껴지고 눈에서 멀어지면 어여쁘던 것들도 점차 마음이 식는다. 한참을 발품 팔아 찾아간 맛집보다 이젠 조미료 양까지 인이 박인 동네 식당이 더 정겨울 때가 있다. 얼른 배를 채우고 집에 가서 침대에 몸을 던지도록 허락하는 그 거리가 매번 고맙다.
<브루클린>의 마지막, 에일리스(시얼샤 로넌)가 배관공 토니(에머리 코언)의 가게 앞을 찾아가 그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따라 미소 지었다. 앞으로 두 사람에게 펼
[송경원의 덕통사고] 따뜻한 간지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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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걸작의 운명을 타고난 앨범들이 있다. 이를테면 라디오헤드의 신보가 그렇지 않을까. “라디오헤드의 새 음반은 마스터피스(아직 안 들어봤음)”라는 어떤 사람의 장난기 섞인 트윗은 그에 대한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스터피스라는 결과물이 과연 8살짜리 아이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여기에 의문을 지닌 베스 고든이라는 일반인이 자신의 아이에게 라디오헤드의 신보 《A Moon Shaped Pool》을 들려주고 감상을 적어보라고 했다. 8살짜리인 이 아이에 따르면 라디오헤드의 새 앨범은 ‘괜찮은’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10점 만점에 7점을 줬으니까 말이다. 또한 최고의 트랙으로는 <Desert Island Disk>를 꼽았는데, 10번째에 위치한 <Tinker Tailor Soldier Rich Man>에 가서는 “이게 베스트”라며 의견을 바꾸는 유연함도 드러냈다. 그러나 라디오헤드라도 이 영악한 비평가의 칼날을 벗어날 순 없었다. 두 번
[마감인간의 music] 8살 아이의 점수는요 - 라디오헤드,《A Moon Shaped 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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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번호 345번. 야반도주한 사장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죄’로 벌금 140만원을 선고받고, 부당한 돈을 납부할 수 없어 감옥으로 들어갔던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유흥희. 그녀는 보름 동안 “345번!”으로 불렸다.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서던 친구들의 얼굴에 드리웠던 허망한 웃음과 그늘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휴식을 준 셈 치자”며 서로 위로하던 이들은 이틀 뒤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감 과정에서 ‘알몸 검신’이 자행됐고, 항의하는 그녀를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강제 굴복시켰다는 얘기였다.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유흥희에게 누군가 내뱉었다는 비아냥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보네.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
친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빼올 수도 없었다. 벌금을 대납하면 그녀는 나온다. 허나 그것은 그의 신념을 거스르는 일이다. 인권유린을 폭로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감수성을 잃어버린 이 사회의
[노순택의 사진의 털] 초인종을 마구 누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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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마션>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건 화성의 적막함도,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도, 그 사이를 맴도는 기묘한 낙천성도 아니었다.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어디선가 날아온 파편에 부상을 입고 화성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라면 저 상황에서 며칠 못 버티고 죽었겠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와트니는 훌륭한 과학자였다. 해서 나사(NASA)와 연락을 취하는 데 성공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게 해줄 작물도 길러낸다. 줄이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영화를 보았든 보지 않았든 간에 화성에서 생존하기가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알 것이다. 하나의 물 입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산소 둘에 수소 하나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화성 탐사대원이 될 수도 없겠지만, 여차해서 화성에 간다 하더라도 <마션>의 주인공처럼 물을 만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구에서 생존하기 - 가습기 살균제 관련 뉴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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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만화와는 점점 멀어졌다. 그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헌책방은커녕 만홧가게도 없었다. 집에서 버스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면 여자 고등학교 앞에 서점이 하나 있기는 했고, 조금 더 걸어가면 레코드 가게가 있기는 했지만, 서점을 가느라 길을 걸으면 왼쪽에는 한없이 이어진 담벼락이었고, 오른쪽에는 차가 달리는 차도. 그것밖에는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구경할 것도 없었고,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다. 길을 걸으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 나를 붙잡아 헤드록을 걸거나 간지럼을 태워 나에게 애정표현을 하던 구두닦이 소년도 없었고, 휴가 나와 대낮부터 술에 떡이 되어 거품을 물고 쓰러진 이등병 따위는 절대 볼 수 없었다. 신촌 목마 레코드의 고색창연한 나무 미닫이문의 낭만적인 분위기나, 홍익서점의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책들이 뿜어내는 코를 찌르는 종이 냄새에 비해 이사 간 동네의 서점과 레코드 가게는 뭔가 비어 있고 급조된 듯한 엉성한 곳이었다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닥터 슬럼프> 도리야마 아키라, 웃긴 만화를 울면서 마감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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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캐릭터를 저렇게 잡았을까 그냥 편하게 살지. 매력 있어 그게? 못생긴 게 만만하게 보이진 말자 그런 거야?” tvN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서현진)이 동료를 모아놓고 마흔네살의 직장상사 박수경(예지원)의 험담을 하는 중이다. 다소 치우치고 못된 말을 동원해 상사를 씹고 스트레스를 푸는 게 흔한 일이긴 한데, 타인을 재단하는 기준이 유독 가혹한 경우엔 평가하는 사람의 자부심이나 콤플렉스도 투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해영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의 ‘이쁜 오해영’(전혜빈)의 들러리인 ‘그냥 오해영’ 취급을 당했다. “미워하면 지는 거다. 질투하면 지는 거다. 난 이런 걸로 상처받지 않는 꿋꿋한 여자애다. 그렇게 세뇌시키며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텼다”는 회고 속에는 주변의 기대와 인정에서 벗어나 있는 십대가 스스로 자아상을 만들고, 매일같이 극기하듯 자신의 가치를 구하던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존재감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익숙한 자기방어술이다. 당연하게
[유선주의 TVIEW] <또! 오해영> 나도 오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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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곡성> 귀곡성 마을
[정훈이 만화] <곡성> 귀곡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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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은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자에게 꽤 오랫동안 시달린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믿어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벌을 내리는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곡성>은 믿음에 관한 영화다.
마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살인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진다. 가해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 하나같이 피부병을 앓고 귀신에 들린 것 같은 행동을 했다. 주인공은 경찰이다. 얼마 전부터 마을에 일본에서 왔다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출몰하고 있다. 일본인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많다. 주인공은 이 일본인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는다. 그러다 주인공의 딸이 피부병과 귀신들림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다급해진다. 주인공은 일본인을 찾아가 마을을 떠나라고 협박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용하기로 소문한 박수무당이 마을에 도착한다.
<곡성>은 다 보고 나서도 꽤 많은 수수께끼를 남기는 영화다. 황정민이 돈벌이를 위해 악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극한의 공포 <곡성>의 악(惡)이 범상치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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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은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관계로, 개봉관에서는 못 볼지도 모르는 무삭제 상영이라는 것이 예매 시작 20분 만에 매진되도록 만들었다. 3회 이상 개최된 영화제에 한해서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을 부여받지 않은 작품도 상영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관련 법령에 따른 것이었다. 아예 등급부여 심의 자체를 거부해온 인권영화제를 제외하면, 국내 영화제가 등급보류 조치로 인해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 불허된 작품을 상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영화제쪽의 자체 연령제한 규정에 따라 18세 이상의 관객에게만 관람이 허용됐다.
당시 폐막을 이틀 앞둔 10월21일자 <씨네21> 부산국제영화제 공식데일리 8호를 보면 “18세 이상 관객만 입장시키기 위해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미처 입장권을 발급받지 못한 100여명의 게스트를 들여보내는 데 시간이 걸려 예정시간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이용관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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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미생>과 <응답하라> 시리즈(‘1997’ 제외)도 안 봤으니 말 다한 건가? <태양의 후예>에도 물론 관심 없다. <태양의 후예>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건 함정. 하지만 그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방사수한 드라마가 있다. 2013년에 방영됐던 <직장의 신>이다. 사실 다른 드라마와 비교되는 <직장의 신>만의 뚜렷한 매력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것처럼. 3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보다 기억에 남은 건 주제곡 <멀리서 안부>다. 이 노래가 엔딩에 나올 때마다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멀리서 안부>는 확실히 웰메이드 발라드다. 윤하의 목소리, 애절한 멜로디, 그리고 내내 소리를 지르면서도 늘 잃지 않는 묘한 절제미. 모두 좋았다. 나는 몇년 전 ‘한국 발라드의 가장 찌질한 순간 톱10’이라는 글에서 윤종신의 &l
[마감인간의 music] #감성폭발 - 윤하, <멀리서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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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부질없는 걱정에도 시달렸었다. 적어도 아오이 유우에 관해서는 나름의 투명한 틀을 정해놓고 행여 깨질세라, 다칠세라, 노심초사를 했던 것 같다. 처음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가슴 아픈 소녀로 다가왔던 여린 배우가, <하나와 앨리스>(2004)에 와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사춘기 소녀 앨리스로 인식되어 마음이 짠했다. 앨리스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헤어지며 “워 아이 니”(사랑해)와 “짜이 찌엔”(다시 만나)을 혼동하는 장면에서 울컥해 몇번을 돌려 보았고, 오디션장에서 비상하는 마지막 장면에 와서는, “소녀를 이렇게 엉큼하게 포착하다니. 이와이 슌지는 역시 참 ‘순정변태’군(웃음)” 하며 짐짓 우스개의 걱정을 보탰다.
이 배우의 커리어는 그렇게 얼떨결에 연예계에 막 입문한 신인 앨리스가 어떻게 성장해나갔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맞물려왔다. 어릴 때 슈퍼마켓에서 사먹던 네모 칸이 내 키만큼 붙어 있던 봉지처럼, 그녀의 매력은 절취선으로 한꺼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여기, 소녀의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