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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밀라노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함께 왔다. 밀라노에서의 하룻밤을 그린 <밤>(1961)을 통해서다. 패션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밀라노는 보통 세련되고 화려한 공간으로 각인돼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밀라노의 너무나도 눈부신 대성당을 떠올려보라. 그렇게 휘황찬란한 곳이 진정 신을 위한 성전(聖殿)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안토니오니의 영화에도 밀라노의 화려함과 세련미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밤>은 밀라노의 또 다른 성격을 창조했고, 각인시켰다. 바로 소외와 체념이다. <밤>의 고립된 인물들은 세상과 벽을 두고 있지만, 굳이 그런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체념한 채, 소외를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있다. 안토니오니의 인물들은 베르메르 혹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초상들처럼 대단히 고립된 채 체념하고 산다.
<밤>은 전반부의 낮과 후반부의 밤으로 양분돼 있다. 낮에 볼 수 있는 밀라노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사막에서 낙원까지 - <밤> <로코와 그의 형제들> <아이 엠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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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11월의 황량한 캠퍼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과 동기가 군인한테 차였다, 그것도 일병한테, 아무리 카투사라지만.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모두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마 묻지 못한 건 아니었다. 신이 나서 각다귀떼처럼 왱왱거리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우리 덕분에 그 애는 하루아침에 그냥 민정이에서 ‘군인한테 차인 민정이’가 되어 대학원생과 조교들의 동정까지 한몸에 받고 있었으니까. (그중 다수는 훗날 기자가 되었으니….) 문제는 캐물을 당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집이 망해서 몇달째 방세가 밀린 탓에 주인아줌마를 피해 야밤에만 자취방에 들어가던 그 애는 군인한테 (그것도 애인이 근무하던 부대 행정실로 전화해서 제발 바꿔달라며 몇번이나 매달린 끝에) 차였다는 수치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유리걸식을 하며 강원도로 떠나버렸다. 근데 강원도에 군인 많은데. 아무튼 차비가 없어 걸어서 이동하기를 여러 날,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군인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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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첩방은 전주의 나라, (중략) 얼굴이 이렇게 쉽게 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_-;) 전주국제영화제로 출장을 떠나기 전 문득 윤동주의 시가 떠오른 것은, 2000년 제1회 영화제를 찾았을 때의 숙소가 아직도 잊히질 않기 때문이다. 먼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당시 영화제로부터 제공받은 숙소가 아니었음도 밝힌다. 지금도 그 여관(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여인숙에 가까웠던)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예약한 조그만 방에는 침대도 커튼도 없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창은 컸고 열대지방처럼 너무나 햇빛이 잘 들었다. 방구석 어디에도 비처럼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방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대낮까지 잤더니, 정말 하루 만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 있었다. 만나는 지인들마다 “전주 오기 전에 어디 좋은 데로 휴가 다녀왔나봐?”라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선크림을 바르고 자라, 창 바로 아래 벽에 딱 붙어서 자라, 같은 빤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영화제 마지막날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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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내한하는 디스클로저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최근 송라이팅보다 샘플링을 이용한 몇 가지 클럽 트랙들을 작업 중이다.” 무슨 얘기냐면 보컬 위주의 대중적 하우스 말고 그루브 위주의 클럽용 하우스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디스클로저는 샘 스미스, 위켄드 등의 팝 슈퍼스타들과 콜라보해 인지도와 대중성을 높여왔다. 그들이 점차 클럽쪽으로 비중을 옮기겠다는 뜻이다.
고르곤 시티의 신곡 <Blue Parrot>도 같은 맥락이다. 고르곤 시티는 디스클로저와 마찬가지로 팝 하우스로 성공한 팀이다. 제니퍼 허드슨 같은 주류 스타와 콜라보해 영국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보컬이 아닌 그루브 중심의 음악을 발표했다. 어쩌면 얼마 뒤 발표될 앨범 《Kingdom》은 더 ‘클럽’ 지향의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 <Blue Parrot> 같은 곡이 빌보드에서 먹힐 가능성은 전혀 없다. 주류 음악계
[마감인간의 music] 다시, 마니아를 위하여 - 고르곤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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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어질 새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을 거라는 소식에 누군가가 이젠 같은 패턴이 지겹다고 댓글을 달았다. 2천년 전에도 존재했을 그 댓글이 달리거나 말거나 나는 <그랜마>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미니의 19금 일기> 블루레이를 주문했다. 모두 공교롭게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인 데다 극장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첫 연재의 소재로 <미니의 19금 일기>를 골랐다. 15살 소녀가 엄마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한 뒤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새벽 2시, 모두 잠든 후에 재생 버튼 클릭. 공원을 걷는 소녀의 엉덩이로 시작하는 영화의 배경은 1976년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는 남자애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있고 그 옆에선 반라의 여인이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영화의 첫 대사는 “나 방금 섹스했다!” 처음 보는 여배우다. 아니, 굉장히 낯이 익다. 크리스티나 리치 닮은꼴? 아니면 클로이 머레츠
[김현수의 야간재생] <미니의 19금 일기> 소녀의 섹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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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슈퍼히어로 등록제
[정훈이 만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슈퍼히어로 등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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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결말 스포일러가 4월4일 일기에 있습니다.
<테이크 쉘터>의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종말의 계시를 받고 방공호를 짓는다.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하워드는 음모론을 신봉해 같은 일을 한다. <테이크 쉘터>는 커티스가 본 멸망의 이미지가 계시인지 환각인지 관객이 고민하게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왜 꼭 둘 중 하나여야만 하냐고 의표를 찌른다. 존 굿맨이 연기한 하워드는 그래서 링거와 족쇄를 같이 주는 복합적인 악역이다. <바톤 핑크>의 찰리처럼 위압적으로 등장하지만 용의주도하다기보다 어설프다. 맥주병으로 자기를 공격한 당사자에게 상처를 꿰매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이다. 그의 방심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확신에서 나오고 이 점이 무시무시하다. “거절은 거절한다”가 그의 모토다. 하워드를 폭발하게 만드는 버튼은, 첫째도 둘째도 배은망덕한 태도다.
04/04
<클로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맞을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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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여소야대. 야당의 승리를 예측한 방송사의 출구조사 발표부터 SNS에는 실시간으로 안도의 한숨이 파도쳤다. 야당 지지자들은 드디어 박근혜 정권이 끝났다며 호외를 돌렸고, 박빙의 반전 속에서 탄식과 환호가 교차됐다.
그러나 그 요란한 개표 과정에서 소외된 채 공포에 잠식된 표정으로 계속 마우스를 클릭하며 선관위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밤 나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로고침을 해야 했다. 기독자유당의 비례대표 2석 확보가 예상된다는 출구조사가 타전됐기 때문이다. 정말 원내정당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삽시간에 공습했다.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극우정당의 원내 진입. 검은 미래임에 틀림없다. 득표율이 2.7%를 넘나드는 동안, 그 정당 기독교인들 수백명은 두팔을 쳐든 채 광폭하게 통성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성 소수자들은 제발 3%를 안 넘기를 바라며 새벽까지 새로고침을 하는 이 기괴하고도 웃픈 광경. 이번 총선의 가장 통렬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인권은 잊었나 - 성 소수자 혐오로 얼룩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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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쯤 되었을까. 일본 오사카, 도쿄 등지로 금요일 밤에 출발해 1박2일로 돌아오는 소위 밤도깨비 여행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시간은 있고(또는 없고) 돈은 없는 대학생이나 직장 초년생들을 타깃으로 한 여행상품이었는데, 일본에 도착하면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돈코쓰 라멘, 가쓰돈 등을 하루 종일 흡입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올리브 채널에서 시작한 1박2일간의 먹부림, <원나잇 푸드트립>이 방송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타이와 베트남, 일본, 대만. 즉 방콕의 디저트 여행, 하노이의 쌀국수 여행, 도쿄의 스시와 라멘, 타이베이의 소룡포와 조식 여행. 스테파니 리, 박나래, 유재환, 이연복이 함께한 이 먹방 여행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여권과 원나잇 푸드키트가 함께한다. 내용을 길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음식 이름을 나열하는 쪽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대만의 우육면, 소룡포, 일본 쓰키지 시장의 초밥, 우니동, 다마고야키, 하노이의 바나나튀김, 연유커피, 타이의 초콜
[김호상의 TVIEW] <원나잇 푸드트립> 1박2일간의 먹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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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지라> 새 예고편이 지난 4월13일에 공개되었다. 한마디 대사나 로그라인 없이, 사기스 시로의 묵시록적인 오라토리오가 깔리고, 명백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속에,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새로운 고지라의 모습이 몽타주로 지나간다. 그리고 무심하게 ‘7•29 [FRI]’ 개봉일자와 함께 이 영화를 좀더 리얼하게 즐길 포맷인 IMAX나 4DX 등의 로고가 붙으며 예고편은 끝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14일, 구마모토현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현재진행형이다. 재난과 재해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만드는 괴수영화. 새삼스럽게 이 장르가 기이하게 느껴지면서 문득, 우리가 재난영화라고 통칭하는 엔터테인먼트와 현실 세계와의 어떤 간극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파괴의 스펙터클과 현실
재난영화에서 관객은 무엇을 즐기는가? 파괴의 스펙터클이다. 우리는 대량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재난영화를 본다. 부정할 수 없는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고질라>와 <신 고지라> 재난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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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를 향한 내 애정은 각별하다. 물론 원작 이야기다. 마블 유니버스의 코믹스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이벤트다. 영웅과 악당 사이 옳고 그름의 대결이 아닌, 영웅과 영웅 사이 서로 다른 신념의 대결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시빌 워>는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나 앨런 무어의 <왓치맨>에 버금가는 문학성과 입체감을 보여주었다.
마블 유니버스를 영화화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있어서도 <시빌 워>는 매력적인 이벤트다. 일단 원작의 유명세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먼저 빌런의 문제가 있다. 영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관객은 새로운 슈퍼 빌런의 등장에 피로도를 느끼기 마련이다. 게다가 마블은 DC와 비교해 대중적인 빌런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면 본래의 히어로팀이 양분되어 대립하는 구도가 좋은 선택지로 고려될 만하다. 매번 타노스 수준의 빌런이 등장하고 그에 맞는 규모의 전투 신을 만들어낼 바에야 &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문제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