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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뽀로미’와 ‘반야바라밀’의 차이는 뭘까.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 연작에서 시간 이동을 하려는 주성치가 달빛 아래 월광보합을 들고 외치는 주문이 바로 뽀로뽀로미다. 실제 대사인 반야바라밀의 광둥어 발음을 보다 더 귀엽고 ‘주성치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이를 풀자면, 불교에서는 반야(지혜)를 최고의 바라밀(보살이 부처가 되는 과정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자 열반으로 가는 최상의 길로 설파하고 있다. 말하자면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이 수행을 하는 중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팩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주성치의 팬들이라면 오래전 VHS 비디오로 출시됐던 <서유기> 연작의 자막이었던 뽀로뽀로미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다.
그런데 일부 애호가들이 번역은 무조건 가감 없이 실제와 가까워야 한다는 이유로, 뽀로뽀로미를 정확하게 반야바라밀로 바꿔달라고 출시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었다고도
[에디토리얼] 뽀로뽀로미와 강백호 사이, 번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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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 리파는 자신의 음악을 ‘다크 팝’이라고 규정했다. 아마도 저음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라나 델 레이 이후 가장 매력적인 저음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20살의 치기 어린 표정에 서늘한 누아르를 드리운다. <Last Dance>의 도입부가 특히 그렇다. 절창도 아닌 읊조림으로 한 소절 만에 귀를 사로잡는 노래는 드물다. <Last Dance>는 그런 드문 순간을 소유한 노래다.
두아 리파는 라나 델 레이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어두운 바이브와 몽롱한 질감은 공통적이지만 좀더 댄서블하고 비전통적이다. ‘갱스터 낸시 시내트라’로 불렸던 라나 델 레이가 과거의 크루너들을 모방해 스트링 편곡을 즐겼다면 두아 리파는 언더그라운드 댄스와 전자음을 즐긴다. 2015년 <New Love>로 데뷔한 두아 리파는 아직 정규 앨범도 내지 않은 신인이지만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올해엔 슈퍼스타 등용문으로 공인된 <BBC Sou
[마감인간의 music] 걸 크러시 유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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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데드풀> 大道 POL
[정훈이 만화] <데드풀> 大道 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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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O. 러셀 감독(<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은 언쟁 장면을 쓰고 찍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1:1 갑론을박부터 방 안의 모든 인물이 한마디씩 거들며 삼천포로 빠지는 수습 불가 논쟁까지, 러셀의 영화에서 말싸움은 액션 세트피스를 대신한다. 배우 제니퍼 로렌스와 세 번째로 손잡은 신작 <조이>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가 겸 감독은 영화 속 대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다. 데이비드 O. 러셀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보내왔다. “영화 속 대화의 제일 중대한 기능은 리듬과 감정(의 구현)입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읽어볼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도 ‘이 대화가 살아 있는가?’입니다.”
02/11
<대니쉬 걸>의 제목이 직접 지칭하는 덴마크 여자는 물론 에디 레디메인이 연기하는 트랜스젠더 릴리일 것이다(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 여부와 무관하게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자아 정체성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외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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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민망하고 남우세스럽다. 한국 야당 정치인들이 미 대선 돌풍의 주역인 버니 샌더스와 닮았다고 다투는 볼썽사나운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좋게 봐서 정치 마케팅이지 사실 그 어떤 정치적 비전과 가치도 없다는 자학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읽는 혜안이 없으니 저 선거 열기만 생선가게 고양이처럼 탐욕스럽게 곁눈질하는 표정들.
그러나 버니 샌더스 열풍은 곁눈질로 커닝할 수 없는 논술형 시험문제에 가깝다. 얼마 전,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르몽드>에 기고한 것처럼, 샌더스 현상은 레이건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오바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다른 형식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그 분석이 옳다. 미국 자본주의의 지층이 뒤틀리고 있다는 신호다. 대기업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갈 거라는 신자유주의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동안 최저임금은 40년째 동결되었고, 상위 1%의 부자들이 미국 전체 소득의 23.5%를 소유하는 미증유의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급기야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제 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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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아나운서이자 여행 작가인 손미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과 같이 일할 기회가 생기면서, 그녀가 교장으로 있는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08년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서 시작한 이 학교는 2015년 서울에 개교하기까지 멜버른, 이스탄불, 안트베르펜 등 세계 아홉 개 도시에 분교를 두고 있는 비정규 학교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인생’에 관해 알려주는 학교라고 하겠다.
비록 강의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단기속성 액팅클라스- <배우학교>의 포스터를, 티저 광고를 볼 때부터 인생학교가 오버랩되었다. 배우 박신양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은 1996년 그가 데뷔한 양윤호 감독의 영화 <유리> 속의 그것과 변함이 없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결국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흔해진 체험형 예능의 범주에서 시선을 벗어나게 했다. 중견배우 이원종, 로봇연기로 다시 유명
[김호상의 TVIEW] 진심을 배우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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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라디오헤드는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메리 크리스마스, 포스가 함께하길”로 끝나는 메시지와 함께 <007 스펙터>(2015)의 미사용 주제곡을 올렸다. 아름다운 곡이다. 반복해서 듣다보니 <007 스펙터>를 두 파트로 나눈,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영화를 상상하게 된다. 샘 스미스의 곡을 쓴 파트1에서 스완(레아 세이두)이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에게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암살자니까”라고 하며 떠나버리고, 라디오헤드의 곡을 쓴 파트2에서 본드가 마침내 암살자를 때려치우고 스완에게 돌아가면서, <007 카지노 로얄>(2006)에서 베스퍼(에바 그린)로 인해 파괴되었던 영혼을 되찾으며 다니엘 크레이그 007을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 만들어진 영화는 그 모든 일을 해결하기엔 러닝타임이 짧고 호흡이 가빴다. 영혼은 그렇게 쉽게 되찾을 수 없다.
서로 사랑하는 둘이 세계로부터 도주한다는 낭만
기대한 프랜차이즈가 아쉬움을 안긴 대신, 전혀 기대치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도망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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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 살고 청담동 부근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회의 빈부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던 시절이었다. 동료가 사무실 근처에서 주운 휴대폰 하나를 두고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연락처를 찾으려고 열어본 전화기에 유명한 연예인과 매니저들의 전화번호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먼저 인터뷰를 잡았는데도 다른 일정이 들어오면 가차 없이 까이고 까이다가 영혼에 깊은 화인 하나 품고 살아가기에 이른 청춘들로서, 그 화인에 아로새긴 네 글자는 이.류.잡.지.였으니…. “베끼자.” 누가, 네가?
그랬다. 때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건 근미래에나 가능한 일로 보이던 선사시대,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주소록을 옮기려면 손으로 베끼는 수밖에 없던 암흑의 시절이었다. 결국 우리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면서 (사실은 없어, 가오) 궁상맞게 주소록 베끼는 걸 포기하고 휴대폰을 주인에게 넘겼다. 그는 누구였을까, A++급 여배우 ***의 매니저였다. 인터뷰 1회권하고 교환할걸 그랬지.
세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스타 뒤에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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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는 바로 <쉽게 씌어진 시>다. 어두운 현실에 대한 고뇌와 자기성찰을 통한 극복 의지를 담고 있다, 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윤동주가 걸어가는 생의 여러 국면에 시를 ‘들려주는’ 구조를 취한 <동주>에서, 이 시는 언제 들려올까 궁금했다. 또 좋아했던 구절은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였기에 윤동주가 남의 나라 일본에서 머무르던 그 고독의 시간에 오버랩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가 엇갈리며 일본군에 잡혀갈 때, 바로 내가 예상했던 그 장면에서 들려온 시는 <자화상>이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알다시피 <자화상>은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인 1
[에디토리얼] <동주>와 <귀향>의 의미 있는 흥행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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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순간 마음속 어디엔가 드리워졌던 실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3박자의 왈츠 리듬 속에 녹여낸 상실의 아픔이, 성대의 모든 근육을 다 동원해 피를 토하듯 노래하는 그 어떤 노래보다 더 간절하게 와 닿았던 까닭이다. 이아립은 바로 이 곡 <계절이 두 번>에서 내면의 격랑을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채우기보다는 비우고, 강렬해지기보다는 은은한 톤을 유지함으로써 자전하는 슬픔의 정서를 정말이지 인상적으로 표현해낸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아픔을 희망 고문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더 큰 슬픔과 아픔의 우물에 빠져 견뎌내는 것. 또한 이 곡에서 화자는 고통스러운 현재를 호소하면서도 그것이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 증상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음악적으로 상징하는 요소가 바로 통통 튀는 3박자의 왈츠 리듬과 ‘라라라’를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후렴구다. 그러니까, 사운드와 가사
[마감인간의 music] 진짜배기 이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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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룸>은 가로 3m, 세로 3m 남짓한 방으로 관객을 데리고 들어간다. 엄마(브리 라슨)와 다섯살 잭(제이콥 트렘블리)은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 작은 천창과 TV스크린만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틈이다. 코르크로 도배된 벽은 소리를 차단한다. 그러나 방 바깥 세계를 알고 있는 엄마와 ‘룸’에서 태어나 자란 잭이 느끼는 공간은 다르다. 엄마의 숨 막히는 감옥이, 아이에겐 무한한 상상의 가능성을 품은 놀이터다. 잭은 가구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대화하고 방 자체도 친구인 양 ‘룸’이라고 부른다. 영화의 제목에 관사가 없는 이유다. 모자의 상이한 감각을 반영하듯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앵글과 렌즈를 바꿔가며 공간감에 변화를 준다. 관객이 이 방의 물리적 넓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은 영화가 방을 벗어난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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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의 은낭(隱娘)은 숨어 있는 낭자다. 어릴 적부터 숲속에 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무리로부터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