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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1997년 9월13일 피카디리극장에서 <접속>을 보고 헤어지며, 몇년 후 다시 그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가 있었다. LA에 적을 둔 그 남자는, 연락처를 교환하는 대신 그런 영화 같은 만남을 제안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우린 참 ‘<비포 선라이즈>적’인 연애모드를 가동 중이었나 보다. 서울과 LA간에 펼쳐진 그 거리, 카톡도 페이스타임도 없던 90년대의 그 연애가 남긴 약속은 미련이었을까, 아님 어떤 기대였을까.
무수한 ‘단기연애’ 연인들에게 이렇게 기약 없는 운명론을 제시해준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커플들이 그 애매한 약속을 까맣게 잊고 다음 연애로 돌입한 9년 후 느닷없이 만난다. 이 만남에서는 “혹시나 너랑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너를 주인공으로 소설까지 썼다”는 제시의 늦은 고백보다, 그가 강연에 온다는 정보를 한달 전에 알고 챙겨두었다가 그곳에 나타난 셀린느의 용기가 100배쯤 가상해 보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기억 나? 한때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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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클로버필드 10번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정훈이 만화] <클로버필드 10번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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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로닉>의 데이비드(팀 로스)는 중병 말기 환자를 마지막까지 돌보는 간병인이다. 죽음 앞에 신체 기능이 쇠약해진 환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족보다 생판 남인 데이비드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데이비드의 헌신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남자는 환자를 가상의 가족으로 여기고 과거 자신의 어떤 기억을 보상하려는 듯하다. 오랜만에 내면으로 수렴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크로닉>의 팀 로스는, 데이비드가 가진 이타적 면모와 병적 측면을 모두 과하지 않게 표현한다. 아무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이 고요한 영화에서 제일 동적인 대목은 데이비드의 러닝 장면이다. 처음에는 체력관리로 보였던 이 광경은 서너 차례 반복되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육체의 고역으로 전치(轉置)하려는 몸부림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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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환이 있을 줄 알았다. <맨 오브 스틸>의 대량 파괴 시가전 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크로스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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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헤겔은 “우리는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못 배울 리는 없겠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역사 속의 인간은 앞의 실패를 교훈 삼아 현명하게 행동하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잘못을 반복한다. 그런 경향은 우연과 외부의 충격에 의해 멈추어질 뿐 여간해서는 깨달음에 의해 중단되지 않는다. 개개의 인간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더라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채 수명이 다하기 일쑤다. 인간의 집단 또는 세대는 다른 집단이나 앞선 세대의 뼈아픈 경험을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한다. 큰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고,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역사는 몸에 새겨지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최근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이런 한계를 절감한 까닭인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역사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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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한 작가가 맘에 들면 소위 ‘올킬’하는 방법을 쓰곤 한다.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읽고 맘에 들었다면 그녀의 전작을 사들이는 식이다. 그런 방식은 최소 5할 이상의 확률로, 효율적이었다.
<슈퍼스타 K> 시리즈로 기획력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Mnet의 김용범 PD. 그의 전작인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를 흥미롭게 보았던 시청자로서, 그가 최근 시작한 프로그램 <위키드>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엠카운트다운> 등과 나란히 Mnet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 국민 동심저격 뮤직쇼’ <위키드>. 어린이판 <슈퍼스타 K>라고 할까. 1983년 시작되어 2011년 막을 내린 <MBC 창작 동요제>의 예능 버라이어티 오디션 버전이라고 할까. 어쨌든 아이들이 나와서 동
[김호상의 TVIEW] 한뼘 더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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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징그럽다. 끔찍하게 징글징글하다. 수많은 피를 대지에 뿌리고 그 값으로 한발을 앞으로 내디뎠나 하면 이내 반동의 힘은 역사를 뒷걸음치게 만든다. 수구의 교활함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서로 싸우게 만들며 자신들의 문제를 내팽개쳐놓고 무관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역사는 온통 멍투성이다. 아주 더디게, 징그럽게 더디게, 한발씩 내디딜 뿐이다.
내가 겪은 역사만 해도 그렇다.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이미 거대한 군사 훈련소 같은 곳이었다. 그 군사 훈련소는 내 유소년기 13년 내내 콘크리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콘크리트에 균열이 간 것은 내가 열세살 되던 해 가을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 내 나이 열다섯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핏값으로 시민들의 손에 기본적인 참정권이 주어지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그 후에도 역사는 또 한번 우리를 배반했고 그 참정권으로 정권을 교체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또 필요했다. 내 나이 서른두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역사는 더디게 온다 이름 모를 희생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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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 공원에 놀러간 날이었다.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오르막길이었던 탓에 입사 3년 만에 처음 가본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려던 순간, 옆에 있던 선배가 탄성을 질렀다. 여기 늙은이들 되게 많다! 선배의 얼굴은 해맑았다. 응? 왜? 안 들리잖아! 선배, 늙으면 잘 안 들리긴 하는데… 자기 욕하는 건 다 들어요. 결국 우리는 그 신천지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노인들의 눈총을 받으며 쫓기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1937년생으로 의심의 여지없는 노인이었던 2000년에 이미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를 썼으며, 현대인의 수명 연장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15년째 노년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고광애씨에 따르면, 노인들은 안경보다 보청기에 반감이 크다고 한다. 가는귀 먹었다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만석 노인(이순재)이 보청기 소리만 나왔다 하면 호통을 치는 것도 그래서였나, 원래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노인들은 또한 말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나이에 비례하는 수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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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좋아? 내가 좋아?” 이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의 주인공은 바로 임권택 감독님의 부인 채령 여사님이었다. 지난 3월22일 CGV아트하우스 임권택, 안성기관 개관식에서 사회자 박중훈의 지명으로, 예정에도 없던 답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불려나오신 여사님은 오래전 영화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했다. 그날 영화에 의문의 1패를 당하신 것이 억울했지만, 지나온 시간들에 충분히 보상을 받은 느낌이라 하셨다(그리고 “임감독님이 예전에 김영화씨를 만났나요?”라는 박중훈의 애드립이 작렬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다음주 1051호 특대 2호에서 표지와 기획 기사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주 특대 1호 커버는 <더 킹>으로 처음 만난 정우성과 조인성이다. 정말 그들의 비주얼을 한참 넋나간 채로 바라보기만 했다. 한국영화의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창간 21주년 기념 특대 1, 2호를 빛내준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씨네21> 또
[에디토리얼] 창간 2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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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 오디션 프로그램 최고 수혜자는 누굴까? 갑론을박은 있겠지만,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는 반드시 상위권에 넣어야 한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2010년대 절대 음원 강자로 부상한 밴드의 중심에 장범준이 있다. 그는 작곡과 작사, 편곡을 책임지며 버스커 버스커의 색깔을 만들었다.
2014년 발표한 솔로 1집 음반 이후 햇수로 2년여 만의 귀환작 《장범준 2집》은 크게 두 갈래로 구성되어 있다. 첫 CD에는 오랜 시간 음악 활동을 함께한 황인형과 이규형이 ‘장범준 트리오’로 합류해 작곡과 작사, 편곡에 고루 참여한 아홉곡이 들어 있다(추천곡은 <자장가를 활용한 신곡>). 전자악기를 배제한 언플러그드(unplugged) 컨셉의 여섯곡이 두 번째 CD를 이룬다(추천곡은 <봄비>). 장범준은 기타와 베이스, 드럼과 보컬을 되도록 한번의 호흡으로 마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온전한 새로움이나 실험 요소가 드물고, 누가 들어도 단번에 흥얼거릴
[마감인간의 music] 친근하고 담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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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하이-라이즈> 하이라이즈 타워
[정훈이 만화] <하이-라이즈> 하이라이즈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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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비겁함이 궁금하다면 영화 후반작업 모니터링을 경험해보라 권하고 싶다. 투자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이 모니터링은 다수의 일반인들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에게서 5점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들을수록 영화는 온전한 모습으로 개봉할 수 있다. 문제는 낮은 점수가 나왔을 땐데 그때 내려지는 처방은 최악의 경우 재편집이다(극단적 최악은 개봉 보류가 있을 수 있겠다).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대중예술이기에 그들의 입맛에 맞춘다는 게 관계자들의 명분인데 그렇게 재편집을 거친 영화가 과연 궁극적으로 좋은 영화인가? 라고 따져본다면 그 누구도 제대로 답할 수 없을 것이다(‘좋다’라는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흥행을 기준으로 성공하는가, 라고 물어봐도 그것 또한 답할 수 없다).
이렇게 그 과정에선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무책임할 수 없는 게 다수결의 함정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옳은 것은 다르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