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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등신 미녀들이 액션영화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우연일까, 유행일까, 현실 반영적인 하나의 현상일까. 지난 가을과 겨울을 <미녀 삼총사>가 습격한 데 이어, 올 봄에는 <미스 에이전트>다. <미스 에이전트>의 출발점은 조금 달라 보인다. ‘미녀 삼총사’들이 미인계를 치명적인 무기로 동원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던 반면, 이 ‘에이전트’는 미인과 거리가 멀고 심지어 친해질 수도 없는 부류다. 그녀는 생존과 정의를 위해 혐오해 마지않던 ‘미인 탄생’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두 영화가 취한 태도와 동기는 다르지만, 스크린 뒤에 숨은 의도는 같다. 주인공 여성들은 상당한 지력과 무공의 소유자들로, 남성 전용석인 사설탐정 또는 FBI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지만, 이들에게 여전히 뇌쇄적인 미모(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는 필수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상충하는 카타르시스를 안고 극장 문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심각해지지는 말자. <미스 에이전트>는 ‘웃자고
팔등신 미녀의 액션영화, <미스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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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로 만나 생의 달고 쓴 굽이굽이를 함께 해온 남녀의 지난한 세월. 영화는 그것을 ‘우정세월’이라 이름하며 회고한다. <우정세월>을 이끄는 것은 우연히 산계를 만난 아지의 남동생 영오의 회상. 기억속 주인공들은 앞집 형 산계와 누이 아지이다. 허름한 홍콩 아파트 동네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번번이 피로 얼룩지며 성사되지 못한 결혼식까지, 이들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맺어낸다. <우정세월>은 이 사연을 다소 가볍게 훑어나간다. 영오라는 제3자의 시점을 통해, 그리고 시간의 간격을 둔 회상에 의지해 <우정세월>은 비장한 홍콩누아르를 로맨틱 코미디 터치로 그려낸다.어느덧 홍콩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다닥다닥 붙은 서민아파트는 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배경으로 나온다. 이 아파트에서 문을 마주하며 자라난 소년소녀의 가난이라는 공통적인 태생은 커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의 밑바탕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소녀의 집안사정을 다 아는 소년은 클럽걸
우정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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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전설’이 있었다. 깊은 숲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녀의 전설. 그걸 이용하여 저예산의 ‘의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다시 인터넷으로 ‘사실’인 것처럼 네티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통해 3만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2억4500만달러를 벌어들인 <블레어윗치>의 흥행 전설. 그러나 거짓 전설로 진짜 전설을 일군 <블레어윗치> 팀은 영면을 취하지 않고 전설의 재림을 꿈꾸었다. ‘의사 다큐멘터리’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한 저예산 공포영화의 속편은 어떤 길을 갔을까? 제작진은 같은 공간, 그러나 보이는 공포라는 길을 택했다.
<북 오브 섀도우>는 1편의 다큐 전략을 따라 TV의 토크쇼, 뉴스 릴 등을 현란하게 교차편집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마녀의 숲으로 들어간 다섯 사람의 뒤를 쫓는다. 물론 도구는 비디오카메라. 거기까지는 전작과 유사하다. 제프 일행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찾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조사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할까?
북 오브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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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 오브 더 건>은 자칫 방심하면, 따라잡기 쉽지 않은 영화다. 밤거리를 떠돌며 심심풀이 카드 놀이나 하는 한심한 두 청년. 이들이 재계 거물의 아이를 임신한 대리모를 납치한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그런데 그들을 뒤쫓는 패거리들이 돌변해서 달려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로빈을 구해야 하는 흑인 경호원은 거물의 정부와 연인 사이고, 로빈이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는 또다른 인물이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물간 늙은이들까지 총을 드는 사태를 맞닥뜨리고 나면 이 복잡한 이야기의 본말을 꿰어맞출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한방을 남겨둘 여유가 없어 최후를 맞았던 롱바우처럼.잠깐 내비쳤다가 감춰둔 패들을 연이어 던져대는 감독의 못된(?) 심보는 전력을 들추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탐정 일을 하다 친구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만나 1995년 <유주얼 서스펙트>로 오스카 각본상을 거머쥔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장본인. 그는 데뷔작에서 ‘친구 덕을 본 행운아’라는 오해를 씻고자
웨이 오브 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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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포장을 두른 <하루>나 판타지의 힘을 빌린 <번지점프를 하다>와 달리 <선물>은 고전적인 멜로드라마다. 아내의 병을 알아차렸을 때 영화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진다. 아무리 슬퍼도 남들 웃기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개그맨, 그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병원 응급실에서 초를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무대에 서 있는 그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남편이 웃기는 모습을 보는 여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인가? 답이 예고된 질문들이지만 멜로드라마는 눈물을 감추지 않는다. 관객은 <하루> <번지점프를 하다>에 이어 다시 한번 불행한 연인들과 마주한다.출신의 비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물>은 스스로 내건 목표에 대해 솔직하다. 더불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를 위해 남자는 그녀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한다. 아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바보 같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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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전설>은 중국의 전통 인형극 포대희(布袋戱)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형의 정지동작을 연속 촬영해 섬세한 동작을 보여주는 스톱모션 인형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손으로 인형을 움직이고 이를 다양한 앵글과 카메라 액션을 이용해 보여주는, 굳이 말하자면 ‘인형 실사영화’다. 인형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따분하거나 유치하지만은 않다. 햇수로 3년 동안 125억원의 제작비를 들였고, 1천여평의 공간에 꾸며진 정교한 대형세트를 배경으로 타이트하게 촬영한 실사화면과 컴퓨터그래픽의 다양한 특수효과를 곁들인 덕에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고 환상적인 대작무협영화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인형들이 펼치는 액션은 정교한 맛은 덜하지만 화려하기 그지없다. 인형들은 빙빙 돌며 공중으로 차오르거나 발을 이용해 상대방의 검을 차내는 등 홍콩 무협영화의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스케일면에서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보다 한수 위의 세계를 만끽하게 해준다. 칼을 휘두르는 기세에
성석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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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사>에는 정우성이 출연하지 않는다. 대신 국내에도 개봉된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나라야마 부시코>의 오카다 겐과 서구에서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액션배우 소니 치바가 나온다. <춤추는 대수사선>과 <화이트아웃>으로 일본 최고의 흥행배우가 된 오다 유지도 조역으로 출연했다. 감독은 <철도원>으로 한국에서도 흥행성공을 거둔 후루하타 야스오다. <무사>는 한국영화가 아니라 89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사무라이 액션영화다.<무사>를 최첨단의 특수효과가 잔뜩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줄 하나에 의지하고 절벽을 건너가는 장면에서 매트 페인팅인 것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무사>는 구식영화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는 난데없이, 80년대풍 록음악의 주제가가 연주된다. 액션은 때로 휘황하지만 너무 수공업적이다. 21세기에 만나는 <무사>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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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트>는 “영화에 대해 뭘 바래?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안 나면 되지”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관객을 위한 종합선물세트형 오락영화다. 전자오락실 기계 화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속도감은 기본이고, 연방은행을 교란하는 컴퓨터 해킹, 첨단 IT 기술을 자랑하는 수사본부, 정신병 징후를 보이는 천재 범죄자, 뉴욕 뒷골목의 수다스런 날건달, 그가 영웅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내와 아들, 영화의 끝에야 밝혀지는 수수께끼 등.어쩌면 할리우드의 프로듀서들은 ‘흥행영화 만들기 ABC’라는 교본을 갖고 있을 않을까. <베이트>는 그런 유의 노하우를 과시하는 훌륭한 짜깁기 영화다(험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장르영화가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다).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려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하는 앨빈 캐릭터를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마장의 말 관리인이던 앨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사주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장난감을 훔쳐와서 들키기 전까지 두 시간 동
베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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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잠들다>는 장 자크 베넥스가 1986년에 만든 <베티블루>의 설정을 그대로 따온 영화다. 두 남녀의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물론이고 조연들의 역할까지 원본에 따라 충실하게 ‘배분’했다. 집주인이 여주인공의 속옷을 들어올리며 희롱하는 장면까지 빼놓지 않은 걸 보면 감독의 꼼꼼함(?)은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내친 김에 베티의 상실감까지 훔쳤으면 좋으련만. 영화는 <베티블루>를 완벽하게 흉내내지 못한다. “운명은 내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라고 울며 말하던 베티, 비정한 욕망의 신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버리면서 복수하는 베티가 여간해서 수빈과 겹쳐지지 않는다. 수빈 역시 가슴을 도려내지만 말이다.힘들이지 않고 본뜬 탓에 괴로움은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베티블루>를 기억한다면 변주없는 반복의 지루함에, 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의 비약 때문에 그렇다. 더구나 신파를 끼워넣은 결말 부분은 보기 민망할
그녀에게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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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데뷔작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을 통해 재기발랄함을 입증한 가이 리치가 선택한 두 번째 영화는 전편을 업그레이드한 작품이다. 고만고만한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기가 막힌 시나리오와 경쾌한 연출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그로서는 첫 작품에 충분한 예산을 털어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이 리치는 초저예산영화 <엘 마리아치>로 재미를 본 뒤 당대의 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기용해 범작 <데스페라도>를 만든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낭패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브래드 피트나 베네치오 델 토로 같은 스타급 연기자가 기용됐지만 이야기는 전편보다 매끄럽지 못하고 스타일도 전편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전편과 달라진 점이라면 자신의 아내 마돈나의 <럭키 스타>를 영화 중간에 틀어놓을 정도로 뻔뻔해진 가이 리치의 태도쯤?). 불행히도 리치 역시 로드리게스가 거쳐간 수렁에 빠진 셈이다.물론 <록 스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스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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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의 모티프가 어느 정도의 극적 긴장을 획득하려면 대체로 잃어버린 그것의 가치가 상당히 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른바 ‘사건’이란 게 형성되려면 무언가 중요한 곳에 급히 쓰일 거액의 돈 정도는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천국의 아이들>은 이런 ‘좁은’ 생각이 결코 옳지 않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알리가 잃어버린 것은 기껏해야 여동생 자라의 헌 구두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에서 주인공 부자가 잃어버리고 만, 생계수단으로서의 자전거와 비교해봐도 너무나 하찮은 것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천국의 아이들>은 잃어버린 물건이 그처럼 미미하다는 것을 오히려 통절한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남들이 대단치 않다고 치부하는 그런 것조차도 갖지 못하는 사정이야말로 비극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어이없지 않은가.구두 한 켤레 잃어버린 소소한 일만 갖고도 알리와 자라는 자신들을
천국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