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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 마사유키의 영화들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 첫선을 보인 작품이 <쉘 위 댄스>(1997)이고, 그 다음이 <으랏차차 스모부>(1992)이며, 마지막 주자가 <팬시댄스>(1989)이다. 시간을 거슬러서 감상하는 재미는 수오 마사유키 군단(모토키 마사히로, 다케나카 나오토, 다구치 히로유키)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그때 그 모습’ 그리고 변치 않는 수오 감독의 ‘초심’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 댄스교습소로, 스모장으로, 산사로, 공간을 바꿔 이야기를 변주하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발견한다’는 핵심은 한결같다. 그런 고전적이고 심플한 메시지를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키는 감독의 만듦새도 새삼 경탄스럽다.“이 길은 멀고 험한 길, 왜 넌 이를 악물고 가려고 하지?” 입산 직전, 요헤이는 고별무대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는 스스로 답한다. “이 길밖에 없잖아.” 이후 전
<팬시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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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에게는 오직 하나의 영화적인 주제, 즉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 혹은 그의 육체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철학자 질 들뢰즈였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첫 장면은 언젠가 레네에 대해 들뢰즈가 했던 이런 언급부터 떠올리게 한다.영화가 시작되면 먼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서로 껴안고 있는, 벌거벗은 두 사람의 어깨와 팔이다. 그 육체들 위에는 재 모양의 미립자들이 뿌려진다. 이 이름 모를 육체들 위에 잔뜩 뿌려진 가루들을 씻겨주는 것은 이 숏 위로 오버랩되는 다른 숏이다. 이 장면들이 상징적으로 대략 무얼 보여주려 하는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불러온 끔찍한 양상을 담은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영화의 그 첫 숏들은 분명 핵폭발 때 생기는 버섯구름의 형상과 아주 닮아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히로시마 내 사랑>의 도입부는 우선적으로 이것이 원폭으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의 고통이 어떤
<히로시마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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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장군에서 노예로 전락했다 다시 검투사가 된 풍운아였다면, 얌전한 규수가 고급 매춘부로 변신해 국가대표 로비스트 노릇까지 하고 마녀재판정에 서는 베로니카의 인생 역정도 그에 못잖다. 마거릿 로젠탈의 전기 <정직한 매춘부>를, <가을의 전설>의 제작자 마셜 헤르스코비츠와 감독 에드워드 즈윅이 역할을 맞바꿔 영화화한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은, <에버 애프터> <잔다르크>처럼 현대적인 페미니스트 구호로 업데이트된 시대극이며 머천트 아이보리풍 장정의 ‘할리퀸 로맨스’다.‘거래’에 가까운 결혼 풍속에 연인을 빼앗긴 베로니카는 수녀와 창녀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한다. 정숙한 여인의 훈장과 바꾼 자유로운 펜과 육체로 그녀는 종이 위에, 침대시트 위에 시를 쓴다. 한 남자가 아닌 사랑 자체를 사랑할 것. 정신으로 유혹할 것. 남자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흉한 상처에 입맞출 것. 자기가 유일한 남자라고 믿게 할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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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궁금증을 못 이긴 아이의 질문에 어른들은 수수께끼같은 은유로 화답하거나 아예 회피한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욕망도 부풀어오른다. <내 마음의 비밀>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홉살짜리 소년이 어른들이 간직해온 비밀의 영역으로 한발두발 조심스레 다가드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시골집의 어머니 방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소년 하비의 세계엔 어른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없다. 아이는 빈 집에서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망자의 고백이라고 믿거나 봄날을 맞은 강아지들이 서로 얽히는 광경을 보면서 ‘개들이 왜 싸우는 걸까’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어놓은 금기의 선을 넘은 뒤 하비는 아주 조금씩 커튼 뒤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의 관계, 아버지의 사망 원인, 빈 집의 유령, 마리아 이모와 로사 이모의 갈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어른들의 진실’은 앞으로
<내 마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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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령이 보여요.” <식스 센스>의 꼬마 콜은 무섭고 외롭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저주받은’ 재능(gift) 때문에. 카드점을 치는 애니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타인의 미래와 운명을 알 수 있는 예지력이 있고, 그 재능 때문에 존경도 미움도 받는다. <기프트>는 그녀와 얽힌, 그녀가 점을 쳐주는 세 사람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도니를 미워하면서도 얽매여 있는 발레리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며 애니를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정비공 버디, 자상하고 친절한 학교선생 웨인과 그의 요염한 약혼녀 제시카.<기프트>는 충실하게 스릴러의 기단을 쌓아간다. 애니는 제시카에게서 죽음의 환영을 보고, 발레리에게는 이혼하라며 조언을 하고, 버디에겐 그의 상처를 기억하라고 권한다. <기프트>는 각각의 사람들이 얽힌 에피소드를 죽 나열하면서 하나하나 고리를 엮어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그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서 사
<기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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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가 일본의 스포츠이고 씨름이 한국의 스포츠인 것처럼 미국 정신을 구현하는 단 하나의 스포츠를 고르라면? 미식축구야말로 어깨를 부풀려서라도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힘의 논리와 뺏고 뺏기는 땅따먹기 전쟁의 쾌감과 승리자는 모든 것을 가진다는 미국식 게임의 정수이기도 할 법하다. 그 동네에서는 승리자에게 다시 한번 킥을 찰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트라이 포 포인트) 패자부활전이 있는 우리네의 씨름과는 정반대의 이치인 것. 잘하는 놈은 한번 더 밀어주는 규칙이 공평이라는 것이다.미국이 사랑하고 할리우드가 밀어준 미식축구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카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나? 이미 <살롱>의 앤드루 오하이어가 지적했듯 <리멤버 타이탄>은 기괴한 나라의 기괴한 스포츠에 관한 기괴한 스포츠 필름이다. <조이>니 <애니 기븐 선데이>니 하는 미식축구영화들이 승리의 과정에 드라마의 얼개를 둔 정통 스포츠영화라면
<리멤버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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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적이며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실직은 단지 일을 잃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능력자’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쓴 채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행복한 가족계획>의 주인공 가와지리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추스리기도 전에 그는 가족들의 질시라는 고단한 현실과 마추쳐야 한다. 가업을 물려받을 가게 직원에게 딸을 주고 싶었던 장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구박하는 아내나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꽝”이라고 얘기하는 아들까지 이 실직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와지리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단지 300만엔이 탐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추된 권위와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다. 짐작하겠지만 가와지리가 피아노 연주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일주일 동안의 도전 과정에서 그가 자신감을 찾고 온 가족이 다시금 화사한 웃음을 지을 수 있
<행복한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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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드래곤>은 서구의 오래된 설화와 이를 집대성한 J. R. R. 톨킨의 <반지전쟁>, 그리고 70년대부터 미국 젊은이를 사로잡았던 카드 롤플레잉게임(RPG) <던전스 앤 드래곤스> 등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실제로 게리 가이객스의 작품인 원작 게임은 훗날 컴퓨터 시스템에 맞게 이식돼 <히어로스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비롯한 거의 모든 RPG의 원전이 됐다. 때문에 RPG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드래곤, 기사, 마법사는 물론이고 엘프, 드워프 등의 캐릭터에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의 전개 역시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졸지에 정의의 기사가 된 리들리가 사브릴의 지팡이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과제를 해결해나가며, 이 과정에서 동료를 하나씩 얻어간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RPG의 문법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던전 드래곤>은 젊은 관객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전설 속의 과거를 시대
<던전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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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청춘남녀, 장소는 바깥 세계와 떨어진 외딴 곳, 섹스하면 죽는다, 살인마가 죽었다고 안심하지 마라. <컷>은 난도질 공포영화의 공식들을 정확히 지켜간다. <나이트메어>에서 <스크림>까지, 공포영화의 걸작들이 일궈낸 장면과 소품까지 일일이 ‘카피’하면서.공포영화를 만들다 살해당하는 스탭들이라는 설정은 <스크림3>에서 등장했다. <스크림>의 그림자는 <컷>을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어른거린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라피의 실루엣은 <스크림>의 시드니와 겹쳐 보이며, <피의 축제>의 시작은 <스크림>의 오프닝과 똑같다. 살인마가 일격에 여자들을 죽이지 못하고 그들에게 가격당하는 것도 <스크림>의 가르침. 그밖에도 <컷>이 참조한 공포영화는 다양하다. 살인마의 무표정한 마스크는 <할로윈>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의 그것이고, 마스크를 벗은 살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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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인버스>는 플롯을 잘 짜놓은 영화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또 과거에서 대과거를 회상하는 이중 플레시백 구성으로, 세 시간대의 이야기가 바이올린과 인물들에 얽힌 관계의 올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바이올린 경매에서 만난 늙은 블라우 남작과 젊은 여인 콘스탄자가 한나절 마주 앉아 2년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함으로써 영화는 시작된다. 곧 ‘1968년 프라하’에서,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콘스탄자가 ‘캐논 인버스’ 연주를 듣고 그로부터 바이올린을 건네받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콘스탄자에게 들려준 예노와 데이빗, 소피의 이야기에까지 이른다.‘캐논 인버스’는 두 연주자가 악보의 처음과 끝에서 각각 연주하기 시작해 결국에는 서로 만나는 음악적 형식. 두 주인공의 애증에 관한 영화임을 제목에서부터 슬쩍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화자의 내레이션이 중간중간 삽입되며 현재로 왔다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전형적인 회고담이다. 독특한 점은
<캐논 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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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비정한 질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르영화지만 <친구>의 야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사건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곽경택 감독은 난폭하고 잔인한 조직세계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진 않는다. 그가 재현하려는 것이 90년 부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제나이트클럽 살인사건의 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독차의 뿌연 연기를 뒤쫓는 벌거숭이 동네꼬마들을 담은 첫 장면이 암시하듯 <친구>는 낯선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어떤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그 시절 들뜬 마음으로 여고축제를 찾았던 까까머리 친구들에게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무언가가 성인이 되고 난 어느 날 흔적 없이 증발해버렸다. <친구>는 이곳의 탁한 공기에 희석되어 사라진 언덕 저 너머의 청명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영화다.13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대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감독의 분신인 상택의 눈을 거쳐 화면에 자리잡는다. 상택은 모범생이던 자신과 달랐던 두
네 갈래 길, 그 시절 맹세는 어디로 갔을까